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

2024. 11. 15. ~ 2025. 02. 23.






1. 경기도 미술관과 김홍도 미술관은 묶어 갈만하다.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다. 



안산이라는 일견의 이미지와는 달리 근처에 산업단지가 크게 있어서 부유한 지역이다. 초지역 근처로 신도시에서 볼 법한 좋은 아파트들이 늘어서있다. 늘 그렇듯 거대한 규모의 교회도 웅비한 기상을 내뿜으며 아파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호수를 품었다는 점에서 동탄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안산이라는 지명보다는 초지역이나 단원구라고 조금 더 미세하게 핀포인트해서 불러야 할 듯 싶다.


안산을 다룬 미디어에서 늘 언급하는 외국인 노동자 많은 동네는 원곡동이다. 내국인보다 외국인비율이 많은 이 지역 초등학교 중학교를 국내 학부모들이 기피한다고도 들었다.


몇 년 전에는 50:50 그러는 것 같더니, 이제는 외국인 학생이 97.4%인 초등학교도 있다고 한다. 그 학생들은 그대로 외국인 비율 87.7%를 차지하는 어느 중학교로 진학한다.  


아마 외국인:내국인이 20:80이거나 30:70정도일 때는 그냥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맘카페 같은 커뮤니티에서 불만글이 올라오고, 내국인이 손해를 봤다는 모종의 사건이 터지면서 툭 하고 인내의 선이 끊겨, 아마 대거 이탈이 일어났을 것이다. 파도가 어느 둑 하나를 넘어가면 전체 방조제가 다 무너지는 것과 같다.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마음 착한 부모라할지라도 내 아이가 한국어 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전학시켰을 것이다. 필리핀이나 뉴델리나 시카고에서 볼 법한 한 지역에 선을 긋고 이쪽과 저쪽, 차안과 피안이 구분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미니어쳐라고도 볼 법 하다.




2. 전시 자체는 솜씨 좋게 디자인되어 있다. 자칫 키메라가 될 법한 전시였는데 큰 틀의 방향성과 전시 작품의 매력이 살렸다.

아이돌이 나오는 K팝-아트가 아니라  K-팝아트이다. 한국에도 앤디 워홀이 비견되는 팝아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민화이며, 조선의 민화와 현대의 민화인 팝아트를 병렬시켜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도 훌륭하고 현대도 훌륭하고 현대작가들이 민화의 상징, 기법, 모티브,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만든 작품을 보면서 전통의 현대적으로 계승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일이 톺아보자면 이견과 반증도 많지만 큰 기획 의도 자체는 선명하다. 


과거 레퍼런스로 가져온 민화는 대부분 가회민화박물관 소장본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민화의 상태가 좋지 않다. 그 뜯어지고 울은 상태 자체가 조선 그림을 보는 우리의 시각 경험이 일조한다. 현대사 일련의 비극을 겪어서 보존 상태가 좋지 않고 복원도 잘 안된 것이 자꾸 보여지다보니 그냥 조금 헤진 것이 디폴트로 여겨진다. 국중박이나 리움에서 보는 것이 아주 예외적으로 보존상태가 좋은 작품들이다. 


예를 들어 화조영모도를 보면 이렇다. 

화조영모도, 조선, 지복채색,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3. 캡션에서 눈 여겨볼 부분이 있는 작품은 손기화의 DMZ산수화 연작(2015, 2016)이다. 


DMZ도 갈 수 없는 곳이고, 산수화도 갈 수 없는 이국적(중국적) 풍경을 그렸다는 것에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다.





4. 



이런 캡션 설명은 구조적 글쓰기 스타일을 따른다. 

