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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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1 I 처처칭한 I 서미영옮김 I arte




"오늘부터 내 옆에 있기만 하면 

너는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없다."




남장을 하고 장안성으로 들어온 황재하, 그녀는 온가족을 독살했다는 누명을 쓰고 있는 도망자 신세다. 살인자 그것도 가족을 몰살한 극악무도한 사람이 되어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수배전단을 보게 되는 그녀. 가족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겠다는 결심으로 고향을 등진 그녀는 아는 이의 도움으로 왕부(왕들의 저택) 위병대 제복을 입고 기왕의 마차의 궤짝 속에 숨어들었다가 기왕 이서백을 만난다. 황실에서 최고로 뛰어난 인물로 황제는 "서백이 있는 한 짐은 이롭지 않다" 찬탄한 이였다.



이서백은 몰래 숨어든 황재하를 발견하고 황재하는 여자임을 들킨다. 이서백을 알아본 황재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이서백과 거래를 하게 된다. 이서백을 돕는 조건으로 환관으로 일하게 되는 황재하. 이서백은 장안에서 떠들썩한 연쇄 살인 사건 '사방안'을 증거 하나 없이 해결하고 이서백의 개인 사건을 해결하면 황재하의 가족사건을 재조사해줄 것을 약속한다. 이서백의 사주가 적힌 종이에 환잔고독폐질이라 쓰여 있었는데 이것은 홀아비, 장애, 고아, 무자식, 폐기, 질병을 의미하는 것으로 글자와 연관된 일이 생기면 해당 글자에 핏빛 동그라미가 생기는 신비스럽고도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 이미 그는고아에 장애가 있다. 왼손잡이인 그가 왼손을 쓰지 못하는데 당시에도 해당글자에 빨갛게 동그라미가 생겼었으며 현재는 홀아비를 뜻하는 글자에 빨간 동그라미가 생기고 있었다. 이서백의 혼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





중국고전소설이다. 더 정확하게는 사극 미스터리 로맨스라고 해야할까? 사극이라 고전미가 있고 사건을 추리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주인공은 기왕 이서백과 황재하(양숭고)인데, 캐릭터가 딱 인기있을 수밖에 없다. 남자 주인공은 한마디로 츤데레, 까칠하고 차가운 듯하면서도 뒤로 챙겨주고 여주인공은 청순하면서도 똑똑하고 당차다. 이 두 주인공이 그려가는 미스터리 로맨스, 사실 1권에서는 로맨스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1권에서는 운명같은 그둘의 만남, 관계의 시작,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황재하의 사건은 1권에서는 다뤄지지 않고 다른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 사건들은 이서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관문이라고 해야겠다. 여인의 몸이지만 환관으로 남장하여 동분서주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황재하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사극이니 당시의 이러한 여성의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잠중록은 비녀의 기록이란 뜻으로 황재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사건현장을 따라다니며 사건을 정리하고 추리할 때 종이와 붓이 없어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대신한 습관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 4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황재하는 여러 사건을 해결할 듯이 보인다. 어릴 적부터 사건을 여럿 해결해 얼굴도 모르는데 황재하를 좋아하며 칭찬하는 이가 많았고 그랬기에 그녀의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해,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실존인물인 남장여인 황숭하와 기왕 이자를 모델로 했다고 하니 중국인들에게는 더욱 인기가 있었을 듯하다.



우리나라 사극이 아니라서 지명이나 이름, 벼슬의 품계 등이 생소한 단점이 있지만 읽다보면 익숙해지고 이서백이 조금만 더 심술궂게 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잠중록1. 앞으로의 내용들이 궁금하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로의 마음에 어느 순간 들어가 있는 그들의 로맨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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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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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노래 I 매들린 밀러 I 이은선 옮김 I 이봄




우리는 피로 이루어진 세상, 그 피로 영광을 쟁취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싸우지 않는 건 겁쟁이들뿐이었다. 왕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든지 전쟁에 나가서 죽든지, 

둘 중 하나였다.



메노이티오스 왕의 아들 파트로클로스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 왕자가 아니었다. 귀족의 아들을 실수로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로 귀족들의 반발을 살까 우려한 왕은 파트로클로스를 프티아로 유배보낸다. 그곳은 파트로클로스와 같은 왕자들의 유배지였다. 늘 혼자였던 그를 친구로 지목한 프티아의 왕자 아킬레우스. 둘은 언제나 함께였고 친구가 되지만 얼마 후 프티아의 왕은 아킬레우스를 헤라클레스와 페르세우스를 가르친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에게 보낸다. 아킬레우스를 따라 간 파트로클로스는 함께 케이론에게 사냥법, 의술, 목공 등등의 기술을 배우고 어느 새 둘은 친구가 갖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된다.



