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 르네상스와 함께 만개한 돌봄 혁명
조지프 루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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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연구자 조지프 루치의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읽었다. 현대 한국의 베이비박스 문제를 다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2022)>와 18세기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원의 여성 오케스트라를 다룬 <비발디와 나(프리마베라, 2025)>가 떠오른다. 앤서니 베일의 중세여행자 가이드를 읽고 난 다음부턴 이제 베네치아하면 보통 성문으로 진입하는 마을과 다르게 성문 없이 들어가 복잡한 미로가 더 강화된다는 표현이 문득 자동적으로 생각나곤 한다.

인노첸티는 직역하면 죄 없는 이들로,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지켜 주는 고아원을 뜻한다. 버려졌다는 뉘앙스가 아무래도 좋지 아니해서 영어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말로 파운들링이라고 하는데 책에서는 우리말 업둥이로 번역해서 흥미로웠다. 우리말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업둥이란 우연히 기르게 된 아이를 뜻하는 한국어로, 업은 곧 집안의 재물과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의미한다. 인노첸티나 업이나 모두 비극적인 출신을 뒤덮는 좋은 뜻으로 사용된다

계급과 출신이 명확했던 위계적인 유럽 가부장 사회에서 주인에게 강간당한 노예의 아이나, 아이를 기를 능력이 없는 하류층 부모의 자식들이 업둥이였는데 체면치레가 강하고 위계적인 신분사회에서 원치 않는 임신이 초래한 불상사다.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아를 수출하던 과거 산업화시대 군부독재사회도 존재했으니 베네치아만의 일은 아니었을거다. AI시대에 줄어들 수 있을까?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거리에서 죽거나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거나 짐승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었다. 상류층의 아이로 태어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시절이다. 아동이 독립적 인간존재라는 별도의 사회적 인식이 없던 오래된 미래

먹고 살기 급급한 이들에게 아이는 부담이었고, 방치된 채 바람이 스승인 채 길거리에서 살았으니 인노첸티는 그래도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지진 않게 해준 곳. 500여 년 동안 약 4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삶을 돌보아준 곳. 개별적 소원을 다 들어주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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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귀록 1~3 세트 - 전3권
정은궐 지음 / 파란미디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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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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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변화를 갈무리하고 내년의 유행을 예측하는 트렌드 서적 중에 선언자처럼 메시지성이 가장 강한 책이 송길영의 시대예보나 김난도라면, 여러 필진이 참여해 다양한 자료와 팩트에 기반한 진단이 소구력을 높여주는 책은 카이스트 미래전략이다. 매일경제신문사의 서적도 비슷. 개인이 쓴 책 중에는 최근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이나 중국 AI 미래 지도가 가장 좋았다. 물론 문체가 건조해 읽으며 신나지는 않지만 이런 글이 지적 허영이 없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논할 수 있고 1차 사료로부터 배움이 되는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책이다. 책이나 음식이나 고영양 건강식이 자극적인 맛은 없는 건 당연.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끝까지 읽었는데 마지막에 삼남매를 둔 삼성 파견 직원 가정에서 일하는 쓰레기 청소업자 위훙 아주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장녀는 서울대 박사과정, 차녀는 홍콩대 졸업, 막내 남동생은 대입 준비. 선전의 부동산이 폭등할 때 여러 채 구매했다가 코로나 시절 격리로 인해 홍콩으로이주하며 팔아서 천문학적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아주머니도 한국어를 배우며 친해져 월급도 1100위안(그것도 많았는데)에서 1만 위안으로 올랐고 그 부동산 열쇠를 맡기고 관리시켰다고 한다. 한국어를 할 때는 중국어와 달리 더 부드러워진다는 부분, 서울이 선전보다 깨끗했다는 점, 부산에 갔더니 분리수거를 종류별로 나누고 씻어서 버렸다는 점 등에서 한국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보였고, 흔히 언급되는 한국 화장, 성형 같은 스테레오타입은 적었다.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을 이르는 숭군다, 들나물의 일종인 뽀리뱅이, 꽃이 펑펑 터진다, 팀장이 말을 반복하는 게 마치 맷돌 돌리는 거 같다 같은 엄마의 구어체 표현은 번역자의 2차 창작의 결과 더 맛깔나게 번역되었다. 고맥락적 어휘가 맣아 난도가 높은 번역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만큼 재미도 있었겠다 싶다. 품은 많이 드는데 지적 희열은 자신에게만 귀속되니, 꽤 훌륭한 A급 역자가 아니면 못할 작업이다.

