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는 도끼다 -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지성의 문장들
김지수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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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슈비 투움바 버거가 나왔다. 


투움바는 두꺼운 페투치네 파스타면에 매운 고추와 감칠맛 나는 치킨스톡을 활용한 크림소스 스파게티다.


미국의 파스타 요리이지만 메뉴이름은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 동남쪽 달링 다운즈 지역의 투움바 도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투움바의 뜻은 알려진 바 없다. 그러니까 간장돼지불백두루치기나 해초미역비빔밥처럼 이름만 보고 직관적으로 재료와 요리법을 알 수 있는 메뉴와는 다르게 투움바만 가지고 음식명을 추론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스터리한 음식이지만 대충 매운크림 파스타구나 하고 다들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호주풍 인테리어를 컨셉으로 미국 브랜드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가 우리나라에 런칭하며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요리가 알려졌다.


일방적으로 맵지 않고 일방적으로 느끼하지도 않아, 맵고 고소하기 때문에 끝까지 먹을 수 있다.

묵직한 크림소스에 알싸한 매운맛이 스며들어 서양 요리 같으면서도 묘하게 한국적 감칠맛이 어우러졌다.


그 투움바 소스를 활용한 맥도날드 신상 버거는 기존 맥크리스피와 슈비버거에 단순히 투움바 소스를 덧입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옷을 입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듯, 기존의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소스만 바꾼 전략이다. 이는 한국 외식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즌 한정 변주곡 전략이다. 원판 그대로에 옵션만 바꾸어 새로운 메뉴인 것마냥 홍보하는 전략이다. 


겨울이면 온갖 브랜드가 딸기무엇무엇을 내놓고, 두바이발 카다이프가 유행하면 카다이프 무엇무엇이 줄줄이 등장하는 식이다. 마치 탕후루, 대왕카스테라 열풍처럼 남들이 하면 나도 안 할 수 없는, 안 하면 도태되는 것 같은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의 심리를 노린 마케팅 전술이다. 이 전술은 매출 효과는 누릴 수 있다. 부동산 기업으로서 맥도날드는 좋은 입지에 매장이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신메뉴 나왔다는 광고만 보여주면 잠깐 들러서 메뉴를 구입해줄 것이다. 특별하달 것 없는 시판 소스로 바꾸는 저렴한 방식으로 영업 이익을 만들 수 있다.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여 연구개발하고 너무 실험적이다고 욕먹을 바에는 차라리 이렇게 하는게 안전하고 영리한 생각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뭐야 소스만 바꿨고 똑같은데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 라고 생각하게 되고,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맥도날드 이미지가 차지하는 포지션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학습이 된다. 맥날 별거 없네


사실 맥도날드는 이미 완성된 버거다. 본연의 맛과 브랜드 정체성이 확고하다. 굳이 혁신하지 않아도 맥도날드에는 독보적인 강점이 있다. 이를테면, 전용 강철 탱크에서 바로 보급되는 경쟁 매장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탄산감이 살아 있는 코카콜라, 그리고 양 많고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감자튀김. 이미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도 요즘은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맘스터치는 공격적인 신메뉴 마케팅으로 에드워드 리 버거를 내놓았고, 롯데리아는 맛폴리버거로 새로운 입지를 다졌다. 버거킹은 한 발 더 나아가 고급 수제버거화를 추구하며 두툼버거, 불끈버거, 화이트 페타 치즈버거 같은 개성 강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현실이 녹록지 않다. 파이브 가이즈, 쉐이크쉑 같은 버거 브랜드가 고급화 전략으로 한국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고객층을 개척했다. 심지어 한때 맥날의 2인자로, 약세로 평가받던 롯데리아, 맘스터치까지 공세를 펼치는 상황. 이런 판도 속에서 맥도날드는 구색 맞추기 식으로 신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브랜드의 길을 찾는 답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 격랑 속에서 맥도날드는 진퇴양난이다.


본연에 충실할 것인가, 고급화할 것인가? 그러나 두 길 모두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미 가격은 경쟁 브랜드와 맞먹고, 쪼그라드는 경제에 소비자들의 기대감은 높아져만 간다. 그런데 품질의 업그레이드는 뚜렷하지 않다. 


새로운 버거를 내놓았다지만, 새롭지 않다. 이미 소비자는 한 번 실망했다. 

