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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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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반드시 좋은 것 반드시 나쁜 것은 없다. 그 상황에 적절하거나 부적절한 게 있을 뿐이다. 최근 강릉 물부족사태에서 보아알듯 폭우는 바닷가 마을을 침수시키지만 고산지대에서는 같은 기상현상이 해갈의 축복이 된다.


어? 강릉은 바닷가 근처아냐? 싶겠다. 물리적 거리는 바다와 가까우나 급경사 지대문제로 물이 고이지 않고 빠르게 바다로 흘러가 버리는 문제가 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인생에서 각자 간절히 원하는 결핍의 대상이 다르다. 그러나 분류해보면 대개 돈, 사람, 명예, 가족, 재능을 크게 넘지는 않는다. 사주에서는 이를 재성, 비견, 관성, 인성, 식상이라고 표현한다.


아예 없는 것도 문제고 조금밖에 없는 것도 문제다. 돈이 없으면 해야할 것을 못하고(무재), 돈이 적으면 시작은 했지마 찍먹으로 끝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로 내가 증명된다.


이 구체적인 형태는 사람과 처한 환경마다 다른데 예를 들어 자금 부족으로 프로젝트를 원하는 모습으로 구현하지 못했거나, 집에 돈이 없어 학업을 못 끝냈거나, 엔젤 투자를 받지 못한 스타트업, 금리가 높아 대출금을 충분히 받지 못해 시설투자를 양껏 못한 사람, 대형 캔버스에 물감을 양껏 사용하지 못한 예술가 등등이 있겠다.


그러나 돈이 과다해도 역시 문제다. 다 쓸 수 없고, 또한 가오나시처럼 갑자기 돈과 함께 돈이 나갈 일이나 여러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서민은 재벌을 부러워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코스피의 늪에 갇힌 동학개미는 폭등장의 서학개미를 부러워하지만 돈이 벌리면 나갈 돈도 많다. 생각하지 못했던 수수료, 종부세, 부가가치세, 협회 가입비 온갖 내역이 생긴다. 사주에서 재성은 재물뿐 아니라 일복을 뜻하기에 돈을 번만큼 또한 쓸 일이 많아진다. 그렇게 돈은 돌도 도는 것.


돈의 본질은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증폭시켜주는 것이다. 사업 아이디어가 프랜차이즈화가 되고, 작은 캔버스에 그리던 화가가 대형을 그리게 되고, 여행유투버가 더 많은 지역을 방문하게 되고, 코미디언이 더 많은 사람을 웃기게 해주거나 하는 것이다. 본디 갖고 있던 아이디어가 사회에 패악을 끼친다하더라도 증폭이 된다. 그러니 좋고 선한 씨앗에 에너지가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지금 돈이 없는 이라도 언젠가는 돈이 생긴다. 자신의 시절이 온다. 품어왔던 나만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흐드러지게 열매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단단히 땅을 다지고 기술을 연마하고 생각을 조탁해두어야한다. 마치 가을을 상상하면서 봄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한겨울인 새해에 한 해 농사 플랜을 디자인하듯이.


아까 말했든 재복이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쓸 일, 곧 일복을 뜻하기 때문에 물길이 들어와 노를 저어야할 때가 오면 공부하고 뒤를 돌아 볼 시간이 없다. 매일 일을 쳐내느라 바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갑자기 이렇게 삶이 바뀌었다는 것을 소급해서 느끼게 된다. 


2010년 이후 엔젤 투자 받고 스타트업 차린 이들이 많다. 이들의 얼굴을 보면 돈은 벌었어도 단 몇 년만에 얼굴이 폭싹 삭고 흰머리 가득한 경우도 여럿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같은 현상을 경험했다고 본다. 무명의 장삼이사로 히키코모리로 학생으로서 지내던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흘러갔는데 자신의 타이밍이 도래하자 갑자기 시간이 배속으로 흘러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다. 자기 운명에서 짜여진 바대로 다른 속도의 시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돈뿐 아니라 관(명예, 조직)이 과다할 경우 이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감의 범위를 지나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통제하는 대상이 많아진다. 인성이 과다할 경우 내가 소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도움을 받게 된다. 예컨대 최근 올라 온 유투버 딕헌터의 300만원짜리 부산-오사카 페리 오너스룸 이용기를 봤는데 한 사람이 다 먹기에 힘들만큼의 음식, 술, 프로그램이 과다하게 제공되어 행복에 겨워 힘들어하는 영상이었다. 그 하루에 몰아서 먹고 즐기지 않고 야간 알바하면서 돈 모으는 힘겨운 나날에 나누어서 지급되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인생이 신기하게도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때, 폭발적으로 공부해서 머리가 좋아지는 때, 폭발적으로 돈이 벌리는 때, 폭발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때, 폭발적으로 일이 많은 때가 있다. 마치 자고 일어났더니 씨앗이 우후죽순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이 그렇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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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는 다른 유럽어와 다르다. 대개 SVO 어순의 직선적인 문형이 특징인 유럽어에 비해 행위주체인 주어를 강조하지 않고 수동태나 사역형을 활용해 행위자를 생략하고 사건을 강조한다. 


