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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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 위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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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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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plete Unknown

James Mangold, 2024


1. 티모시 샬라메가 밥 딜런 역할을 맡은 뮤지컬 전기 드라마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그가 무려 다섯 해에 걸쳐 밥 딜런의 말투, 노래 스타일, 걸음걸이를 몸에 익힌 끝에 빚어낸 결실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소년 톰 쿠퍼의 애잔한 눈빛 연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 펄먼이 짓던 그 미묘한 표정 연기가 언뜻 언뜻 새어 나온다. 이 모든 것이 티모시 샬라메만의 색채다.


피트 시거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은 문라이즈 킹덤이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보여주던 익숙한 표정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특히 팔자주름이 코마루를 넘을 듯 올라가는 표정은 놀랍다. 마치 표정 변화의 테크니션이라고 할 정도로 얼굴 근육 하나하나를 자유자재로 조율하는 능숙한 배우다. 매니저 앨버트 그로스만 역의 댄 포글러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에서 제이콥 코왈스키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왠지 그 여운이 깊었던 탓인지, 이번 작품에서도 코왈스키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겹쳐 보이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P4FFr88SQ


1964년 밥 딜런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티모시 샬라메가 이 영상의 매 초를 얼마나 잘 살렸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이정도면 밥 딜런 골수팬들의 마음에 조금 들지 않았을까?


2. 악뮤

https://youtu.be/L6bPSUlvm5Y?si=jqd8hN8TlzQTWEy-


악뮤는 예능 프로그램 아는형님에서 교과서 한 페이지를 즉석에서 곡으로 엮어내며 신묘한 창작력을 증명한 바 있다. 애드립으로 작곡한 묵은실 잠자리는 한때 크게 화제가 되었다. 밥 딜런이 실비네집에서 조안과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노래를 할 때와 조안 바에즈네 집에서 밤에 작곡할 때, 이 두 장면에서 악뮤가 겹쳐보였다. 창작의 신은 아무 때나 밥 딜런을 찾아왔을 것이고 그는 그 신에게 응답했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고집하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 세 곡을 관철하고 관중들의 환호를 끌어냈을 때, 조안은 “네가 이겼어.”라고 말했지만, 딜런은 담담하게 “누굴 이겼지?”라고 되묻는다. 조안이 품었을지 모를 질투와 경쟁심은 애초에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오직 자신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는 조안과 중국 식당에서 대화에서 처럼, 안 굶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번역은 a musician who eats라는 대사에서 관계사의 계속적 용법을 잘 의역했다. "먹는 뮤지션"이 아니고, "뮤지션, 먹는"이고 이를 더 반의어로 잘 다듬어서 "뮤지션, 안 굶는"이라고 한 것이다.


연인의 애착과 속박을 바라는 마음이라면, 밥 딜런 같은 남자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찾아와서는 마치 자석처럼 연인을 끌어당겼다가 다시 떠나버리는 자유분방함. 새벽 4시든 그림을 그리고 있든, 집 주소를 몰라 아무 방이나 두드려대기도 하면서 상대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 점. 타인의 감정에 관심없고 자신의 내적 흐름에 충실한 밥 딜런의 성향. 가는 사람 막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알 쿠퍼 같은 경우) 그의 태도. 그래서 실비에게 “가지 마.”라고 읊조릴 때, 밥 딜런이 할 법한 대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강력한 한 마디였다. 포크 음악의 틀을 강요받고, 자기가 원하는 음악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에게는 누군가의 존재가 절실했을 것이다. "stay"는 온전히 기대고 싶은 순간을 대변한 말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의 선택과는 다르다. 밥 딜런은 마음의 의지처로서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두려움을 스스로 삼킨 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관철시켰다.


조안의 질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마도 처음부터 맹아가 있었을 것이다. 데뷔 무대를 처음 들었을 때, 나가려던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따라잡을 수 없는 어떤 천재성을 직감했지만, 일이니까, 업무상 듀엣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상황은 변했다. 데뷔는 자신이 더 빨랐건만, 더 많은 관객이 그의 노래에 열광했고, 정작 자신은 그의 곡을 커버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prolific하다고 할 정도로 풍부한 창작력, 거침없는 작사작곡, 대중의 열광적 환호, 타고난 개인적 매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아마 그녀의 질투는 이 모든 것의 총합이었을 것이다.