보통의 경우 다음 네 패턴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1. 작가 소개 : 이름(필요할 경우 한자 등 부연설명), 스타일, 이전 작품, 어떻게 유명해졌는지 주요 주제가 무엇인지 (과한 설명은 금물이라 압축적으로 1-2문장에 표현해야한다. 나머지는 도록에 싣으면된다)

2. 배경 맥락 :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관련 역사적, 문화적, 개인적 배경 설명 (오직 작품을 이해할 정도로 축약하는 게 핵심이다)

3. 시각적 분석 – 작품의 구성, 기법, 스타일적 요소에 대한 설명

4. 해석/의미 – 이러한 시각적 요소가 작품의 주제와 중요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여기서 1번과 2번은 박사이상 미술사학 연구자들의 영역이다. 한 생애를 바쳐서 한 두 주제에 침잠하는 고귀한 자들의 담당이다. 이들은 디테일에 민감해야하며, 디테일이 틀릴 경우 발작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이 몇 년도 작품인지, 어떤 기법인지, 예술가의 필체는 무엇인지, 반도체처럼 세밀한 영역까지 모든 것을 알고 탐구해야 한다. 미시경제학처럼 미세한 분야를 탐구하는 미시사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교류사처럼 거시적 시각을 지녀야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동남아 교류사라고 한다면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중국어, 영어에 능통하면서 하면서 불상을 알기위해 산스크리트어와 불교도 공부하고 개신교 선교사를 알기 위해 라틴어와 기독교도 공부해야하는 사람들이다. 쉽지 않다.


3번과 4번은 보다 더 학예사나 큐레이터, 화가의 영역이다. 어떤 이들은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의 배경이나 역사보다 시각적 분석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시각 정보를 어떻게 언어화할 것인가? 그리고 단순히 작품의 시각적 분석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더 큰 맥락, 화두로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나는 이러한 3-4번 단락에 관심이 있다. 미국 AP 미술사 교수워크샵에서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쳐주었다.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크리에이터 창작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나 기업인들에게 인사이트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느끼고 본 바를 표현하고, 그 표현을 더 큰 메타적 무언가로 연결해보는 뇌새김 훈련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캡션에는 이런 시각적 분석이 부각되지 않는다. 우선, 중간까지 읽어야하기 때문인데 작품 앞에서 3초 밖에 있지 않는 관객들은 제목만 보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먼저 역사부터 나오니 재미가 없어서 캡션을 안 읽는 경향도 있다.


일부는 한국어와 영어의 캡션이 제대로 설명을 안하거나, 둘 사이 정보 전달의 갭이 있어서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대충 쓴 영어 캡션이라고 해도 외국관람객들은 자신들이 보던 방식에 따라 유심히 읽는데, 그들에게 만족스럽게 제대로 쓰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캡션의 시각적 분석에는 이런 요소들이 더 고려하고 무엇을 넣을지를 고민해봐야한다.


구성: 풍경이 어떻게 보이는지 압축적인지 확장적인지 조각났는지 합치되어있는지 전통도상은 얼만큼 활용하고 있는지

선과 붓질: 그림이 전통적인 잉크 획으로 그려졌는지 아니면 산수화 관습을 전복하거나 차용하는지

색상 및 대비: 색상은 어떻게 전통과 현대성 사이에 긴장감을 만드는지 작특유 색상 활용은 어떤지

관점 및 공간: DMZ가 어느정도 묘사했는지 DMZ가 멀어보이는지 가까워보이는지, 폐쇄되어 보이는지 




5. 이런 맥락을 이해한 상태에서 캡션을 일단 뜯어서 읽어보자. 한국전시인 이상 한국어로 쓰고 영어로 번역했다고 간주한다.

 

우선, 1단락은 가볍게 넘어간다. 홍길동을 '정의 구현 캐릭터'로 정의를 내려서 이해를 도모했다. Characters who fight for justice like Hong Gildong often appear in his work. 한국화자들은 부연 설명 없이도 이해가 되었겠지만 약간의 배려가 돋보인다.