이 전략을 또 다시 채택하면 이미지는 하락세로 확실히 넘어갈 것이다.

고급화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감수하고 트렌드의 바람을 타고 영업 이익을 올릴 것인가?

맥날의 진정한 변화는 어디서올까? 


이것은 맥도날드의 이야기 뿐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새로운 스탠다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존 제품을 가져다가 껍데기만 포장해서 파는 식으로는 곤란한 시대가 되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초할 것인가 아니면 선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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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엘 샤키: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

February 28 - April 27, 2025


1. 삼청동에 있는 바라캇 컨템포러리다. 바라캇에서는 모처럼 보기 힘든 귀한 로마, 수메르, 고대 중국의 조각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바라캇 컨템포로러리는 현대 작가 작품들을 하고 있다. 지하층의 층고가 넓기 때문에 큰 영상작품을 보기 좋다. 




2. 대구미술관에서 열렸던 와엘샤키의 오리지널 맛이다. 대구에서 보았던 것은 한국 판소리 재해석한 작품이다. 여기에선 그의 모국어인 아랍어로 된 작품을 볼 수 있다.


3. 그중 꾸란의 동굴 챕터를 다 외워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슈퍼에서 걸어다니면서 카메라보고 암송하는 작품이 흥미롭다. 2005년작. 아랍어를 모르는 현지 네덜란드인들에게는 아랍국가에서 온 TV리포터로 느껴질 것이다. 작가 자신보다, 작가를 무시하거나, 쳐다보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면 더 흥미롭다. 유투브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사회실험같은 작품이다.




4. 뒤에 아이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우리로 치면 미국 어느 마트에서 카메라맨과 함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하며 논어를 외우면서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5. 아래 한글 자막에 보이느 꾸란 번역어투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Korean Revised Version, KRV)의 것을 따왔다.

초판은 38년이고 52, 61, 98, 05년에 개정이 되면서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개신교의 성경 번역판이다. 가톨릭은 다른 번역본을 사용한다.


오니라.. 하느뇨.. 없노라... 이런 말투에서 매우 개신교적 느낌이 든다. 알라도 하나님이라고 썼기 때문에 사실상 개신교 성경처럼 느껴질 정도다. 꾸란의 한글번역본이 개신교 성경을 경유하면서 느껴지는 기묘하고 흥미로운 효과다. 중국의 백화, 일본의 한자, 빅토리아 문체의 현대 번역 등. 기존 레퍼런스를 참조하는, 2차 창작으로서 번역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6. 뒤에서 눈총 주는 네덜란드 할머니가 보인다. 외국인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동적으로 김수자의 바늘여인 연작(1999-2001)이 생각난다. 과천에서 처음 봤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들과 아이들이 이 동양여자는 길막하고 도대체 뭐하는거야! 하는 식으로 쳐다보던 이미지가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올해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페미니즘 전시코너에서 이 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다. 다시 봐도 내가 몇 십년 전 기억하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김수자, 바늘여인, 2001

4채널 비디오, 크기 가변



2001년 작품이니 나이지리아의 이 사람들도 24년이 지나 아마 이제 중년이 되었겠지. 세월의 무상함이여


7. 전시종료된 대구미술관의 와엘 샤키전은 한국 현지화된 순한맛이다. 바라캇 컨템포러리의 와엘샤키전이 오리지널 진한맛이다.



아래 인터뷰를 보면 정말 대구를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대구의 풍경을 많이 봤다면 작품에서 드러나야할텐데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고, 대구풍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의 풍경을 많이 봤다면, 구체적으로 철근, 교량, 마천루 등의 구체적인 표현이 나와야하지, 미국의 풍경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했다는 두리뭉술한 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8. 외국인이 한국을 제대로 이해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알고 있느냐, 한국사 검정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느냐.. 그런 부분을 외국인 작가에게 요구할 수 없다. 


작가가 한국의 무엇에 매력을 느꼈고, 무엇을 한국의 전형이라고 생각했으며, 작품대상으로 한국의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서부터 차용했는지,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에서 한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와엘샤키는 판소리를 차용했고, 작품 영상에서 국악인이 판소리를 부르며 걸어다닌다.