3.


https://youtu.be/Zbo7UY8dxh8?si=umwj-rOdaB0dMO2o


밥 딜런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주최 측이 바라는 대로 따라줄 수도 있었다. 원하는대로 해주면 번거로운 일은 없다. 업무상 협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밥 딜런은 그러지 않았다. 왜? 소위 삔또를 상하게 하는 말 때문이다. 누가 포크 음악을 정의하는가? 누가 ‘올바른 방향’을 정하는가? 우리가 알던 그 전통적인 포크 뮤직해달라고, 관중들도 원하잖아. 이런 말들에 저항한 것이다. 


밥 딜런 같은 저항정신의 현현들은 언제나 저항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처음 그는 국가와 정부와 시대에 반기를 들었고, 마찬가지로 국가와 정부와 시대에 저항하던 대중과 함께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도 쿠바 미사일 위기, 핵 군축, 민권 운동같은 시대적 흐름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중반 이후, 그런 시대상은 등장하지 않고 개인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밥 딜런은 새로운 적과 맞선다. 바로 ‘대중’ 그 자체. 자신을 불러대고 무언가를 원하고 자기를 규정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부각된다. 딜런은 자신을 규정하려는 사람들, 포크 음악이 이렇다, 전통이 저렇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포크 음악은 이래야한다라며 당위성의 프레임을 씌우려는 이들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반발했다. 안 따라준 것이다. 업무상 협조를 안해준 것이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최근 국악소녀로 유명세를 얻어왔던 송소희가 국악을 발판 삼아 북유럽 프로듀서와 손을 맞잡고 자신만의 음악을 새롭게 빚어가기 시작했다. 국악중, 국악고를 거쳐 내려오는 전통의 틀 속에서, 선생의 기교를 같은 구간에서 판박이처럼 따라 부르며 좋은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마 추측컨대 폐쇄적인 국악계 내부에서는 송소희를 향한 온갖 수군거림이 있었을 터다. 절대 좋은 말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일탈이라고 했을 것이다. 온갖 회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조금만 참아라. 나중에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 하지만 묻는다. ‘무엇이 국악인가?’ ‘무엇이 포크 음악인가?’


처음에 포크 뮤직을 좋아하던 이들은 환경과 기후와 저항과 히피, 반국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시대가 변하며 이들 또한 과거 어느 세대가 된다. 밥 딜런이 계속 음악을 하는 이상 포크 뮤직을 감상하는 다른 형태의 대중이 또 생긴다. 그가 발굴하고 그가 길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밥 딜런의 저항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세상이다. 과거 그를 지지하던 이들은 또한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국악인가? 국악과 전통을 지켜온 이들의 것인가? 아니면 시대와 함께 숨 쉬며 사람들(民)의 곁에서 노래하는 것이 국악인가? 


피트 시거와 밥 딜런은 우디 거스리의 임종 이후에야 비로소 만났고, 조안 바에즈는 33여개의 앨범을 내며 활동했다. 그냥 각자 자신이 가고자하는 길을 갔고, 각자 자기의 팬층을 구축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포크(대중)와 만나는 포크 음악을 한 것이리라. 누구도 포크를 규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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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 Pei: Life Is Architecture

貝聿銘:人生如建築

29 Jun 2024 - 5 Jan 2025




1. 홍콩은 처음이었다.


홍콩 영화는 많이 봤고, 홍콩 영화 속의 빌딩숲은 눈에 익숙했지만, 스크린 속에서 잘려나간 빌딩숲이 아닌, 눈앞에 꽉 차게 들어서는 그 진경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천루는 하늘을 문지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VO)→N의 구조. 천을 마하는 루. 하늘을(목적어) 문지르는(동사)-  관형수식 - 누각. 영어로는 하늘sky를 scrape긁는다는 뜻이다. 서울의 63빌딩과 시그니엘은 마천루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아무래도 서울의 빌딩들은 서로 간격을 두고 흩어져 있어, 홍콩의 마천루가 만들어내는 그 숨 막히는 밀도를 느끼기는 어렵다. 63빌딩은 과거의 위용을 품은 채 한강을 내려다보며,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노인 같고, 시그니엘은 높이만큼의 존재감은 있지만, 주위가 텅 빈 듯해 홍콩 마천루의 집단이 내뿜는 위압적인 감각이 덜하다.


