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2025)

Nocturnal

김진황 감독





1. 브로큰은 2020년 개봉했어야하는데 팬데믹 때문에 오랫동안 창고에 있다가 나온 영화로 알고 있다.

5년을 묵혔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감각은 5년 전에 대중에게 드러났어야했는데 이제 다시 보면 거의 홍콩 누아르처럼 오래 전 품었던 꿈의 흩어지는 파편처럼 느껴진다.

건물이 풍화되는 것 같은, 단단한 물성이 물리적으로 파괴되는 감각이 아니라, 시간 속에 화학적으로 마모되어 없어지는 것 같은 감각이다.


2. 영화에는 솜씨좋은 트위스트들이 세 부분 있었다. 가게를 찾아온 민태를 집에 데리고 가서 경찰을 만나게 한다라든지, 문을 열었는데 그 문이 그 문이 아니었다라든지, 만두집에서 사실 문영이 있었는데 못 보고 밖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니 사실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라든지. 영화를 본 지 이미 몇 주 지나서 이정도만 일단 써둔다.




3.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지막 남애빌 앞 횟집에서의 격투신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카메라나 액션 연출 다 좋지만, 영화관에서 커트를 세고 있었는데 얼굴에 묻은 피의 위치가 세 번이나 달랐다. 핏자국이 우측 위에서 조금 굵은 선으로 턱 앞쪽으로 조금 꺾여있는 것과 우측 위에서 얇은 선으로 구렛나룻쪽으로 있는 것 등등. 화란에서 송중기가 담배 피는 신에서 담배의 길이가 네 번씩 달랐던 것이 생각난다. 마지막 부분에서 미술부문의 만듦새가 부족해서 아쉬웠다. 나중에 OTT 나오면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4. 임성재

창모파 조직원 임성재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다.

대화가 대부분 "가자" "네" 정도다.

좋은 점이라면 배우가 대사와 상황을 살려주었다는 것이고, 부족한 부분이라면 그러한 대화가 두 세번씩 반복되다보니 약간 설득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상황 설득력이 없는데 동생이라고 다 맞춰주는 것이 왜 그러는 것인지 전달이 잘 안되었다. 배우발로 살렸다.


임성재는 당근과 같은 중고거래 사이트의 사이버 범죄를 모티브로한 박희곤 감독의 <타겟(2023)>(영어제목은 Don't Buy the Seller)에서 단독 빌런으로 나왔었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말라는 법칙에 따라 그의 범죄 이유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단독 빌런으로 나와 주인공을 밀어붙이는 카리스마를 보일 수 있는 인물인데 여기서는 배민태(하정우 분)의 서브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우연히도 나는 이 날 브로큰에 이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관람했는데 임성재가 둘 다, 상반된 캐릭터로 나왔다.

전작에서는 조직원 병규이자 동생이자 나중에 배신하는 거친 세상의 캐릭터로

후작에서는 샤방샤방 밝은 세계의 마술부 뇌맑은 선배 고태로.

놀라운 대비였다.




5. 정만식


지난 이십년간 한국영화에서 조직의 보스역할로 정만식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그 역할에 잘 어울리는 사람도, 대중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비치는 배우도 없을 것이다.


처음 정만식이 그런 조직 보스 역할로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희대의 작품 똥파리다. 최근에 <화란>에서 비슷한 감각을 시도한 적 있으나, 똥파리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그만큼 똥파리는 2009년 그 당시에 영문제목처럼 숨 못 쉬게 하는(breathless) 느낌을 주었다. 양익준과 김꽃비와 이환(이환은 나중에 명필름을 통해 감독 입봉도 했다)의 서로의 목을 조르며 옥죄는 듯한 스토리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양익준이 그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나는 DVD로 봤는데 후기 영상 같은 것까지 다 봤다. 그 후기 영상에서 네덜란드 가는 영상도 있었다.


똥파리로 인해 양익준 감독은 네덜란드까지 가서 상도 탔는데 원타임원더였던 것인지 시절이 맞지 않아서 였는지 배우로만 틈틈히 나왔다. 그런 사막 속에 물 한 방울 없는 듯한 매섭게 타오르는 햇살 속에 핏줄마저 메마른 느낌의 영화는 그 이후로 별로 본 적이 없다.


똥파리에서 정만식은 이미 그러한 캐릭터로서는 완성되어 있었다. 배우로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완성본을 보여준 상태로 이십 년 동안 균일하게 (약간의 변주만 주면서) 감독들이 원하는 디렉팅에 부응해왔다. 이 영화에서 그는 백색 양복을 입고 살인 후 피를 묻히며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카메라는 피를 닦는 마담을 아래로 놓은 채 우측으로 종단 운동을 한다.



6. 이설


일반 소개 사이트에서는 설명이 없지만 이 영화에서 나는 마약팀 형사로 나온 이설 배우를 보았다. 매우 저평가된 배우다.

형사물에 여형사 하나 필요해서 끼워넣을 때 강하고 다부지고 눈매가 강한 얼굴에, 취미가 격투기 계통인 배우 중에 적절한 배우 하나 찾으라면 이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설은 그런 여형사 캐릭터에 갖히기엔 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옥란면옥, 방법 재차의, 판소리 복서 등에서 상당히 솜씨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에서 아역으로 나온, 최근에는 <히어로는 아닙니다>에서 눈을 보면 마인드 리딩이 되는 고도근시로 나온 박소이와 홍상수 감독의 연인 김민희가 아주 살짝씩 겹쳐보이는 얼굴이다.


발음이 약간 귀여운 혀깨무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선이 굵고 눈이 매섭고 "뭐 어쩌라구요" "그래서요?"와 같은 대사를 말할 것 같은 모습이다. 언밸런스 속에 매력이 있다.


그 발음의 느낌은 예고편 0:31에 있다. 예고편에 얼굴은 안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UF3k-V6CQ


아마 시절이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차기작 소식도 없고, 회사와 계약 종료도 하였다. 아마 연기 공부를 어딘가에서 조금 더 하는 5년 정도를 갖고, 다시 나오면 어떨까 싶다. 나는 이설 배우가 무언가 더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3학년 때 데뷔해서 20대 초반에 반짝 인기를 끌고 1977년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 활동하는 배우 문숙도 있다. 1977년 다음 작이 2015년이다. 도가적이고 목가적인 느낌도 주면서 반지의 제왕 엘프여왕같은 60대의 노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문숙 배우같은 배우가 없다. 이설 배우도 중장년 이후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젊은 여배우는 어디서나 불러주고 어디서나 할게 있다. 30대 후반부터 40대가 고비다. 일이 안 들어온다. 자기만의 어떤 대체불가능한 포지션 같은 게 없으면 안된다. 대중들은 누구나 주인공으로는 젊고 예쁜 히로인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강, 피부, 체중 관리를 해도 20대의 싱그러움을 이길 수는 없다. 공부해서 배우로서 포지션과 자기만의 분야를 찾아나가야한다. 이런 저런 공부를 많이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잘 될 것 같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조명을 못 받았고, 처음 한 바람 타임이 끝났다. 다음 풍이 언제 불어올 것인가. 불어오기까지 무엇을 하면서 기다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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