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은중과 상연>을 보는 사람이 영화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다른 미학이다. 여기에 <3670>같은 소수자영화나 PTA의 <원배틀애프터어나더>와 <사마귀>까지 보는 사람이 있다면 일로서 뭐든지 봐야하는 문화전문기자나 6시그마밖의 인물이다. 나는 후자의 길을 택한다. 복수로 세분화된 서로 합일할 수 없는 취향의 공동체 사이에서 교차적인 인물이 되는 일이 AI시대의 생존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도 한겨레도 본다. 버핏, 바루크와 레이달리오 같은 투자서도 읽고 칼 폴라니나 자본론도 읽는다. 무협, 회빙환류의 남성향 웹툰도 보고 공작저, 하지점 같은 여성향 웹툰도 본다. 동서양 고전도 현대문학도 읽으려 한다.
이데올로기는 이념이라는 말로 오늘날에는 취향과 얼추 비슷한 뉘앙스다.
100년 전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싸움은 전쟁을 할 정도로 치열했는데 하나의 진영이 다른 진영을 압살하기보다는 하나의 이념이 지속성을 잃어서 사라졌다.
신념이라고 이해해봐도 좋다. 어린아이도 나름의 생각이 있는데 다 장성한 사람의 생각은 얼마나 공고할까. 나이든 어르신이 내 나이만큼 다져온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타인의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고 집단의 신념을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뇌과학적으로도 그렇다. 전두엽이 자라나는 20대 중반까지 뇌가 말랑말랑한 다음 세대의 교육은 유의미하나 성장이 끝난 사람의 뇌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확증편향을 강화할 수는 있다.
젠더갈등도 심하고 세대갈등도 심하며 정치갈등도 심하다. 이는 맞고 틀림의 싸움이 아니라 나만 맞다고 생각하는 자들끼리의 소모적인 다툼이다. 이것이 진리이다와 이것이 더 진리이다의 뫼비우스의 띠다.
그리고 이러한 다툼의 해결은 한 이념의 완전한 정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믿는 생각의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교류하고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다.
세대갈등으로 추석 때 안 만나고 싶으면 안 만나면 된다. 젠더갈등과 그 부속 가족문제가 괴로운데 아이는 갖고 싶다면 시험관아기, 공동육아하는 공동체 같은 해결법도 있다. 너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은 괴로운 법이다. 퇴근 만원 지하철의 10분도 버티기 힘든데 평생을 사적공간에서 부딪히며 배은망덕과 후안무치에 대해, 유리천장과 복무경험에 대해 갈등의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개인의 평화와 공동체의 온존에 좋지 않다.
온갖 갈등이 현대사회에 특별한 것은 아니고 인류가 집단을 이루어 사는 내내 그랬다. 다만 현대사회는 정보의 확산으로 인해 표면으로 드러나고 우리와 관계없는 곳의 갈등까지 노출되는 것이 문제다. 대개 전근대사회는 떠남과 이동으로 이를 해결했다. 안 보는 것이다. 얼마나 안 보고 싶었으면 아프리카에서 아시아까지, 몽골에서 알래스카까지 간 걸까
그러나 이렇게 서로를 만나지 않게 되면 개개인의 미시적 안정은 누릴 수 있으나 점점 보이지 않는 벽이 너무 높아진다. 문학만 읽는 2-40대 여성과 게임만 하는 2-40대 남성의 간극처럼 말이다. 교회 설교와 트로트만 듣는 5-70대 여성과 국뽕 경제정치 유투브만 듣는 5-70대 남성의 간극처럼 말이다. 혹은 이 모든 차이들의 차이들처럼 말이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성 하나는 소규모 적은 막을 수 있어도 중소 영주들의 종횡무진 연합이 필수적인 대규모 공습은 막을 수 없다. 사회경제정치문화 제분야에서 복잡하게 연계된 우리 삶은 전근대사회처럼 노마드적 이동으로 말끔하게 해결될 수 없기에 교류는 필수적이다. 너 살아있니? 일로 와봐 이건 우리 같이 해결봐야해 안 그럼 다 죽어
AI는 기존의 지식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으나 없는 것은 만들어낼 수 없다. 지식정보를 습득하고 피드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전문 정보 큐레이터, AI 피더가 이런 필수적 교류의 촉매제다.
이때 한 가지 정보를 극단으로 강화하는 알고리즘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방향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교차적 인물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조선과 한겨레를, 동서양을, 남녀노소를 이 모든 취향의 공동체를 넘나들려고 한다. 그러한 자는 다가올 중세시대의 궁정을 초청받아 출입하는 광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복수의 취향 공동체의 독립적 평화를 위해 교차적인 인물이 해결해줘야하는 미래적 문제가 있다.
내가 예측하는 미래다.
1. 플랫폼 소유자는 영주, 셀레브리티는 체제를 강화하는 성직자, 엔지니어는 체제 유지보수하는 피지컬한 기사 그리고 97%는 데이터 노동하는 농노로 분화된 현대테크놀로지기반 중세가 온다. 테크펑크 중세다.
2. 코로나 이후 시작되어 관세전쟁으로 강화된 글로벌 공급망 붕괴, 북중러-한미일의 신냉전구도, 동력을 잃고 몰락하는 나이 든 유럽, 인구 폭등하는 글로벌 사우스와 같은 거시적 시대 변화. 거대 선진국 수출위주 해상무역에서 중소규모의 국가(동유럽, 중앙아 등)과 다자무역하는 자급자족의 시대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과 비슷하게 적은 수의 거대 선진국에 많이 파는 것에서 다양한 국가에게 조금씩 납품해 적은 이익을 여러 곳에서 얻는 구조로 변화)
3. 20년의 일. 스마트 글래스로 인한 증강현실. 자율주행 자동차에 바로 보이는 즉각적 정보 디스플레이. 바로 보여지지 않는 정보는 섭취되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지식의 유통과 소비
4. 40년의 일. 양극단의 라이프스타일. 저가형은 염가생산이 가능한 곤충프로틴 콩고기로 시즈닝 뿌린 맛. 양념과 소스의 다변화. 고급형은 청정 재배. 처음에는 거부. 나중에는 받아들임
5. 60년의 일. 폭염 태풍 등 연안도시와 섬의 기후 위기 직격 문제. 한국은 송도, 인천. 유럽은 베네치아, 도쿄, 상하이 등.
6. 100년의 일. 뇌척추 인터페이스와 뇌과학, 뇌파의 발달로 영성, 트랜스, 귀신, 심령현상 등 미확인 과학현상에 대한 심도 깊은 과학적 이해
7. 200년의 일. 외계인 조우, 화성진출, 우주식민지, 테라포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