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ytimes.com/2025/04/03/arts/design/monstrous-beauty-porcelain-exhibit-met.html


1. ART REVIEW


The ‘Monstrous Beauty’ of Pretty Porcelains

A show at the Met offers a feminist revision of Chinoiserie, a decorative style that swept through Europe in the age of empires and seeded stereotypes of Asian women.


By Aruna D’Souza

April 3, 2025


뉴욕 미국국내판은 4월 3일, 한국 국제판은 4월 10일 발간



이불 사이보그

Lee Bul, Cyborg W1, 1998

Lee Bul

Cyborg W1, 1998

Cast silicone, polyurethane filling, paint pigment

185 x 56 x 58 cm


출처: 타데우스 로팍

https://ropac.net/ko/artists/31-lee-bul/works/11870-lee-bul-cyborg-w1-1998/


Met 전시중인 작품은 발만 있는 것 같다. :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857469



이수경의 번역된 꽃병

출처: 위의 NYT 기사 (원본 출처: 베네치아 비엔날레 아카아브)


이수경 번역된 꽃병

Translated Vase_2022 TVCSHW 1

Yeesookyung 

2022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902346


작가 사이트

https://www.yeesookyung.com/translated-vase-






2. 기사 일부 한국어 번역 및 해석


《괴물 같은 아름다움: 아름다운 도자기의 이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가 제국주의 시대 유럽을 휩쓴 장식양식 '시누아즈리(Chinoiserie)'에 대해 페미니즘적 재해석을 시도하다


*시누아즈리는 프랑스어로 중국+풍이라는 뜻이다. 


아루나 드수자, 2025년 4월 3일


"드래곤 레이디", "기생", "순종적인 미녀" —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여성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들은 실제 여성들과 만나기도 전에 수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에 퍼져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이미지들이 유통된 중요한 매체 중 하나가 바로 중국 도자기였습니다. 16세기 무역선이 향신료를 실어 나를 때 발란스로 사용되었던 이 하얗고 투명한 자기들은 유럽인들을 열광시켰고, 곧 '시누아즈리'라는 장식양식을 유럽 전역에 퍼뜨렸습니다. 이는 아시아에 대한 판타지를 더욱 강화했고, 특히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이국적이고 성적화된 이미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전시 「Monstrous Beauty: A Feminist Revision of Chinoiserie」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점이 넘는 작품을 모아,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서구의 고정관념이 어떻게 도자기와 시각예술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탐구합니다. 특히 동아시아 및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작가 7인의 현대 작품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이미지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이수경의 ‘변형된 꽃병’ 시리즈

전시 입구에서는 한국 작가 이수경(Yeesookyung)의 ‘번역된 꽃병(translated vases)’ 시리즈가 전시됩니다. 버려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붙이고 금박으로 균열을 감싸는 방식은 전통적인 ‘금개(金繼)’ 수리기법을 연상시키지만, 단순한 복원이 아닌 괴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새로운 조형물로 재창조됩니다. 이는 전시 제목인 ‘괴물 같은 아름다움(Monstrous Beauty)’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대표작입니다.


시누아즈리: 미적 감상의 이면에 깔린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도자기 열병은 단순한 예술 감상을 넘어, 유럽의 산업적 집착과 권력 욕망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아우구스투스 2세는 중국 도자기를 얻기 위해 병력까지 교환했다고 전해지며, 유럽 왕실들은 이 도자기들의 제조 비밀인 카올린(kaolin, 백토)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도자기 디자인에는 종종 인종적 고정관념이 담겨 있었는데, 예를 들어 유럽산 도자기에는 중국인, 흑인, 유럽인을 풍자적이고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도자기 인형은 특히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를 전파하는 도구가 되었는데, 배우, 어머니, 여신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면서 동시에 유럽 여성에게는 다른 문화 속의 자아상을 상상하게 하는 경로가 되었습니다.


현대작가들의 개입

이수경 외에도, 현대작가 리불(Lee Bul)의 사이보그 조각은 전족이라는 과거 여성 억압의 전통과 미래 기술의 접점을 제시하며, 아시아 여성의 신체에 투사된 환상과 통제의 역사를 다룹니다.


패티 창(Patty Chang)의 작품 〈Abyssal〉은 도자기로 만든 마사지 테이블을 통해 2021년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아시아계 여성 스파 종업원 살해 사건을 환기하며, 오랜 시간 지속된 성적 대상화와 폭력의 역사를 조명합니다.


