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어쩔수가없다> 영화에 대한 여러가지 인사이트

특히 박찬욱 감독 영화가 보고 나서 해석할 장치들이 많아 재밌다


1층에 들어가 2층으로 나오는 듯한 이 감칠맛에 영화를 보고 리뷰를 찾아 보고 읽는다


1. 인터넷 리뷰 글: 세 명은 만수(이병헌 분)의 또 다른 자아다

범모는 동일시한 모범적 자아

시조는 스타일리시하여 되고 싶은 자아

선출은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자아


2. 백수골방 : 전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다. 설득 되지 않는다는 여러 논리에 익숙해졌는데 튜나가 비틀어 해석한다. 다 알고 감안하고 만든 영화다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6769339


3. 튜나: 충분히 다른 답을 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며 밀어붙이는 자기합리화의 모순에 대한 영화다. 물질과 능력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 대하 비판이다


4. 다른 영화에서처럼 살인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해 엄마나 아내나 딸이 아파서 입원했다거나 빚이 많다거나 하는 클리셰를 심었으면 정말 다른 영화가 되었을 수 있다.


한국의 일반적 중산층을 그려놓지 않았고(교외 마당 딸린 주택), 관객이 공감 못할 정도로 허영적인 삶(댄스 첼로 테니스 13개월 만에 동난 퇴직금)을 묘사한 것은 소격효과의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biyW9Qd4L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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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자민당 총재선거 결선투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가 승리했다. 일본은 국회가 선출한 총리를 텐노가 형식적으로 재가하는 구조고 장기적으로 자민당이 집권여당이기 때문에 자민당 총재선거는 사실상 총리선거와 같다.


기시감이 든다. 데자뷰! 2017년과 2022년 프랑스 마크롱vs르펜에서 1차 투표 결과 그대로 결선 투표로 갔던 구도와 비슷하다.


2017년 1차 투표에서

마크롱vs르펜 23.8% vs 21.5%이

결선투표에서 66.10% vs 33.90%가 되었다.


2022년 마크롱 재선 여부를 결정하는 대선 1차 투표에서

마크롱vs르펜 27.6% vs 23.4%이

결선 투표에서 58.54% vs 41.46%


3-4위 지지자 중에 르펜 반대표가 많아 마크롱이 결선에서 그 표를 흡수했다. 1등에 반대하는 3등 이하가 2등에게 힘을 몰아줘서 역전승을 하던 적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1등이 그대로 1등이 된다.


다카이치 사나에에게 표를 준 자민당 의원들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해석이 있겠다.


일본의 선거제도는 한국처럼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를 섞은 반반 짬뽕이다. 준비례대표제(semi-proportional formulas)라고 한다.


유권자는 의원 후보자 1명 + 정당 1곳을 함께 뽑는데 소선거구에서 1등이 당선되고, 정당 득표율로 비례 의석을 나누어 두 결과를 합산한다.


각 소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자가 당선되는 것은 단순다수제(majority-plurality)의 형식이다.


여기에 전국을 11개 큰 선거구로 나누고 정당이 얻은 표 비율대로 의석을 배분한다. 이 비례대표제 의원은 국민의 의사가 직접 연동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처럼 전체 의석수를 보정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 합산방식이다. 


보정을 한다는 말은 지역구에서 이미 많은 의석을 얻은 정당은 비례대표에서 덜 받고 적게 얻은 정당은 비례대표에서 보충 받는다는 뜻이다.


보정 받지 않으니 일본은 단수대표제+비례대표제 반반짬뽕에 의석 수 조정없는 단순 합산이다. 즉 준비례대표(다수대표제+비례대표제)+(단순 합산) 병립형모델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소선거구에서 이기면 비례대표도 더 받을 수 있어서 장기 집권 여당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독특한 점이 있다. 일본 전체에서는 자민당 우위로 몰아주고 자민당 안에서 당헌에 의해 내부 총재 선거를 하는 방식은 프랑스 선거제도와 닮았다. 국가선거제도와 별개의 총재선거가 majorty-pluralty 혼합형의 결선투표형이고 여당 장기 집권 속에서 사실상 프랑스식 모델과 같다고 본다.


선거에서 이기는 방식은 크게 두 개가 있다.

Plurality(상대다수제)에서는 1등만 하면 된다. 과반 필요 없음. 후보가 난립할 경우 15% 득표로도 승리할 수 있다.


한편 majority(절대다수제)에서는 반드시 과반 득표자가 필요하다. 1차에서 과반이 안나오면 1, 2위를 한 두 명을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해서(이를 runoff라 한다) 과반을 몰아줘 확실한 승리후보를 만든다. 1차는 majority 2차(결선)은 plurality인 셈이다. 혼합된 방식이다.

















Arend lijphart에 따르면 호주나 아일랜드 대선처럼 가장 득표가 낮은 후보(최약자)부터 없애면서 올라오는 방식이 진정한 의미의 절대다수제라고 하는데(p134) 취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이번 일본 선거를 보면서 기시감이 들어서 다시 옛날 책을 들춰보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픽 출처 : 연합뉴스와 동아일보

https://www.yna.co.kr/view/AKR20170424003051081

https://www.yna.co.kr/view/GYH20251004000400044

https://www.yna.co.kr/view/GYH20251004000300044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20411/112829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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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칼리지런던 교수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의 조선일보 오늘자 인터뷰다. 한국은 새우가 아닌 고래라는 것. 그의 주장을 담은 책은 2022년에 나왔다.