서울의 하늘이 광활하기 때문일 것이다. 빌딩이 하늘을 점령하려 하기보다는 그 아래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사부랑사부랑 서 있다. 덕분에 어디에서든 시야가 트이고 하늘과 도시가 함께 숨 쉬는 여유가 있다. 홍콩에서 느낄 수 있는 빌딩이 도시를 덮어버리는 듯한 강렬한 인상은 없다.


서울의 야경은 한강을 따라 펼쳐진 불빛으로 부드럽게 흐르지만 홍콩의 야경은 마천루 사이로 번쩍이며 솟구친다. 같은 불빛이라도 도시에 따라 품은 공기의 결이 다르다.


섬이 가라앉지는 않을지, 의심되는 우글바글 거리는 마천루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고, 아래 거리는 네온 빛에 젖어있다. 철근과 유리로 덧칠된 빌딩 아래로 습기 어린 남방의 바람이 스친다.



왜 사람들이 홍콩에 와서 무드럭진 빌딩숲을 보고 동양적이면서도 미래적인, 그 기묘한 사이버펑크적 감성을 만들어냈는지 이제야 실감했다.


스크린으로는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이 거대한 구조물들 사이에 서면 온몸이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목을 한껏 젖혀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빌딩들이 마치 도시에 뿌리내린 방대한 세계수 군락처럼 느껴진다.


아마 언젠가 뉴욕에 가면,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위압적인 감각을 마주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곳의 빌딩들은 또 다른 표정을 짓고 있겠지, 홍콩과는 다른, 묵직하고 단단한 강철의 얼굴로.


뉴욕의 물가와 숙박비를 생각하면 지금과 같이 LCC, 캡슐호텔, 배낭 하나로 다니는 미니멀여행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2. 간 김에 키아프, 프리즈 등에서 봤던 유명화랑도 들러봤다.










센트럴에는 David Zwirner, Pace, White Stone, Tang은 같은 빌딩 5-6,8,10,12층에 위치하고 있다.

그 옆에는 가고시안이 있어서, 5개는 같이 가면 좋다.

오페라 갤러리는 문 닫았다.


침사추이로 넘어가면 홍콩예술관과 Perrotin이 있으니 같이 묶어서 가면 좋다.


3. M+다. 홍콩고궁문화박물관과 함께 서구룡지구에 있다. 







정말 매우 거칠게 분류해보자면

20세기 영국+중국=홍콩

같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옆 마카오는 

포르투갈+중국=마카오인데 

포르투갈+아시아=인도의 고아

도 될 수 있겠다.


대만은 대략

네덜란드+일본+명청+아시아=대만


인도는 대략

19세기 영국+인도=인도

다. 아시아로 더하기에는 인도의 특유의 느낌이 너무 많다.


이런 조합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첫인상 같은 것이 이렇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독일+아시아는 칭다오정도 있는 것 같고 스웨덴(스칸디나비아)+아시아는 없는 것 같다.

그외에 생각나는 것은


프랑스+아시아 = 베트남

소련+아시아=북한, 몽골

러시아+이슬람+페르시아+아시아=중앙아시아

미국+스페인+아시아=필리핀

네덜란드+아시아=인도네시아


정도다. 일본과 한국은 생략.



4. 정해진 조합과 타이밍에 따라 비눗방울이 만들어져 부유하는 몽환적 감각을 주는 설치예술이 있다.





작품만 보면 신기하다! 비눗방울이네! 할 수 있지만


설명을 읽고나면 달리 보인다.


우키요예에서 유래한 "부유의 지경"이라는 예술장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해서 미적, 시적 및 속세를 초월한 감각(美感,诗意,以及超脱凡尘的感觉)을 주는 장르다.


떠다니는(漂浮的) 무지개 기포가(虹彩气泡) 폭발해서 구름이 된다. (爆裂成云朵)


생명의 짦음을 은유하는 이 거품들, 길상하고 신성한 의미를 지닌 구름들은 아시아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나하나의 실체의 안개고리가 출렁이는 디지털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안개 고리가 스크린 표면에 닿으면 아날로그 공간으로 들어가 실체의 굴레를 벗어나 끝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이렇게 설명을 읽고 나면 작품이 새롭게 보인다.


