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노벨문학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때문에 살만 루쉬디로 생각했었다. 한강의 수상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시아계 첫 여성문학가로서 의미가 크지만 당시엔 그 선택지가 존재하리라고 생각을 못했다. 너무 서구의 시야를 내재했던 탓일까
20세기에는 확실히 노벨문학상 수상은 심사위원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제공되는 영프 등 서구언어 중심이었으나 세계화가 진행되고 다양한 언어권의 문학이 스웨덴어와 영어로 번역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져서 선택지가 많아졌다.
또한 상이 글로벌적 의미망과 상징권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이제 인종, 언어, 문화, 젠더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형평적으로 고려해서 수상자를 선별한다. 좋은 수상자 선정은 제도의 의미를 강화하고 너무 한 분류에서 여러 번 선정할 경우 비수상측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나아가 노벨문학상은 작품과 동시에 그 문학가가 한 생애를 통해 읽고 쓰는 공동체에 기여하고 증거하는 의미를 기념한다
노벨상은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으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되돌아보고 상을 수여한다는 의미를 점검하며 그 문화권 전체에 기념하는 전시적 행사를 자각한 것이다.
밥 딜런이라는 음유시인의 선정은 문학의 바운더리를 오디오 제공되는 시로 확장해보려는 실험적 시도였던 것 같다
올해는 다시 루쉬디로 생각해본다 혹은 올해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오픈에이의 대명사인 챗지피티의 수상도 점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