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엘 샤키: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

February 28 - April 27, 2025


1. 삼청동에 있는 바라캇 컨템포러리다. 바라캇에서는 모처럼 보기 힘든 귀한 로마, 수메르, 고대 중국의 조각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바라캇 컨템포로러리는 현대 작가 작품들을 하고 있다. 지하층의 층고가 넓기 때문에 큰 영상작품을 보기 좋다. 




2. 대구미술관에서 열렸던 와엘샤키의 오리지널 맛이다. 대구에서 보았던 것은 한국 판소리 재해석한 작품이다. 여기에선 그의 모국어인 아랍어로 된 작품을 볼 수 있다.


3. 그중 꾸란의 동굴 챕터를 다 외워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슈퍼에서 걸어다니면서 카메라보고 암송하는 작품이 흥미롭다. 2005년작. 아랍어를 모르는 현지 네덜란드인들에게는 아랍국가에서 온 TV리포터로 느껴질 것이다. 작가 자신보다, 작가를 무시하거나, 쳐다보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면 더 흥미롭다. 유투브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사회실험같은 작품이다.




4. 뒤에 아이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우리로 치면 미국 어느 마트에서 카메라맨과 함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하며 논어를 외우면서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5. 아래 한글 자막에 보이느 꾸란 번역어투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Korean Revised Version, KRV)의 것을 따왔다.

초판은 38년이고 52, 61, 98, 05년에 개정이 되면서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개신교의 성경 번역판이다. 가톨릭은 다른 번역본을 사용한다.


오니라.. 하느뇨.. 없노라... 이런 말투에서 매우 개신교적 느낌이 든다. 알라도 하나님이라고 썼기 때문에 사실상 개신교 성경처럼 느껴질 정도다. 꾸란의 한글번역본이 개신교 성경을 경유하면서 느껴지는 기묘하고 흥미로운 효과다. 중국의 백화, 일본의 한자, 빅토리아 문체의 현대 번역 등. 기존 레퍼런스를 참조하는, 2차 창작으로서 번역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6. 뒤에서 눈총 주는 네덜란드 할머니가 보인다. 외국인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동적으로 김수자의 바늘여인 연작(1999-2001)이 생각난다. 과천에서 처음 봤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들과 아이들이 이 동양여자는 길막하고 도대체 뭐하는거야! 하는 식으로 쳐다보던 이미지가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올해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페미니즘 전시코너에서 이 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다. 다시 봐도 내가 몇 십년 전 기억하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김수자, 바늘여인, 2001

4채널 비디오, 크기 가변



2001년 작품이니 나이지리아의 이 사람들도 24년이 지나 아마 이제 중년이 되었겠지. 세월의 무상함이여


7. 전시종료된 대구미술관의 와엘 샤키전은 한국 현지화된 순한맛이다. 바라캇 컨템포러리의 와엘샤키전이 오리지널 진한맛이다.



아래 인터뷰를 보면 정말 대구를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대구의 풍경을 많이 봤다면 작품에서 드러나야할텐데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고, 대구풍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의 풍경을 많이 봤다면, 구체적으로 철근, 교량, 마천루 등의 구체적인 표현이 나와야하지, 미국의 풍경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했다는 두리뭉술한 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8. 외국인이 한국을 제대로 이해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알고 있느냐, 한국사 검정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느냐.. 그런 부분을 외국인 작가에게 요구할 수 없다. 


작가가 한국의 무엇에 매력을 느꼈고, 무엇을 한국의 전형이라고 생각했으며, 작품대상으로 한국의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서부터 차용했는지,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에서 한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와엘샤키는 판소리를 차용했고, 작품 영상에서 국악인이 판소리를 부르며 걸어다닌다.


이렇게 보고나니까 2005년 텔레마치와의 연관성이 느껴질지? 두 영상 모두 누군가가 걸어가면서 전통적 발성과 내용을 암송해서 부르고 있다.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과의 수리 연습문제는 정답이 있고, 문과의 미술 연습문제는 해답이 있다. 이과는 논리를 배우고, 문과는 해석을 배운다. 이과는 맞냐 틀리느냐가 중요하고 문과는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김수자와 와엘샤키 작품간에 연결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부분이고 아니라면 어떤 부분인지 생각해보고 글을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학습방식이 선진국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배우는 미적분석이자 창의 트레이닝이다.



