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의 영원한 숙제처럼 여겨지는 '신은 왜 인간을 만들어 내었을까?' 하는 물음은 아직 그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지속되고 있는 삶을 위한 물음표가 되고 있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라 생각되지만 그 역시 마뜩치 않음이 존재한다.
피조물이라 함은 창조자의 명령이나 주문에 거부할 수 없음을 갖는데 그것이 인간을 통해 바라보면 마뜩치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간 스스로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규칙의 짐을 지운 것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주문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인간은 신의 주문에 따른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자기만의 삶을 꾀하는 존재로 나아가고 있다.
마치 그 옛날 오디세우스가 그랬던거 처럼...
최근 고대 그리스 신화로 읽혀지는 오디세우스의 오디세이아가 인기를 끌고 있는 즈음 그의 존재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며 인간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는 인간의 존재감이 신이 부여한 운명에 귀속되지 아니하고 오롯이 자신만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는 인간 그 자체의 존재감을 확연히 느끼게 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운명이라는 단어는 너무 무겁고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체념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마치 운명이 우리에게 씌워진 족쇄와 같은 느낌의 그것이라면 인간인 우리는 과연 그 운명에 맞서 신이 부여한 삶이 아닌 나 다운 나의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들, 포세이돈, 아테나, 제우스, 헤르메스 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들로 이해할 수 있다.
나, 우리를 굴레에 갖히게 하는 모든 것들의 문제들이 바로 그러한 신들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신의 주문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운명에 수긍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신의 이름에 반기를 들고 자유와 저항정신을 드높여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인간으로의 존재감을 드러낼 것인가 하는 경계를 확연히 구분해야 한다.
현실이라는 상황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지금의 나, 우리에게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각기 다른 의미로 읽혀질 수도 있다.
지난한 고난의 길이 될 수도 있는가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삶, 인생이라는 길을 찾아 내고자 하는 나, 우리의 정체성으로 신의 주문에 대적하는 방패를 만드는 일이다.
오디세우스의 서사를 쓴 저자 호메로스는 고난을 수용하라, 유혹을 경계하가, 희생을 감수하라, 심연을 응시하라, 이타카를 탈환하라고 주문했다.
인간의 삶이 무한한 고난의 역사로 이뤄져 있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오히려 신들의 주문이 우리에게 그러한 고난의 무대처럼 작성되 있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마음의 유혹을 끊어내는 일은 현실이라는 안락함을 뒤로하고 진짜 나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실천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희생을 안타깝거나 아쉬워 하지 않는다.
미련을 갖는 마음을 떨쳐 내고 침묵으로 마음을 다스려 내면이 주는 묵직하고 깊은 울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심연의 소리를 듣고 응시해 어떤 고난에도 당당히 맞서고 일어설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는 나, 우리의 삶,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를 되찾듯 우리가 목표하는 나, 우리 자신의 모습을 확연히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해 내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