이렇게 보고나니까 2005년 텔레마치와의 연관성이 느껴질지? 두 영상 모두 누군가가 걸어가면서 전통적 발성과 내용을 암송해서 부르고 있다.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과의 수리 연습문제는 정답이 있고, 문과의 미술 연습문제는 해답이 있다. 이과는 논리를 배우고, 문과는 해석을 배운다. 이과는 맞냐 틀리느냐가 중요하고 문과는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김수자와 와엘샤키 작품간에 연결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부분이고 아니라면 어떤 부분인지 생각해보고 글을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학습방식이 선진국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배우는 미적분석이자 창의 트레이닝이다.



와엘샤키는 한국의 전래동화와 판소리를 꾸란과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했을지도






9. 해외의 유명 작가, 감독, 연예인, 작가, 혹은 미술가가 한국을 주제로 작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본능적으로 그 ‘한국적 요소’에만 주목한다. 마치 우리 문화가 인정받았다는 듯, ‘한국을 다뤄줬다’, ‘우리 것이 최고다’라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정작 그 작가에게 한국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한류가 많이 논해지 케이스 중의 하나로 다뤄진 것이다.


해외 유명인이 작품의 글로벌 홍보를 위해 한국에 와서 떡볶이가 맛있다고 말하고, K-팝의 인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캄사합니다”라고 어설픈 한국어로 인사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만족한다. 귀엽다고 댓글을 단다. 일정상 한국일본을 같이 방문하는게 편하니 한국 방문 전후로 일본에 가게 될텐데, 동일한 사람이 일본에서는 떡볶이 대신 스시의 맛을 칭찬하고, 케이팝 대신 우키요에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아리가또우”라고 말한다. 미디어는 자국 내 인터뷰에만 집중하는 탓에,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쉽게 간과된다. 언어의 문제 때문이라도 외국에서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는 언어권을 넘어서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생각해볼 점이 있다. 종종 스스로를 착각 속에 가두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 헤게모니를 쥔 행위자들이 조공자 혹은 중견자를 달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학계에서도 자주 반복되는 유사한 구조를 생각해보자. 경제경영 분야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유학생들이 비교적 쉽게 학위를 취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론을 전공한 교수 아래에서 자국을 사례 연구로 삼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효율적인 선택이다. 유학생은 힘들고 가난한 학생 신분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성공적으로 받고 귀국해 좋은 정규직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며, 지도 교수는 한국어 자료를 직접 조사할 필요 없이 새로운 사례 연구를 확보한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윈윈하는 구조다. 문제는 박사 학위를 마친 유학생들이 그 이론을 그대로 답습할 경우 아무런 발전이 없다는 데 있다. 지도 교수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유럽, 동남아, 중동 등 다양한 출신의 유학생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며, 자신의 이론적 기반을 확장해간다. 케이스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론 전체를 내가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스탠다드를 내가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사실상 졸업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오류는 미술에서도 반복된다. 가령, 해외 작가가 한국의 전통 요소를 활용하면 우리는 그 부분에만 집중한다.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해외 작가가 판소리를 활용했다면, 우리는 그것 자체가 한국의 가치가 인정받았다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판소리의 우수성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와엘 샤키의 관점에서 대구의 판소리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불과하기 때문에 안좋다는 말이 아니라, 사례의 복수성을 이해하고, 그 메타적 인지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구미술관에서 판소리를 암송하는 국악인이 걸어다니는 영상작품을 만들었는데, 그는 이전에 암스테르담 마트에서 꾸란 암송하며 걸어다니는 영상작품을 만들었고, 유럽에서는 롤랑의 노래를 소재로 작업했다. 판소리와 꾸란과 롤랑의 노래는 서로 비슷한 점이 있을까? 암송에 기반한 구두전승과 전통? 판소리를 우리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전세계 문화권의 하나의 구조화된 학습방식 중의 하나로 다루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판소리의 애국심을 넘어 판소리가 해외에 어떻게 이해되고 알려질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보다 정교한 분석을 위해서는 네 개의 층위를 고려해야 한다.


1)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와엘 샤키가 판소리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2)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 세계를 조망하기

3) 작가의 다른 작품을 살펴보며 비교 분석하기

4) 그가 특정 문화권의 특정 요소를 선택한 이유와 그의 사고방식을 탐구한 후, 롤랑의 노래·꾸란·판소리를 동일한 선상에서 분석하기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단순히 ‘해외 유명 작가가 한국적 요소를 활용했다’는 식의 철지난 애국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도취적인 국뽕의 미몽으로부터 각성할 수 있다. 그 결과 관객 중에서도 와엘 샤키 같은 작가가 탄생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한국의 국제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것이 결국 우리 것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우리 것이 사랑받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다. 케이스 중의 하나로 다뤄졌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 선택과 맥락과 선택과정을 읽어내는 비평적 시선이다.








