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전반부는 약간의 케이퍼 무비. <도둑들> <기생충>처럼 부잣집에 결혼해서 인생성공하는 이야기,
후반부는 예술 인디영화의 문법, <만추> 같은 엔딩.
2. 러시아어, 아르메니아어로 말하는 대사가
희화화되어
마치 우리가 조폭영화에서 구수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사투리 듣는 것 같다
3. 이반의 집에 결혼여부 확인하러 들어가는 장면에서 이반이 아니고 이반자나(Иванчана)라고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데 또 다른 애칭인 것 같다. 이반, 반야 다 같은 말이다. 다른 애칭이다.
4. 이반(반야)를 철없고 철들지 못한 아이로 말하는데
아직 성숙하지 않은, 니파브즈라슬레브쉬이 неповзрослевший (nepovzroslevshiy)
영원히 아이인, 붸치나 리뵤낙 вечно ребёнок (vechno rebyonok)
슬랭으로 덩치만 큰 아이, 뎨치나 детина 같은 표현이 들린다.
5. 이고르와 마지막 신에서도 등장하는 찌질이 쫄보는 faggot ass bitch다. 왜 나를 강간안했는지 알아? 너는 찌질이 쫄보니까.
원래 뉘앙스는 남성성/성욕 없는 쓰레기니까, 정도에 더 가깝다.
faggot은 원래 장작단이라는 뜻인데, 장작에 화형시켰던 동성애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여러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미국 은어에서 남성성 없는 게이남자를 말한다. 합쳐서 찌질이 쫄보라고 말했을 때는 번역가가 정말 정말 고민 끝에 순화한 것 같다.
이 말의 느낌을 알아야, 마지막에 성노동자로서 애니의 전체적인 캐릭터 디자인의 일관성이 완성된다.
백만장자와 결혼해서 인생 성공할 뻔 했다가 교훈을 얻고 착하게 살기로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애니는 아마도 브루클린 HQ가 아니어도 다른 지역의 동종 업계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는 엔딩으로 가야 이 모든 희비극에서 드러나는 여성 억압적인 성매매산업에서 성노동자가 다시 그 업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보인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속에 자발성이란 있는 것인가?
영화에서 애니는 2명에게 마음을 주는데,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었던 이반은 신체폭력은 쓰지 않으나 정신적으로 자신을 힘들게하고
사랑도 결혼도 안하고 싶은 이고르는 신체억압은 썼지만 정신적으로 자신을 지원한다.
그 가운데 애니가 "성욕없는 찌질이 쫄보 놈이라서
나를 강간하지 않는거야"라는 매우 거친 대사를 하는 모습을 통해
억압받은 사람이 아이러니하게 얼마나 더 억압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피착취자인 애니가 착취자의 언어를 쓴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애처로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6. 여주가 안야 테일러(퀸즈 갬빗, 퓨리오사), 남주가 티모시 샬라메였어도 괜찮았을 법한,
그 둘을 떠올리게 하는 마스크다.
7.
이혼 서류에 사인하는 장면은 유투브에 클립이 있어서 이 중에서 인상깊었던 포인트 2개를 짚어보자
이 장면은 신분, 출생, 재력 등 아무 것도 없는 창녀(hooker) 애니가 러시아 유명 가문의 부호에게 당신 아들은 겁쟁이(pussy)라고 일갈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의미는 누구나 잘 이해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k8TLa9N1Ep8
나는 조연의 연기에 눈길이 갔다. 단순히 서류에 사인이 필요한 행정직원이, 두 상대의 알력 싸움에 중간에 말려들어가서 살짝 당황하는 연기다. 짜증난 애니가 서류 사인 후 무례하게 펜 던질 때 당황하는 미묘한 얼굴 표정 같은 것들이 인상깊었다.
배우는 Mickey O'Hagan. 션 베이커의 전작 Tangerine에서도 나왔던 배우다. 조연급으로서 필모가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데, 대체가능한 40대 백인 금발 여성 배우의 인력풀이 너어어무 많아서 캐스팅 따내는게 쉽지 않아서 일 듯하다.

8. 당신 아들은 겁쟁이야라고 애니가 쏘아 붙일 때 러시아 부호는 너는 창녀라고 반박하는 부분이다.
미국 은어로 창녀는 hooker이다. hook은 갈고리고, 사람을 잡아챈다는 의미다. 음악에서 사람을 확 잡아 채는 킬링멜로디를 훅hook이라고도 한다.

러시아 부인은 러시아 억양으로 and you are discussing a hooker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너는 창녀를 논한다' 지만
정확히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라고) 창녀께서 말씀하시네' 다.
영어가 제2외국어인 러시아사람이 러시아어 обсуждать(압수쥐다쯔)를 영어의 discuss로 쓰는데 영어에서는 그 의미가 그 의미가 아니다.
러시아 부인이 you are discussing이라고 말할 때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토론하다' '논하다'가 아니라
'의미하다, 말하다' 같은 의미다.
and you mean
and you are talking about
and you are speaking about
and you are referring to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창녀가 말하네 Says the hooker
누가 말하는건지 봐 창녀따위가 Look who's talking—a hooker
라고 창녀의 입에서 말하는 걸 봐 And this is coming from a hooker
이외에도 영화 내내 이런 식의 러시아어로부터 직역한 것 같은 엉뚱하고 불완전한 broken English가 자주 나오는게 재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