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 - 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 클래식 클라우드 23
신승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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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 I 신승철 I arte



"건축이냐, 혁명이냐"



'시계계곡'이라고 불리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르코르뷔지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소년으로 자녀들의 예술적 감각을 응원해주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르코르뷔지에는 천성이 착했지만 말썽꾸러기였고 예민하며 화를 잘 내는 반항적인 아이였다. 아버지는 시계장인이었고 르코르뷔지에 또한 시계산업에 뛰어들었지만 노동에 싫증을 느낀다. 수채화에 취미를 붙이며 화가가 되고 싶어 하던 르코르뷔지에에게 그의 스승인 레플라트니에는 건축을 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당황하며 거칠게 대들었지만 결국 첫 생애 건축설계를 맡게 된다.


생애 첫 건축 설계비로 그는 여행을 떠난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피렌체, 빈과 파리 곳곳을 여행하며 그는 공부했다. 제대로 건축 공부를 하지 않았던 르코르뷔지에는 공간과 구조를 중시하던 당시 건축업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했고 회화나 부조, 장식, 프레스코 같은 2차원 예술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건축이란 종합예술을 터득한다. 철근콘크리트 활용법을 배웠고 여행 중에 본 건축물을 통한 자신만의 밑그림들을 축적하게 된다.


그의 성과를 알아보자. 전쟁으로 난민이 늘어났고 건축으로 세상을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돔이노를 활용한다. 주택을 효율적으로 짓기 위한 공법인데 라틴어 '도무스'에 혁신을 의미하는 '이노베이션'을 조합해 '돔이노'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이로써 그는 건축의 표준화와 대량생산을 꿈꾸게 되었다. 그는 집은 자동차처럼 편리하고 효율적이고 아름다워야 하며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집을 짓기 위해서 표준화, 규격화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만들어낸 '시트로앙 주택'이 그것이다. 그는 건축에 대해 '살기 위한 기계'라고 표현했다. 살기 위한 기계는 표준화가 되어야 했기에 모뒬로르라는 표준화된 치수를 개발했다. 건축의 치수화, 표준화는 대량생산 같은 산업적 필요만이 아니라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고 인간 신체를 기준으로 건축 공간의 크기를 정했다.또한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 주택을 위한 디자인 원칙을 천명했는데 근대 건축의 5원칙이다.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자유로운 입면이다.



그는 평생 자신을 화가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틈틈이 스케치했으며 또한 이 책의 부제(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에서 알 수 있듯이 건축가이면서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자격증도 없는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는 훗날 프랑스 정부로부터 경력을 인정받는다. 그는 자신이 독학을 했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자연에서 또 오래된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었고 현대적인 건축물을 지었지만 그때마다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이단아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르코르뷔지에, 그는 누구인가? 나에게는 낯선 이였다. 건축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이름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다수의 예술인들이 조금은 고집쎄고 자기만의 방식이 있으며 자기만의 방식을 추구하는데 있어 대중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대범함과 약간의 외골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처럼 내게도 그렇게 다가왔다. 가장 르코르뷔지에 다우면서 가장 모던한 건축을 시도했던 르코르뷔지에는 아이로 인해 자신의 경력이 망가질까 싶어 아이를 갖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한 평생을 건축에 바친 것인데 위에서 말했듯 이단아이며 자신의 고집대로 건축물을 지었던 르코르뷔지에는 당시의 건축가들에게는 파격적인 건축가로 남는다.


어른들을 위한 위인전, 클래식 클라우드. 당대의 건축가들과 대중들에게는 파격적인 건축으로 모험적인 아이콘인 르코르뷔지에는 늙어서 막상 자신은 부인과 해안가에 4평짜리 통나무 별장을 지어 생활했다. 현대건축의 거장으로서는 너무나 소박한 집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롱샹성당이 있는데 마치 버섯모양의 지붕을 씌운 느낌이다. 어디를 봐도 성당같지 않은데 이 책에서는 스케치한 우표로만 등장한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을 책에서는 볼 수 없어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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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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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전원경 / 클래식 클라우드 / arte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그리트는 돈을 벌기위해 페르메이르의 집에 고용된다. 그리트는 페르메이르의 화실을 청소하는 일을 맡았는데 매일 조금씩 진척되는 그의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며 과묵한 화가에게 서서히 매료된다. 그녀의 눈썰미는 뜻밖에 페르메이르의 작업에 도움이 되고 페르메이르는 그리트에게 자신의 일을 돕게 하다 마침내 아내 카타리나의 진주 귀고리를 건 그리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카타리나는 분노를 참지 못해 그리트를 쫓아낸다. 페르메이르의 시선에 가슴을 졸이던 그리트는 미련없이 그의 집을 나온다. 그러나 그리트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된 것은 페르메이르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길이 다만 '아름다운 피사체'를 관찰하는 화가의 시선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의 {진주 귀고리 소녀}와 페르메이르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이다. 199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후 2003년에는 피터 웨버가 감독하고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가 주연으로 열연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개봉되기도 했다. 이만큼 대중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진실이 궁금한 그림임을 말해준다.




