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 Pei: Life Is Architecture

貝聿銘:人生如建築

29 Jun 2024 - 5 Jan 2025




1. 홍콩은 처음이었다.


홍콩 영화는 많이 봤고, 홍콩 영화 속의 빌딩숲은 눈에 익숙했지만, 스크린 속에서 잘려나간 빌딩숲이 아닌, 눈앞에 꽉 차게 들어서는 그 진경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천루는 하늘을 문지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VO)→N의 구조. 천을 마하는 루. 하늘을(목적어) 문지르는(동사)-  관형수식 - 누각. 영어로는 하늘sky를 scrape긁는다는 뜻이다. 서울의 63빌딩과 시그니엘은 마천루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아무래도 서울의 빌딩들은 서로 간격을 두고 흩어져 있어, 홍콩의 마천루가 만들어내는 그 숨 막히는 밀도를 느끼기는 어렵다. 63빌딩은 과거의 위용을 품은 채 한강을 내려다보며,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노인 같고, 시그니엘은 높이만큼의 존재감은 있지만, 주위가 텅 빈 듯해 홍콩 마천루의 집단이 내뿜는 위압적인 감각이 덜하다.


서울의 하늘이 광활하기 때문일 것이다. 빌딩이 하늘을 점령하려 하기보다는 그 아래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사부랑사부랑 서 있다. 덕분에 어디에서든 시야가 트이고 하늘과 도시가 함께 숨 쉬는 여유가 있다. 홍콩에서 느낄 수 있는 빌딩이 도시를 덮어버리는 듯한 강렬한 인상은 없다.


서울의 야경은 한강을 따라 펼쳐진 불빛으로 부드럽게 흐르지만 홍콩의 야경은 마천루 사이로 번쩍이며 솟구친다. 같은 불빛이라도 도시에 따라 품은 공기의 결이 다르다.


섬이 가라앉지는 않을지, 의심되는 우글바글 거리는 마천루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고, 아래 거리는 네온 빛에 젖어있다. 철근과 유리로 덧칠된 빌딩 아래로 습기 어린 남방의 바람이 스친다.



왜 사람들이 홍콩에 와서 무드럭진 빌딩숲을 보고 동양적이면서도 미래적인, 그 기묘한 사이버펑크적 감성을 만들어냈는지 이제야 실감했다.


스크린으로는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이 거대한 구조물들 사이에 서면 온몸이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목을 한껏 젖혀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빌딩들이 마치 도시에 뿌리내린 방대한 세계수 군락처럼 느껴진다.


아마 언젠가 뉴욕에 가면,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위압적인 감각을 마주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곳의 빌딩들은 또 다른 표정을 짓고 있겠지, 홍콩과는 다른, 묵직하고 단단한 강철의 얼굴로.


뉴욕의 물가와 숙박비를 생각하면 지금과 같이 LCC, 캡슐호텔, 배낭 하나로 다니는 미니멀여행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2. 간 김에 키아프, 프리즈 등에서 봤던 유명화랑도 들러봤다.










센트럴에는 David Zwirner, Pace, White Stone, Tang은 같은 빌딩 5-6,8,10,12층에 위치하고 있다.

그 옆에는 가고시안이 있어서, 5개는 같이 가면 좋다.

오페라 갤러리는 문 닫았다.


침사추이로 넘어가면 홍콩예술관과 Perrotin이 있으니 같이 묶어서 가면 좋다.


3. M+다. 홍콩고궁문화박물관과 함께 서구룡지구에 있다. 







정말 매우 거칠게 분류해보자면

20세기 영국+중국=홍콩

같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옆 마카오는 

포르투갈+중국=마카오인데 

포르투갈+아시아=인도의 고아

도 될 수 있겠다.


대만은 대략

네덜란드+일본+명청+아시아=대만


인도는 대략

19세기 영국+인도=인도

다. 아시아로 더하기에는 인도의 특유의 느낌이 너무 많다.


이런 조합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첫인상 같은 것이 이렇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독일+아시아는 칭다오정도 있는 것 같고 스웨덴(스칸디나비아)+아시아는 없는 것 같다.

그외에 생각나는 것은


프랑스+아시아 = 베트남

소련+아시아=북한, 몽골

러시아+이슬람+페르시아+아시아=중앙아시아

미국+스페인+아시아=필리핀

네덜란드+아시아=인도네시아


정도다. 일본과 한국은 생략.



4. 정해진 조합과 타이밍에 따라 비눗방울이 만들어져 부유하는 몽환적 감각을 주는 설치예술이 있다.





