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밀함 보고 왔다.


인터미션 10분이 있는 4시간 반짜리 영화로, 전반부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 후반부는 연극 장면으로 구성된다. 에필로그식으로 마지막에 민간경비대에 들어간 와타나베와의 지하철에서 조우로 대장정을 끝맺는다. OTT로 봤으면 중간에 끊었을텐데 영화관에서 착석 중이라 타율로 끝까지 볼 수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다른 의미에서 영화관에서 봐야만하는 영화다. CGV에서 8.19까지 하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 초기작 1시간짜리 단편이 1만원인데 그 4.5배가 1만5천원이니 가성비가 좋다. 감독의 전후작 관계를 생각했을 때 드라이브 마이 카와 해피아워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영화다.

영화는 한 마디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의 인간관계 균열과 <도련님>의 공동체 부적응과 떠남이라는 테마를 현대 도시의 연극으로 전이시킨 것 같다. 함께 있는 동안의 열정이 끝내 함께 하지 못함으로 귀결이 된다.

아마 중간 2011년 연평도 해전 같은 정세불안이

왜 등장했을지가 가장 의문일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도 메이지 시대의 종언과 외부 정세 변화같으 구조적 요인이 내면의 흔들림에 영향을 주었듯, 이 영화도 파주에 있는 형에 대한 안위에 대한 불안이 와타나베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고 자위대의 대체인 민간경비대이자 사람을 죽이지 않는 군악대로 입대하게 만든다. 그가 떠난 자리에 와타나베 역으로 료짱이 소환되는데 연극을 보면서 내내 와타나베였다면 이 역이 어울렸을까 생각했다.

한편 연극 동아리는 느슨한 연대로 이루어진 관계망을 스스로 졸업한 와타나베는 규율과 통제가 강한 군사 조직으로 이동하는데 오히려 연극이 배역에 따라 사람을 전형적으로 만들고 개인의 역량을 판단하고 악센트와 톤을 지시하는 등 군인보다 더 억압적이라는 부분이 아이러니하다. 오히려 2년 후 역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군인으로서 와타나베가 더 자유롭고 생기있어보이며 자기 생각을 유연하게 표현한다. 도련님에서 이상주의자가 지방의 작은 학교를 떠나는 엔딩과 닮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 보고 왔다.

오프닝은 제목 블랙화면 등을 제외하고 카메라영상만 15쇼트고

전체 영화는 총 22개 신으로 구성되어있다(고 카운팅했다)


대략 이런 느낌이다.


#1: 두 소년이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연극 선생님댁 가는 길.

#2: 연극 연습한다. 선생님의 크리틱, 등뼈 이상하다고 말함.

#3: 치히로는 바닥에 누워있고 짙은 청록색 미니 벤틀리 안에 타고 있는 여자. 나이든 남자 등장, 치히로와 둘이 장난치고 치히로는 뛰어 간다.

#4: 형과 여자의 관계 등장. 폴립테루스 이야기.

#5: 강둑에서 둘은 연기 연습하고 아즈사 첫 등장

#6:

#7: 강가를 배타고 가는 신.

#8: 당구장. 치히로는 가챠(뽑기)해서 폴립키링을 뽑고, 아즈사는 나오야 안 만나고 싶다고함

#9: 킷사텐에서 담배

숄더샷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같음.

#10:

선생님의 메시지 화면에 자막으로. 처음으로 나오야의 이름이 등장한다.

킷사텐 다시. 이해되냐 난 모르겠다


둘의 긴 대화 두려움

연락 안 받는 아즈사. 아래에서 지켜보는 나오야

강둑에 배를 대고 건진 노란 프리즈를 갖고 놀려는 사원들. 다섯 명이 포메이션을 갖추었는데 회사선배 강압적으로 프리즈 던져서 버려버림

#15:

강가를 걸어가는 둘, 발견

귀가한 치히로. 빨래 개는 여자

#17: 강가 근처에 누워있는 치히로. 일어나서 움직임 연습하고 아즈사가 다가옴. 다가가 손바닥 키스. 깨물어 죽임

#18: 강물 살짝 비추고

#19: 강둑에서 움직임 연습하는 나오야. 아즈사 발견. 물고기처럼 죽어 있음. 부레처럼 목이 펄떡펄떡.

#20:

#21: 수미쌍관. 비 오는 데 두 소년이 계단 위를 올라간다. 연극 선생님댁 가는 길.