본국으로부터 소환명령을 받고 프티아로 돌아온 아킬레우스. 그리스는 전쟁을 준비한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아의 파리스가 납치를 해간 것에 대해 그리스의 많은 나라의 왕들은 전쟁을 준비한다. 미모의 공주 헬레네에게 청혼하려했던 구혼자들은 오딧세우스의 요청으로 헬레네가 남편감을 정하고 남편이 되지 못한 이들은 헬레네의 선택을 존중하며 만약 헬레네를 빼앗아가려는 남자가 있을 경우 그녀의 남편의 편에 서겠다는 맹세를 했던 이들이 모두 모여 헬레네를 다시 찾고자한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님프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에 대한 예언 때문에 아킬레우스를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스키로스 섬에서 여장을 시켜 생활하게 한다. 그럼에도 섬으로 오딧세우스 일당들이 찾아오고 결국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은 시작되고 십년에 걸쳐 지리한 싸움이 계속된다. 신전의 여인을 전리품으로 데려간 아가멤논에게 여인의 아버지인 대사제가 딸의 몸값을 가지고 딸을 찾으러 오지만 돌려주지 않는 아가멤논. 그 이후로 역병이 돌고 이 사태가 아가멤논 때문인 것을 어머니에게 확인한 아킬레우스는 사태를 진정시키려 아가멤논에게 여인을 돌려주고 제사를 지내기를 권유하지만 아가멤논은 그런 아킬레우스에게 반감을 갖게 되고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파트로클로스의 친구가 됨)를 빼앗아간다. 장수의 명예인 전리품을 빼앗간 아가멤논에게 복수의 의미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불참하고 그리스군은 연속 패배한다.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여해주길 바라던 사람들의 바램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움으로 변질되고 파트로클로스는 그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염려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했다가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슬픔에 젖은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다. 헥토르가 죽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예언을 알면서도...




그는 주저앉아서 내 배에 얼굴을 댄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그의 눈물 때문에 내 몸이 

점점 미끌미끌해진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각색한 <아킬레우스의 노래>, 기본 바탕은 <일리아스>의 내용이기에 거친 장수들과 핏빛 전쟁의 이야기이니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겠다 싶었는데 너무나 재미있고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을 넘어선 그들의 사랑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파트로클로스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들의 만남과 아킬레우스를 아끼고 그의 명예를 지켜주는 싶은 마음과 전쟁이야기, 그리고 테티스, 예언 등을 파트로클로스의 담담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전해준다. <일리아스>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친구로 규정하지만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두 사람을 동성애 관계로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거만하며 인정머리 없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아킬레우스의 노래> 속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도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헥토르를 만나러 가는 멋진 장수이며 전체를 수용하는 포용력이 있는 캐릭터로 아가멤논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보통 신화를 보면서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고 공감이 어려운 부분은 그들의 행적만 있을 뿐, 행동에 대한 이유, 배경을 알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소설로 그려지는 매들린의 <아킬레우스의 노래>나 <키르케>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잘 대변해주기 때문에 공감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트로이전쟁은 헬레네라는 여자 때문에 생긴 전쟁인데, 헬레네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이 단지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는 이유로 맹세를 하고 맹세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 이것은 맹세에 대한 맹목적이면서도 빼앗은 영토도 포로도 없는 무의미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 속에서도 빛나는 파트로클로스는 배려와 사랑의 아이콘이다. 사랑하는 이의 명예를 생각하며 싸움이라고는 할 줄도 모르는 약한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하는 이유나 전장에서 아킬레우스처럼 용감하게 싸우려는 모습에서 전쟁 속에서 꽃피는 사랑은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고전적 동성애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가의 탁월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아킬레우스의 노래>. 전쟁이야기 <일리아스>가 이렇게 재미있고 슬프게 재탄생될 줄이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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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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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I 매들린 밀러 I 이은선 옮김 I 이봄




분노와 굴육으로 몸이 떨렸다. 몇 번을 더 깨달아야 할까? 신들의 기분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나의 평화는 매 순간이 거짓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몇 년을 살건 그들은 마음대로 내려와서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건드릴 수 있었다. (p. 296)


