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랩 전시 2025

고요손, 김유자, 노송희, 장다은, 장영해

2025.1.22.—3.8.




1. 종로5가 근처 두산갤러리. 지하철 접근성이 좋다. 역에서 3분 거리다.



2. 전시장은 1층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에계 이것밖에 없어?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래 곱씹을 인사이트가 있는 현대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3. 고요손 작가는 계단에 앉거나 무릎을 만져보거나 조각 안에 폭신 몸을 묻게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와서 만져보면 무릎 조각에 열선이 들어가 따뜻하다 못해 뜨겁고, 인큐베이터 같은 작품에서는 공간 속에 몸을 파 묻고 자장가 같은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지금 용인 기흥역 부근 백남준아트센터에서도 고요손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거기서는 이동형 벤치의자 같은데 앉아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4. 두산 갤러리에서 작년 9월에는 유신애 작가의 파생적 메시아를 했고 작년 7월에는 큐레이터 워크숍을 했는데 다 흥미로웠다. 두산갤러리 전시의 선명한 기획이 있다. 형식과 내용, 실재와 허구, 작품과 관람객, 외부와 내부에 대한 경계를 넘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메타적 인지를 자각하게끔 한다. 대체로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자유롭게 관람하게 하여 사고를 확장할 수 있게 한다.


5.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노송희의 영상작업이다. Best Television is Noh Television이라는 제목의 15분짜리 단채널 영상이다. 두산갤러리의 전시장을 3D 모델링하여, 들어가는 문이 나가는 문이 되는 무한 순환 구조의 분더카머(Wunderkammer)를 구현했다. 2022년 시립미술관 때와 비슷하게 전시의 아카이빙에 대해 질문하는 영상작업으로 보이지만, 이번 전시를 위해 4분할 3D 모델링 공간과 카메라워크를 넣었다. 2025년작이다. 



무한 순환의 공간을 네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테마를 배치하고, 독일 고고학 자료에서 출발해 서울시립미술관 초대 관장의 이야기를 거쳐, 아카이빙과 전시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텍스트 기반이지만 감각적인 현대 음악이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특정 장면에서는 영화 <버드맨>의 드럼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리듬감이 돋보인다. 




스크린 속, 스크린 속, 또 다른 스크린.


스크린이 반복되는 구조는 무한 후퇴(infinite regression)이라는 인식론 정당화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이 코끼리 위에 있고, 그 코끼리는 거북이 위에 있고 그 거북이는 또 다른 거북이 위에 있는 식으로 거울의 방에서처럼 계속 이어지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어떤 믿음이 정당화되려며 또 다른 믿음에 기초해야하고, 다시 이 믿음으 또 하나의 정당화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한히 후퇴하는 것이다.


아카이빙도 하다보며 끊임없이 자료가 나오고, 그 아카이빙의 소스를 찾고, 다시 그 소스의 원안을 찾게 된다. 자료의 근거를 추적하면 추적할수록 무한히 후퇴하게 되는 존재론적 질문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 같다.


자료의 소스의, 소스의 소스의, 소스의 소스의 소스...



