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1879-1953)의 〈이데알〉이다.
보는 이의 고개를 갸웃갸웃하게 만든다. 이게 왜 그림인가. 건축가의 도면은 아닌지
불가능한 구도의 기계 도면 드로잉에 일부만 채색, 좌측 상단에는 잘라 붙인 활자가 뒤섞인 화면은 기계의 형태를 띄었다.(mechanomorphic, μηχανο+μορφικός)
그러나 단박에 알아차리리라, 결코 작동할 수 없는 장치라는 걸. 적어도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는 운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바로 이런 포인트에서 피카비아의 그림은 기술 도면이나 발명품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자 하는 본래의 목적을 은근히 비튼다.

1. Francis Picabia, Ideal, 1915, ink, graphite, and cut-and-pasted painted and printed papers on paperboard, 75.9 x 50.8 cm (Met 소장)

2. Untitled (1919)
피카비아의 그림은 다다와 큐비즘을 소화해 자신의 방법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작가는 기술 매뉴얼과 도해에 매료된 끝에 기계시대의 형식적 어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작품에 활용했다. 화면 속 도상은 하나같이 어딘가 어긋나 있으며, 화면에 드러나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는 기술성취가 자아내는 과장된 자만심을 얄밉게 꺾어버린다. 뿌직.
얼핏, 광고 카탈로그 속 제품이미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 기계는 디지털 시대의 양피지처럼 어디에도 쓰임새가 없기 때문에 진지한 블랙 코미디 같다.
이런 그림을 사회적으로 접근하자면 예술의 지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정의되던 20세기 초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카메라 같은 복제장치가 창작과정에서 화가의 손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격동의 기계시대를 말이다.
Francis Picabia (French, 1879-1953)
1. J’ai vu (1915)
2. Marie (1917)
3. Front cover (1917)



아래는 채선생에게 <이데알> 작품에서 보이는 큐비즘과 다다적요소를 시각적으로 분석하고, 각각 큐비즘과 다다사조와의 연관성을 비교해보라는 쿼리의 결과를 복사붙여넣기 한 것이다. (따라서 내 문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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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비즘은 형태의 분절·평면화·재구성을 통해 기계 도해의 외양을 제공했고, 다다는 그것을 무용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조롱과 부조리의 시각 장치를 더했다고 볼 수 있다.
큐비즘적 요소
1. 분절과 재조합: 카메라, 브레이크, 레버 같은 기계 부품들이 원래의 기능적 맥락에서 분리되어 화면 위에서 조각난 형태로 재조합되어 있다. 이는 사물을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큐비즘의 시각 언어와 닮아 있다.
2. 평면성과 다중 시점: 부품들이 입체적 공간 속에서 사실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마치 설계도나 도해처럼 평면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여러 시점과 각도가 한 화면에 동시에 드러나는 것도 큐비즘의 전형적 특징이다.
3. 기하학적 단순화: 원, 직선, 톱니 모양 등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된 도형들이 화면을 구성하며, 이는 피카소·브라크가 추구한 시각적 어휘와 연결된다.
다다적 요소
4. 조립(collage)과 차용: 활자를 오려 붙이고, 광고 도안이나 기술 문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가져온 점은 다다의 콜라주 정신을 반영한다. 시각적 언어 자체가 혼성적이고 비진지하다.
5. 아이러니와 부조리: 기능할 수 없는 기계, 쓸모를 알 수 없는 장치라는 점에서 실용을 전제로 한 기계 도해의 권위를 조롱한다. 이 시각적 불합리성은 다다의 ‘무의미’와 ‘부조리’의 미학에 닮아 있다.
6. 유희적 해체: 텍스트와 이미지가 서로 어긋나며, 기계가 동시에 초상(스티글리츠의) 역할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시각적 농담이자 수수께끼다. 전통적 초상화의 시각 언어를 해체하고 놀이화하는 것은 다다의 전형적 시각 전략이다.
큐비즘과 다다사조와의 비교
1. 큐비즘과의 비교
피카소, 브라크의 분석적 큐비즘 (1909–1912)
형태 분절: 피카소와 브라크는 바이올린, 병, 컵 같은 대상을 해체하고 기하학적 단위로 분할한 뒤 평면 위에 재구성했다.
평면성 강조: 원근법 대신, 서로 다른 각도와 시점을 한 화면에 병치했다.
유사점: 피카비아 역시 카메라와 기계 부품을 사실적 묘사 대신 도해적·기하학적 요소로 쪼개어 배열했다. 도면처럼 보이는 기계의 조합은 큐비즘의 분절·재조합 논리와 닮아 있다.
차이점은, 큐비즘은 여전히 사물의 ‘본질적 형태’를 탐구하려 했지만, 피카비아는 그것을 초월해 무용하고 기묘한 조합을 의도했다는 점이다.
2. 다다와의 비교
마르셀 뒤샹, 〈자전거 바퀴〉 (1913) / 〈샘〉 (1917)
기성품 차용: 다다의 특징은 일상적 오브제를 맥락에서 떼어내 전시함으로써 ‘예술’의 개념 자체를 흔든다.
아이러니·부조리: 물을 담지 않는 소변기, 달리지 않는 자전거 바퀴처럼 기능 상실을 드러낸다.
유사점: 피카비아의 〈이데알〉 역시 쓸모 없는 기계를 그려내며 기술 도해의 권위를 조롱한다. 문자와 이미지가 엉뚱하게 결합된 화면은 다다의 유희와 불합리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차이점은, 뒤샹은 실제 사물을 가져와 맥락을 뒤집었고, 피카비아는 드로잉·회화를 통해 기계 이미지를 ‘허구의 초상화’로 변형했다는 점이다.
3. 정리
큐비즘적 요소: 분절·기하학화·평면성 → 기계 도해처럼 보이는 시각 구조
다다적 요소: 무용·아이러니·차용된 활자 → 기능을 조롱하고 예술 제도를 비트는 농담
즉, 피카비아의 〈이데알〉은 큐비즘이 마련한 시각적 언어를 빌려와, 다다적 유희와 조롱으로 전환시킨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