흔히 여자는 연약한 존재라고, 한순간의 방심으로도 망가질 수 있는 꽃이나 달걀과도 같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 말을 믿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었다. (p. 410)





태양신 헬리오스와 님프 페르세 사이에서 태어난 하급 님프인 키르케는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머니에게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다른 신, 님프들과 달리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며 눈이 노랗다는 이유로 조롱을 받는다. 성숙해진 키르케는 인간인 글라스코우를 사랑하게 되고 그를 신으로 만들지만 그는 스스로가 신이 된 줄 안다. 그리고 님프 중 아름다운 스킬라를 사랑하지만 키르케는 질투로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이 모든 것이 마법으로 가능했음을 아버지인 헬리오스에게 고하고 키르케는 아이아이에섬에 유배되는 벌을 받게 된다.


섬에서 키르케는 마법을 연구한다. 거친 파도에 떠밀려 섬에 표류하는 인간들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자신을 한낱 그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고 점점 마법은 힘을 갖게 되는데 어느 날 오딧세우스가 찾아온다. 그와 1년여 연인으로 지내지만 결국 그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고향으로 떠난다. 키르케는 임신을 하고 아들 텔레고노스를 낳는다. 오딧세우스의 수호신인 아테나가 찾아와 아들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지만 굴하지 않고 아들을 지키는 키르케. 아들 텔레고노스는 성장하고 만류하는 키르케를 뒤로 하고 아버지를 찾아러 떠난다. 그의 앞으로의 여정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주로 남성이 세상을 지배했고 스토리들도 남성들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여성들은 남성이 거사를 치를 때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를 배신하며 사랑을 택한다. 그리하여 남성을 도와 영웅으로 만들지만 사랑을 관철시키지도 못해 사랑과 동정조차 받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여성 신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자신의 반려자가 바람을 피우면 상대여성에게 벌을 주는 등 그 역할은 보기 좋지 않았으며 비중이 크지 않았다. 키르케 또한 신화에서 이렇다 할 비중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를 도와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과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서양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마녀인 키르케는 남성이 두려워하는 능력을 가진 여성으로 어쩌면 페미니즘의 선두주자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러한 키르케라는 마녀에게 생명을, 감정을,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매들린 밀러는 해냈다. 비중없는 마녀라는 캐릭터에게 그녀만의 생각을 만들어주고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녀만의 사랑과 그녀만의 인생을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드라마 속 작은 캐릭터인 조연을 주연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저 '신이니까' '그랬구나'하는 사건만 있는 것이 신화이다. 그 신화를 사람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짐작하고 풀이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인간의 몫이다. 그 속에서 교훈을 얻던 재미를 얻던 온전하게 인간의 해석만 있을 뿐인데, 비중이 작은 마녀라는 캐릭터를 살려 작가가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신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와 신선한 해석이다. 신화를 이렇게? 신화 속 캐릭터를 이렇게? 살려내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도록 <키르케> 속 키르케는 살아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패배를 안고 섬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어느 시대 어느 역사 속의 척박한 환경에 놓인 선구자만큼이나 아름답고 강한 여성을 만날 수 있는 마녀의 성장이야기 <키르케>, 매혹적인 그녀의 이야기에 재독의 욕심을 부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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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200주년 기념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메리 셸리 지음,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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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I 메리셸리 I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I 지학사아르볼




'새로운 종은 나를 창조주이자 근원으로 찬양할 테고,

행복하고 탁월한 많은 생명체들이 나로 인해 생겨나겠지.

나만큼 완벽하게 자손의 감사를 받을 자격을 갖춘 아버지는 

세상에 없을거야.'

이런 사색을 이어 가다 보니 만약 생명이 없는 것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지금이야 불가능하더라도) 죽어서 부패가 시작되면

다시 살려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험과 죽음을 무릅쓰고 눈과 얼음의 유배지인 북극을 탐험하는 월튼은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어 유일한 낙으로 누나에게 편지를 쓴다. 어느 날 빙하에 둘러싸여 꼼짝없이 갇힌 상황에서 한 사람을 구조한다. 그는 빅터 프랑켄슈타인. 기력을 찾게 된 후부터 빅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믿기 힘든 이야기를 .