작품 속에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현시원의 박사학위 논문 검은색 책으로 3D 모델링 되어서 서가에 꼽혀져 있다. 눈여겨보고 있다가 집에 와서 찾아봤다. 논문의 요지는 전시 도면이 단순한 전시 기획 도구가 아니라, 전시 만들기와 기록을 포함하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아울러 전시 동선과 도면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전시 동선의 형식적 특성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전시 도면이 단순한 과거의 기록물이 아니라 새로운 전시 창작을 추동하는 확장적 매개체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현시원의 논문과 노송희의 영상작품은 형식과 내용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실현되지 않은 도면 역시 하나의 도면이라는 점(p.105)과, 재전시는 관람객의 경험을 포함하며 과거 전시의 완벽한 재현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지적(p.113)이 노송희 작가의 영상 작품 속 멘트와 겹쳐 들린다. 더불어, 노송희 작가는 2022년 SeMa 피칭 작업의 프레임을 일부 사용하면서도 2025년 두산갤러리에서 이를 포함해 더 나아가 재구성했는데, 이는 작가가 기반으로 삼은 논문의 주장을 영상 속 멘트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내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동시에, 그러한 작업을 실현했다는 외적인 측면에서도 논문이 말하는 재전시의 기획과 맞닿아 있다. 논문의 의도를 영상이 구현하고, 영상이 논문의 구절을 멘트로도, 논문의 주장을 작품 생산 자체로도 구현했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작품의 형식과 내용의 경계가 흐려지며, 작품 자체이자 동시에 그 작품의 현현(顯現)처럼 느껴진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그리는 그림을 보면서 마치 그 자체가 예술을 바라보는 관객으로서의 역할을 상기시키는 베르히트의 소격효과를 느낀다는 뜻이다. 이러한 그림을 보면 일상적인 상황을 예술적 관점으로 새롭게 인식하게끔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림이 단순히 그림 그리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우리가 예술을 보고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시 기획의 내외부를 질문하는 작품을 보면 작품과 전시 전체의 구조, 형식과 내용, 작품과 관객의 관계에 대해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또 흥미로운 점은 논문의 마지막 부분(187쪽)에서 현시원이 노송희에게 논문 전체를 공유하며, 이를 바탕으로 영상 작업을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탄생한 Dia:grams는 연구자가 다룬 9개의 전시를 시청각 랩의 3D 공간 안에서 영상의 시공간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논문에 따르면 노송희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사운드와 카메라 움직임을 활용하여 전시 자체를 새로운 시각적 경험으로 변환했다. 이 작업은 전시를 아카이빙하는 방식이 페이퍼, 전자자료, 실제 작품이라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노송희의 작업은 과거 전시를 답습하고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의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새로운 시각적 문법을 부여한다. 두산갤러리라는 물질적 실체를 영상 속 3D 전시공간으로 전유하면서, 공간과 화면, 전시와 작품 간의 관계를 새롭게 재조명한다. 디지털 영상 매체 안에 무한한 공간을 만들고, 영상의 끝과 시작이 불분명하게 하고(참고문헌을 통해 지각할 수 있으나 2번 나와서 의도적으로 경계를 흐리게 했다) 무한히 아래로 추락시키는 게 아니라 순환하게 만든다. 음악 덕분에 더더욱 시작과 끝점이 잘 자각이 안되고, 순환의 고리 속에 들어가게 된다. 


Best Television is Noh Television! 앞으로 활동이 기대되는 작가다. 유럽쪽에서 더 좋아할 듯하다. 덕분에 종로에서 효창공원으로 이전한 시청각 전시공간도 방문해보게된 계기가 됐다.


7. 두산 갤러리가 글을 잘 쓴다. 노송희 작가 소개를 잘 읽어보자


https://www.doosanartcenter.com/ko/exhibit/1645


노송희는 유무형의 아카이브와 전시 공간을 재료로 삼아 이를 메타화한 영상을 제작한다. 작가는 자료의 본질을 면밀히 탐구하는 동시에 기존 서사에 고정된 장면을 해체하여 기억에 새로운 속도와 구조를 부여한다. 이번 전시의 작업 〈Best Television is Noh Television〉(2025)에서 그는 디지털 영상 매체가 제공하는 어디서든 감상이 가능한 접근성을 전복하고자 전시 공간과 화면 속 가상 공간 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한다. 영상에서 작가는 두산갤러리 공간을 본인의 지난 작업들을 망라하는 새로운 가상 전시공간으로 전유한다. 영상은 전시장 입구를 시작으로 또 다른 가상의 전시 공간으로 이어지며, 곳곳에 배치된 〈진리는 가면의 진리다〉(2021), 〈Time Shifting Box〉(2022) 등 작가의 지난 영상과 2024년 시청각에서 열린 개인전 《Dizzy》의 기록물들을 경유한다. 실제와 가상의 두 공간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경험은 관객에게 이질적이면서도 하나의 통합된 세계로 다가오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노송희는 이를 통해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또 다른 방식의 아카이브 읽기를 제안한다.