안나 메이 웡: 고정관념을 넘어

1930년대 할리우드 최초의 중국계 미국인 배우 안나 메이 웡도 이 전시에 등장합니다. 드래곤 레이디, 이국적 팜파탈의 역할에 갇혔던 그녀는 유럽에서 맞춤 제작한 용 자수가 박힌 이브닝 드레스와 경극 전사의 코트를 연상케 하는 외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권위를 표현했습니다.


이 전시는 단순히 ‘예쁘고 이국적인 물건들’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숨겨진 권력, 고정관념, 성적화의 구조를 해체하고자 합니다. ‘시누아즈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여성들이 어떻게 대상화되었는지를 예술을 통해 성찰하게 합니다.



3. 전시의 장단점


일단 내가 생각하는 전시의 장점은 네 가지다.


1) 비판적 역사관: 단순히 아름다운 도자기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중심 시각과 성적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페미니즘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식민주의와 성적 대상화의 시대에서는 아름다움은 도구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착하고 무해하다는 고정겨관념을 깨뜨리고 전시는 아름다움은 이데올로기의 은폐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예쁘게 꾸며진 도자기, 곡선을 강조한 여성상, 정교한 의상과 자수들은 모두 성적 대상화, 인종화, 소비주의라는 거대한 구조를 감추는 포장지였다. 그런 점에서 예쁜 것이 단지 취향이나 감상이 아니라 권력 구조 속에서 정치적 기능을 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도자기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여성을 환상적으로 대상화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의 물리적 구현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아름다움 자체를 정치적으로 읽는 훈련이 부족했고 바로 그 점에서 이 전시의 가치가 돋보인다.


2) 16세기부터 당대까지 총망라해서 과거와 현대가 서로 대화하게 했다. 현대 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조각과 공예를 함께 배치해서 과거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용되고 재해석되었는지 시각적, 철학적 질문을 제시한다.


3) 다층적 큐레이션: 16세기부터 당대까지 200점 전시했다. 도자기, 회화, 조각, 설치예술, 의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적 다양성과 몰입감을 준다. 지역적으로도 그동안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한국을 조명헀다. 한국여성작가이수경, 이불이 전면에 드러났다.


4) 기술적으로 완성되고 미학적으로 화려한 작품이 아닌 작품을 전시해서 생각의 전환을 유도했다. 예를 들어 이수경의 작품은 예를 들어 "금이 가고 뒤틀린 형태의 꽃병"을 통해 오히려 완벽하지 않음, 심지어 괴물스러움조차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미학적 전환점을 제공한다. 도자기의 섬세한 곡선이 제국의 폭력을 감췄고 아름다움은 권력의 공범이였기 때문에 몬스터 도자기로서 은폐된 마음의 레짐을 폭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전시의 단점인데 네 가지다. 마지막 두 개는 NYT에서 기자가 비판한 것이다.


1) 비아시아 관객, 즉 서구백인 중심의 시선 재확인 및 맥락 탈색의 위험성. 과거 도자기의 문화적 문맥(예: 중국 내 자존감, 생산자 입장)은 배제되고, 소비자(유럽 왕실)의 시선과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작가도 미국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담론때문에 TO가 주어진 것 같다.


2) 아시아 내부의 다양성 부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덩어리로 다룬다. 이는 서유럽과 북유럽과 동유럽을 함께 묶는 것만큼 불완전하다. 조선 백자, 중국 청화자기, 일본 이마리자기 등 국가별 맥락은 다소 박하게 다루어진다.


3)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과잉 해석의 위험

큐레이터 아이리스 문은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려는 의도는 있었지만, 너무 많은 아이디어와 해석을 전시장에 쏟아부은 탓에 오히려 관객에게 혼란을 주거나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장식 미술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 해석 과잉으로 인해 흐려졌다. (“The exhibition is far from perfect — the curator, Iris Moon, has brought a lot of ideas and objects into the space, and takes every opportunity to interpret them, which overcomplicates an otherwise refreshing take on the decorative arts.”)


4) 도자기의 핵심 기술적 맥락이 배제되었다.

전시는 기존 시누아즈리 서사를 피하려는 나머지, 정작 중요한 도자기 기술(예: 백자 생산법, 유약의 구성, 킬른(도자생산지) 구조 등)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기술적 성취 없이 도자기를 논하면, ‘무엇이 그렇게 매혹적이었나’, ‘왜 유럽이 열광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약해진다. (“The exhibition is also so intent on avoiding the standard line on Chinoiserie, which focuses on the race to understand the technology of porcelain, that it fails to explain that technology at all.”)



