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SNS에서 모르는 누가 무라카디 다카시의 예술기업론 한 페이지를 찍어 올려서 읽다가 재밌겠어서 주문했다.


일본책은 책값이 저렴해서 부담이 안된다. 알라딘 7400, 예스7900, 교보는 없다. 현지에서 사면 660엔.



주말에는 돈이 없었고 주중이 되자 돈이 생겼는데 재고가 1권밖에 없었는지 주말에는 바로 배송이었는데 주중이 되니 주문 직수입으로 바뀌었다. 위 사진은 SNS 캡쳐파일. 아직 배송 못 받았다.


대신 중국어본을 구해 읽고 있는데 일본어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성공학, 처세술 책 읽는 느낌이다.





영어도 일본어도 중국어도 공부한지 이제 이십 년쯤 되어가서


미술관 가서 서서 볼 때 다리 아프지 않게 일일이 사전 찾지 않고 모르는 단어 몇 개만 찾아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company의 기업이 아니라 일어서다, 일을 만들다, 창업하다라는 뜻의 기업이다.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관심이 생겨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정말, 맛깔지게 잘 쓴다! 영어의 느낌이 좋다.




사실 NYT에서 극찬한 이디시 소설 Sons and daughters를 읽고 있다가 지루해져서 집어들었는데 몰입감 있어서 재밌다.



















번역본도 곧 나오는 모양이다. 어려운 전문 어휘가 많을 경우 번역본을 사두면 어휘를 찾지 않는 수고를 덜어준다. 한 언어만 잘 하는 통번역가들의 전문성이 있고 존중받아야할 부분이다. 


나는 이것저것 다, 꽤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우물을 한 개만 파는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개 파기 때문에 초기 성과는 지지부지하다. 어렸을 때는 이 언어도 못 하고 저 언어도 못 하고 0개국어라고 생각했지만 오래 꾸준히 하다보니 나름 편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언어만 전문적으로 트레이닝해서 자동으로 한국어로 변환하도록 훈련받은 통번역가들, 그리고 한 지식에 대한 윤리적 학술적 책임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그 한 분야에 대해 아주 미세한 디테일을 알려줄 때 감사하다. 내가 아무리 이 우물 저 우물 파도 그렇게까지 다 알 수 없다. 하나만 하는 사람들이 쓴 전문서, 학술서, 수준높은 교양서를 읽는게 좋고 편리하다. 세계 각국의 여러 전문서를 대학원 공부하듯이 읽으면 어느정도 지식을 쌓을 수 있어 기분이 좋다.


가끔 몇 개 국어니 얼마나 잘하느니 그런 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평생 그런 허세를 부리지 않을 거다. 이유는 두 가지다.


1) 잘 모르는 내국인에게나 부리는 잘난 척이다. 그런 잘난척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자신의 사회적 위신을 높이는 것 이외에 무슨 사회적 도움이 있는가? 외국어를 잘하면 혼자 외국어 읽고 외국인과 대화하면 된다. 그 결과에서 증명되는 것이지 할 수 있다에서 증명되는 게 아니다. 나는 물화생지 4개 과학어를 한다고 자랑하는 연구자가 있는가? 연구자는 우두커니 앉아있는 연구실에서 자신을 증명할 뿐이다. 외국어를 잘하면 몇 개국어를 한다 하고 자기 자랑하기보다 우리가 모르는 이런 책이 있다, 이런 식의 표현방법이 있으니 우리말에서도 이렇게 활용하면 좋다, 하는 사회적 기여를 하는게 좋다. 자기보다 남의 지적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돕는 게 낫다.


2) 잘 모를 때는 대단해보였지만 배우고 알고나니 그렇게 자랑하는 사람들의 실력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일본어 잘하는 사람이 많은지, 우리나라에 얼마나 영어 잘하는 사람이 많은지, 진정한 실력자는 가려져있다. 그런 실력자들은 소규모 커뮤니티, 전문업계, 책과 글 같은데서 잠깐 잠깐 드러나지 대규모 마케팅으로 반짝반짝 포장되지 않는다. 진정한 실력이란 포장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실력이 없으니 패키징을 예쁘게 하는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학벌 자랑하지도 않을 거다. 계속 공부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냈고 어쩌면 제일 좋은 학문적 훈련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업계에서 다 학벌 좋으니 학벌자랑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디 어디 학석박사이라고 말하는게 무슨 원투펀치 때리는 것 같아 별로다. 그것도 듣는 사람 모두에게 광역기로 때린다.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니 내 말에 토달지 마시오. 원로 교수에게서 너무 많이 보였는데, 다들 대접받고 싶어하셨다. 대접받는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정욕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레 자기를 치켜올려세워줘야한다는 거만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왜 자기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요구할까? 소개에 학벌을 읊으며 먼저 원투펀치로 때리고 시작하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저 시급받고 일할 뿐인 전시안내요원과 월급받고 일할 뿐인 큐레이터가 "나를 몰라?"라는 말에 정답을 대답할 의무는 없다.


심지어 더 큰 문제는 파워인플레처럼 엘리트인플레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울대가면 서울대로 만족하는게 아니라 대학원,대학원가면 미국박사, 미국안에서도 랭킹이 어떠냐, 취직할 때 지방대냐 아니냐 하는 식으로 계속 그 안의 위계질서가 생긴다. 마치 중세시대에 농민에 비하면 절대소수인 귀족계층안에서 자작이니 백작이니 공작이니 어디출신이니 하고 미세한 카테고리가 생기는 것처럼. 마치 한우 1등급 안에 세분화된 3등급이 더 생기듯이. 사실상 심플하게 말하면 한우투뿔이 1등급이고, 한우1등급이 3등급 아닌가? 한우 3등급은 분쇄해서 고기맛 내는 스프에 들어가고, 한우1등급이 구이용으로 좋은 생고기다. 그런데 한우 투뿔이 실제 1등급이니까 한우1등급은 한우3등급이라고 하면 누가 사먹을까. 그래서 1등급 중 최상, ++ 투 플러스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또 원래 자기가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노력해서 그런 학벌이든 무엇이든 타이틀을 따내는 것이기 때문에 타이틀을 따내는 순간 목표가 사라져서 그 안에서 만족 못하고 계속 뭔가를 더 추구하기 때문에 생기는 인플레현상이다.


좋은 대학 못 간 사람들에게 좋은 대학은 대단하지만, 그 대학 다니는 학생에게는 학교, 교직원에게는 일터, 교수에게는 직장일 뿐이다. 


서울에 안 사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있어보이지만 서울 사는 사람은 그냥 불편하기도 편하기도 한 삶의 공간이고, 유럽에 안 가본 사람에게 유럽은 있어보이지만 사는 사람에게는 불만투성이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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