8. 현재의 과거, 과거의 과거의, 과거의 과거의 과거의 과거...


9.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문득 떠오르는 것은, 우리나라 성씨 중 한글 그대로 영어화했을 때 특이하거나 곤란하거나 흥미로운 성씨들이 있다. 노씨는 Mr. No(안돼), 옥씨는 Mr. Ok(다 돼), 문씨는 Mr. Moon(달님), 박씨는 공원에 사는 자(Mr. Park)처럼 보일 수 있다. 이외에도 서양에서는 원래 Lee라는 계열의 성씨가 있었고,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도 백인이지만 Lee씨다. Bong씨는 여과장치의 이름과 겹친다.


옛날에 노무현 대통령 시절, Mr. President No라고 하면 모든 사안에 반대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노씨를 Roh로 표기하기도 했다. 현재도 노씨는 사람마다 Roh와 Noh로 구별하여 쓰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이름을 더욱 특별하게 보여주기 위해 Kim을 Keem으로 표기하는 작가도 있으며, 과거 이승만 대통령은 Lee가 아니라 Rhee로 적기도 했다.


이외에도 영어권에서 흥미롭거나 곤란한 성씨들이 있다. Ha(하)씨는 영어에서 웃음소리를 의미하므로 "Mr. Ha"는 "미스터 하하하"처럼 들릴 수 있다. Ham(함)은 "Ham"과 같아 돼지고기 햄을 연상시킬 수 있다. Seok(석)씨는 발음이 영어의 "suck"과 비슷해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다. Chu(추)씨는 "Mr. Chu"로 표기할 경우 영어의 "chew(씹다)"와 비슷하게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 Apink의 노래 《Mr. Chu》로 인해 더욱 주목받은 사례다. Bang(방)씨는 "Bang"으로 표기될 경우 총소리나 폭발음을 의미하거나 특정 속어적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정씨의 경우도 문화권에 따라 곤란한 사례가 많다. 영어권에서는 J가 ‘ㅎ’처럼 발음되기도 하고, ‘ㅇ’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 따라서 Jung으로 쓰면 ‘훙’으로 읽히거나,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처럼 발음될 수도 있다. 반면 Jeong으로 적으면 영어권에서 ‘헝’이나 ‘엉’처럼 들릴 수도 있어 정이라고 불러달라는 의도와는 다르게 읽히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필사는 도끼다 -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지성의 문장들
김지수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도날드 슈비 투움바 버거가 나왔다. 


투움바는 두꺼운 페투치네 파스타면에 매운 고추와 감칠맛 나는 치킨스톡을 활용한 크림소스 스파게티다.


미국의 파스타 요리이지만 메뉴이름은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 동남쪽 달링 다운즈 지역의 투움바 도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투움바의 뜻은 알려진 바 없다. 그러니까 간장돼지불백두루치기나 해초미역비빔밥처럼 이름만 보고 직관적으로 재료와 요리법을 알 수 있는 메뉴와는 다르게 투움바만 가지고 음식명을 추론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스터리한 음식이지만 대충 매운크림 파스타구나 하고 다들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호주풍 인테리어를 컨셉으로 미국 브랜드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가 우리나라에 런칭하며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요리가 알려졌다.


일방적으로 맵지 않고 일방적으로 느끼하지도 않아, 맵고 고소하기 때문에 끝까지 먹을 수 있다.

묵직한 크림소스에 알싸한 매운맛이 스며들어 서양 요리 같으면서도 묘하게 한국적 감칠맛이 어우러졌다.


그 투움바 소스를 활용한 맥도날드 신상 버거는 기존 맥크리스피와 슈비버거에 단순히 투움바 소스를 덧입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옷을 입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듯, 기존의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소스만 바꾼 전략이다. 이는 한국 외식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즌 한정 변주곡 전략이다. 원판 그대로에 옵션만 바꾸어 새로운 메뉴인 것마냥 홍보하는 전략이다. 