델프트의 스핑크스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은 모델이 누구인지를 비롯해 전혀 그림에 대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라는 이름은 얀 페르메이르로 알려졌을 만큼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고 왜곡되기도 했다. 19세기 프랑스 미술사학자 토레뷔르거는 페르메이르는 너무나 수수께끼가 많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델프트의 스핑크스' 같은 존재다. 그에 대한 자료는 생몰년과 사후의 기록에 의지하는데 300년이나 흐른 뒤에 그는 우리에게 재조명된다.



저자는 페르메이르를 설명하기 위해 네덜란드라는 나라부터 설명한다. 작고 척박한 땅의 네덜란드의 자국민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들이 창조했다'고 말할 정도로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며 살아온 그들은 화가를 많이 배출한 나라인데 페르메이르보다 조금 앞서서 렘브란트가 있었고 220년 후에 고흐가 태어난다. 페르메이르가 살았던 델프트라는 곳은 작은 마을인데 페르메이르는 살아 생전 델프트를 떠난 적이 없었고 겨우 21세에 화가들의 모임에 가입해 화가로 인정받지만 43세에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그가 사망한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당시에도 네덜란드는 한 가정 당 3~4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페르메이르는 15명의 자녀를 낳고 11명이 생존했다. 그는 21세에 한 살 많은 카타리나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 기간의 상당기간을 카타리나는 임신 중이었을 것이다. 페르메이르는 장모의 여유있는 재산 탓에 처음부터 형편이 어렵지는 않았던 것같다. 그러나 페르메이르가 다른 화가들에 비해 비싼 재료로 그림을 그려 그림이 비쌌으며 다른 화가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 때문에 페르메이르는 평생 그리 많은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림을 많이 팔지 못했고 다자녀에 당시 1672년은 네덜란드 역사에 '재난의 해'로 기록될 만큼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해 경제상황이 위축되었던 바 '아이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는 상황에서 반미치광이처럼 되었다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고 카타리나는 전한다. 책의 표지는 <회화의 기술>을 옮겨놓았는데 카타리나가 이 그림만큼은 지키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림 속 화가가 페르메이르일지 모른다는 지금의 추측이 맞는 걸까? 그림속의 화가가 자신의 남편이기 때문에 그림을 지키고 싶었을까?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1945년에 위작사건을 겪기도 한다. 43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페르메이르. 그의 그림들은 '빛'이 난다고 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뽑는 것인데 후기로 갈수록 그림에서 빛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의도적으로 찍어놓은 흰색 '빛 방울'들을 볼 수 있다. 이 효과로 인해 그림을 보는 이는 실제로 반짝이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진주 귀고리 소녀}를 비롯해 정경은 극히 단순하지만 아름답고 참신해 보인다. 또한 그의 그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왼쪽에 창이 있는 방인데 거의 동일한 장소에서 그림을 그린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고 다시 책을 읽고 하다보니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는 저자가 도슨트같기도, 역사를 설명할 때는 역사선생님 같기도 했다.