#22: 가장 긴 장면. 연극 움직임, 중간에 형사들이 입구에 들어오고, 물고기가 되었다가 물이 되었다가, 호흡으로 핥듯이 서로의 피부를 쓰다듬는 것까지 완성 후 오케이 하고 나오야가 자기가 죽였다고 형사들에게 말하고 문을 나서고 여형사가 유류물인 피묻은 밴드를 봄

1.자막에 오타가 있다. 뚜렸하다는 쌍시옷 받침이 아니므로 뚜렷하다로 고쳐야한다

2.강변을 걸을 때 형이 할머니가 강가에 응꼬 쇼벤 싸지 말라고 한 대사에서 똥오줌이라고 다 번역하는 편이 소변이라고 하나만 말하는 것에 비해서는 낫다

3.나오야의 이름은 선생님의 메일(문자메시지) 화면에서 첫 등장하는데 直也. 한국어 자막에 없기에 한국관객은 신 5개쯤 지나서 치히로의 말로 알게된다.

영화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 실타래가 서로 엮여져있듯 한 장면의 대사가 다음 장면 혹은 다다음 장면에서 다시 나온다. 예컨대 신4에서 머리 뒤 혹을 말하며 형과 여자가 말한 폴립테루스가 신8에서 폴립 키링 가챠로 등장하는 식

서로 호흡으로 핥듯이 피부에 닿지 않는 무용 움직임과 섬뜩함, 마음을 내어주지 않음, 알 수 없는 관계의 모호함이 음악과 연출과 함께 엮여져서 전달된다.

주인공은 머리 뒤 혹처럼 모르는 것이 두려운데 만지면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하고 엔딩에서 나오야가 만지고 오케이 사인을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초월
이묵돌 지음 / 김영사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정에 폈다가 한숨도 못 자고 밤을 꼴딱 지새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페트라 펠리니 지음, 전은경 옮김 / 북파머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미지를 중첩하는 방식 세 가지에 대한 생각의 실타래

1. 선화랑 이길우 향불 패치워크 콜라주


2.모란미술관 이용덕 입체적 역상조각의 볼륨감과 운동성


3.갤러리508 이길우 렌티큘러 속 비현실 픽션과 관음증voyeurism



인사동 선화랑은 지난 3-5월에는 프랑스 AI 아트 그룹 obvious전을 해서 인상적이었다. 이 거리에 있는 원투 어퍼컷은 라메르, 밈, 선인데 셋 중 최소 하나에서는 인상깊은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선화랑에서 이번에 만난 이길우 작가는 향불로 그려 태워진 흔적과 오방색 패치워크, 자유롭게 잘라붙인 색지를 오버랩해 인간 군집이 중첩된 초상을 그린다, 아니 그린다기 보다는 만든다. 멀리서 하나의 조형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두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고 익스트림 클로즈샷으로 보면 조형을 구성하는 점은 태워진 구멍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의 작업방식이 어떠하길래 이미지가 두 개가 보이는가? 우선 그을린 무채색의 이미지와 컬러감 있는 콜라주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다는 것는 쉽게 보인다.


전시 서문에서는 어렵게 써있지만 쉽게 말하자면 일단 먼저 향불로 종이를 태워 사람의 형상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종이에 구멍과 탄 자국이 생긴다.


그 위(전면)에 스케치한 사람 그림이 있고 일부 겹치는 부분에는 오방색을 칠한다. 칠하지 않은 부분은 그냥 비워둔다. 그 뒤쪽(후면)에는 다른 그림이 있는 종이를 덧대어 붙인다(배접).

이렇게 하면 앞뒤의 그림과 태운 흔적이 겹쳐 보이면서, 하나의 이미지 안에 두 개의 장면이 동시에 나타난다. 즉, 앞쪽에는 태워진 사람 그림과 색이 있고, 뒤쪽에는 또 다른 그림이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앞뒤가 섞여 보이며 복잡하고 입체적인 화면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이렇게 전후면을 배접하는 방식을 통해 생성과 소멸의 시간층을 동시에 드러내고자 했다. 잘려진 조각보는 아작나고 부서진 오늘날의 사회적 관계성을 향불은 비어있음, 공, 허적과 종교 의례를 나타낸다.