그러나 역자는 그렇다손 치고, 이 글을쓴 저자 장샤오만은 사실 엄마의 생생한 표현을 채집한 것에 지나지 않고 자신만의 문학성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영국 불세출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잡과 미화원의 노동구조를, 독일 사회학자 로자의 소외과 가속으로 미화원의 삶의 양상을 일부 진단하지만,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 충분히 전문적인 인류학적 민족지를 기술한 것은 아니다. 엄마의 보이스가 한껏 뭍어나는 좋은 인터뷰집을 꾸려 중국의 밑바닥 계층의 시선으로 사회노동 발전사를 쓴 것이다. 자신의 보이스는 감춘채. 이는 현명하면서 제한적인 선택의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학원을 다시 생각해본다. 최근 읽었던 이 두 책 모두 정말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술자리나 카페에서 언급될만한 일상적 사람의 가십거리를 모아놓은 것 같다. 그 자체로 이미 어떤 사회적 군상에 대한 소셜 코멘터리가 된다. 아메리칸 학원의 문학성이 훌륭할까에 대해선 유보적이다. 경성 최대의 천재 영문학자 최재서의 손녀 수잔 최의 플래시라이트쪽이문학적으로는 더 감각적인데 접근은 좀 어렵다. 두껍고 조금 어렵고. 이민진의 이야기는 쉽다. 웹소설 같기도 하다. 자기복제적 캐릭터나 디킨스적 세례가 논란은 있을지언정 드라마화 하기엔 적절한 것 같다. 자녀 교육, 유학과 이민사회,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에 대한 당대성 있는 이야기라 몰입감이 높다. 장샤오위안의 책은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고향없음의 허무가 곁들어진 무진기행과 더 닮았고, 이민진의 책도 약간의 공허가 느껴지긴 해서 위대한 유산이 자꾸 생각난다.

공교롭게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도 다리병 난 미화원 엄마를 둔 모녀이야기로 시작하고, 아메리칸 학원도 개포동에 사는 삼 남매 교육에 대한 엄마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도 엄마의 중증 알츠하이머 투병기로 서문을 열고, 박희병의 엄마의 마지막 말들도 엄마 간병기가 전체인 이야기인데, (이 둘은 모자관계), 역시 자식과 분리불가능한 엄마 이야기로 시작하는게 글의 흡입력을 높여주는구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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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공동체 - 케이팝 시스템이 만들어낸 진짜보다 순정한 가짜의 세계
맹미선 지음 / 돌고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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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SF 작가 24명의 교환일기 중, 일본 작가 다바 가리의 글 중에 속마음을 전부 토해내면서 비평적인 역량을 갖는 작가가 있다고 했다(p219).

아마 케이팝 팬덤의 내부자로서 경험을 독자도 함께 하는 듯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무게감있는 학자를 적절하게 인용해 논의의 깊이를 확보하는 맹미선이 아닐까. 한 호흡에 책 끝까지 재미지게 읽었다.

책 마지막 부록의 연표로 보아 대략 07학번 부근(이때 상경했다고 했다), 80년대 후반생으로 추정이 되는데, 김대중 정부의 개방정책에 따라 중고등학생 시절 일본문화의 세례를 받고 이후 UCC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팬문화가 발전한 궤적을 개인사와 함께 따라간다.

팬픽, 최애, 트친, 덕후, 입덕, 업자, 군백기, 빠순이, 사생팬 같은 어휘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미공포(미공개포토카드), 홈마(홈페이지 마스터)의 대포(큰 렌즈 카메라), 덕메(덕질 메이트), 올출과 올팬은 처음 들었다. 추구미가 서로 다른 홈마들이 찍은 아이돌 사진이 어떻게 몰입경험과 환상체험을 강화하는지 알려주는 p100이 단일 페이지로서는 가장 좋았다. 또, 팬으로서 콘서트장에 가는 모든 순간을 프랑스 리얼리즘 소설가마냥 핍진하게 묘사해 단편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p202까지 6장 전체가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한글날인데, 책에는 한글날이라는 가상의 그룹을 상정해 팬의 마음이 어떻게 조우하고 분기하는지를 가상의 시나리오로 서술한 부분도 흥미로웠다(p151-155).

대학원까지 공부해 가방 끈이 긴 이들이 학술장에서 섭렵한 이론으로 너무 머나먼 이국의 사회현상이 아닌 바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자신의 핵심질문을 다룰 때 몰입감과 설득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싸매고 고민하고 항상 생각하는 현실의 이슈를, 그동안 이해하기 위해 씨름해왔던 인문서로 소화해내는 에세이는 언제라도 읽고 싶다. 그런 류의 비슷한 다른 책은 최근에 읽었던 서울대 종교학과 석박을 나온 목사 딸의 백팔 배였다.

중추는 자기 서사. 본인의 이야기가 먼저 유려하게 흘러 나오면서 곁가지로 대니얼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p101), 미셸 마페졸리의 부족의 시대(p163), 하비 화이트하우스의 인간 본성의 역습(p170), 뒤르켐의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p183)의 정갈한 문장이 깊이 있는 설명을 위해 덧붙여진다. 일연의 삼국유사,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도 덤.

물론 케이팝과 인스타인증 사회문화를 진단할 때 18번으로 언급되는 상상의 공동체는 덤이다. 국문학과에서 활발히 유통되던 경성의 모더니즘 담론에서 과학기술학까지 공부한 내력이 면면히 드러난다.

팬의 일상만 이야기했다면 귀여니 소설이나 웹소설처럼 쉬이 휘발되는 글이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모든 팬이 이렇게 인문학적 기반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군(?) 내부에서도 소구력이 적을지 모르지만, 팬덤소비자가 아닌 다른 족속들에게는, 어떤 교양있고 신중한 독자들에게는 확실하게 어필할 것 같다. 적진(?) 내부 스파이로서의 성공적 무용담과 회고담을 듣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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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영케이 (데이식스) 외 지음 / 민음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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