 

덧붙여서 1980년대 민중미술의 활동에 참여했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비한국어권 관객에게는 바로 와닿지 않으므로 약간의 보완이 필요하다. 민중이라는 말이 우리처럼 사람들로 읽히기는게 아니라 minjung이라는 단어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예술이 무엇이었는지 한 마디 설명을 동격으로 넣었으면 좋았겠다. 물론 큰 문제는 아니다. He participated in the minjung art movement in the 1980s and published Comic Paper under the Korean People’s Artists Association. He is currently engaged in the comic art community.

 

그 다음 중요한 시각 분석은 조금 더 디테일하게 떼어서 보자. 세심하게 쓰고 번역했다.

 

DMZ산수 연작은In the DMZ Landscape (20122017) series,

축약된 풍경의 여백에서 the margins of contracted landscapes

장소에 대한 고찰을 불러일으킨다evoke contemplation on place.

정치적 팝아트를 표방한 작가의 작업에서 In his work, which promotes political pop art,

DMZ산수는 전통의 산수를 단순히 차용한 것이 아니다. DMZ Landscape is not merely an appropriation of traditional Sansuhwa 

+괄호로 산수화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Korean traditional landscape painting of mountains and water).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전통산수의 풍경처럼 similar to the idealized sceneries in traditional Sansuhwa paintings.

허용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 depicting it as an inaccessible utopia,

DMZ를 전통 산수의 기호와 DMZ를 상징하는 요소들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It juxtaposes symbols of traditional Sansuhwa with elements representing the DMZ,

 

 

이목을 끄는 생생한 색채는 매혹적이지만 The vivid colors are eye-catching and attractive

이 풍경이 실제로 닿을 수 없는 이미지로서 장소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but reveal that the landscape is a place as an image that cannot be reached.

 

6. 생각해볼 부분


1) 이 캡션에서 좋은 점은 영어권 비한국 관객을 위한 맥락을 보강했다는 것이다. 산수화, 홍길동과 같은 용어에 대한 정의가 있었다. 적절하다. 

물론 홍길동을 정의 구현 캐릭터라고 할 수도 있지만( Characters who fight for justice like Hong Gildong)

한국의 로빈후드라고 여겨지는 홍길동 같은 전설적인 캐릭터 the legendary figure Hong Gildong, often considered Korea’s Robin Hood 같은 표현도 좋지 않을까 싶다.


민중 미술 운동설명 없이 언급되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2) 한국어에서는 좋은데 다소 불분명하거나 어색한 표현이 있다.

"축소된 풍경의 여백은 장소에 대한 숙고를 불러일으킨다"라는 표현은 전문 미술비평지에서 볼 법한 시적인 표현이지만 영어권화자에게는 명확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감성적 표현보다는 이 작품이 어떤 시각적 감각을 추구했고 이를 통해 작가가 무슨 의도를 추구했는지를 말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the margins of contracted landscapes evoke contemplation on place보다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을 수 있다.


작가의 DMZ 풍경(2012-2017)연작은 전통적인 산수화(한국의 풍경화)의 고요하고 이상화된 자연과 비무장지대(DMZ)의 삭막한 이미지를 융합하여 재해석한 작품이다.

His series DMZ Landscape (2012–2017) reinterprets traditional Sansuhwa (Korean landscape painting) by merging its serene, idealized nature with stark imagery of the Demilitarized Zone (DMZ).


장소에 대한 숙고라는 추상적인 표현 대신 명확한 의도를 담아 재해석했다고 표현했다.

축소된 풍경의 여백이라는 추상적 표현 대신 고요하고 이상화된 자연과 비무장지대의 삭막한 이미지를 융합했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3) 마지막 문장, 풍경이 도달할 수 없는 이미지로서의 장소임을 보여준다, 도 추상적이다.

이목을 끄는 생생한 색채는 매혹적이지만 이 풍경이 실제로 닿을 수 없는 이미지로서 장소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The vivid colors are eye-catching and attractive but reveal that the landscape is a place as an image that cannot be reached.