빅터는 제네바 출신으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고모의 죽음으로 사촌 엘리자베스와 함께 살게 된 이후로 엘리자베스와 친구 앙리는 늘 같이 공부하고 놀며 지냈던 친구였고 부모님들은 빅터가 사랑스런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를 원하셨다. 열일곱살에 잉골슈타트대학에 입학하고 현대과학, 특히 화학에 관심을 쏟았고 치열하게 공부해서 실력이 빠르게 늘어났으며 생명을 가진 동물의 신체구조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되어 생리학과, 해부학, 인체의 분해와 부패에 대해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곤 생명이 없는 것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바쁘게 납골당과 해부실, 도살장을 드나들었고 마침내 피조물, 인간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은 괴물이었다! 그 괴물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차례로 빅터에게서 빼앗아간다. 왜?




"어떻게 하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자신의 피조물이 이렇게 친절과 동정을 애원하는데도 

따뜻한 눈길 한 번 안 주다니.

정말이다, 프랑켄슈타인. 나는 자비로웠다. 

내 영혼은 사랑과 인간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혼자, 비참하도록 외로운 혼자이지 않은가!

나의 창조자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나한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는 다른 인간들에게서 내가 뭘 바랄 수 있겠나?

그들은 나를 멸시하고 혐오한다.

인적 없는 산과 황량한 빙하가 나의 안식처다."




<프랑켄슈타인>은 영화와 뮤지컬로 재창조되어 200년 동안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이번 지학사 아르볼에서는 200주년 기념 특별판인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을 출간했는데 중간에 그림이 있어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을 만하다. 1797년에 태어난 메리셸리는 18살 때 이 작품을 써낸다. 18살, 지금이면 고등학교 2학년으로 어린 나이인데 사후 200년이 되도록 명작으로 남을 책을 써냈다니! 놀랍다. 더구나 영화나 뮤지컬로 흥행을 하는 작품이라면 스토리면에서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생각할 이슈를 준다는 측면으로 보면 대단한 작품의 탄생이라 할만하다. 물론 학계에서는 과연 진짜로 메리 셸리가 이 작품을 온전히 자신이 썼을까라는 논쟁은 있다고 한다. 남편인 퍼시 비시 셸리가 써 준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는 것.


<프랑켄슈타인>만큼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메리 셸리가 유부남인 퍼시 비시 셸리와 야반도주를 하고 살면서 여행을 가는데 유명한 고든 바이런과 그의 주치의였던 존 윌리엄 폴리돌리와 함께 떠난다. 제네바의 몽블랑 근처라고 하는데 당시 바이런이 밤에 무서운 이야기를 하자는 제안을 하고 그 때 나왔던 이야기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었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고든 바이런의 주치의였던 존 윌리엄 폴리돌리가 꺼낸 이야기가 1819년에 출간을 하는데 제목이 더 뱀파이어였다. 현대의 모든 뱀파이어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이다. 고든 바이런도 굉장히 유명한 시인이며 메리 셸리의 남편인 퍼시 비시 셸리 또한 낭만주의 3대 시인인걸 보면 문인들의 여행지에서의 한 순간이 200년 동안 회자될 명작을 낳은 시간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프랑켄슈타인>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 부제는 어떤 의미일까? 잠깐 생각해보자. 프로메테우스는 누구인가? 그는 인간에게 불씨를 제공하고 제우스에게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은 신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판본이 많은데 그중 하나에 의하면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사람의 창조를 명하고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한다. 흙으로 빚어서 숨결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만들었던 의미에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를 붙인 듯하다.


신화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신화까지 공부하게 만드는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뛰어 넘어 창조주가 되고자 애썼던 한 남자와 그의 피조물 간의 슬픈이야기다. 순수하게 과학을 좋아하던 청년이 열정을 바치다보니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는 야심을 갖게 되고 피조물을 만들었지만 그 피조물에 대해 엄청난 혐오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은 사랑받고 싶고 순수한 이성을 가졌음에도 인간들에게 배척되고 혐오와 위험의 대상으로 몰리며 자신의 창조주에게마저 버림받는 괴물, 이름도 없이 그저 괴물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은 인간들과 떨어진 황량한 곳에 가서 자신과 같은 여성 피조물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만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은 허락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과학도의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자신의 시도를 후회하며 책임지려는 창조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피조물도 모두 슬픈, 현재에 와서 읽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시대적 이질감을 느끼질 못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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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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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I 타라웨스트오버 I 김희정옮김 I 열린책들




P. 505 오래된 불만들을 끊임없이 들먹이며 탓하기를 멈춘 후에야, 아버지의 죄와 내 죄의 무게를 견주는 것을 멈추고 내 결정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등식에서 완전히 뺀 후에야 가능해진 일이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는 것도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그럴만큼 큰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했기 때문에.