와엘샤키는 한국의 전래동화와 판소리를 꾸란과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했을지도






9. 해외의 유명 작가, 감독, 연예인, 작가, 혹은 미술가가 한국을 주제로 작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본능적으로 그 ‘한국적 요소’에만 주목한다. 마치 우리 문화가 인정받았다는 듯, ‘한국을 다뤄줬다’, ‘우리 것이 최고다’라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정작 그 작가에게 한국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한류가 많이 논해지 케이스 중의 하나로 다뤄진 것이다.


해외 유명인이 작품의 글로벌 홍보를 위해 한국에 와서 떡볶이가 맛있다고 말하고, K-팝의 인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캄사합니다”라고 어설픈 한국어로 인사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만족한다. 귀엽다고 댓글을 단다. 일정상 한국일본을 같이 방문하는게 편하니 한국 방문 전후로 일본에 가게 될텐데, 동일한 사람이 일본에서는 떡볶이 대신 스시의 맛을 칭찬하고, 케이팝 대신 우키요에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아리가또우”라고 말한다. 미디어는 자국 내 인터뷰에만 집중하는 탓에,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쉽게 간과된다. 언어의 문제 때문이라도 외국에서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는 언어권을 넘어서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생각해볼 점이 있다. 종종 스스로를 착각 속에 가두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 헤게모니를 쥔 행위자들이 조공자 혹은 중견자를 달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학계에서도 자주 반복되는 유사한 구조를 생각해보자. 경제경영 분야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유학생들이 비교적 쉽게 학위를 취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론을 전공한 교수 아래에서 자국을 사례 연구로 삼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효율적인 선택이다. 유학생은 힘들고 가난한 학생 신분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성공적으로 받고 귀국해 좋은 정규직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며, 지도 교수는 한국어 자료를 직접 조사할 필요 없이 새로운 사례 연구를 확보한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윈윈하는 구조다. 문제는 박사 학위를 마친 유학생들이 그 이론을 그대로 답습할 경우 아무런 발전이 없다는 데 있다. 지도 교수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유럽, 동남아, 중동 등 다양한 출신의 유학생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며, 자신의 이론적 기반을 확장해간다. 케이스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론 전체를 내가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스탠다드를 내가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사실상 졸업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오류는 미술에서도 반복된다. 가령, 해외 작가가 한국의 전통 요소를 활용하면 우리는 그 부분에만 집중한다.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해외 작가가 판소리를 활용했다면, 우리는 그것 자체가 한국의 가치가 인정받았다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판소리의 우수성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와엘 샤키의 관점에서 대구의 판소리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불과하기 때문에 안좋다는 말이 아니라, 사례의 복수성을 이해하고, 그 메타적 인지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구미술관에서 판소리를 암송하는 국악인이 걸어다니는 영상작품을 만들었는데, 그는 이전에 암스테르담 마트에서 꾸란 암송하며 걸어다니는 영상작품을 만들었고, 유럽에서는 롤랑의 노래를 소재로 작업했다. 판소리와 꾸란과 롤랑의 노래는 서로 비슷한 점이 있을까? 암송에 기반한 구두전승과 전통? 판소리를 우리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전세계 문화권의 하나의 구조화된 학습방식 중의 하나로 다루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판소리의 애국심을 넘어 판소리가 해외에 어떻게 이해되고 알려질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보다 정교한 분석을 위해서는 네 개의 층위를 고려해야 한다.


1)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와엘 샤키가 판소리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2)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 세계를 조망하기

3) 작가의 다른 작품을 살펴보며 비교 분석하기

4) 그가 특정 문화권의 특정 요소를 선택한 이유와 그의 사고방식을 탐구한 후, 롤랑의 노래·꾸란·판소리를 동일한 선상에서 분석하기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단순히 ‘해외 유명 작가가 한국적 요소를 활용했다’는 식의 철지난 애국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도취적인 국뽕의 미몽으로부터 각성할 수 있다. 그 결과 관객 중에서도 와엘 샤키 같은 작가가 탄생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한국의 국제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것이 결국 우리 것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우리 것이 사랑받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다. 케이스 중의 하나로 다뤄졌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 선택과 맥락과 선택과정을 읽어내는 비평적 시선이다.








10.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해외작가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영어로 말할 때보다 모국어로 말할 때 훨씬 더 정보량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좋다. 와엘샤키도 아랍어로 인터뷰할 때 훨씬 잘 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NxOflrZtfs



3:22에 아자닙을 아가닙으로 j를 g으로 말하는데서 이집트 아랍어가 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