원조받던 나라(수원국, recipient country)에서 주는 나라(공여국, donor country)로 변한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 맞지만, 문화를 제외하고 다른 분야에서 아직 유의미한 모델이 충분히 소성되지 못해서 영향력은 제한적이니 shrimp to small whale이라고 고쳐야할 것 같다.


댓글1의 기사 인용에서 보면 현상적으로 경제, 기술, 국방, 정치의 역동성, 문화 등에서 강점이 있다. 그러나 댓글2의 기사 인용처럼 바로 모범이 될 만한 글로벌 국가로 진입했다고 보기는 아직 힘들다.


특히 서구권 정치학 모델이 유효기간을 다하고 한국식 모델이 대안이라는 점은 매일같이 기사에서 한국의 수많은 문제를 접하는 사람으로서 동의하기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국제정치학적 이론틀에 입각해 미시적 상호작용을 분석했다는 점이 아쉽다


즉 사람들의 생동감 있는 사회적 작용-반작용을 예시로 이해하는게 아니라 추상적으로 부유하는 고정된 프레임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납작한 모델로 규정한 뒤 분석수준을 올려서 장기말 이동하듯 해석했다. 이는 방법론 자체의 한계다.


예컨대 그는 한국이 글로벌 모범으로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자유주의적 가치와 전통의 혼합, 일정 수준의 이민 개방을 결합한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외부자의 시선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하지만 이런 기사가 매일 삶에 지친 한국인들에게 고양감을 주고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으니 국제적 책임을 져야하하는 구나 하는 자각을 준다면 참 좋은 일이다. 


외국인이 한국을 말할 때 다니엘 튜더처럼 장단점을 다 이야기해야 받아들일 수 있다. 20년 전에는 아직 중학생처럼 국가적 자신감이 적어서, 장점만 말해줘야했다. 미수다에 출연했던 독일인 베라 홀라이터가 쓴 책은 일부 단점만 짜집기 편집되어 배은망덕하다고 분노를 샀었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돌아보는 유익이 있다. 국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에 대한 맹목적 환상이라는 양극단에 빠지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과거를 톺아보고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해야한다. 이제 답안지가 외부에 없고 롤모델은 스스로 구성해야한다


댓글 1 기사인용


어떤 점에서 한국을 더 이상 새우가 아닌 ‘고래’라고 볼 수 있나


“많은 분야에서 그렇다. 한국은 세계 15대 경제국, 세계 10대 수출국이다.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대부분의 G7 국가와 비슷하고, 아시아 주요 경제국 가운데 평균 임금이 가장 높다. 기술 분야를 보면 반도체, 전기차, 전기 배터리, 친환경 해운, 바이오테크, 로봇 등 여러 부문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 국방 분야에선 세계 10대 군사 강국으로 꼽히고, 유럽·중동·동남아시아 전역에 주요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계엄 사태 극복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줬다. 한국은 이제 아시아 최고의 문화 강국이다. 음악·영화·드라마·문학·요리·패션 등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문화를 가진 몇 안 되는 나라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5/10/04/C3225XSZXZGPJNREDWYH2WQ77E/


댓글 2


그런 점에서 전 세계에 모범이 될 만한 ‘글로벌 국가’라고 할 수 있나.


“한국은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글로벌하다. 냉전 이후 ‘글로벌’이란 미국·서유럽의 민주주의·자유시장·자유주의적 가치·다문화주의를 따르는 걸 의미했지만, 이 개념은 최근 미국과 유럽 자체에서도 도전을 받고 있다. 한국은 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자유주의적 가치와 전통의 혼합, 일정 수준의 이민 개방을 결합한 모델이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 강화, 성소수자 권리 확대,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수용이 커지고, 직장 문화도 덜 경직적·위계적이 됐다. 지난 20년간 이민 인구 증가도 눈에 띈다. 유럽의 시각에서 한국은 점점 더 글로벌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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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nw3oEXLOdLY


콘클라베 좋은 분석 : 당신이 모르는 감독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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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노벨문학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때문에 살만 루쉬디로 생각했었다. 한강의 수상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시아계 첫 여성문학가로서 의미가 크지만 당시엔 그 선택지가 존재하리라고 생각을 못했다. 너무 서구의 시야를 내재했던 탓일까

20세기에는 확실히 노벨문학상 수상은 심사위원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제공되는 영프 등 서구언어 중심이었으나 세계화가 진행되고 다양한 언어권의 문학이 스웨덴어와 영어로 번역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져서 선택지가 많아졌다.


또한 상이 글로벌적 의미망과 상징권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이제 인종, 언어, 문화, 젠더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형평적으로 고려해서 수상자를 선별한다. 좋은 수상자 선정은 제도의 의미를 강화하고 너무 한 분류에서 여러 번 선정할 경우 비수상측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나아가 노벨문학상은 작품과 동시에 그 문학가가 한 생애를 통해 읽고 쓰는 공동체에 기여하고 증거하는 의미를 기념한다

노벨상은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으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되돌아보고 상을 수여한다는 의미를 점검하며 그 문화권 전체에 기념하는 전시적 행사를 자각한 것이다.


밥 딜런이라는 음유시인의 선정은 문학의 바운더리를 오디오 제공되는 시로 확장해보려는 실험적 시도였던 것 같다

올해는 다시 루쉬디로 생각해본다 혹은 올해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오픈에이의 대명사인 챗지피티의 수상도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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