겨울이면 온갖 브랜드가 딸기무엇무엇을 내놓고, 두바이발 카다이프가 유행하면 카다이프 무엇무엇이 줄줄이 등장하는 식이다. 마치 탕후루, 대왕카스테라 열풍처럼 남들이 하면 나도 안 할 수 없는, 안 하면 도태되는 것 같은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의 심리를 노린 마케팅 전술이다. 이 전술은 매출 효과는 누릴 수 있다. 부동산 기업으로서 맥도날드는 좋은 입지에 매장이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신메뉴 나왔다는 광고만 보여주면 잠깐 들러서 메뉴를 구입해줄 것이다. 특별하달 것 없는 시판 소스로 바꾸는 저렴한 방식으로 영업 이익을 만들 수 있다.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여 연구개발하고 너무 실험적이다고 욕먹을 바에는 차라리 이렇게 하는게 안전하고 영리한 생각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뭐야 소스만 바꿨고 똑같은데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 라고 생각하게 되고,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맥도날드 이미지가 차지하는 포지션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학습이 된다. 맥날 별거 없네


사실 맥도날드는 이미 완성된 버거다. 본연의 맛과 브랜드 정체성이 확고하다. 굳이 혁신하지 않아도 맥도날드에는 독보적인 강점이 있다. 이를테면, 전용 강철 탱크에서 바로 보급되는 경쟁 매장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탄산감이 살아 있는 코카콜라, 그리고 양 많고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감자튀김. 이미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도 요즘은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맘스터치는 공격적인 신메뉴 마케팅으로 에드워드 리 버거를 내놓았고, 롯데리아는 맛폴리버거로 새로운 입지를 다졌다. 버거킹은 한 발 더 나아가 고급 수제버거화를 추구하며 두툼버거, 불끈버거, 화이트 페타 치즈버거 같은 개성 강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현실이 녹록지 않다. 파이브 가이즈, 쉐이크쉑 같은 버거 브랜드가 고급화 전략으로 한국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고객층을 개척했다. 심지어 한때 맥날의 2인자로, 약세로 평가받던 롯데리아, 맘스터치까지 공세를 펼치는 상황. 이런 판도 속에서 맥도날드는 구색 맞추기 식으로 신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브랜드의 길을 찾는 답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 격랑 속에서 맥도날드는 진퇴양난이다.


본연에 충실할 것인가, 고급화할 것인가? 그러나 두 길 모두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미 가격은 경쟁 브랜드와 맞먹고, 쪼그라드는 경제에 소비자들의 기대감은 높아져만 간다. 그런데 품질의 업그레이드는 뚜렷하지 않다. 


새로운 버거를 내놓았다지만, 새롭지 않다. 이미 소비자는 한 번 실망했다. 

이 전략을 또 다시 채택하면 이미지는 하락세로 확실히 넘어갈 것이다.

고급화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감수하고 트렌드의 바람을 타고 영업 이익을 올릴 것인가?

맥날의 진정한 변화는 어디서올까? 


이것은 맥도날드의 이야기 뿐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새로운 스탠다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존 제품을 가져다가 껍데기만 포장해서 파는 식으로는 곤란한 시대가 되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초할 것인가 아니면 선도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와엘 샤키: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

February 28 - April 27, 2025


1. 삼청동에 있는 바라캇 컨템포러리다. 바라캇에서는 모처럼 보기 힘든 귀한 로마, 수메르, 고대 중국의 조각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바라캇 컨템포로러리는 현대 작가 작품들을 하고 있다. 지하층의 층고가 넓기 때문에 큰 영상작품을 보기 좋다. 




2. 대구미술관에서 열렸던 와엘샤키의 오리지널 맛이다. 대구에서 보았던 것은 한국 판소리 재해석한 작품이다. 여기에선 그의 모국어인 아랍어로 된 작품을 볼 수 있다.


3. 그중 꾸란의 동굴 챕터를 다 외워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슈퍼에서 걸어다니면서 카메라보고 암송하는 작품이 흥미롭다. 2005년작. 아랍어를 모르는 현지 네덜란드인들에게는 아랍국가에서 온 TV리포터로 느껴질 것이다. 작가 자신보다, 작가를 무시하거나, 쳐다보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면 더 흥미롭다. 유투브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사회실험같은 작품이다.