10.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해외작가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영어로 말할 때보다 모국어로 말할 때 훨씬 더 정보량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좋다. 와엘샤키도 아랍어로 인터뷰할 때 훨씬 잘 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NxOflrZtfs



3:22에 아자닙을 아가닙으로 j를 g으로 말하는데서 이집트 아랍어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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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우리돌의 들녘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러시아, 네덜란드 편 뭉우리돌 2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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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2025)

退魔錄

Exorcism Chronicles: The Beginning



오늘 갤러리 19곳 돌고와서 저녁 22시에 퇴마록 보러갔다 왔다. 깜빡하지 않게 브레인스토밍만 쓰고 자자.


1. 친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각성하는 아이의 성장, 구원, 희생의 서사. 시즌2를 기대하게 만드는, 한국에서 지금까지 제일 잘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2. 작화

1) 모델링하고 렌더링하는데 100시간 이상 걸려 1초를 만들었을 법한 확실히 힘을 쓴 장면들이 있었다. 이를 위해 일부 장면은 수고를 덜고자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예컨대 봉준호 감독도 <괴물>을 만들 때 괴물 CG가 너무 비싸서 정말 필요한 샷만 쓰기 위해 콘티를 촘촘히 짰다고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도 1주일에 1편 올리기 위해 마을의 움직이는 행인은 2d 이미지 이동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액션 연출을 위해 인물간의 대화를 배경 위의 보이스오버로 대체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에서 확실히 시간이 오래 걸렸을 법한 장면들은 이렇다.

(1) 호법들이 물, 불, 칼로 서교주에 대항하여 싸우는 컷 

(2) 클라이맥스에서 준후가 좌측, 신부와 현암이 우측에서 공격하며 서교주와 싸우는 컷

(3) 클라이맥스에서 서교주 이기고 대웅전이 이글이글 불에 타는 효과 (디즈니 엘리멘탈도 이런 자연효과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4) 엔딩에서 불붙고 연기나는 대웅전을 배경으로 신부와 현암이 떠나는 장면 

(5) 카메라가 아래로 붐 다운하면서 해동밀교 본산 전체를 보여주는 장면(산, 나무들 모두 3d로 레이어 되어있는 듯했다)

(6) 설득하고 망설이는 장면에서 섬세한 얼굴표정연기(눈동자의 움직임, 얼굴근육변화, 표정, 각도, 몸제스쳐 등)


2) 위와 같은 힘든 장면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연출하면서 경제적 효과를 취한 부분이 있다. 힘든 장면을 만들기 위해 힘을 뺀 부분이다.

(1) 서교주가 준후 아이를 혼내고 쓰다듬는 가스라이팅 장면에서 얼굴은 돌리고 그림자로 표현

(2) 같은 장면에서 계속 얼굴 보여주지 않고 준후는 잠깐 보여주고 곧 엎드린다. 얼굴 렌더링을 계속 하면 힘드니까 이렇게 처리.

(3) 도입부 신부가 길거리에 있는 부분에서 뒷배경에 버스가 지나간다. 포즈와 모델링은 같은데 가운데 버스 하나만 지나가게 해서 컷이 여러 번 나뉘는 효과를 준다.

(4) 성당, 시내, 산도입부, 동굴, 해동밀교 등 핵심 배경 로케를 제외하고 불필요한 배경장면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5) 어떤 작품을 볼 때 표현한 것도 중요하지만, 표현하지 않은 것도 중요하다. 무엇을 표현하지 않았는지를 왜 그랬는지 역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 산인데도 대량의 물, 폭포나 냇가 표현은 없다. 물 표현은 준후가 불,물,뇌 오행마법 시전할 때 물 컨트롤에서 잠깐, 호법의 물 마법 때 한 번, 준후가 눈물 흘릴 때 한 번 이렇게 등장한다. 왜냐? 물을 3d로 텍스쳐링하고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인건비와 제작비가 많이 드니까. 신부가 보드카 대신 소금물을 힙 플라스크에 담아가지고 다니다가 승려에게 줄 때도 물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물 마시는 장면이나 물에 대한 표현이 거의 없다. 왜? 물 CGI 효과 대신 다른데 더 힘 쓰려고 한 것이다.


