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오디세이 -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원작 대서사!!
호메로스 원작, 손길영 편저 / 스타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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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디세이 열풍이 불고 있는듯 한 느낌이 든다.

흔히 우리는 오디세이를 두고 대서사시로 지칭한다.

대서사시는 서정시·극시와 함께 시의 3대 종류에 속하며, 신화·전설·국가·민족·역사 또는 인류의 운명 같은 심각한 주제를 객관적 서사 형식으로 풀어내는 장편 시로 말할 수 있다.

그러한 대서사시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존 밀턴의 실낙원을 들 수 있으며 오래된 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져 현대인의 독서에는 쉬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뛰어난 전문가의 솜씨로 초역판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귀중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가져볼 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디세이는 그리스의 서사 시인이 쓴 오디세우스의 10년 귀향길에 일어나는 모험과 고난, 그가 겪는 인내와 복수의 대서사시로 명작 영화 감독으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원작 <오디세이>를 고스란히 문장으로 옮겨 놓은듯 한 기시감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초역 오디세이" 는 3천 년을 살아 남은 한 인간의 모험과 복수, 생존에 대한 감동적인 드마라이자 교훈적인 드라마로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다.

초역이라는 말은 처음으로 번역한다는 말로 그간 수 많은 오디세이로의 책과 영화가 제작되었다.

그런데 초역은 어떤 의미인가? 놀란 감독은 '반성하는 영웅'을 주제로 오디세이를 다시 번역했다는 점이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을 반성하는가?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를 통해 수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 마져 모두 사라지게 만들어 혼자 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연 그런 이를 우리는 영웅이라 칭송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집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의 모험을 거쳐 귀향하지만 오늘을 사는 나, 우리에게는 그런 모습이 결코 바람직한 모습으로 비춰질 지는 아무로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그가 보여 준 귀향길에서의 수 많은 모험들과 유혹, 절망 속에서도 무릎 꿇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점은 높이 사줄만 하다 평가할 수 있다.

온전히 그러한 모습은 나 다운 삶으로의 회귀를 꾀하고자 하는 의미를 드러내지만 아마도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칼립소 여신의 유혹처럼 불사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을 버리고 말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디세이가 주는 의미는 인간인 이상 인간이 가진 한계가 분명 존재할 터 신의 유혹에 넘어간들 불사의 신이될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결과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일이지만 오디세이는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인간 존재로 남아 고향과 아내와 아들이 있는 이타카로 향해 간다.



오늘을 사는 나, 우리는 지금 오디세우스와 비교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는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신들의 위협과 고통을 온몸으로 맞서며 10년의 시간을 매진한다.

호메로스는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삶을 창조했을 때는 분명 신과 인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자 했음을 알고 있었거나 그렇게 사유했을 것이라 판단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이라는 기나긴 항해가 거친 바다위를 떠돌아 고향으로 향하는 오디세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기에 힘과 용기를 불어 넣고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해 우리가 그리는 본능적 고향과 가장 친밀한 가족에게로 향하는 그리움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표현해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오디세우스의 삶이 오늘 우리의 삶과 비교해 볼 때 우리가 배우고 교훈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치와 의미를 찾아 삶에 변화를 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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