그러니까 색감이 좋고 갈 수 있을 듯 한데 못 간다는 뜻이다.


'생생한 색채가 눈길을 끈다'라는 말보다는 그 색채의 활용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동사중심으로 말해야한다. 


생생한 색상의 사용은 역사적 예술적 전통과 현대의 정치적 현실 사이의 대조를 고조시키며, 

The use of vivid colors heightens the contrast between historical artistic traditions and modern political realities, 

향수와 분열 사이의 긴장감을 강조합니다.

emphasizing the tension between nostalgia and division.


4) 작품의 주제에 대한 설명을 약간 더 다듬을 필요가 있겠다. 캡션 중간에 정치적 주제를 말하지만 DMZ가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또는 그것이 작가의 작업과 관련이 있는 이유를 압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산수화와 DMZ의 병치는 언급되지만 예술적 영향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DMZ가 무엇인지 갈 수 없는, 허용되지 않는 유토피아inaccessible utopia라고 했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한국인들은 대충 이해하지만 영어권 화자들은 조금 더 선명한 정의를 원한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과 표현을 원한다. DMZ는 사람이 살지 않은 공간이다. 그런데 역설적이다다. 조용하면서 무장되어 있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면서 갈등이 존재한다.


그럼 어떻게 써볼까? 대략 가볍게 이렇게 써볼 수 있겠따.


Through this juxtaposition, Son presents the DMZ as a paradox—an uninhabited space that is both tranquil and heavily militarized, seemingly untouched yet shaped by conflict. The series critiques the inaccessibility of this contested land, portraying it as a symbolic, unreachable utopia. 


한국어로 써보면 이렇다. 

이러한 대조를 통해, 작가는 DMZ를 역설로 표현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인데, 고요하면서도 군사적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일견 훼손되지 않았지만 갈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시리즈는 이 분쟁의 땅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을 비판하며, 이를 상징적이고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로 묘사한다.


1단락 설명에서 민중에 대한 설명, 홍길동 설명, 동사 중심 표현 같은 것들을 더 다듬어서, 단락 2개를 완성해보면 이렇게 되겠다. 우리는 어떤 협회에서 어떤 신문을 발간을 했는지가 중요하지만 영어권 화자들은 그 민중미술에서 무슨 활동했는지 동사 중심이다.


Son Kihwan is a South Korean artist known for his politically and socially engaged paintings and woodcuts. His work incorporates visual elements from ddakji (a traditional Korean paper game), comic art, and folk narratives, particularly the legendary figure Hong Gildong, often considered Korea’s Robin Hood. Active in the 1980s minjung (people’s) art movement, he used his work to critique social injustice and was involved in Comic Paper, a politically engaged artists’ collective. 


His series DMZ Landscape (2012–2017) reinterprets traditional Sansuhwa (Korean landscape painting) by merging its serene, idealized nature with stark imagery of the Demilitarized Zone (DMZ). Through this juxtaposition, Son presents the DMZ as a paradox—an uninhabited space that is both tranquil and heavily militarized, seemingly untouched yet shaped by conflict. The series critiques the inaccessibility of this contested land, portraying it as a symbolic, unreachable utopia. The use of vivid colors heightens the contrast between historical artistic traditions and modern political realities, emphasizing the tension between nostalgia and division.



7. 그러나 2단락 시각적 분석을 처음부터 바꿔서 쓰라면 이렇게 쓰고 싶다. 


손기환은 강렬하고 거의 비현실적인 색채를 사용하여 전통 산수화의 차분한 먹색과 차별화한다. 이 과장된 색채는 인공적인 느낌을 더하며, DMZ가 현실 속에 존재하면서도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역설적 상태를 강조한다. 손기환은 DMZ를 ‘접근할 수 없는 유토피아’로 재구성함으로써 한반도를 여전히 규정짓는 이념적, 물리적 분단을 비판하고 있다.