3) 생각지 않았는데 잘 시각화한 부분은 

(1) 서교주의 눈동자가 미생물 세포분열하듯 2의n승으로 1->2->4->8->(그리고 갑자기) 24로 갈라지는 장면. 특이하고 재밌었고, 주술회전도 기생수아닌 새롭고 창의적 표현. 

(2) 심지어 까마귀의 눈도 2분할 하는 장면도 있다

(3) 현암이 헤메는 장면에서 해동밀교 출입 방지용 진법을 나무에다 창의적이고 다양하게 표현했다.

(4) 감시용 눈동자와 까마귀의 연결고리

(5) 감시하고 있을 때 교주의 눈이 눈동자와 까마귀에 가있어서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살로만 표현된 교주 얼굴


4) 미드저니 AI의 활용은 2번 보였다. 신부의 트라우마가 된 여자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이 전반부 1번, 후반부 1번 나오는데 둘 다 AI로 만든 것 같다. 동굴 탈출할 때 동일 여아의 흰색 치마 아랫단만 살짝 보이는 장면은 일본 애니에서 많이 보이는 작화였고, AI나 vfx효과는 아닌 것 같다.


5) 준후가 자기 능력 시연하는 부분 인상적. 수인을 확대 축소 하는 부분 인상적. 쾌남 개방방주 캐릭터 적절함, 신부 성우 적절함(사무적이면서도 예의바른 말투), 승려 성우 적절함(그려.. 같은 약간의 사투리 잘 살림)


3. 스토리 및 캐릭터 탐구

1) 현암의 이야기가 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장호법-준후-서교주의 해동밀교쪽 이야기도 2갈래고, 신부의 과거 트라우마와 악마와의 싸움도 2갈래인데 거기에 현암의 서사도 동생의 이야기와 70년 공력을 넣어준 선사 이야기로 2갈래다. 그러나 원작을 존중하면서 가장 적절하고 타이트하게 넣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클라이맥스 결투장면에 가장 큰 방점이 있는데, 이 부분에 긴장감을 최고로 올리기 위해선 개인적 능력뿐 아니라 각자 그렇게 행동해야만하는 이유도 큰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삐까뻔적한 능력치만 가지고 결투의 긴박감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서로 그렇게 싸워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어야 텐션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물리적으로 무력이 충돌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서로 싸워야하는 이유가 충돌하는 것이다.


서교주는 절대적인 힘을 얻고자 하고, 개기일식 때까지 준후를 희생제물로 바쳐 의식을 완성해야한다.

준후는 가족의 진실을 친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깨닫고 각성한다. 서교주가 의식을 완성해서는 자기도 죽는다.

신부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능력을 회복하며 친우의 죽음 앞에서 준후를 돌봐달라는 친우의 부탁을 지켜야한다. 서교주를 죽여야한다.

현암은 혜자 선사가 살려준 책임의식을 안고 장호법을 만나 가족의 문제를 풀려고 한다. 장호법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긴급하게 서교주를 막아야한다.


따라서 서교주 vs 준후+신부+현암의 결투구도가 완성이 되는데, 준후가 능력치가 높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준후가 교주의 네 팔 중 2팔을 막고, 신부와 현암이 하나씩 막는 것이다. 


2) 그럼 어떻게 타이트하게 넣었는가? 시작부터 생각해보면 주임신부퇴마-해동밀교 의식-신부 과거-승려와 만남, 이렇게 가톨릭-불교-가톨릭-불교 1-2-1-2로 순서가 번갈아가며 나오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다가, 현암을 버스에서 등장시키고 나서 혜자선사 이야기를 넣었다. 죽은 여동생 이야기는 늘어질 수 있어서 가볍게만 고등학교 졸업 투샷으로 2번 나오게 해서 처리했다. 이정도만 가장 적절하게 넣었지 않나 싶다. 신부-승려-현암-신부-승려-현암 1-2-3-1-2-3이었으면 너무 복잡했을 것이다. 덕분에 혜자선사의 이야기가 너무 소략된 감은 있으나 영화의 진행상 어쩔 수 없었다. 


