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북 갤러리를 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근현대문학관.

오픈한지 갓 1년된 곳이다. 설렁탕과 양갱집 뒤에 숨겨져 있다 마치 문학작품이 서가 뒤에 살포시 숨겨져 있듯이


따로 특별전시는 없고 무료 상설전시다.









2. 문학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이디어를 다 시도했다. 시낭송 번역본 합창곡 고서 고지도 사진 교류 지도 변천사 일러스트 당대 사료 작가 유품 등등. 


작품 테마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이디어를 다 시도했다. 일제, 도시개발, 성북지역, 미술, 음악 등등


뇌폭풍으로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다.





3. 본디 문학이란 고독한 마음으로 홀로 읽는 것인데, 문학이 홍보되고 전시될 때는 그 묵묵한 독서와는 다른 결로 채색된다. 마치 숨겨져 있는 무덤의 부장품을 꺼내 많은 이에게 전시할 때 장례지내고 땅에 물건을 묻을 때의 맥락과는 다르게 되듯 말이다.



4. 옛날에는 노트가 3원이던 시절도 있었다. 물가가 참 많이 올랐다. 이제는 3천원이다.



5. 이런 시민증 하나를 땀에 절은 저고리 안주머니에 넣어 다녔을 시절을 생각해본다.


사람들 대부분 문맹인 상황에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글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부탁해서 읽어달라고 했을 것이다.


신분증에 쓰여진 글자가 뭔지 몰라도 부적이나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겼을 것이다.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읽은 오늘자 한겨레 txt 기사와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88092.html
















한겨레는 얼마 전부터 토요일자를 발행하지 않고 책 관련 소개는 금요일에 txt라는 이름의 추가지로 껴준다. 거기에 있던 신간 소개 기사였다.


동유럽 유대인 카민스키가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신분증명서를 위조한 스토리를 다룬 책이다.

"여권과 신분증, 결혼증명서, 세례증명서, 배급허가증 같은 서류를 위조했다. 어느 날 사흘 안에 300명의 유대인 어린이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내려왔다. 한 시간 잠들면 30명의 생명이 사라진단 생각으로 동료들과 밤을 새웠다."


저런 피난시민증이 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던 시대가 이 땅에 불과 75년 전이었다. 지금 동시대에도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불과 몇 년 전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로 유입되는 리비아난민도, 그 이전에 보트피플도 모두 다 종이 한 조각에 생사가 왔다갔다했다. 그만큼 안정적인 국가시스템과 제도는 중요한 것이다.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수많은 안보이는 사람들 - 9급 공무원 포함 - 의 노력에 감사해야한다. 공적 제도가 없으면 사적인 삶도 없는 것이니까. 보이지 않는 사회 시스템의 존재를 못 느끼고 살다가 시스템이 붕괴하면 그제서야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가치를 알게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고치고 예방하고 소중히 해야한다. 발급받은 서울특별시 시민증을 항시 휴대해야했던 나날을 이 전시장에서 상상해본다.




6. 이태준 김환기 김기창 등 30년대 성북동 지식인의 문학품평회 시낭송회 그림감상회 사진을 보면서 AI시대의 정보소비를 생각해본다.


마치 홍수가 나면 물은 많은데 정작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인터넷 확산 이후 정보의 범람 속에 정작 읽을만한 정보가 없다는 한탄이 있었다. 이것도 이미 30년 전 푸념이다.


이제 AI까지 등장해 나의 선택 패턴을 조사해 읽을 만한 지식을 큐레이션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정보의 수준은 점점 높아진다. 최고의 전문가가 알려주는 지식들. 지방 사범대 나온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스탠포드 출신 수학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지방 국문과 출신 선생님이 아닌 옥스포드 출신 디즈니 작가의 스토리텔링작법을, 지방 의대가 아닌 하버드 출신 의사가 알려주는 생활건강 지식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학력으로 게임이 안된다. 양극화가 심하다. 


