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서는 펭귄에서 2018년에 나왔고 이종인 한국브리태니커 편집국장의 번역으로 로크미디어 산하 임프린트 비잉출판사에서 2020년에 번역되었는데 5년이 지나 까치출판사에서 만료된 판권을 사갔는지 모양인지 45회 백상출판문화상 번역부문 수상자 김한영의 번역으로 몇 주 전(2025) 새로 나왔다. 로크미디어는 IP전문 기업인데 초기 투자 이후 퍼포먼스가 줄어들은 모양새고, 도서 간행은 많지 않아서 까치에서 가져 온 듯하다. 까치 책은 늘 특징이 있다. 다른 도서보다 글자 크기가 두세 단위 크다. 특히 도서 정보란이 아주 꽉찬 느낌이다.
나는 예전에 아마존 리뷰에서 스티븐 그린블랫 교수가 하버드로 영전하기 전 UC 버클리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1969-1997) 그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이 오래 전이지만 똑똑히 기억나는데 성적은 B+ 받았지만 강의는 좋았다고 평한 것을 읽은 적 있다. 그러니까 대중서를 쓸 거라면 학생들에게 A는 줘야한다. 평생 기억하니
그린블랫의 셰익스피어 연구는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의 전문서는 노튼 앤솔로지나 다른 책에서 확인하면 된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가 그린 정치가에 초점을 맞추어 쓴 가벼운 대중교양서 혹은 해제서다. 원서도 작은 판형, 조금 큰 글자에 192쪽으로 양이 많지 않아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중요한 점은 사실 현실정치와의 시사점이다. 특정 메시지를 표방하는 책을 발간해서 은유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런 주제를 드러내는 책을 대상으로 북토크를 할 때 행사 자체가 일종의 정치성명이 된다. 겉으로는 셰익스피어를 말하지만 지시어를 바꿔 이해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셰익스피어는 수단이고 구실일 뿐. 정말 셰익스피어에 관심있는 사람만 이 책을 소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책이 어떻게 수용되는지 그 리셉션이 더 의미있다는 점에서 원서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감사의 말(acknowledgements) 첫 문단에서 책을 쓰게 된 계기를 "expressed my growing apprehensions about the possible outcome of an upcoming election"라고 갈음하는 부분이다. (원서는 192쪽 비잉 역서는 248쪽) 힐러리vs트럼프 첫 선거를 의미한다.
이중 구조의 정치적 함의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글도 당대 정치에 은유적 비판을 가했고, 그런 내용을 다루는 현대의 이 책도 현대 정치에 할 말이 있다.
2020년에 비잉에서 나온 책에서 이종인은 역자 후기를 길게 적으며(251-264쪽) 셰익스피어가 말한 폭군과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자세히 풀어 해석했다. 그리고 글을 마치며 "각종 모임의 행사를 제멋대로 결정하는 동호회장도 독재자. 대학에서 자기 의견만 바르다고 내세우는 교수도 독재자이고 종교 지도자도 독재자이며 정치가 또한 독재자"(중간 일부 구절 생략 p264)라며 의미를 확장한다.
2025년에 까치에서 나오 책에서 김한영은 역자 후기를 4페이지로 간략히 적으며 셰익스피어가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회상하고(p251-254) 미국 정치나 사회의 직업군에까지 외연을 넓히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마디로 "셰익스피어의 비스듬한 시선을 여장하며 21세기에 와닿는다는 것을, 심지어 작금의 대한민국까지도 그 서상에 놓여있음을..."이라고 마무리했다. 재선 후 원서의 메세지는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원서는 재간행되지 않았는데 판권이 한 출판사에서 다른 출판사로 넘어오며 역자를 바꾸어 출간했다. 테세우스의 배일까? 디자인와 표현만 다듬은 똑같은 책일까? 같은 기출문제와 해설인데 표지 디자인만 바꾸어 새롭게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판매하는 참고서와 같을까? 어쩌면 그저 까치출판사의 그린블랫 시리즈를 위해 필요한 한 퍼즐일지도. 1417년 근대의 탄생, 아담과 이브에 이어 세 번째다. 민음사에서 will in the world 세계를 향한 의지(William과 will의지를 중의적으로 표현)를 가져갔다. 세계 속 셰익스피어의 의미 즉, 작가인생과 그 수용사에 대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