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영화 특별판)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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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가 아주 흥미로워서 번역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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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까 콘클레이브 원서에서 영어가 맛깔지다고 했는데 뭐가 맛깔지냐?


예를 들어 맨 아랫 문단 첫 번째 구절을 보면 


the hostel had an austere, antiseptic atmosphere, 언, 어스티어, 앤티샙틱, 애트모스피어하고


a로 두운을 맞춰 라임을 살렸다.


엄격하고 살균적인 분위기의 호스텔이라는 뜻이다. 



그냥 시적 운율만 살린게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소설 전체에 흐르는 엄격한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서문에 위치해 있는 압축된 표현으로 전체상을 그려내는 글이 아주 잘 쓴 글이다.



아까 쓴 글과 맥락이 같은데, 어떤 영어 원서를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책에 무슨 구체적인 내용이 있었는지는 안 말하고 변죽만 울려댔다. 서평지나 다른 2차 소스에서 읽은 것을 주워섬겼다.


정말 책을 읽었으면 구체적인 소스를 대야한다. 정말 외국어를 한다면 그 외국어를 우리말로 잘 표현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 '읽었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2. 이 표현을 읽으니 옛날에 김훈 작가가 병원에 가면 소독약 특유의 살균적인 느낌 때문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나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옛날에 읽었던 표현은 머리 속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어서 인터넷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종이책을 읽으면 남들이 모르는 부분과 표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결국 나만의 글, 남들과 차별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코퍼스를 모아 데이터 전처리를 고쳐 통계적 시각화를 하면 확실히 시그마6 밖에 있는 단어군을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지식과 용어의 조합이 남들이 모르는 것들을 활용해서 그만큼 유니크한 글을 쓴다는 말이다.


요약본이 아니라 직접 책을 읽는 이유다.


스크린을 통해보는 전자책이 아니라 육안으로 보는 종이책을 읽는 이유다. 그래야 몰입이 되고 내 것이 되며 검색해서 안 나오는 것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읽었더라? 인터넷에 김훈, 병원 같은 열쇳말로 검색을 해도 안 나온다.


서점에서 김훈을 검색해 산문집 목차를 살펴봤다.

















오,,, <저만치 혼자서>에 대장 내시경 관련 부분이 있다. 여기에 병원이야기가 나올려나?


물성이 있는 실물 책을 꺼내 읽어보니 내가 기억하는 그 표현이 없다.


어쩔 수 없다. 다 뒤져보는 수밖에


어디에 내가 기억하는 그 표현이 있나,,,? 꼭꼭숨어라 머리카락보일라


얼마지나지 않아 찾았다.


검색으로도 안 나올 부분이다. <라면을 끓이며> 1부 <밥>의 <목숨2> 꼭지에 있었다.




 p133-p134


 나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소독약 냄새에 진저리친다.

 소독약은 우월성의 냄새를 풍긴다. 병원은 환자보다 우월하다는 냄새를 소독약으 뿜어낸다. 소독약은 내 몸속의 병을 적대시하고 경멸하는 듯하 냄새를 풍긴다. 병원은 늘 살균되어 있다. 젊은 의사는...






3. 꺼낸 김에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좋다. 메시지에 정확한 타격점이 있고, 주어와 술어 관계가 선명하며, 문체는 중후하고 간략한 한문투라 옛글을 읽는 맛이 난다. 작가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김훈 작가의 문체는 그의 향기를 풍긴다.


슥 읽다가 재밌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p376


물렁하고 아리송한 문장으로 심령술을 전파하려는 힐러들의 책이 압도적인 판매량을 누리는 독서풍토에서 외상외과의사 이국종 교수의 저서 <골든아워>에 모이는 독자들의 호응을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라는 문장을 읽었다. 이렇게 관형격에서 압축적으로 솜씨좋게 돌려까기 하는 표현이 매력적이다.


원래 하고 싶은 말은 본디 주어-술어에 있다. 나는 기쁘다. 독자들의 반응이. 이국종 교수의 저서에 대한.


그러니까 원래 메시지는 이국종 교수의 저서가 잘 팔려서 김훈 작가가 기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에세이, 힐링물이 더 잘 팔리는 세태를 비판하는 말을 세련되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본문장의 관형격은 두 문장을 합친 표현이다.