그냥 사회 초년생은 진입할 자리가 없고, 중고 신입 즉 경력직만 뽑는 상황에서 헤드헌터과 자격증 강사만 할 것이 많다. 옛날에는 뽑아서 키워서 쓰던 시절에서, 준비를 스스로 하게 하고 자격증으로 검사하니 기업 트레이닝을 초년생에게 무급으로 외주를 주고 있는 셈이다. 엑셀, CPA, 워드, 외국어 뭐든지 다 준비된 사람만 원한다. 기업 인사팀도 볼멘소리겠다. 준비성에서 남다른 사람을 뽑아야 하는게 아니냐고. 문제는 진입장벽이 계속 높아지고 자격증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도 이제 명함을 못 내민다. 팬데믹과 트럼프라는 원투펀치를 맞고 비자 때문에 아이비리그도 유턴하는 시대다. 제대로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 늦게 온 사람들은 하염없이 줄만 서있고, 문 안 쪽에서는 밖에 문을 찔끔찔끔 열어주고 안에서만 계속 사람들이 왔다갔다한다. 


위에서 말한 난민이나 이민으로 생각해보자면, 밖에서는 사람이 죽는데 유럽 비자, 시민권은 주지 않거나 1년에 몇 명만 주고 안에서는 좋은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인구대비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스웨덴의 복지가 무너지고 갱단으로 인한 강력범죄가 EU2위가 되었다는 것과, 캐나다의 실패한 이민정책으로 인도인이 너무 많아서 사회갈등이 심각하다는 기사를 보면 받아들이는 이상주의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사회는 매우 모순적이고 하나의 갈등봉합은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문을 안 열어주는 유럽이나, 문 열어달라고 아우성대는 북아프리카,이슬람국가들이나 모두 다 나름의 근거가 있다. 


성문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부럽고 질투나고, 성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면 난리나니까 절대 안 열어주거나 땜빵식으로 한 두명 받아준다.


맞음 vs 틀림의 싸움이 아니라, 내가 맞음 vs 내가 맞음의 싸움이다.


AI, 뇌척추인터페이스, 바이오테크와 우주식민지를 논하는 시대에 점점 중세 사회화 되어간다고 나는 본다.



7. 어쨌든 

인터넷 시대의 푸념은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AI시대의 푸념은 고퀄의 좋은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AI시대의 정보소비 문제 핵심은 좋은 정보를 정작 다 읽을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 

인터넷 시대에는 그나마 전문가라면 선별가능할 정도의 양이었다. 하이텔에 올라오는 글은 다 읽을 수 있을 때도 있었고, 구글에 검색해도 뒷쪽으로 갈수록 별로 영양가 없는 정보였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최고의 정보가 너무 많다. 할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다 못한다.


하루 종일 시간이 있는 백수라 할지라도 모든 유투브를 다 볼 수 없고 마케터라해도 브랜드를 모두 다 써보지 못하고 갤러리스트라해도 모든 전시를 다 가지 못하며 서점엠디도 모든 신간을 다 읽지 못하고 시네필도 모든 영화를 다 보지 못한다.


설령 다 본다 해도 꼼꼼이 보지 못한다. 스쳐 지나가고 다음 날에는 다른 것을 봐야하니까


그 옛날 내가 만든 예술을 꼼꼼이 다 보고 읽어주던 시대는 얼마나 아름다웠나


김환기 화백네 집에 놀라가서 매일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고


정지용 이육사의 시를 한땀한땀 낭송하고


이태준의 문학이 매일 한 꼭지씩 완성되어 가는 것을 찬찬히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을 두고 문학과 같이 익어갈 수 있었다.


읽을 것이 볼 것이 들을 것이 그것 밖에 없었기에


그것이 전부였기에 소중하게 아껴줄 여유가 있었다


지금은 변화에 쫓긴다. 한 가지만 좋아하며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그 책만 그 사람만 좋아할 수 없다. 


AI에게 쫓겨 서둘러 움직여 새로 나올 다른 좋은 것을 소모하며 유동하는 기체근대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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