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소장품기획상설전
비(飛)물질: 표현과 생각 사이의 틈
2025. 03. 20. ~ 2026. 06. 28.
기획전시실 3
참여작가: 금혜원 오로민경 임민욱 조은지 한석경
https://gmoma.ggcf.kr/exhibitions/191

1. 경기도미술관.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4호선 타고 1시간은 걸리지만 시트에 몸을 맡기고 책 읽다보면 금방 다다른다.
오늘 3.20 전시 세 개가 다 교체되었다.
그중 비물질 전시는 1년 3개월 동안 열리며 매달 퍼포먼스가 있다.
"1년 3개월의 기간 동안 운영되는 이번 전시는 비(飛)물질 계열의 작품을 수행적 태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


2. 들어가자마자 임민욱의 전시가 보인다. BB&M, 일민미술관 등 여러 소스에서 접한 적 있다.
정확히 언젠진 모르겠지만 아트선재에서도 한 적있고, 시청역 뒤에 로댕갤러리였다가 플라토로 이름 바꾼 삼성미술관에서 했던 것 같다.

3. 왠 남자가 시장과 공사장을 오브제를 들고 걷고 있는 12분 남짓의 영상으로, 2009년 작품이다.
모래내시장은 아마 인천이다. 일본이나 프랑스도 그렇고 작가는 자기에게 의미있는 공간을 대상으로 삼는다.
남성 퍼포머의 헤어컷에서 당시 유행했던 헤어스타일이 보인다. 차분한 샤기컷.
음악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나 다른 클래식 음악을 아케이드 게임풍으로 리믹스해두어서 인상깊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보니 음악은 달파란이 했다.
역시나
2016 이후 영화음악상으로 유명해졌지만 원래부터 실력있는 뮤지션이다.
최근 영화음악은 예를 들어 구교환, 홍사빈, 이제훈이 나오는 <탈주>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가 생각난다. 작년에 봤던 인상 깊은 영화다.

출처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8B%AC%ED%8C%8C%EB%9E%80
나무위키가 음악, 영화 크레딧 등을 잘 정리해두어서 쓸모있다. 익명의 지식분류자님들에게 감사.
1998년에 나온 달파란의 <휘파람 별> 1집은 아직도 세련되었다.
특히 비닐의 여신의 둥댕둥댕둥댕윙오윙오위오윙오.. 하면서 올라가는 멜로디는 오래 뇌리에 각인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75LyYtjO5TY
4. 임민욱 작가는 이렇게 퍼포머가 오브제를 활용하면서 이동하는 영상을 만들고
그 오브제를 전시장에 전시해두고
녹슨 표면의 느낌이 있는 지도 같은 설치예술을 만들어서,
영상, 오브제, 설치예술의 삼박자로 전시를 구성한다. 신경쓴 음악과 의미있는 공간의 선택은 덤.
일민 미술관도 일본 유람선 영상, 영상 안에서 끌고 다니는 오브제, 1층의 거대한 설치예술이 있었다.
보통 영상 안에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공간을 다니고 있는데
원래 그 공간에서 적합하거나 자주 목격되지 않는 사람들, 오브제, 행위라서 공간 자체의 의미를 다시 환기시킨다.
오래 지속한 일관적이고 선명한 작가의도가 있으니 기획자 입장에서도 편할 것 같다.