자료가 별로 없어 추측으로 읽어내야 하는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은 반면교사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에로틱의 감정을 느끼게도 한다. 또한 네덜란드의 수많은 화가들의 무한 경쟁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 당시 유럽의 화가들은 종교화를 그렸는데 페르메이르는 대신에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트로니 등 새로운 주제를 담은 그림들을 그렸다는 점, 빛을 내는 그림이라는 점 등에서 페르메이르는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화가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구나 수수께끼같은 화가는 우리에게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나에게 네덜란드는 풍차와 튤립의 나라, 그리고 일본과 가까운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이제 네덜란드하면 페르메이르를 떠올리게 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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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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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ㅣ 허연 ㅣ 클래식 클라우드(아르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설국>을 읽고 아쉬운 마음에 클래식 클라우드 허연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편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본 설국은 아쉬움이 많은 책이었는데 허연이 본 <설국과> 그 작가에 대한 해설서 같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서는 <설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느 작가의 한 작품을 이해할 때에는 그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생애를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은 작가가 살아갔던 시대적 배경이 투영되고 작가가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이 작가의 성격이나 문학에 영향을 줬을 것이므로. 다시 말해 어렸을 적의 체험이나 기억들, 성장배경은 작가가 써 내려갈 문학의 밑그림이 되는 것이니까.




가와바타 야스나리 역시 자신의 삶이 <설국>과 그의 다른 작품에 녹아져있다. 나는 <설국>만을 읽었지만 <이즈의 무희>, <뼈 추리기>, <스승의 관을 어깨에 메고>, <초혼제 일경> 등 여러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들 모두 그의 자전적 이야기들이 녹아져있다. 두 살과 세 살에 걸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5살에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 다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고아가 된다. 어릴 적 할아버지와 둘이 살면서 그가 보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늘 앉아서 동쪽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고 하니 유년시절 어른들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할 소년은 외로움과 고독이 친구가 되었을 듯하다. 또한 모두가 돌아가는 인생의 허무함이 그의 문학에 그대로 투영이 되었다.




교토를 사랑했던 그는 <고도>라는 소설을 통해 교토의 이야기를 썼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고도>는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일본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때에 '아름다운 일본의 나'라는 제목의 수상 소감문을 읽는다. 일본인의 정서와 일본의 선불교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접한 서양인들은 굉장히 감탄했다고 한다. 대단한 애국심과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작가라 생각된다.






"결국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이야기하면 

설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설국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먼 길을 돌아간다."






역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대표하는 작품은 <설국>이겠다. 허연조차 위의 말처럼 설국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있다. 소설 곳곳에서 느껴지는 허무감, 아름다운 문장들 그러나 일본인들의 애매한 정서와 그것들의 표현법이 <설국>을 읽고 난 후에 내게 남겨진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목에서 느껴지듯 펑펑 내리고 쌓이는 눈의 고장, 설국 그자체만이 덩그라니 남았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쌓이는 눈, 그러나 언젠가는 녹아져버릴 눈덩이들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시마무라는 거의 무위도식하는 사람으로 어떠한 것에도 열정이나 집착, 의미를 두지 않는 캐릭터로 그의 시선들이 허무감과 헛수고로 비춰져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고 난 후에는 허무감이 어깨까지 차오른다. 그의 평생에 걸친 '허무'라는 단어는 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했다."






<설국>을 읽으면서 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하나도 드러나 있지 않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당시는 한국으로 보자면 일제강점기였고 일본으로 보자면 한참 전쟁 중이었다. 왜 시대적 배경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허연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웬만해서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성격은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는 어떠한 시대적 배경도, 옮고 그름도, 선도 악도, 승자도 패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시대적 배경뿐만이 아니라 <설국>에서의 시마무라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설국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코가 2층에서 떨어져 죽고 은하수가 몸으로 흘러든다는 식의 표현이 있는데 은하수가 내 몸으로 흘러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 것일까?허연은 이것을 물아일체라고 해설하고 있다. 아름다운 표현이었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었다. 자연과 내가 일체가 된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일까? 그 당시의 느끼는 감정이 '허무'였던 것이고 물아일체를 통해 허무를 표현한 것일까? 허연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읽는 소설이 아니라 사색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즉 깨달아야 하는 소설이라고....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





스웨덴 왕립학술원이 밝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 이유는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지닌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와 "동양과 서양의 정신적 가교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두 번째 이유는 나로선 납득이 어렵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의 정서는 독특한 '애매함'으로 유명하다. 이런 애매함이 서양인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지도 의문이지만 정신적 가교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이유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는 아쉬움의 발로일까?





대단히 일본스러운 <설국>, 허연의 해설로 조금은 다가간 느낌이지만 역시 '일본스러움'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인가부다. 훌륭한 해설에도 <설국>의 시마무라를 이해하기에는 우리에게 큰 장벽이 있나보다. 내가 눈의 고장으로 들어가야 하려나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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