4. 뒤에 아이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우리로 치면 미국 어느 마트에서 카메라맨과 함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하며 논어를 외우면서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5. 아래 한글 자막에 보이느 꾸란 번역어투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Korean Revised Version, KRV)의 것을 따왔다.

초판은 38년이고 52, 61, 98, 05년에 개정이 되면서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개신교의 성경 번역판이다. 가톨릭은 다른 번역본을 사용한다.


오니라.. 하느뇨.. 없노라... 이런 말투에서 매우 개신교적 느낌이 든다. 알라도 하나님이라고 썼기 때문에 사실상 개신교 성경처럼 느껴질 정도다. 꾸란의 한글번역본이 개신교 성경을 경유하면서 느껴지는 기묘하고 흥미로운 효과다. 중국의 백화, 일본의 한자, 빅토리아 문체의 현대 번역 등. 기존 레퍼런스를 참조하는, 2차 창작으로서 번역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6. 뒤에서 눈총 주는 네덜란드 할머니가 보인다. 외국인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동적으로 김수자의 바늘여인 연작(1999-2001)이 생각난다. 과천에서 처음 봤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들과 아이들이 이 동양여자는 길막하고 도대체 뭐하는거야! 하는 식으로 쳐다보던 이미지가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올해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페미니즘 전시코너에서 이 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다. 다시 봐도 내가 몇 십년 전 기억하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김수자, 바늘여인, 2001

4채널 비디오, 크기 가변



2001년 작품이니 나이지리아의 이 사람들도 24년이 지나 아마 이제 중년이 되었겠지. 세월의 무상함이여


7. 전시종료된 대구미술관의 와엘 샤키전은 한국 현지화된 순한맛이다. 바라캇 컨템포러리의 와엘샤키전이 오리지널 진한맛이다.



아래 인터뷰를 보면 정말 대구를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대구의 풍경을 많이 봤다면 작품에서 드러나야할텐데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고, 대구풍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의 풍경을 많이 봤다면, 구체적으로 철근, 교량, 마천루 등의 구체적인 표현이 나와야하지, 미국의 풍경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했다는 두리뭉술한 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8. 외국인이 한국을 제대로 이해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알고 있느냐, 한국사 검정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느냐.. 그런 부분을 외국인 작가에게 요구할 수 없다. 


작가가 한국의 무엇에 매력을 느꼈고, 무엇을 한국의 전형이라고 생각했으며, 작품대상으로 한국의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서부터 차용했는지,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에서 한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와엘샤키는 판소리를 차용했고, 작품 영상에서 국악인이 판소리를 부르며 걸어다닌다.


이렇게 보고나니까 2005년 텔레마치와의 연관성이 느껴질지? 두 영상 모두 누군가가 걸어가면서 전통적 발성과 내용을 암송해서 부르고 있다.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과의 수리 연습문제는 정답이 있고, 문과의 미술 연습문제는 해답이 있다. 이과는 논리를 배우고, 문과는 해석을 배운다. 이과는 맞냐 틀리느냐가 중요하고 문과는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김수자와 와엘샤키 작품간에 연결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부분이고 아니라면 어떤 부분인지 생각해보고 글을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학습방식이 선진국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배우는 미적분석이자 창의 트레이닝이다.



와엘샤키는 한국의 전래동화와 판소리를 꾸란과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했을지도






9. 해외의 유명 작가, 감독, 연예인, 작가, 혹은 미술가가 한국을 주제로 작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본능적으로 그 ‘한국적 요소’에만 주목한다. 마치 우리 문화가 인정받았다는 듯, ‘한국을 다뤄줬다’, ‘우리 것이 최고다’라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정작 그 작가에게 한국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한류가 많이 논해지 케이스 중의 하나로 다뤄진 것이다.