비눗방울은 짧은 생명의 덧없음을 의미하며, 안개 고리들이 보이지 않는 허공의 디지털 바다를 향해 달려나가다가 스크린 표면에 닿아 아날로그 공간으로 이어져 물질과 허상,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5. 유명 건축가 I.M.Pei의 전시를 하고 있다.




중국어는 : 건축으로서의 인생

영어는 : 인생은 건축이다





이런 폰트와 이런 재질의 신문기사를 보면 자동적으로 1950-1980년대 미국 라디오 방송의 midatlantic 악센트가 떠오른다. 거의 음성 지원이 된다. Paul Harvey, Walter Cronkite, Edward Murrow같은 라디오 방송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로 지원된다.


대충 이런 느낌

https://youtu.be/vEvEmkMNYHY?si=2gFk2avODI4Ju6Mv




굳이 안 해도 되는 겸양표현이 보인다. "나는 건축비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Though myself in no sense an architectural critic.." 요즘 감성은 아니다. 유럽문화를 동경하던 이전 세대에는 많이 보였다. 내가 참조하는 헤게모니의 문화가 다른 곳에 있을 때 자신이 없어서 나오는 류의 겸양 표현이다.



프랑스어의 접속법이다. accepter 동사는 1st pl. 2nd pl.에서만 직설법 현재와 접속법 현재 차이가 드러난다.

그래서 ils acceptent와 pour qu'ils acceptent는 변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음에서는 차익 ㅏ있다.

nous acceptons  vs que nous acceptions

vous acceptez   vs que vous acceptiez


알파벳보다는 한자가 같은 크기에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자막에서 프랑스어, 중국어, 영어 순으로 되어있는데

프랑스어가 물론 조금 더 큰 크기이긴 하지만, 감안하더라도 영어와 중국어를 비교했을 때

같은 길이의 자막에서 영어에 해당하는 부분은 중국어의 뒤의 다섯 글자让我们尝试만이다.



아이엠페이는 루브르로 가장 유명하지 않나 싶다. 그를 한 번쯤 들어봤다는 사람은 대부분 루브르의 유리피라미드로 그를 기억한다.


예술가가 아무리 많은 작품을 만들어도 대표작 1개, 많게는 3개로 기억되면 족하다. 사람들은 10개씩 다 기억해줄 수 없고, 사람 하나에 작품 한두 정도만 연결시킬 뿐이다. 그러한 작품 하나 만들기 위해 인생 전반부의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나는 작품 하나 만들어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






아이엠페이의 커리어는 techinical mastery(기술적 숙련도) and ingenious problem-solving(창의적인 문제해결)으로 marked(특징지어진다)고 써있다.

중국어에서는 훨씬 더 풍부하게 써있다. 

아이엠페이의 직업생애의 성취(职业生涯的成就)는 건축기예(建筑技艺)가 출중고결(高超)하고 문제해결 수완(手腕)이 고명(高明)하다는데 공로를 돌릴 수 있지만(可以归功于)



콘크리트의 물성, 유리의 물성을 이해하고 그 물성과 디자인을 결합했다.




첫 문장에

I.M.Pei regarded form, material, and technique as inseperable라고 쓰여있다.

한국어로 하면 아이엠페이는 형태, 재료, 기법을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중국어로는 조형, 물료, 기술 삼자가 밀접하게 불가분의 관계라고 여겼다.

라고 쓰여있다.

단순한 문장에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고, 단어도 상호치환가능한 것 같은데


form을 형태로도 조형으로도

material을 재료로도 물료로도

techinque을 기술, 혹은 기법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같은 한자고, 의미하는 바는 대략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문화권에서는 이런 패턴을 더 많이 사용하고, 이런 방식의 단어가 굳고,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흘러간다. 단어간의 주파수와 감각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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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랴오닝성 자매결연 30주년 기념 명대 서화 특별전

京畿道与辽宁省结好30周年纪念明代书画特别展

Special Exhibition Calligraphy and Paintings of the Ming Dynasty

Commemorating the 30th Anniversary of the Gyeonggi Province-Liaoning Sister City Relations

《명경단청明境丹靑: 그림 같은 그림》

2024. 12. 5. ~ 2025. 3. 2.