한편 모란미술관의(물론 다른 곳에서도 보았지만 찍은 사진이 모란미술관 사진이라서) 이용덕의 역상 조각은 걸어가면서 볼 때 이미지가 나를 향해 움직이는듯한 운동감을 준다. 이 역시 이미지의 중첩이라 본다. 애니메이션이 초당8프레임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주는 것처럼 볼륨감 있는 이미지의 움직임도 프레임이 다중 중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겉보기로는 볼록한 형상이 사실은 오목한 음의 공간임이 인지할 때 우리의 지각은 그 역상조각이 환영임을 깨닫게 된다. 관객이 이동하면서 음영과 윤곽이 반전되어 형상이 뒤집히는데 조각의 빈 공간은 결여가 아니라 가능성이 거주하는 장(場, 필드)가 된다. 이 빈자리는 하이데거적 항아리의 비어있음이자 화엄의 상호침투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며, 인식의 지평 속에 존재자들이 서로의 영역에 자유로이 스며드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배준성은 비닐 필름과 렌티큘러를 매개로 두 개의 이미지를 동시 겹쳐 보이게 하는 회화적 장치를 만들어냈다. 투명성과 반사성으로 평면 위에 깊이뿐만 아니라 운동을 새겨 넣는다. 배준성을 세 번째 설명하는 이유는, 이길우의 중첩된 이미지와 이용덕의 이동하는 시점에 따른 이미지의 움직임을 모두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걸어가면서 시점을 옮기면 이미지가 전이되고, 실재와 가상이 한 화면에서 중첩되며 전통적 캔버스의 정지성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린다. 비닐의 물성이 회화의 붓질과 결합해 시간성과 공간성을 확장시키는 지점은, 고전적 화면을 복합적 시각체험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전시장에서 봤던 도록의 프랑스인의 해제에는 관음증을 중심으로 설명했는데 관객이 회화를 보면서 동시에 몰래 들여다보는 시선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구조를 강조했다. 관람자는 정면에서 보이지 않던 이미지가 시선을 옮길 때 드러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때 보는 사람은 감춰진 장면을 엿보는 관음적 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프랑스 미술비평 전통에서 관음증(voyeurisme)은 성적맥락이라기보다 보여짐과 숨김, 시선의 권력 관계를 분석할 때 자주 쓰인다. 배준성 작품의 경우 렌티큘러 표면은 마치 커튼이나 얇은 막처럼 한 이미지 뒤에 또 다른 장면이 숨어 있는 구조를 만들고 관객은 움직이며 그 장면을 발견한다. 이러한 점에서 두 이미지의 중첩은 시각적 관음증의 체험을 제공하는 회화 속 은폐와 노출의 장치이며 같은 시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얽힘이다. 






세 작업은 매체와 전략은 다르지만 모두 이미지의 겹침과 전환이 해석의 열쇳말이다. 


이길우는 소멸의 흔적을 재배치해 시간의 이중구조를 보여주고, 이용덕은 물리적 공간의 음양을 뒤엎어 지각의 규범을 교란시키며, 배준성은 빛과 플라스틱으로 시점을 매개해 가시적 이미지를 전이시킨다.


한편 이길우는 태움과 배접을 통해 종교적 사회적 서사를 조각보처럼 이어 붙인다. 이용덕은 공간의 부재를 촉각적 불확실성으로 바꾸고 배준성은 평면에 내재한 심도와 반짝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관객 경험도 분명히 갈린다. 배준성은 시선의 이동으로 즉시적 변화를 제공해 시각적 스캔을 유도하고, 이용덕은 몸의 이동을 통해 믿음을 시험하는 실천을 요구하며, 이길우는 가까이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이면의 흔적과 이야기들을 하나씩 열람하게 만든다. 


배준성의 화면은 기술적 정교함과 빛의 장난으로 장르 경계를 흐리면서 시각적 쾌감을 제공하고, 렌티큘러와 비닐은 사진적 재현과 회화적 물성을 오가며 이미지를 유연하게 만든다. 


이용덕은 비어있다는 관조를 촉발해 존재와 인식의 조건에 대해 묻고, 이길우는 조각보와 향불의 의례성을 빌려 사회적 다양성과 공존의 은유를 빚으며 태움의 무상함, 공허함에 대해 보여준다.




이미지의 중첩을 보는 관객은 보임과 안보임 사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된다. 서로 다른 시공간과 해석방식이 한 화면에서 공명한다. 시적이면서 엄밀하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