힐러들이 심령술을 전파한다. + 힐러들의 책이 압도적인 판매량을 누린다.


관형격의 수식이 너무 많지 않아 깔끔한 느낌을 준다.


이 두 문장을 솜씨좋게 조립하면서, "독서풍토 가운데"로 다음 문장에 연결했다.


~전파하려는 힐러들의

+

책이 ~판매량을 누리는 독서풍토

+

가운데

~교수의 저서가 잘 팔려서 나는 기쁘다.


'심령술'이라는 한 마디에 에세이스트들의 글이 사람의 심리를 대상으로 하는 데 맥아리가 없고 사기성이 있다는 뉘앙스를 집어넣었다.


멋진 문장이다.


4. 책을 손에 쥔 김에 흝어보다가 오늘 시대정신에 적합하지 않은 듯한 부분이 눈에 잡혔다.


공공장소에서 막무가내로 화장하는 여성에 대한 비판이나, 여성의 젖가슴에 대한 표현 같은 부분


그게 '틀렸다'기 보다는 '시대가 지나서 표현이 부적절하게 느껴진다'가 정확하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편견이 섞인 표현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오늘날에도 남성향 웹소설이나 무협소설, 판타지 웹툰을 보면 중세 시대 픽션처럼 여성이 성녀, 마녀, 창녀, 어머니, 잔다르크 정도의 도식적인 캐릭터로만 묘사되어있다.


아주 어렸을 때 이원복의 먼나라이웃나라를 읽었을 때는 너무 재밌었는데


장성해서 다시 읽어보니 서구사대주의로 범벅된 책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책의 가치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용한 지식도, 여전히 신기한 시각도 있다. 


같은 글인데 무엇이 달라졌는가? 내가 달라지고, 내가 사는 사회가 달라졌다. 하나의 대상을 맹목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더 섬세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사회도 자란 것이다.


시대정신이 달라지면 과거의 유산은 재평가되곤 한다. 누구도 피할 수가 없다.


오늘날 미적감각으로는 뉴진스가 아름답고 SES는 촌스러워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전히 김훈의 글은 매력적이고,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도 흥미롭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고 나니 어떤 것은 조금 부적절하다 느껴지고 어떤 것은 옛날보다 더 좋아지는 게 있다.


후자가 클래식이 되는 이유겠다. 


김훈의 글은 하얼빈, 남한산성 같은 우리 전통 역사 이야기를 김훈 문체로 적어줄 때 가장 매력적이고 빛난다.


SF, AI, 생태주의 같은 오늘날의 글보다 시련에 대면한 고독한 개인을 그리는 역사 소설을 쓸 때 실력이 발휘된다.


김훈의 역사 소설은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다.


5. 


시대가 바뀌면 시대정신이 바뀐다.


비단 여성인권 뿐 아닌 몸, 젠더, 이분법에 대해 질문하는 사상으로서 페미니즘이 확산된 이후 


골대에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냐, 라는 말로 7,80년대를 살아온 나이든 남성들의 생각과 행적이 재평가받았다. 재평가는 온순한 표현이고, 거의 힐난받아 매장되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암살>에서 염석진(이정재 분)은 해방이 될지 몰랐다고 했다. 해방이 되고 민족주의가 시대정신이 된 후


과거 일본과 협력했던 모든 이들의 생각과 행적이 재평가받았다. 둘 다 당시에는 찬란한 영광을 누렸지만, 시절이 뒤집히니 자기가 살던 세상이 없어져버린 셈이다.


특정 대상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거나, 특정 대상에게 만능 암행어사 패스를 발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지구는 돌고 에너지는 순환하며 사람이 바뀌고 시대가 전환된다는 것.


과거를 비판하기보다는 장래를 대비해야한다.


오늘날을 사는 사람은 지금 태어나고 있는 당신의 손자, 증손자들이


CCTV 기록과 AI로 다 찾아내서


기후변화, 환경보호, 동물권, 비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잘못한 여러분의 생각과 행적을 모조리 비판하고 매장할 것이다.