예컨대

John broke the window 존이 창문을 깼다


를 직역한 Juan rompió la ventana보다


la ventana se rompió 창문이 깨졌다가 자연스럽다.


물론 프랑스어에도 네가 보고 싶어=I miss you를 Tu me manques라고 뒤집어 표현해 너는 나를 그립게 만들어, 라는 로맨틱한 표현이 있지만 인과관계보다 행위의 매개적 성격을 부각시키는 표현은 스페인어에 훨씬 많다.


우선 se가 다른 유럽어에 비해 재귀인칭대명사일 뿐 아니라 무인칭(다들 그렇다), 수동(~되었다) 등 다양하게 쓰인다. 다른 언어에서는 poderse처럼 can에 itself가 붙어있는 표현이 없고, verse처럼 see oneself가 되었다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무인칭, 중간태, 재귀, 주체 후위화를 모두 포괄하는 스페인어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그래서 se puede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가 가능하다로 해석되고, verse(보통 se vio로)는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나타난다, ~보인다, ~듯 하다'로 옮겨진다. 이런 표현법의 특징은 목적어나 사건 자체가 주어처럼 문두로 올 수 있으며 행위자는 생략하고 상황을 강조하며 동사와 붙어 무인칭 수동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영프독에는 정확히 대응되는 직역이 없다. 옮기려면 항상 가상의 주어 또는 문어적 구조가 필요하다. 없던 주체를 발굴하는 등 구조를 꺾어야한다.


이런 스페인어는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아랍인의 언어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랍어도 동사를 먼저 쓰고 주어는 종종 가려지기 때문이다 VSO 혹은 VO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또한 아랍어 동사 10변형 중에서 스페인어와 같은 특징을 보이는 표현이 많다. 예컨대


아랍어 동사 10변형 개요에서 9번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그런 뉘앙스다 (대략 아랍어과 2학년 진도)

I (فعل) 기본 의미, 단순 동사

II (فعّل) 사역 / 강화 / 반복

III (فاعل) 상호적 / 상호작용

IV (أفعل) 사역 / 강제

V (تفعّل) 재귀적, 자기행위 강조

VI (تفاعل) 상호적 재귀

VII (انفعل) 수동 / 자기발생 / 상태 변화

VIII (افتعل) 반사적 / 자기 관련 / 재귀

IX (افعلّ) 색·상태 관련 (형용사적)

X (استفعل) 사역적·요청적 / 얻다, 구하다


동사 수준이 아니라 문형 수준에서 보자면 아까 읽었던 히스토리아 아르떼의 도라 마르 글에서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Los últimos años de esta fotógrafa olvidada los pasa en su casa, con un círculo reducido de amistades.


한영으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This forgotten photographer spent her final years at home with a small circle of friends.

(혹은 더 원어민스럽게 자연스럽게 바꾸면, In her final years, this forgotten photographer lived quietly at home, surrounded by a few close friends)다. 


이 잊힌 여성사진작가는 말년에 집에서 가까운 몇몇 친구들과 조용히 지냈다.


물론 reducido에는 줄어든 친구라는 뉘앙스가 있긴 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문형이다.


스페인어의 문구를 그대로 한영으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 잊힌 여성 사진작가의 마지막 몇 년은) 그녀는 (집에서 보낸다) (작은 친구들의 모임과 함께)

(The final years of this forgotten photographer) (years) she spends at home이다.


특이한 구조다.


주체인 사진가가 아니라, 시간을 보내다라는 행위의 목적어가 도치되었고(토픽강조) 주어인 그녀는 동사에 포함됐다. 원래 스페인어는 동사 어미에 주어가 표현되어서 she spends가 아니라 spends(pasa)라고 쓰였다.


게다가 years도 대명사los로 한 번 더 반복되었다.


Los últimos años de esta fotógrafa olvidada

이 잊힌 여성사진작가의 말년을

los pasa en su casa

(그 시간을) 보냈다+<그녀는> 집에서



이를 통해 사건이나 결과가 먼저 나오고 부차적인 행위자는 생략가능한 주체 후위화의 언어적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간접적 매개적 조정적 관점으로서 독립적인 개인이 주체적으로 했다라는 서유럽식 사고보다는, 그렇게 되었다라는 사건 자체에 주목하는 아랍어에 영향받은 사고방식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수동태나 중간태(무인칭) 활용을 통해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변화에 초점을 두는 접근방식도 보인다. 


