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00층에 사는 남자
신문석 지음 / 가나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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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현실의 희망에 희망을 논하고 말한다고 해서 희망고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희망고문은 고문이 아닌 암흑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것이다.
희망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오롯이 타오르는 작은 촛불과도 같은 모습으로
다가선다.
비록 현실이 암담하고 힘겹더라도 그런 현실을 딪고 일어서야만 우리는 우리 삶에서 희망
이라는 빛을 볼 수 있을 것임을 부인할 수 는 없다.


이 책 "지하 100층에 사는 남자" 는 직장 선배 부모의 상황이 위급하다는 말에 자신이
가진 돈은 물론이거니와 주위 지인들의 돈까지도 빌려줬으나 그런 상황이 모두 사기
였음이 밝혀진 일,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과정들은 그야말로 따듯한 하늘 아래의
햇살이 비치는 삶이 아닌 빛조차 들지 않는 지하 100층 아래에서 간신히 목숨만 구명
하고 있는듯 한 삶을 살아야 했던 저자의 외로운 분투 이야기이다.


죄라면 사람을 믿은 죄 밖에 없을 저자에게는 믿음의 대가로 얻게되는 사기죄와 연쇄적
발생의 악운들은 그야말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하늘이 아니라 죽으라고 죽으라고 하는
강요와도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한 순간에 행복한 삶을 꿈꾸던 존재에서 희망이 아닌 절망과 삶에 대한 체념을 가져야
한다면 과연 그런 삶에 희망이라는 끈을 붙들고 삶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면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 끝에 극단의 선택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하고 두려운 생각을 가지게 된다.


주위를 둘러 보자. 가까이에서 부터 좀더 멀리 까지를 둘러 보면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도
정말 지하 5층, 20층, 100층, 150층...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이란 진정 고문과도 같은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린다면 생명의 끈을 놓는것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될까봐 두렵고 무섭다.
지하 100층, 아니 어쩌면 더 밑바닥 까지 내려갔더라도 다시 한번 평지로 올라가 따스한
햇볓을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행복을 느끼는 순간까지 올라가 보자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저자가 그랬듯이 삶른 소소한 행복으로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소함이 이루어진 인생을 무시하지 않고 소소함 마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나간다면
분명 지하 100층의 삶에도 머지 않아 봄날의 따스함처럼 새로운 삶을 마주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믿고 싶다.
인생은 살아 볼 만 한 것이라고 하는 말을 진정으로 깨닫는 일도 희망적인 삶이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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