1. 백남준아트센터와 전시테마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경기도박물관. 바로 옆에 있어서 함께 방문하기 좋다.








2. 오른쪽에는 어린이박물관도 있다. 외벽의 타일이 눈에 띈다. 이것도 작품이다.




작년에 발품을 조금 팔아서 청주시립미술관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봤던 강익중 작가의 작품이다. 2층 규모의 거대한 전시벽 가득 작품이 있었다.


책, 전시, 영화, 음식 등 문화는 어디서 봤던 레퍼런스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다. 부지런히 다녀야하는 이유다. 잘 모르는 곳마저 꼼꼼하게. 영화도 박스오피스 순위권 말고도 예술영화도, 전시도 메이저 말고도 이런 저런 화랑과 지방전시도. 베스트셀러말고 주목 받지 않은 신간도




3. 우선 2층 상설전시부터 다시 보았다. 경기도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도자가 있다. 다른데서는 못 본 특이한 작품이다.




아이들도 이 작품이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인터뷰한 영상이 스크린에 나온다.



그것보다 더 특이한 작품도 있다.







4. 경기도는 상당히 넓은 곳이다. 예를 들어 파주 미메시스와 용인 경기도박물관을 하루에 방문하기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옛 지도를 보면 고양, 파주, 용인 하는 식으로 원이 그려져있고 길은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의 걸음과 호흡으로는 아침에 식사하고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하는 정도의 걸음이 아니었을까.


지역과 지역을 잇는 중간선은 걸음에 집중하여 시간이 삭제되는 무념의 공간일수도, 자연경관을 보면서, 혹은 벗과 두런두런 대화하면서 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5. 작년 불교 관련 전시 <극락> 했을 때 자매결연 기념 전시한다고 해서 스케쥴에 넣어놓고 있다가 늦지 않게 잘 방문했다.






6. 꽤 소규모 공간이라 전시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은데 명대 전중후로 나누어서 오대사가 등의 중요한 작품도 소개하고 소청록기법도 소개하는 등 압축해서 명대 서화의 정수를 전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공간의 제약이 없으면 마음껏 작품을 가져와서 양적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공간 뿐 아니라 시간, 행정, 비용 등 여러제약이 발생한다. 그 테두리 속에서 핵심을 전달하고자 하는 고민의 결이 보인다.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1857)처럼  페이지당 고료수를 받기 위해 한껏 늘어지게 쓸 수 있다. 에밀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도 페이지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후대에 와서는 당시 사회상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야기 전개가 장황하다는 단점은 피할 수 없다. 장황하면 사람들은 흥미를 잃고, 정작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뇌리에 오래 남지 않게 된다. 헤겔의 강의를 보고 온 어느 신사가 부인에게 한 말처럼,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고!"







7. 작품은 한 점만 뜯어보자.







8. 한국에서 하는 전시이므로 작품 아래에는 한글 캡션이 있고, 디스플레이에 중국어 설명을 따로 모아두었다.


중국 캡션은 첫 문단에서 작가의 이름, 출신, 대표스타일 등 미술사적 지식을 먼저 전달한 후 다음 문단에서 시각적 분석을 한다. 한국어는 시각적 분석 후 역사적 지식을 전달하는 반대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아무래도 중국역사에 정통하지 않은 한국관람객들이 먼저 읽는 단락이 중국이름과 지명이면 이해가 더딜 수 있으니까 배려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9.

먹으로 그려낸 독특한 모양의 바위 위에

치자꽃 몇 송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꽃과 잎사귀에 보이는 붓놀림이 굳세고

먹색이 잘 어우러져 있다

돌 뒤에서 뻗어 나온 연한 색의 망우초는

자연스럽게 하늘거린다

땅 위에 퍼져 있는 잡초는 

꽃과 돌들 사이에 뒤섞여 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맑고

작가의 느낌이 잘 드러나 있다


10. 한글 캡션의 시각적분석을 읽고 작품을 보면

바위가 있고

바위 위 치자꽃이 보이고

바위 아래 뒷 배경 망우초가 보이고

맨 아래 잡초가 보이는 등

바위, 치자꽃, 망우초, 잡초 4가지 대상이 레이어화되어 눈에 잡힌다.