플라스틱 잘못 버린 죄, 탄소배출 많이 한 죄, 반려동물 키우다가 버린 죄, 알고리즘에게 잘못된 정보를 피드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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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SNS에서 모르는 누가 무라카디 다카시의 예술기업론 한 페이지를 찍어 올려서 읽다가 재밌겠어서 주문했다.


일본책은 책값이 저렴해서 부담이 안된다. 알라딘 7400, 예스7900, 교보는 없다. 현지에서 사면 660엔.



주말에는 돈이 없었고 주중이 되자 돈이 생겼는데 재고가 1권밖에 없었는지 주말에는 바로 배송이었는데 주중이 되니 주문 직수입으로 바뀌었다. 위 사진은 SNS 캡쳐파일. 아직 배송 못 받았다.


대신 중국어본을 구해 읽고 있는데 일본어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성공학, 처세술 책 읽는 느낌이다.





영어도 일본어도 중국어도 공부한지 이제 이십 년쯤 되어가서


미술관 가서 서서 볼 때 다리 아프지 않게 일일이 사전 찾지 않고 모르는 단어 몇 개만 찾아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company의 기업이 아니라 일어서다, 일을 만들다, 창업하다라는 뜻의 기업이다.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관심이 생겨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정말, 맛깔지게 잘 쓴다! 영어의 느낌이 좋다.




사실 NYT에서 극찬한 이디시 소설 Sons and daughters를 읽고 있다가 지루해져서 집어들었는데 몰입감 있어서 재밌다.



















번역본도 곧 나오는 모양이다. 어려운 전문 어휘가 많을 경우 번역본을 사두면 어휘를 찾지 않는 수고를 덜어준다. 한 언어만 잘 하는 통번역가들의 전문성이 있고 존중받아야할 부분이다. 


나는 이것저것 다, 꽤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우물을 한 개만 파는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개 파기 때문에 초기 성과는 지지부지하다. 어렸을 때는 이 언어도 못 하고 저 언어도 못 하고 0개국어라고 생각했지만 오래 꾸준히 하다보니 나름 편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언어만 전문적으로 트레이닝해서 자동으로 한국어로 변환하도록 훈련받은 통번역가들, 그리고 한 지식에 대한 윤리적 학술적 책임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그 한 분야에 대해 아주 미세한 디테일을 알려줄 때 감사하다. 내가 아무리 이 우물 저 우물 파도 그렇게까지 다 알 수 없다. 하나만 하는 사람들이 쓴 전문서, 학술서, 수준높은 교양서를 읽는게 좋고 편리하다. 세계 각국의 여러 전문서를 대학원 공부하듯이 읽으면 어느정도 지식을 쌓을 수 있어 기분이 좋다.


가끔 몇 개 국어니 얼마나 잘하느니 그런 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평생 그런 허세를 부리지 않을 거다. 이유는 두 가지다.


1) 잘 모르는 내국인에게나 부리는 잘난 척이다. 그런 잘난척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자신의 사회적 위신을 높이는 것 이외에 무슨 사회적 도움이 있는가? 외국어를 잘하면 혼자 외국어 읽고 외국인과 대화하면 된다. 그 결과에서 증명되는 것이지 할 수 있다에서 증명되는 게 아니다. 나는 물화생지 4개 과학어를 한다고 자랑하는 연구자가 있는가? 연구자는 우두커니 앉아있는 연구실에서 자신을 증명할 뿐이다. 외국어를 잘하면 몇 개국어를 한다 하고 자기 자랑하기보다 우리가 모르는 이런 책이 있다, 이런 식의 표현방법이 있으니 우리말에서도 이렇게 활용하면 좋다, 하는 사회적 기여를 하는게 좋다. 자기보다 남의 지적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돕는 게 낫다.