4. 작품 설명.
마지막에 '영토를 재맥락화'하는 과정의 작품이라고 써있는데
아마 들뢰즈와 가타리의 영토의 재영토화(reterritorialisation)를 말하는 듯하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가 1980년에 출판한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라는 980)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1) 영토화(territorialization)
2)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
3)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
세 가지가 한 세트다.
1) 우선 영토화는 어떤 흐름이나 요소가 특정한 질서, 체계, 구조 속에서 안정화되는 과정이다.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문화적, 언어적, 정치적 흐름 같은 추상적 맥락도 해당된다.
예를 들어 한 사회가 특정한 규범, 법, 제도를 만들어 사람들이 따르도록 한다면 사회적 영토화라고 할 수 있다.
영토를 점령해서 자기 나와바리를 만들었다는 의미로 영토화를 생각하면 편하다.
어떤 단어가 특정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과정은 언어적 영토화라고 볼 수 있겠다.
2) 그럼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는 무엇인가? de를 붙여서 밖out, ~서 부터from의 의미를 넣었다.
영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떤 체계도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해체되고 변형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거나 정착된 의미가 흐트러지는 과정이 바로 탈영토화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전통적인 경제 구조가 글로벌화로 인해 변화한다든지
특정한 단어가 인터넷 문화 속에서 기존과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된다든지
3) 다시(re)를 붙인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는?
탈영토화는 기존 체계를 바꾸는 것이므로 불안정하다.
탈영토화가 진행된 후 흐트러진 요소들은 다시 새로운 체계 속에서 자리 잡게 되는 것을 재영토화라고 이른다.
이때 유의할 점은 재영토화는 단순히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클래식 같은 전통적인 음악 장르가 글로벌 문화 속에서 랩(비와이), 락(메탈리카)과 함께 새로운 스타일로 변형된다든지
국악이 트로트화가 되거나 퓨전조선국악이 된다랄지, 송소희같이 된다랄지
국가가 기존의 정치적 체제를 무너뜨린 후 새로운 체제를 구축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탈영토화된 요소가 새로운 방식으로 고착되는 것이 재영토화다.
아주 쉽게 이해하면 영토화는 제도화, 탈영토화는 해체, 재영토화는 재구성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개념을 통해 세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구성되는 과정에 놓여 있음을 설명한다.
모든 영토화는 필연적으로 탈영토화를 동반하고, 그 탈영토화는 새로운 재영토화를 낳는다.
이 개념을 적용하면, 문화, 정치, 경제, 언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체계가 어떻게 무너지고 다시 형성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한식을 예로 들어 종합적으로 이해해보자
1. 한식의 영토화는 한식이 특정한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과정이다.
예컨대 포르투갈에서 온 고추가 도입되고 한식에 정착하고, 된장, 간장, 두부, 김치 등의 발효 음식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2. 한식의 탈영토화는 기존의 한식 체계가 해체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한식이 글로벌화되면서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난 형태로 변형되는 것이다.
고추장 버터 파스타, 불고기 피자, 전주비빔라이스버거 같은 퓨전한식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재료나 조리법이 변형되는 현상이다.
이 기묘하고 불안정한 혼합은 필연적으로 전통의 반발을 불러온다. 탈영토화는 그 영토를 떠났다는 의미이니 기존 한식의 틀을 벗어나 다른 문화와 섞여서 더 이상 전통적인 한식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3. 한식의 재영토화는 변형된 한식이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형태로 정착하는 과정이다.
판다익스프레스의 차우메인, 오렌지쿠키나 미국 화교들이 개발한 포쳔쿠키 문화같은 것도 새로운 정체성의 중식이라고 할 수 있다면, 서양에서 한식이 K-푸드라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 미국식 한국 치킨이 등장하는 게 있겠다. 아직 한식의 재영토화까지 간 것 같지는 않아 예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양식의 한국내 재영토화의 사례로서, (즉, 양식의 한국화, 양식의 한국적 재구성) 로제떡볶이같은게 생각난다.
이러한 이해를 거쳐
임민욱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생각해보자
1) 우선 영토화는 작가가 어렸을 적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처음 방문했던 영화관이 있는 모래내시장의 개인적 기억과 정체성이다. 그 영화관은 단순한 건물이나 공간(place)이 아니라 개인적 경험과 감정이 깃든 장소(space)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기억을 형성하는 하나의 영토이다.
2) 다음 탈영토화는 영화관이 사라지고 도시 재개발 공사가 진행되는 2009년의 일이다. 기록 영상에서 담겨있는 공사판이다.
도시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영화관이 철거되고 공간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면서 기존의 정체성이 해체된다.
작가에게 익숙한 공간이 사라지면서 개인적 기억이 깃든 장소가 무너지고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을 경험했고, 퍼포머더러 대리로 산보시켜 기록한 것이다.
작품설명에서 '뒤엉킴'이라고 말할 때 그 불안정과 혼돈은 탈영토화의 특징이다.
3)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재영토화는 그 영화관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재건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게 아니다.
작가는 라텍스 지도를 만들어 전시해두었고 그것을 재영토화, 재맥락화라고 했다.
작가는 재건축 아파트에 들어가서 새로운 공간 경험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전시장에 영상과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제3의 새로운 컨텍스트를 만들었다.
자기의 기억의 파편을 의미화하고, 관객을 자기의 기억에 동참시키고, 과거 영상을 틀어놓아
전시장 자체를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성하고 과거의 흔적과 단절되지 않은 개인적 경험을 제시하는 것이다.
왜냐? 원래 들뢰즈 가타리의 의미대로 생각하자면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스며든 채로 새로운 형태로 정착하는 과정이 재영토화이기 때문.
삐까뻔쩍한 재건축 아파트단지에, 철거이전의 기억이 있는가? 없다고 답한다면 이 말이 이해가 되리라
작가가 익숙했던 기억과 공간의 변형을 대리체험하는 존재로서 퍼포머는
마치 구보가 경성의 거리를 걷듯이 배회하며
영상을 보는 관람객들에게 뒤엉킨 공사판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감각을 경험하도록 한다.
내가 여기 살았던게 맞나? 싶은 감각이다.
기존의 공간이 사라졌지만, 새로운 공간도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체성이 부유하는 상태를 영상에서 표현한 것이고,
이 감각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유목적 상태(becoming-nomadic)와 일치한다. 어지러운 공사판 뿐 아니라 터전이 없어진 재개발 구역 자체를 방황하는 사람을 보여줌으로써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아직 자리를 잡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경성의 구보는 탈영토화에 머물러 있었지만, 임민욱 작가는 기록영상을 만들고 라텍스지도와 함께 배치함으로써 관객을 동참시켜 전시장에서 새로운 재영토화를 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