3) 캐릭터 탐구

서교주와 맞서는 3인방 모두 개인적 아픔과 핸디캡을 지닌 인물이다. 시련과 방해물이 있어야 거기서 능력이 나온다는 히어로 캐릭터의 서사에 기반한다. 그리고 이 아픔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시즌2의 핵심 네러티브가 되지 않을까? 이번 편에서는 사전 협의 없이 서교주 각성에 세 캐릭터가 엉겁결에 협동해서 물리쳤다.


신부의 퇴마능력이 출중하고, 신체능력 기반이 아닌 정신력 기반의 성물 아티팩트 파워인데, 그 능력이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잘 사용이 안된다. 초반 주임신부 빙의 악마와 후반 서교주에게 모두 능력 쓰다가 컷 당하고 목 졸린다. 이전에 여자아이에게 빙의한 악마를 퇴마 못해서 아이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그를 괴롭히기 때문. 과거 실수를 어떻게 극복하고 적 앞에서 제때 능력 발휘할 수 있게 자기 컨트롤하느냐가 관건.


현암은 동생을 수마(?)에 잃었고, 혜자선사가 그를 치료하느라 70년 공력을 다 써버렸다. 도의적 윤리적 책임에 묶여있다. 선천적으로 혈이 뒤틀려있어서 태극신공(?)이 잘 나오지 않고 오른팔에서만 나온다. 그런데 장호법이 금나수로 막고 있는 해동밀교 문을 문짝 채로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고, 해동밀교 진법을 찾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다. 자신의 신체적 속박을 어떻게 극복하고 보은하느냐가 관건.


준후는 수인술(?)을 하루만에 배우고, 토템 몇 십개에 확대마법 멀티시전할 수 있을 정도이며, 선생이 5명인데 모두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능력이 출중하지만, 나이 어린 아이고, 친구 없이 외롭게 갇혀 자랐고, 양아버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눈앞에서 친아버지를 잃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고 올바르게 성장하느냐가 관건.


4) 승희는 앞에 등장하고 다시 쿠키로 나온다. 마지막 부처 연출과 아빠 전화도 재밌었다고 생각. 시즌2에는 준후와 승희의 만남이 있지 않을까? 분명 시즌2를 예고하고 만든 작품이다.



4. 연출

1) 한국적인 캐릭터와 배경을 잘 살렸다.

(1) 전반부 성당 앞의 90년대 복도식 아파트

(2) 성당 내부 벽 검은색 배경에 빨간 디지털 글씨로 된 오늘의 성가 표시등

(3) GS25 편의점 앞 파란색 플라스틱 간이 테이블에서 신부와 승려가 레츠비(작중 변환된 이름은 레츠밋) 마시는 장면

(4) 한국 전통 청사초롱으로 이어진 동굴

(5) 50대 중년 여성 사무장의 아줌마 말투(적절함)

(6) 기사 아저씨의 배차에 대한 불만 대사(적절함)


2) 특히 대사도 잘 쓰고 성우가 잘 살린 부분이 있다.

"실패했어, 이미, 대의식은 시작됐다." 이 세 덩어리를 중간 타임을 적당히 주고 내뱉는데, 두 의미로 다 읽힌다.

처음 두 마디 "실패했어, 이미" = 이미 실패했어

뒤의 두 마디 "이미, 대의식은 시작됐다" = 이미 대의식은 시작됐다.

"이미" 하나를 공유한 상태에서 앞 뒤 마디가 다 연결되는 좋은 각본이고, 성우도 이를 참 잘 살렸다.


3) 공포 클리셰 잘 사용했다.

(1) 신부 트라우마가 된 여자아이가 침대에서 악마얼굴로 바뀌는 부분(호러영화 퇴마장르 클리셰)

(2) 혜자선사에게 치료받는 현암에게 수마가 나오는 부분. 유리창에 검은 실루엣이 비치기. 유리창 손톱으로 긁기. 거칠게 방문손잡이 잡고 두들기기(이제 도어락시대인데 여전히 클리셰가 사용된다). 수마가 기계 거미처럼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천장으로 올라가기. 올라간 수마는 안 보여주고 엎드리고 방바닥을 보는 현암 클로즈업하며 뒷통수에 뭔가 있게 하기. 동생이 얼굴을 휘잡고 갑자기 방바닥이 꺼지며 물귀신에 잡혀 물 속 아래로 끌려내려가고 숨 못 쉬기.