작품만 보면 신기하다! 비눗방울이네! 할 수 있지만


설명을 읽고나면 달리 보인다.


우키요예에서 유래한 "부유의 지경"이라는 예술장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해서 미적, 시적 및 속세를 초월한 감각(美感,诗意,以及超脱凡尘的感觉)을 주는 장르다.


떠다니는(漂浮的) 무지개 기포가(虹彩气泡) 폭발해서 구름이 된다. (爆裂成云朵)


생명의 짦음을 은유하는 이 거품들, 길상하고 신성한 의미를 지닌 구름들은 아시아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나하나의 실체의 안개고리가 출렁이는 디지털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안개 고리가 스크린 표면에 닿으면 아날로그 공간으로 들어가 실체의 굴레를 벗어나 끝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이렇게 설명을 읽고 나면 작품이 새롭게 보인다.


비눗방울은 짧은 생명의 덧없음을 의미하며, 안개 고리들이 보이지 않는 허공의 디지털 바다를 향해 달려나가다가 스크린 표면에 닿아 아날로그 공간으로 이어져 물질과 허상,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5. 유명 건축가 I.M.Pei의 전시를 하고 있다.




중국어는 : 건축으로서의 인생

영어는 : 인생은 건축이다





이런 폰트와 이런 재질의 신문기사를 보면 자동적으로 1950-1980년대 미국 라디오 방송의 midatlantic 악센트가 떠오른다. 거의 음성 지원이 된다. Paul Harvey, Walter Cronkite, Edward Murrow같은 라디오 방송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로 지원된다.


대충 이런 느낌

https://youtu.be/vEvEmkMNYHY?si=2gFk2avODI4Ju6Mv




굳이 안 해도 되는 겸양표현이 보인다. "나는 건축비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Though myself in no sense an architectural critic.." 요즘 감성은 아니다. 유럽문화를 동경하던 이전 세대에는 많이 보였다. 내가 참조하는 헤게모니의 문화가 다른 곳에 있을 때 자신이 없어서 나오는 류의 겸양 표현이다.



프랑스어의 접속법이다. accepter 동사는 1st pl. 2nd pl.에서만 직설법 현재와 접속법 현재 차이가 드러난다.

그래서 ils acceptent와 pour qu'ils acceptent는 변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음에서는 차익 ㅏ있다.

nous acceptons  vs que nous acceptions

vous acceptez   vs que vous acceptiez


알파벳보다는 한자가 같은 크기에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자막에서 프랑스어, 중국어, 영어 순으로 되어있는데

프랑스어가 물론 조금 더 큰 크기이긴 하지만, 감안하더라도 영어와 중국어를 비교했을 때

같은 길이의 자막에서 영어에 해당하는 부분은 중국어의 뒤의 다섯 글자让我们尝试만이다.



아이엠페이는 루브르로 가장 유명하지 않나 싶다. 그를 한 번쯤 들어봤다는 사람은 대부분 루브르의 유리피라미드로 그를 기억한다.


예술가가 아무리 많은 작품을 만들어도 대표작 1개, 많게는 3개로 기억되면 족하다. 사람들은 10개씩 다 기억해줄 수 없고, 사람 하나에 작품 한두 정도만 연결시킬 뿐이다. 그러한 작품 하나 만들기 위해 인생 전반부의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나는 작품 하나 만들어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






아이엠페이의 커리어는 techinical mastery(기술적 숙련도) and ingenious problem-solving(창의적인 문제해결)으로 marked(특징지어진다)고 써있다.

중국어에서는 훨씬 더 풍부하게 써있다. 

아이엠페이의 직업생애의 성취(职业生涯的成就)는 건축기예(建筑技艺)가 출중고결(高超)하고 문제해결 수완(手腕)이 고명(高明)하다는데 공로를 돌릴 수 있지만(可以归功于)



콘크리트의 물성, 유리의 물성을 이해하고 그 물성과 디자인을 결합했다.




첫 문장에

I.M.Pei regarded form, material, and technique as inseperable라고 쓰여있다.

한국어로 하면 아이엠페이는 형태, 재료, 기법을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중국어로는 조형, 물료, 기술 삼자가 밀접하게 불가분의 관계라고 여겼다.

라고 쓰여있다.

단순한 문장에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고, 단어도 상호치환가능한 것 같은데


form을 형태로도 조형으로도

material을 재료로도 물료로도

techinque을 기술, 혹은 기법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같은 한자고, 의미하는 바는 대략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문화권에서는 이런 패턴을 더 많이 사용하고, 이런 방식의 단어가 굳고,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흘러간다. 단어간의 주파수와 감각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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