해외 유명인이 작품의 글로벌 홍보를 위해 한국에 와서 떡볶이가 맛있다고 말하고, K-팝의 인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캄사합니다”라고 어설픈 한국어로 인사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만족한다. 귀엽다고 댓글을 단다. 일정상 한국일본을 같이 방문하는게 편하니 한국 방문 전후로 일본에 가게 될텐데, 동일한 사람이 일본에서는 떡볶이 대신 스시의 맛을 칭찬하고, 케이팝 대신 우키요에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아리가또우”라고 말한다. 미디어는 자국 내 인터뷰에만 집중하는 탓에,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쉽게 간과된다. 언어의 문제 때문이라도 외국에서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는 언어권을 넘어서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생각해볼 점이 있다. 종종 스스로를 착각 속에 가두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 헤게모니를 쥔 행위자들이 조공자 혹은 중견자를 달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학계에서도 자주 반복되는 유사한 구조를 생각해보자. 경제경영 분야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유학생들이 비교적 쉽게 학위를 취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론을 전공한 교수 아래에서 자국을 사례 연구로 삼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효율적인 선택이다. 유학생은 힘들고 가난한 학생 신분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성공적으로 받고 귀국해 좋은 정규직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며, 지도 교수는 한국어 자료를 직접 조사할 필요 없이 새로운 사례 연구를 확보한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윈윈하는 구조다. 문제는 박사 학위를 마친 유학생들이 그 이론을 그대로 답습할 경우 아무런 발전이 없다는 데 있다. 지도 교수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유럽, 동남아, 중동 등 다양한 출신의 유학생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며, 자신의 이론적 기반을 확장해간다. 케이스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론 전체를 내가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스탠다드를 내가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사실상 졸업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오류는 미술에서도 반복된다. 가령, 해외 작가가 한국의 전통 요소를 활용하면 우리는 그 부분에만 집중한다.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해외 작가가 판소리를 활용했다면, 우리는 그것 자체가 한국의 가치가 인정받았다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판소리의 우수성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와엘 샤키의 관점에서 대구의 판소리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불과하기 때문에 안좋다는 말이 아니라, 사례의 복수성을 이해하고, 그 메타적 인지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구미술관에서 판소리를 암송하는 국악인이 걸어다니는 영상작품을 만들었는데, 그는 이전에 암스테르담 마트에서 꾸란 암송하며 걸어다니는 영상작품을 만들었고, 유럽에서는 롤랑의 노래를 소재로 작업했다. 판소리와 꾸란과 롤랑의 노래는 서로 비슷한 점이 있을까? 암송에 기반한 구두전승과 전통? 판소리를 우리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전세계 문화권의 하나의 구조화된 학습방식 중의 하나로 다루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판소리의 애국심을 넘어 판소리가 해외에 어떻게 이해되고 알려질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보다 정교한 분석을 위해서는 네 개의 층위를 고려해야 한다.


1)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와엘 샤키가 판소리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2)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 세계를 조망하기

3) 작가의 다른 작품을 살펴보며 비교 분석하기

4) 그가 특정 문화권의 특정 요소를 선택한 이유와 그의 사고방식을 탐구한 후, 롤랑의 노래·꾸란·판소리를 동일한 선상에서 분석하기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단순히 ‘해외 유명 작가가 한국적 요소를 활용했다’는 식의 철지난 애국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도취적인 국뽕의 미몽으로부터 각성할 수 있다. 그 결과 관객 중에서도 와엘 샤키 같은 작가가 탄생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한국의 국제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것이 결국 우리 것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우리 것이 사랑받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다. 케이스 중의 하나로 다뤄졌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 선택과 맥락과 선택과정을 읽어내는 비평적 시선이다.








10.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해외작가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영어로 말할 때보다 모국어로 말할 때 훨씬 더 정보량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좋다. 와엘샤키도 아랍어로 인터뷰할 때 훨씬 잘 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NxOflrZtfs



3:22에 아자닙을 아가닙으로 j를 g으로 말하는데서 이집트 아랍어가 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뭉우리돌의 들녘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러시아, 네덜란드 편 뭉우리돌 2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