Son’s use of vivid, almost unnatural colors deviates from the subdued ink tones of traditional landscape painting. This heightened palette adds a sense of artificiality, underscoring the DMZ’s paradoxical status as both a real and unreachable space. By framing the DMZ as an inaccessible utopia, Son critiques the ideological and physical separation that continues to define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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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예소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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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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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괜찮아질 겁니다 - 우릴 괴롭히는 흔한 질환&증상 61가지 한방 홈케어
이만희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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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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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2025)

Nocturnal

김진황 감독





1. 브로큰은 2020년 개봉했어야하는데 팬데믹 때문에 오랫동안 창고에 있다가 나온 영화로 알고 있다.

5년을 묵혔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감각은 5년 전에 대중에게 드러났어야했는데 이제 다시 보면 거의 홍콩 누아르처럼 오래 전 품었던 꿈의 흩어지는 파편처럼 느껴진다.

건물이 풍화되는 것 같은, 단단한 물성이 물리적으로 파괴되는 감각이 아니라, 시간 속에 화학적으로 마모되어 없어지는 것 같은 감각이다.


2. 영화에는 솜씨좋은 트위스트들이 세 부분 있었다. 가게를 찾아온 민태를 집에 데리고 가서 경찰을 만나게 한다라든지, 문을 열었는데 그 문이 그 문이 아니었다라든지, 만두집에서 사실 문영이 있었는데 못 보고 밖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니 사실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라든지. 영화를 본 지 이미 몇 주 지나서 이정도만 일단 써둔다.




3.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지막 남애빌 앞 횟집에서의 격투신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카메라나 액션 연출 다 좋지만, 영화관에서 커트를 세고 있었는데 얼굴에 묻은 피의 위치가 세 번이나 달랐다. 핏자국이 우측 위에서 조금 굵은 선으로 턱 앞쪽으로 조금 꺾여있는 것과 우측 위에서 얇은 선으로 구렛나룻쪽으로 있는 것 등등. 화란에서 송중기가 담배 피는 신에서 담배의 길이가 네 번씩 달랐던 것이 생각난다. 마지막 부분에서 미술부문의 만듦새가 부족해서 아쉬웠다. 나중에 OTT 나오면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4. 임성재

창모파 조직원 임성재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다.

대화가 대부분 "가자" "네" 정도다.

좋은 점이라면 배우가 대사와 상황을 살려주었다는 것이고, 부족한 부분이라면 그러한 대화가 두 세번씩 반복되다보니 약간 설득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상황 설득력이 없는데 동생이라고 다 맞춰주는 것이 왜 그러는 것인지 전달이 잘 안되었다. 배우발로 살렸다.


임성재는 당근과 같은 중고거래 사이트의 사이버 범죄를 모티브로한 박희곤 감독의 <타겟(2023)>(영어제목은 Don't Buy the Seller)에서 단독 빌런으로 나왔었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말라는 법칙에 따라 그의 범죄 이유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단독 빌런으로 나와 주인공을 밀어붙이는 카리스마를 보일 수 있는 인물인데 여기서는 배민태(하정우 분)의 서브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우연히도 나는 이 날 브로큰에 이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관람했는데 임성재가 둘 다, 상반된 캐릭터로 나왔다.

전작에서는 조직원 병규이자 동생이자 나중에 배신하는 거친 세상의 캐릭터로

후작에서는 샤방샤방 밝은 세계의 마술부 뇌맑은 선배 고태로.

놀라운 대비였다.




5. 정만식


지난 이십년간 한국영화에서 조직의 보스역할로 정만식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그 역할에 잘 어울리는 사람도, 대중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비치는 배우도 없을 것이다.