P. 506 나는 여전히 그 소녀였다. 좋게 봐준다 해도 나는 두 사람이었고, 내 정신과 마음은 둘로 갈라져 있었다. 그 소녀가 늘 내 안에 있으면서, 아버지 집 문턱을 넘을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타라 웨스트오버, 그녀는 미국 아이다호주의 벅스피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의 종교관 때문에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학교에도 가지 않으며 예방접종 한 번 하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Y2K(전쟁)가 일어날지 몰라 대비차원에서 늘 복숭아병조림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하루 일과였다. 홈스쿨링을 한다지만 성경을 읽은 것 외에 교과서라는 것조차 모르고 성장한다. 장성한 언니 오빠들은 집을 떠나가고 일할 사람이 없어서 어린 타라까지 폐철 처리장의 일을 돕게 된다. 위험하고 안전조치란 거리가 먼 곳에서 '신이 도와주신다'라는 생각으로 위험한 일을 거침없이 하는 가족들. 아마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아버지는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타라의 엄마를 산파 밑에서 일하게 한다. 타라의 엄마는 산모의 상태에 따라 약초와 오일을 조제해서 순수 전통요법으로만 산모를 도와 아기를 받는 산파가 된다. 교통사고가 나고 가족 모두가 다쳤고 특히 타라의 엄마는 뇌의 손상을 입을 만큼 크게 다쳤지만 아무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약은 평생에 걸쳐 몸에 쌓여 여자라면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할 뿐더러 몸에서 배출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버지 때문에. 현대의학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로 인해 엄마는 약초로 통증을 해결한다.


더워서 옷 소매를 어깨까지 올렸다가 아버지에게 여기는 매춘굴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립그로즈를 발랐다가 오빠한테서 창녀라는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의 말씀은 법이었고 타라는 숀 오빠의 폭력행사에 늘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하지만 숀의 폭력행사가 오빠의 진심이 아니었을거라고 장난일거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는 타라, 결국 자신의 잘못으로 오빠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는다.


오빠 타일러의 대학입학을 보고 타라도 공부를 해 대학에 입학한다. 물론 아버지와의 마찰은 당연히 있었다. 주님의 은총을 저버리고 인간의 지식을 천박하게 탐하려고 한다며 머지않아 주님의 분노가 타라에게 내릴 것이라고 독하게 말하는 아버지. 대학에 입학해서 타라는 교수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타라는 시골에서 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자신의 성과와 능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늘 억눌려서 살았으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또래 친구들의 의상이나 행동에 어리둥절한 타라.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학비 보조금을 절대로 받지 않으려는 타라. 정부의 보조를 받는 일은 발목을 잡히는 일이라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고 너무나 오랫동안 타라는 갇힌 사고를 해온 탓에 정부보조금을 받기까지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에서 공부하며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타라,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학비 보조금을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잘못된 교육, 잘못된 정보들에 대해 분석하는 타라는 더 이상 예전의 어린 타라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자아를 찾았다.




1986년생인 타라 웨스트 오버. <배움의 발견>은 자서전 형식으로 쓴 회고록이다. 86년생이면 자서전과 회고록을 쓰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자서전을 썼을 충분한 이유를 발견한다. 어쩌면 저자와 같은 또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때문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세상의 종말을 믿는 모르몬교도이다. 모든 모르몬교도들이 다 타라의 아버지 같지는 않다. <배움의 발견>을 통해 부모의 잘못된 가치관이 자식들을 얼마나 고통받게 하고 사회와 단절되어 닫힌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지 느끼게 해준다. 자식들에게 보다 따뜻하고 한없는 믿음과 용기를 주어야 할 부모가 세상을 살아갈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예방접종도 해주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같은 부모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들이 너무나 많아서 책을 읽다가 화가 났으며 저자가 안타까웠다.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것이 그녀의 잘못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도록.


더욱 그녀가 안타까웠고 답답하게 느껴졌던 대목은 그녀가 배움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공부에 열정을 쏟으며 자신의 성과를 타인에게 인정받았음에도 자신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정이었다. 억눌려 살았으며 그것이 그녀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르자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 스스로가 깨고 나오기 전에는 누구도 깰 수 없어 그녀가 스스로 배우고 느끼면서 하나씩 사회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배움의 발견>을 읽는 큰 기쁨이었다. 더 나아가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교육에서 찾았던 타라 웨스트 오버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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