11. 중국 캡션을 읽으면 또 다르다.

다 이어진 한 문장의 글로 보이지만 구조상 2가지로 나뉜다.


캡션의 전반부는 시적 운율로 쓰여져 우아한 맛이 있고

캡션의 후반부는 일반 서술체로 쓰여졌는데 고풍스러운 어투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인도 이런 설명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다. 작품을 보고 멋진 설명을 보고 작품을 다시 보면서 자국어의 아름다움을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1) 전반부 


9-9-4-4의 시적운욜로 되어 있다.


画幅以水墨画太湖石,几栀子花随风摇曳,花叶挺拔, 墨色交融


9글자, 9글자, 4글자, 4글자로 되어있다. 시적 운율이 느껴진다. 이 덩어리를 더 끊어읽는다.


9글자 끊어읽기는 대략 이렇게 된다. 2-3-4, 2-3-4 huafu/yishuimo/huataihushi, jizhu/zhizihua/suifengyaoye/

4글자는 2-2, 2-2로 끊어진다. huaye/tingba, mose/jiaorong

그러므로, 2-3-4 / 2-3-4 / 2-2 / 2-2로 읽힌다.


9글자, 9글자를 한국어로도 그 느낌을 살려 번역하면

화폭, 수묵으로, 태호석을 그리고 / 몇 송이, 치자꽃, 바람따라 흔들흔들

이다.


4글자, 4글자는 성어로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꽃잎이 우뚝 솟아 / 花叶挺拔, 화엽정발 huayetingba  빼어날 정, 우뚝 솟을 발

먹색이 잘 어우러져 있다 / 墨色交融 묵색교융 mosejiaorong 교류하다할 때 교, 융합하다할 때 융


대략 이런 느낌의 압축적이고 우아한 시적 표현이다.

화폭, 수묵으로, 태호석을 그리고 / 몇 송이, 치자꽃, 바람따라 흔들흔들 / 꽃잎 우뚝 / 먹색 융합


2) 후반부


石后伸出的淡色萱花俯仰多姿

满地杂草穿插花石间给人以清丽秀逸之感


石后 / 伸出的 淡色 萱花 / 俯仰多姿

돌 뒤로 / 뻗은 옅은 색의 망우초가 / 굽어서 쳐다보고 있고 다양한 자태를 뽐내며


满地 / 杂草 穿插 花石间 / 给人以清丽秀逸之感

바닥 가득 / 잡초가 / 꽃과 돌을 뚫고 들어와 / 청아하고 수련한 느낌을 준다.


대략 앞에는 2, 7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굽어서 쳐다보고 있고 다양한 자태를 뽐내며"에 해당하는 俯仰多姿 fuyangduozi에 공부할 부분이 많다.


俯仰부앙fuyang은 구부릴 부, 우러를 앙, 즉 아래로 엎드리고 위로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상하적 운동성이 나타나있다.

多姿다자duozi는 많을 다 多 맵시모습 姿, 즉 다양한 모습, 다양한 자태가 일차적 뜻이다. 일반적으로 명사지만 여기서는 술어적으로 풀어써야한다. 


그런데 부앙이 아래 위의 상하적 운동성을 나타내면서 다자는 그냥 평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입체적인 운동이미지로 바뀐다.


바위 뒤 가운데 뻗어나온 훤화/망우초/원추리꽃이


술어로서 부앙다자, 즉, 위아래로 움직이며(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들기도 하며) 다양한 자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조금 더 의역하면

바위 뒤에서 뻗어나온 옅은 색의 원추리꽃이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들기도 하며 다양한 자태를 보여준다."

바위 뒤에서 뻗어나온 옅은 색의 원추리꽃이 "바람에 살랑이며 우아하게 자태를 바꾼다."


정도가 되겠다.


이렇게 설명을 읽고 나면 뒤의 망우초가 다시 보인다.


한국어 캡션에서 번역된 '자연스럽게 하늘거린다'를 원어를 경유해 더 풍부하게 해석하니 작품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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