이런 특징은 일본어에서도 보이는데 예컨대 직접적으로 사랑고백을 하지 않고, 분위기상으로 사귀게되어졌다라고 한다든지, 원하는 것을 직접 쟁취하지 않고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되어졌다고 말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일본어에서는 꾈 유를 써서 사소우(誘う)같은 표현이 많이 보이는데 

사소와레따(誘われた)라는 말은 권해졌다, 꾀어졌다, 불러내졌다라는 말이고, 피동형(국문법에선 수동태라는 말이 틀리다)이 자연스럽지 않은 우리식로 바꾸어보자면 (상황에 이끌려서) 가게 되었다, 즉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デートに誘われた

직역은 데이트에 권해졌다이고

데이트하게 되었다=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다

라는 뉘앙스로 해석이되는데

이런 답답함이 싫어서 직설적 화법으로 바꾸자면

숨겨져있고 없던 주어를 복원해야한다.

"그가 나에게 데이트 신청했다"라고.


이와 비슷하게 지명되었다, 지목되었다(指名された)도 많이 쓴다. 이런 표현은 한 두개가 아니다.

사랑이나 관계에 있어서도 간접적 표현방식을 선호한다.


그런데 어쩐지 아랍-스페인-일본 모두 척박한 기후에서 종교의 역할이 강하고 압도적인 자연의 위력 속에 사람들은 순종적이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방지할 수 없는 천재지변 속에 교단과 함께 대동단결해 상호부조를 하는 상황 속에서 발아된 공통적인 사고방식이 언어에 드러나는 것 같다. 


자연환경과 기후가 인간의식과 언어표현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행위자는 뒤로 빼고 감추고 직접 행동이나 발화보다 결과나 상황으로 사건을 묘사해서 감정적 사회적 완충장치를 만드는 언어는


주체의식이 뿜뿜 빛나고 자기 문제는 스스로 DIY로 해결하고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마을로 얼마든지 이동하는 북유럽식 사고와는 차이점이 있다.


아랍의 모래사막 척박한 땅에 인격화된 유일신 구원자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역시나 뜨겁게 작열하는 스페인의 기후에서 태동한 열렬한 가톨릭 신도들이 아메리카 대륙까지 전도를 나갈 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습기가 많은 더위를 어떻게 해볼 수 없어 견디는 자들이 매년 태풍 쓰나미 지진의 자연재해를 견뎌야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불교나 신도의 조직력을 통해 어떻게든 마을 단위로 대동단결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런 기후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는 

자랑스러운 내가 이것을 혼자서 하였다. 라는 말보다는

우리 모두 다같이 하였다, 이런 식으로 되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집단이 하였다. 하는 식으로 말하게 되지 않을까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결국 집이 쓰러졌다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다시 복원되었다고

우리 모두 함께 한 결과 그렇게 되었다고

그런 결과 자연스레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기후와 생활방식이 언어와 사고에 영향을 미쳐 영향주체 후위화, 결과 사건 중심, 간접적 매개적 완충적 상황중심적 결과중심적 집단적 사고가 나타난다고 본다.


물론 일부의 특징으로 읽어낸 사례일 뿐 집단 구성원의 사고를 표준화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케바케 사바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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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유투브에 피터 자이한의 책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리뷰가 어제 올라왔다. 앞으로 국제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지 진단하는 책이다. 이미 21년에 나왔으나 메가 인플루언서의 샤라웃으로 인해 소형 출판사인 김앤김북스는 주말 복권 당첨된 기분이겠다. 전직원 나와서 중쇄를 돌리고 있겠지


나도 오래 전부터 이런 지정학관련 책은 꾸준히 구매해 읽어왔다. 대개 저자의 정치성향이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는 논설이다. 지역분석에서 저자의 지역학 이해정도가 드러나기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다.

지금까지 알던 문제풀이법칙이 통하지 않을 때 해설지를 찾는 기분으로 분기점마다 나오는 책이다. 그런 해설서 중 내가 처음 읽은 책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1997)>이었고 그 다음 키신저, 그 다음 경제지리학의 폴크루그먼(2008, 2012). 최근엔 피케티다. 어떤 의미에서는 논리와 이성이 발달한 경제학적 마인드를 지닌 일반투자자가 읽는 예언서다


그 오랜 독서를 통해 얻은 것은 진단의 적실성이다. 정말로 그들이 생각한대로 세계가 흘러갔는가?


그러니까 시간이 3년 5년 10년 흘러서 보니 개별 저자의 진단이 유효했는가? 그들이 예측한 미래가 찾아왔는가? 그들의 해법은 구현되었는가? 구현되었다면 어떤 효과를 불러왔는가? 명기된 효과 그대로인가 반반인가 역효과인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독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적실한 답을 얻을 수 있다. 해설서는 답을 암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게 아니라 두뇌훈련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단은 옳았으나 결과는 다른 경우

진단은 틀렸으나(원인이 다르나) 실상은 그렇게 된 경우

아예 파악하지 못한 경우

파악은 했으나 비중을 높게 두지 않은 경우

매우 세분화해서 분석해볼 수 있다.


내 생각은 이렇게 갈음한다. 세계는 그렇게 흘러갈 것이고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위험이 있고 또 없을 것이다. 사람은 두려워하며 두려움을 잊고 살아갈 것이다. 호들갑과 일희일비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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