4. 전시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나는 대안이 없는 비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1) 최근 일본 전시에서 봤는데 도자기에 센서를 넣어서 돌리면 체험할 수 있게 해서 흥미로웠다.

그런 맥락에서 AR(증강현실) 도자기 체험관에서 관람객이 실제 전시품을 보는 대신, AR 안경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가상의 도자기를 360도 둘러보고, 작품 안에 숨겨진 역사적 내레이션을 듣게 하면 재밌을 것 같다. 과거 유럽인들의 도자기에 투영된 상상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할 수 있겠다.


2) 아시아 여성 시점에서 쓴 픽션, 스토리를 전시하는 것이다. MMCA VR전시에서 이런 비슷한 인사이트가 있었다.

특히 과거 도자기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예: 무명의 기생, 여신, 욕탕 종업원 등) 각각을 현대 아시아 여성 작가들이 픽션화하여 그 서사를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문학과 시각예술을 결합한 몰입형 서사가 가능하다.


3) 최근 소리 전시가 여럿있었다. 아주 옛날에 언제였는지 기억 안나지만 MMCA과천의 소리전도 있었고, 서촌 아트사이드에서도 소리전이 있었다. 도자기 내부 소리를 전시하면 어떨까? 각 도자기 속에 스피커를 설치한 다음 관객이 도자기에 귀를 대면 당시 여성이 속삭이는 말, 억압된 목소리, 혹은 외면당한 욕망을 들을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전근대 사회의 남성은 문자를 독점해 시각문화를 지배했고 여성은 구술을 바탕으로한 청각문화를 향유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시는 시각 중심이므로, 전근대 여성을 대변하려고 할 때는 청각우위로 미디엄 시프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청각적 몰입을 통해 소유당한 대상이 아닌 말하는 주체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onstrous Beauty: A Feminist Revision of Chinoiserie

https://www.metmuseum.org/ko/exhibitions/monstrous-beauty-a-feminist-revision-of-chinois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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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eriebhak.com/?p=current-exhibition


며칠 전 오픈한 한강진역 갤러리 Bhak의 함섭 회고전에 다녀왔다. 90년대 지어진 듯한 건물의 내외관은 시청역 근처에 있었던 구 로댕갤러리 같은 느낌이 든다. 때론 어떤 추억은 공간과 함께 남는다. 과거의 향기가 언뜻 느껴진다. 오직 Bhak의 레트로퓨쳐리스틱한 공간에서만 그 느낌이 난다.


사진은 옛날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Ham Sup, One's Hometown 2354, 2023, Hanji and mixed media, 46x53cm



고 함섭 작가의 작품. 이런 전시는 스크린으로 전해지지 않는 기운생동을 느끼기 위해 직접 방문해야한다. 발터 벤야민도 함섭의 작품을 보고 아우라를 이야기했을 것이고 루돌프 오토도 같은 작품을 누미노제의 예시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네 초가집 황토방의 숨쉬는 한지마냥 회화작품에서 바스락 들숨과 날숨이 느껴진다. 빛의 다섯 갈래, 숨의 다섯 내쉼

얇디얇은 숨결을 품은 한지 위로 겹겹이 쌓인 색과 토박이 기운이 바람처럼 일렁인다. 명상을 유도하는 색면추상이나 물성 탐구하는 평면화를 넘어선다. 손으로 두드려 누른 한지 임파스토의 두툼한 질감은 마치 진흙을 빚어 가마에 넣기 전 물레 위에서 느끼는 촉각의 무게처럼 생생하다. 보는 회화가 시각에서 촉각으로 건너가는 일종의 감각전환의 징검다리다.


언뜻 민족적 기억이 담긴 오방색이 보이는 듯하면서 자신만의 창의적 색 배합도 넣었다. 덧입힌 한지의 두툼한 마티에르감과 꼬아 비튼 줄로 감긴 조형요소가 포커스를 주고 호방한 기세를 부여한다.



이제는 독자를 거의 잃은 한자는 풍화되어 빛 바래, 작품의 메인 포커스가 아닌 캔버스 측면에 자리한다. 누군가 낭독했을 법한 한 시대의 숨소리는 이제 읽히는 글자가 아니라 마야문자 같은 옛 문명의 기호가 되었다.

한지의 울음과 먹물의 번짐은 한민족의 고난과 생존을 함께 담는다. 울어서 뭉개지 한지는 번지는 듯 뭉개지고 뭉개지는 듯 새겨진다. 화면 안에서 시간의 울림을 만든다.

