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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를 듣다 울었다 - 그 소란한 밤들을 지나
정은영.생경.성영주 지음 / 몽스북 / 2025년 2월
평점 :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묘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까?
백 년을 살자고 철썩같이 약속한 결혼이나 이제 지쳐 보기 싫다며 이혼하자는 우리의 인연들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궁금해 진다.
흔히 이해 불가한 내용이나 현상들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받아들임이 인식의 과정이라면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사안에 대한 이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나, 스스로가 너무도 바보같고 억울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일이지 싶다.
특히 결혼도 아닌 이혼이라면, 어느날 갑자기 백 년을 살자던 옆지기 그, 그녀가 헤어지자 통보 한다면 과연 나, 우리는 아무말 없이 OK라고 말할 수 있는 쿨함을 갖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인간의 삶은, 특히 살을 부대끼며 살아 온 삶의 과정이 녹록치 않음에 오욕칠정이 다 들어 있는 사고를 정지시켜 버리고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나,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과 그리움과 괴로움 등에 휩 쌓여 있는 존재들에게 어느 순간 마음에 꽂히는 노래자락 하나가 안간힘을 쓰며 억눌렀던 우리의 감정을 터트리듯 울게 만들지도 모른다.
잔나비를 듣다 울었던 그녀처럼 말이다.
삶이 그런거라고...그러니 이제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말도 잘 벼룬 칼로 가슴을 찌르는듯 한 통증을 유발시킨다.
삶은 시가 되고 시는 노래가 되며 노래는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는 혹은 또다른 모습으로 나, 우리를 만들어 내는 존재들이 된다.
잔나비만 그러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살아 온 삶의 다양성들이 우리에게 찬란한 무지개빛 스펙트럼처럼 난사되는 환영을 이혼의 과정에서 흔하게, 너무도 자주 만나게 된다.
이혼이 주는 고통의 시간이 짧게는 3년 길게는 5~8년이라니 살아온, 살아낸 만큼의 정을 떼어내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의 우리, 만남과 이별의 인연이 너무도 쉽게 이뤄지고 있음이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한 일들이 너무도 가볍게 일어나고 반복된다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라 할 수 있다.
이혼으로 인한 상처를 어루만지고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삶은 귀중한 손님이지만 함부로 내몰수는 없다.
나를 찾아 온 손님과 끊임없이 속삭이며 이별없이 삶의 결혼기간을 이어가야 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 이혼, 그 어떤 이유로 맞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겪는 나, 우리의 마음의 고통과 방황은 온전히 나,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잔나비를 듣다 우는 일은 그래도 온전한 축에 속하지 않을까?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 같은 노랫말을 들으면 정말 헤어진 그, 그녀의 생각에 눈물, 콧물이 쑥 빠질 수도 있을것 같다.
공저자 세 분은 모두 이혼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들의 쉽지 않았던 이혼과정과 그 후의 삶에 대해 특별나게 의식하기 보다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개인적인 기회로의 이혼임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들을 이해하며 그들 삶에 잠시 머물던 이혼의 고통과 상처를 떨궈내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비상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엿보게 해 준다.
이혼이 삶에 있어 결격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왜?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털고 일어나 본래의 나, 우리로 성장하는 시간을 만드는 일에 잔나비도 응원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