2) 잘 모를 때는 대단해보였지만 배우고 알고나니 그렇게 자랑하는 사람들의 실력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일본어 잘하는 사람이 많은지, 우리나라에 얼마나 영어 잘하는 사람이 많은지, 진정한 실력자는 가려져있다. 그런 실력자들은 소규모 커뮤니티, 전문업계, 책과 글 같은데서 잠깐 잠깐 드러나지 대규모 마케팅으로 반짝반짝 포장되지 않는다. 진정한 실력이란 포장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실력이 없으니 패키징을 예쁘게 하는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학벌 자랑하지도 않을 거다. 계속 공부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냈고 어쩌면 제일 좋은 학문적 훈련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업계에서 다 학벌 좋으니 학벌자랑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디 어디 학석박사이라고 말하는게 무슨 원투펀치 때리는 것 같아 별로다. 그것도 듣는 사람 모두에게 광역기로 때린다.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니 내 말에 토달지 마시오. 원로 교수에게서 너무 많이 보였는데, 다들 대접받고 싶어하셨다. 대접받는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정욕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레 자기를 치켜올려세워줘야한다는 거만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왜 자기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요구할까? 소개에 학벌을 읊으며 먼저 원투펀치로 때리고 시작하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저 시급받고 일할 뿐인 전시안내요원과 월급받고 일할 뿐인 큐레이터가 "나를 몰라?"라는 말에 정답을 대답할 의무는 없다.


심지어 더 큰 문제는 파워인플레처럼 엘리트인플레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울대가면 서울대로 만족하는게 아니라 대학원,대학원가면 미국박사, 미국안에서도 랭킹이 어떠냐, 취직할 때 지방대냐 아니냐 하는 식으로 계속 그 안의 위계질서가 생긴다. 마치 중세시대에 농민에 비하면 절대소수인 귀족계층안에서 자작이니 백작이니 공작이니 어디출신이니 하고 미세한 카테고리가 생기는 것처럼. 마치 한우 1등급 안에 세분화된 3등급이 더 생기듯이. 사실상 심플하게 말하면 한우투뿔이 1등급이고, 한우1등급이 3등급 아닌가? 한우 3등급은 분쇄해서 고기맛 내는 스프에 들어가고, 한우1등급이 구이용으로 좋은 생고기다. 그런데 한우 투뿔이 실제 1등급이니까 한우1등급은 한우3등급이라고 하면 누가 사먹을까. 그래서 1등급 중 최상, ++ 투 플러스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또 원래 자기가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노력해서 그런 학벌이든 무엇이든 타이틀을 따내는 것이기 때문에 타이틀을 따내는 순간 목표가 사라져서 그 안에서 만족 못하고 계속 뭔가를 더 추구하기 때문에 생기는 인플레현상이다.


좋은 대학 못 간 사람들에게 좋은 대학은 대단하지만, 그 대학 다니는 학생에게는 학교, 교직원에게는 일터, 교수에게는 직장일 뿐이다. 


서울에 안 사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있어보이지만 서울 사는 사람은 그냥 불편하기도 편하기도 한 삶의 공간이고, 유럽에 안 가본 사람에게 유럽은 있어보이지만 사는 사람에게는 불만투성이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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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도둑과 악인들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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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반부는 약간의 케이퍼 무비. <도둑들> <기생충>처럼 부잣집에 결혼해서 인생성공하는 이야기,

 후반부는 예술 인디영화의 문법, <만추> 같은 엔딩.


2. 러시아어, 아르메니아어로 말하는 대사가

희화화되어

마치 우리가 조폭영화에서 구수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사투리 듣는 것 같다


3. 이반의 집에 결혼여부 확인하러 들어가는 장면에서 이반이 아니고 이반자나(Иванчана)라고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데 또 다른 애칭인 것 같다. 이반, 반야 다 같은 말이다. 다른 애칭이다.


4. 이반(반야)를 철없고 철들지 못한 아이로 말하는데

아직 성숙하지 않은, 니파브즈라슬레브쉬이 неповзрослевший (nepovzroslevshiy) 

영원히 아이인, 붸치나 리뵤낙 вечно ребёнок (vechno rebyonok)

슬랭으로 덩치만 큰 아이, 뎨치나 детина 같은 표현이 들린다.


5. 이고르와 마지막 신에서도 등장하는 찌질이 쫄보는 faggot ass bitch다. 왜 나를 강간안했는지 알아? 너는 찌질이 쫄보니까.