고 함섭 작가는 문인화에서처럼 여백의 싯구나 문명의 이상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화처럼 자유분방함과 파격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숨을 먹인 한지 위에 질감으로서 비움을 되새기되 색의 덩어리를 방망이질하여 토속적으로 재해석했다.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평면위에 장단맞춰 채우는 색의 리듬과 가락으로 공간을 다시 직조한다. 질감은 말하는 듯하다. “나는 화면 속 사물이며 동시에 사물 아닌 기운이로소이다”

나아가 아울러 함섭의 그림은 ‘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아니라 그림이 나를. 그림을 보는 자가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림이 숨쉬며 나를 바라본다. 춘천 어느 마을 호수를 굽어보는 산등성에서 울창한 나무 사이로 낙하하는 빛처럼 그림의 시선은 따사롭다. 허투루 색을 얹지 않았고 덕지덕지 범벅하지도 않았다. 전통은 단순히 모방되거나 상업적으로 복제되거나 의미없이 재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함섭의 손을 거쳐 땅에서 솟은 뿌리처럼 자생했다. 그 뿌리 깊은 그림에는 한 많은 한국 땅의 아릿하고 그윽한 슬픔이 깃들어 있다.



과연 한국적이란 것이 있는가? 7-80년대 선대 예술가들은 고민했다. 이 전시는 그 화두를 삭혀온 누군가가 제출한 하나의 해답이다. 매 세대는 한국적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지 선대의 해답을 참조하고 트렌드와 호흡해 자신의 답을 제출해야하겠다.

전통이 스스로 숨결을 틔우고 현대 속에서 다시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다. 단순한 양식적 변형이 아니라 감각 구조의 이탈과 전환 그리고 전통 의례와 상징이 새로운 시각 언어로 재창조되었다.

봄 밤의 바람결처럼 장구의 가락처럼 굿판의 장단처럼 한지 위로 스민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쩐지 응시하고 있으면 오래 묵혀 깊은 맛이 은근히 우러나는 된장국을 먹은 것처럼 속이 뜨끈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숨그림의 의미일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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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oreatimes.co.kr/lifestyle/arts-theater/20250328/journey-through-many-faces-of-dansaekhwa-artist-ha-chong-hyuns-half-century-of-art


Journey through many faces of Ha Chong-hyun's half-century of art


By Park Han-sol

Published Mar 28, 2025 5:38 pm KST

박한솔기자의 기사다.


배압법에 관한 표현은 2개 있었다.



1. Though his fingers have long grown stiff and cracked, the 89-year-old still maintains his labor-intensive technique, “bae-ap-beop” — a process in which thick oil paint is applied to the back of a hemp canvas and forced through its coarse weave, creating a distinctive beaded texture on the front.


2. He repurposed coarse burlap grain sacks as canvas substitutes and crafted his own wooden tools to execute bae-ap-beop, pressing paint from the back of the fabric so it would seep through to the front.


1. 손가락은 오래전부터 뻣뻣하고 갈라졌지만, 89세의 그는 여전히 노동 집약적인 기법인 '배압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 기법은 두꺼운 유화 물감을 대마 캔버스 뒷면에 바르고 거친 직물 무늬(짜임새) 사이로 밀어 넣어 앞면에 독특한 구슬 무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영어의 호흡은 세 개다.

“bae-ap-beop” — a process

배압법은 기법인데

1) in which thick oil paint is applied to the back of a hemp canvas 두꺼운 유화 물감을 대마 캔버스 뒷면에 바르고

2) and forced through its coarse weave, 거친 직물 무늬 사이로 밀어넣는다.

3) creating a distinctive beaded texture on the front. 그리하여 독특한 구슬 무늬를 만든다.


만드는 법을 2개로 나누고, 그 효과를 설명한다.



2. 두 번째는 조금 더 간결한 표현이다.


He repurposed coarse burlap grain sacks as canvas substitutes and crafted his own wooden tools to execute bae-ap-beop, pressing paint from the back of the fabric so it would seep through to the front.

그는 거친 삼베 자루를 캔버스 대용으로 재활용하고, 직접 나무 도구를 만들어 배압법을 펼쳤습니다. 물감을 천 뒷면에서 눌러 앞면으로 스며들게 하는 기법입니다.



pressing paint from the back of the fabric so it would seep through to the front.

물감을 천 뒷면에서 누른다. 그리하여 그것이(물감이) 앞면으로 스며들게 하도록

물감을 천 뒷면에서 눌러 앞면으로 스며들게 하는 기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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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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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도 신간소개되었던걸로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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