처음 정만식이 그런 조직 보스 역할로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희대의 작품 똥파리다. 최근에 <화란>에서 비슷한 감각을 시도한 적 있으나, 똥파리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그만큼 똥파리는 2009년 그 당시에 영문제목처럼 숨 못 쉬게 하는(breathless) 느낌을 주었다. 양익준과 김꽃비와 이환(이환은 나중에 명필름을 통해 감독 입봉도 했다)의 서로의 목을 조르며 옥죄는 듯한 스토리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양익준이 그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나는 DVD로 봤는데 후기 영상 같은 것까지 다 봤다. 그 후기 영상에서 네덜란드 가는 영상도 있었다.


똥파리로 인해 양익준 감독은 네덜란드까지 가서 상도 탔는데 원타임원더였던 것인지 시절이 맞지 않아서 였는지 배우로만 틈틈히 나왔다. 그런 사막 속에 물 한 방울 없는 듯한 매섭게 타오르는 햇살 속에 핏줄마저 메마른 느낌의 영화는 그 이후로 별로 본 적이 없다.


똥파리에서 정만식은 이미 그러한 캐릭터로서는 완성되어 있었다. 배우로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완성본을 보여준 상태로 이십 년 동안 균일하게 (약간의 변주만 주면서) 감독들이 원하는 디렉팅에 부응해왔다. 이 영화에서 그는 백색 양복을 입고 살인 후 피를 묻히며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카메라는 피를 닦는 마담을 아래로 놓은 채 우측으로 종단 운동을 한다.



6. 이설


일반 소개 사이트에서는 설명이 없지만 이 영화에서 나는 마약팀 형사로 나온 이설 배우를 보았다. 매우 저평가된 배우다.

형사물에 여형사 하나 필요해서 끼워넣을 때 강하고 다부지고 눈매가 강한 얼굴에, 취미가 격투기 계통인 배우 중에 적절한 배우 하나 찾으라면 이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설은 그런 여형사 캐릭터에 갖히기엔 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옥란면옥, 방법 재차의, 판소리 복서 등에서 상당히 솜씨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에서 아역으로 나온, 최근에는 <히어로는 아닙니다>에서 눈을 보면 마인드 리딩이 되는 고도근시로 나온 박소이와 홍상수 감독의 연인 김민희가 아주 살짝씩 겹쳐보이는 얼굴이다.


발음이 약간 귀여운 혀깨무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선이 굵고 눈이 매섭고 "뭐 어쩌라구요" "그래서요?"와 같은 대사를 말할 것 같은 모습이다. 언밸런스 속에 매력이 있다.


그 발음의 느낌은 예고편 0:31에 있다. 예고편에 얼굴은 안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UF3k-V6CQ


아마 시절이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차기작 소식도 없고, 회사와 계약 종료도 하였다. 아마 연기 공부를 어딘가에서 조금 더 하는 5년 정도를 갖고, 다시 나오면 어떨까 싶다. 나는 이설 배우가 무언가 더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3학년 때 데뷔해서 20대 초반에 반짝 인기를 끌고 1977년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 활동하는 배우 문숙도 있다. 1977년 다음 작이 2015년이다. 도가적이고 목가적인 느낌도 주면서 반지의 제왕 엘프여왕같은 60대의 노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문숙 배우같은 배우가 없다. 이설 배우도 중장년 이후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젊은 여배우는 어디서나 불러주고 어디서나 할게 있다. 30대 후반부터 40대가 고비다. 일이 안 들어온다. 자기만의 어떤 대체불가능한 포지션 같은 게 없으면 안된다. 대중들은 누구나 주인공으로는 젊고 예쁜 히로인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강, 피부, 체중 관리를 해도 20대의 싱그러움을 이길 수는 없다. 공부해서 배우로서 포지션과 자기만의 분야를 찾아나가야한다. 이런 저런 공부를 많이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잘 될 것 같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조명을 못 받았고, 처음 한 바람 타임이 끝났다. 다음 풍이 언제 불어올 것인가. 불어오기까지 무엇을 하면서 기다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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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九州市立美術館開館50周年記念

大コレクション展 ―あの時、この場所で。―

Kitakyushu Municipal Museum of Art: The 50th Anniversary Exhibition The KMMA Collection-At This Place, At That Time


2024年9月7日(土)~11月10日(日)


1. 기타큐슈 진에어로 항공비+숙박+음식+전시 다 포함해서 20만원에 저렴한 미니멀리스트 여행을 갔었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올라간다. 나만 걸어서 올라간 것 같다. 내려올 때는 소낙비를 다 맞고 내려왔다. 그래도 좋았었다.



