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 염주, 기도 반지 같은 "기도 아이템" 즉, 휴대용 종교 성물은 종교와 자본주의 시장이 교차하는 필드다.
뿐만인가? 장신구를 사회제도, 종교문화가 교차하는 매개물로 역사적으로 분석해볼 수도 있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15-16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세 폭 제단화(triptych)다.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과 무어인을 가톨릭으로 대동단결해서 밀어낸 레콩키스타의 승리는 종교 도구를 보급해 성당뿐 아니라 집 같은 개인의 신앙 공간까지 확장해 집단을 신앙심으로 하드트레이닝시킨 결과였다.
781년에 걸친 군사적, 종교적 투쟁은 강렬한 집단 정체성과 신앙심을 만들어냈고, 영토회복운동에 결국 승리했기에 더 열렬한 신앙심으로 불 타 신대륙 기독교화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휴대가능하고 리얼한 세 폭 제단화는 종교적 픽션을 일상 영역으로 초대하고, 매일의 루틴과 규율을 지탱하며 공동체의 도덕 질서를 형성하는 실질적인 장치로 기능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맥락은 세계 여러 다른 문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티벳의 마니차(기도 바퀴), 러시아 정교회의 손가락 기도반지, 메카 순례에서 가져오는 작은 카바 모형, 무그할 인도의 장식적 기도 구슬, 에도시대 일본의 오마모리(御守) 등등등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정치적 변화, 사회적 긴장, 군사적 충돌, 상업 네트워크, 국제 정세와 얽히며 신앙심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단단한 하루의 삶으로 구현한 사례다.
그럼 이렇게 상징성과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기도 아이템, 종교 성물은 보장된 시장인데 왜 우리가 아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이 영역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않았을까?
LVMH나 까르띠에 같은 브랜드가 십자가 모티프를 주얼리로 장식하거나 성상 이미지를 디자인에 차용한 경우는 있지만 실제로 기도에 사용되는 묵주나 염주 시장에는 발을 들이지 않은 것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도 성물은 소유보다 신앙 행위에 귀속된 물건인데 현대사회는 정교분리, 프랑스식으로 말하면 라이씨떼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능이 본질을 규정하는 아이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 프리미엄은 종교적 진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더 비싸면 더 기도 성능이 좋은가? 비싼 부적을 구매하면 신앙심이 더 크다는게 증명되고 더 큰 소원이 이루어지는가? 논쟁을 부를 수 있다.
나아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종교마다 정해진 도상, 형식과 소재, 축성(祝聖) 절차가 엄격해서 자유로운 창작과 트렌드 변주가 어려운 시장이다. 브랜드가 진입하기 쉽지 않다. 신학적 정통성, 종교 권위와의 제휴, 사용자의 영적 신뢰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맘몬신, 즉 종교화되었다. 명품 브랜드는 자본주의의 분파다. 예수회, 까규파, 조계종 같은 것이다. 제도 종교가 아닌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자본주의 원칙을 명품 브랜드는 정확히 따르고 전파하고 있다. 오늘날 연예인, 셀레브리티는 자본주의의 성직자다.
그런데 허들이 있다고 해서 시장성이 없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배리어는 틈새시장으로서 초기진입자를 방어한다. 구매 주기는 오래지만, 재구매율은 높고, 심리적 충성도는 절대적인 성물 아이템 시장.. 과연 브랜드가 언제까지 내버려둘까? 혹은 제도 종교가 아닌 부적 굿즈, 에소테리즘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처음만 어색하지, 자주 보다보면 익숙해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