원래 뉘앙스는 남성성/성욕 없는 쓰레기니까, 정도에 더 가깝다.

faggot은 원래 장작단이라는 뜻인데, 장작에 화형시켰던 동성애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여러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미국 은어에서 남성성 없는 게이남자를 말한다. 합쳐서 찌질이 쫄보라고 말했을 때는 번역가가 정말 정말 고민 끝에 순화한 것 같다.


이 말의 느낌을 알아야, 마지막에 성노동자로서 애니의 전체적인 캐릭터 디자인의 일관성이 완성된다.


백만장자와 결혼해서 인생 성공할 뻔 했다가 교훈을 얻고 착하게 살기로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애니는 아마도 브루클린 HQ가 아니어도 다른 지역의 동종 업계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는 엔딩으로 가야 이 모든 희비극에서 드러나는 여성 억압적인 성매매산업에서 성노동자가 다시 그 업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보인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속에 자발성이란 있는 것인가?


영화에서 애니는 2명에게 마음을 주는데,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었던 이반은 신체폭력은 쓰지 않으나 정신적으로 자신을 힘들게하고

사랑도 결혼도 안하고 싶은 이고르는 신체억압은 썼지만 정신적으로 자신을 지원한다.


그 가운데 애니가 "성욕없는 찌질이 쫄보 놈이라서


나를 강간하지 않는거야"라는 매우 거친 대사를 하는 모습을 통해


억압받은 사람이 아이러니하게 얼마나 더 억압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피착취자인 애니가 착취자의 언어를 쓴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애처로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6. 여주가 안야 테일러(퀸즈 갬빗, 퓨리오사), 남주가 티모시 샬라메였어도 괜찮았을 법한,


그 둘을 떠올리게 하는 마스크다.


7.

이혼 서류에 사인하는 장면은 유투브에 클립이 있어서 이 중에서 인상깊었던 포인트 2개를 짚어보자


이 장면은 신분, 출생, 재력 등 아무 것도 없는 창녀(hooker) 애니가 러시아 유명 가문의 부호에게 당신 아들은 겁쟁이(pussy)라고 일갈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의미는 누구나 잘 이해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k8TLa9N1Ep8


나는 조연의 연기에 눈길이 갔다. 단순히 서류에 사인이 필요한 행정직원이, 두 상대의 알력 싸움에 중간에 말려들어가서 살짝 당황하는 연기다. 짜증난 애니가 서류 사인 후 무례하게 펜 던질 때 당황하는 미묘한 얼굴 표정 같은 것들이 인상깊었다.


배우는 Mickey O'Hagan. 션 베이커의 전작 Tangerine에서도 나왔던 배우다. 조연급으로서 필모가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데, 대체가능한 40대 백인 금발 여성 배우의 인력풀이 너어어무 많아서 캐스팅 따내는게 쉽지 않아서 일 듯하다.





8. 당신 아들은 겁쟁이야라고 애니가 쏘아 붙일 때 러시아 부호는 너는 창녀라고 반박하는 부분이다. 


미국 은어로 창녀는 hooker이다. hook은 갈고리고, 사람을 잡아챈다는 의미다. 음악에서 사람을 확 잡아 채는 킬링멜로디를 훅hook이라고도 한다.  



러시아 부인은 러시아 억양으로 and you are discussing a hooker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너는 창녀를 논한다' 지만 


정확히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라고) 창녀께서 말씀하시네' 다.


영어가 제2외국어인 러시아사람이 러시아어 обсуждать(압수쥐다쯔)를 영어의 discuss로 쓰는데 영어에서는 그 의미가 그 의미가 아니다.


러시아 부인이 you are discussing이라고 말할 때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토론하다' '논하다'가 아니라

'의미하다, 말하다' 같은 의미다.

and you mean

and you are talking about

and you are speaking about

and you are referring to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창녀가 말하네 Says the hooker

누가 말하는건지 봐 창녀따위가 Look who's talking—a hooker

라고 창녀의 입에서 말하는 걸 봐 And this is coming from a hooker


이외에도 영화 내내 이런 식의 러시아어로부터 직역한 것 같은 엉뚱하고 불완전한 broken English가 자주 나오는게 재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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