다 왔다!






2. 기타큐슈 전경이 다 보이는 미술관이다.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깨끗한 전망이 선명하게 보인다.



3. 미술관 내부



4. 기타큐슈는 규슈지방 위에, 후쿠오카 옆에 있는 곳이다. 북 규슈라는 뜻이다. 이런 지방 시립미술관에도 어마무시한 수준의 콜렉션이 있다. 일본은 소도시 미술관 투어도 가볼만하다. 계획하고 있다. 돈만 좀 더 생기면




5.


우키요예화가 이노우에 야스지의 아사쿠사를 그림이다. 1885년작이다.


확대해서 보면 선명감이 이루말할 수 없다. 강철탱크에 담긴 콜라원액을 탄산수와 함께 바로 만들어주는 맥도날드 콜라를 마시는 기분이다. 5모금 마신 이후의 단당류와 카페인의 영향으로 느끼는 모종의 강렬한 선명감 같은 것이다.




6. 설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아주 좋은 표현이다.




1) 눈 속의 아사쿠사 절을 위에서 내려다보듯이上から見下ろすように그린다.描く。

- 여기서 미오로스見下ろす는 見下す로도 쓸 수 있는데 볼 견에 아래 하가 붙어서 물리적으로 아래를 굽어본다는 뜻이다. 가끔씩은 경멸적perjorative한 표현으로 깔보다라고도 쓸 수 있다.


- 이 표현 하나를 보고 나면 이제 시점의 위치가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이동하는 시선으로, 즉, 아사쿠사 절의 성스러운 위치에서 속세의 시장을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전환된다.


2) どぎつくなりがちなアニリン由来の赤を要所に配して、

강렬해지기 쉬운 아닐린 유래의 붉은색을 적절히 배치하여 

- どぎつく는 몹시 강렬하다라는 뜻이다. 붉은색의 느낌을 이런 문예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이에 더해 아닐린 안료라는 물성으로까지 설명했다.

강렬해지기 쉽다는 뜻은 아닐린이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을 띠기 쉽다는 의미이다.


-적절히라고 했지만 한자로는 요소이다. 일어로는 요-쇼.

그러니까 이 문장 안에 이미 "히라가나" "카타가나" "한자의 음독""이 섞여서 오묘한 긴장 속에 아름다운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도기쯔쿠나리가치나 - 히라가나 - 일본 고유의 표현

아닐린 - 카타가나 - 서양의 안료

유래의 적색을 요소에 배치하여 - 한자의 음독 - 중국적, 전통적 한자들


강렬해지기 쉬운 아닐린 유래의 붉은색을 적절히 배치하여 


3) 白い雪とコントラストを際立たせながら

하얀 눈과의 콘트라스트(대비)를 두드러지게하면서도(강조하면서도)

-키와다츠는 국제의 제와 설 립자인데 際立(きわだつ) 여기서는 눈에 띄고 두드러지게한다는 뜻이다. make sth conspicuous같은.

-적색과 백색의 대비를 솜씨좋게 표현했다.


品良くまとめている。 

품위 있게(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

-그 전체적인 느낌이 가지런하다는 의의를 부여했다. 아주 좋다.

-보통品은 시나로 읽지만 여기서는 힌으로 읽고 ひんよく라고 한다. 품질 좋다는 말에서 가지런하고 멋지다는 아주 좋은 표현이다. (네이버사전에도 없다)


읽고 다시 보면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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