(3) 신부에게 환술쓰는 장면에서 저 멀리있던 여자아이 귀신이 갑자기 물리적 거리를 무시하고 내 앞까지 다가오기. 눈 없는 준후가 갑자기 옆에서 확 나타나기.

(4) 3초 후 갑자기 업사이드다운 된 귀신 얼굴이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으로 스크린에 나타나기


4) 컷 편집

(1) 준후 아이는 수인 때문에 웃고, 서교주는 감시해서 꿍꿍이를 다 알고 있어서 웃는데, 웃음이 겹치는 부분이 적절하고 자연스러웠다.

(2) 장호법과 현암이 교주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나가는데, 사실 신부가 옆에서 달려와서 서교주를 들이박는다.

(3) 버스 시간 바뀔 때 11시02가 14시30분으로 전환한다. 외부 마을 풍경 작화를 줄이기 위한 적절한 선택. 이정도 거리면 서울에서 전북, 경북 정도인 것 같다. 덕유산, 팔공산, 가야산...


5. 아쉬운 점

1) 인도 마가 호법에게 대사 하나 주어지지 않는다. 너무 말 한 마디 안하다가, 갑자기 불 마술을 쓰려고 존재감을 발산하는데,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제작비의 문제가 있었겠지만, 오징어게임 시즌1의 알리 역을 연기한 아누팜 트리파티에게 보이스 액팅 시켰으면 어땠을까


2) 서교주 변신 이후 팔의 산스크리트어가 뭉개져있다. 디자인상 변환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넷플릭스에 올라가면 분명 글로벌 인도관객들에게 문제가 된다. 만약 우리 한글이 다른 나라 어느 영화에서 뭉개져있다면 불만 같는 것과 마찬가지.

관객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많은 대중들이 좋아해주면서 새로운 부담이 생기는 것처럼, 한국관객만 의식하고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었을지라도 한국문화를 향한 관심때문에 국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런 디테일은 조금 아쉽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이런 부분을 보완하면 조금 더 롱런할 수 있다는 것.


3) 아이를 탈출시켜야하는 상황에서 배경음악은 긴장을 주는데 호법들이 너무 천천히 걸어다닌다. 아울러 현암 침투 후 장며 중 화면 우측 옆, 난리나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밀교 말단 교도들의 달리기가 약간 어색한 부분이 있다. 달리는 다이내믹하고 속도가 싱크로가 안 맞다.


그 다음 2개는 다소 마이너한 것. 손크기와 엔딩.


4) 아마 다른 많은 관객도 지적하겠지만, 대화장면이나 서교주의 장면 같은데서 연극적 몸짓 표현이 언뜻 언뜻 3d로 완전히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실 경제적이고 빠른 컷 편집으로 해결보았다고 생각하는 편.. 오히려 나는 캐릭터 디자인에 있어서 신부의 손이 너무 크지 않나 생각한다. 장호법의 눈을 감겨주는데 두 손가락이 얼굴 1/3를 가린다. 아이의 어깨를 다 덮는다. 물론 이또한 극적 허용이겠지만!


5) 엔딩장면에서 현암은 배낭을, 신부는 슈트케이스는 안 들고 가지?


6. 다음과 같은 직간접적인 레퍼런스가 느껴진다.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비슷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1) 승희는 <아케인>의 파우더, 주임신부는 실코를 닮았다. 심지어 비슷한 모델링을 쓴 것 같다. 주임신부와 실코는 매부리코도 같다.


2) 개기일식에서 신의 눈알만 움직이는 장면에서 반지의 제왕 사우론의 탑이 떠오른다. 


3) 준후가 각성하는 장면에서 순백색 배경은 매트릭스의 유명한 장면, 해리포터 죽음 후 9와 4/3승강장에서 덤블도어 만나는 장면에서 흰백색 배경 장면과 같아 보인다.


7. 전반적으로 나는 괜찮게 보았다. 스토리나 연출에서 신경쓴 부분이 많았다.

좋은 설정과 장편 서사와 탄탄한 팬층을 가진 원작에 기반한 우리 애니메이션. 

그래도 이정도 퀄리티로 나왔는데 충분히 칭찬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고, 미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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