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링, 칭링, 메이링 - 20세기 중국의 심장에 있었던 세 자매
장융 지음, 이옥지 옮김 / 까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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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링 칭링 메이링 l 장융 l 이옥지 옮김 l 까치






'옛날 옛날 중국에 세 자매가 살았는데, 한 사람은 돈을,

한 사람은 권력을, 한 사람은 나라를 사랑했단다'






20세기 중국 역사에서 쑹씨 자매는 심장부에 있었다. 쑨원의 부인인 둘째 칭링, 장제스의 부인인 막내 메이링, 그리고 국무총리 쿵샹시의 부인인 큰언니 아이링. 현대역사에서 쑹씨 자매가 유명한 만큼 그녀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퍼스트레이디로 활약하고 중국 내에서 가장 큰 부자로 모든 가족과 중국인들의 문화적 변혁을 추구했던 그녀들의 인생은 어릴적부터 남달랐다. 지금도 쉽지 않을 일일텐데 아이링은 다섯 살 때 부모의 품을 떠나 유학길에 올랐다. 그녀들은 모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모국인 중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여성들이다. 20세기 중국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격동의 시대였고 뛰어난 지도자가 간절히 필요한 시기였다. 그녀들은 그 지도자들의 뒤가 아닌 옆에서 함께 활동했다.





그녀들이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아버지인 쑹자수가 쑨원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도우며 인연이 되었다. 처음엔 아이링, 칭링으로 연결되었다. 청조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세우는 것이 목표인 듯 보였던 쑨원은 사실 자신이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었다. 국부라 불린 그는 그의 평생을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보여진다. 그를 목숨을 걸며 지켜내고 도왔던 칭링은 그와 많은 나이차이에도, 부모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혼을 감행했다. 그에게는 부인도, 첩도 있었지만 쑨원은 자식들과 부인을 돌보지 않았다. 옛말에 조강지처 불하당이라 했는데 그는 그말을 거꾸로 지킨 남자였다. 조강지처는 쑨원 때문에 목숨을 지키려 전족을 한 발로 시어머니와 자식들을 데리고 도망길을 나서야 했으니 칭링은 쑨원의 미래에 자신을 걸었던 듯하다. 쑨원은 오히려 사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한 장제스였지만 메이링과 결혼하고 아이링의 도움을 받아가며 쑨원을 국부로서의 체면을 세워줬다.





메이링 역시 칭링과 비슷하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장제스와 함께했다. 장제스 또한 부인이 있었는데 장제스는 전처와 이혼하고 메이링과 결혼한다. 메이링은 장제스가 정권을 잡았던 22년 동안 퍼스트레이디였다. 중국인들은 세 자매가 결혼한 인물들 때문에 그녀들을 공주로 만들어놨지만 결코 순탄치 않은 그녀들의 삶 속에서 그녀들은 공주가 아닌 잔다르크임을 알 수 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당시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신여성으로 부모에 결정에 따라 결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결혼상대를 스스로 골랐으며 남편에게 끌려다니지 않았다. 앞에 나서서 자신들의 신념대로 행동했다. 뒤에서 내조가 아닌 옆에서 함께 하는 정치가로 활동한 것이다. 칭링이나 메이링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상황에 맞섰지만 한 여성으로 볼 때 유산한 뒤 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에 안타깝기도 하다. 추후 칭링은 정치적 목적이 달라 끝내 아이링, 메이링과 다른 노선을 밟았다.





중국의 역사는 내게 어렴풋하다. 우리나라도 격동기의 흐름은 헷갈리기도 하고 불투명 유리를 보는 듯한데 중국역사는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이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링 칭링 메이링>을 통해 쑨원과 장제스라는 인물과 20세기에 한정되지만 중국 역사 수업을 들은 느낌이다. 개인숭배 풍조 때문에 쑨원과 장제스에 대해 중국에서 이미지가 좋은 줄 알았는데 작가의 시선을 통해 본 쑨원은 독재자였다는 느낌이어서 조금 놀라웠다. 나의 역사지식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겠지만 같은 역사라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고 그 다른 시선을 배워야하는 것이란 생각에 이번 독서는 의미가 있다. 제목이 쑹씨 자매의 이름이어서 세 자매의 일대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중국 역사서에 가깝다고 느꼈다. 중국, 청조가 몰락하는 과정과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과정부터 시작되어 읽기 좋은 흐름으로 진행되는데 번역도 좋아서 잘 읽혔다.




쑹씨 자매의 일대기를 언젠가는 읽어야지 했는데 이번에 까치출판사에서 <아이링 칭링 메이링>이 출간되어 그녀들의 일대기 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 역사의 흐름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시대는 어지러웠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영웅이 필요했다. 시대의 필요와 부름에 의해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웅이 된 이들 옆에서 함께 격동의 시대를 보낸 자매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앞서나갔다. 흥미진진하고 파란만장하기도 한 그녀들의 삶, 시대를 거슬러 그녀들과 함께 한다면 그녀들이 얼마나 당당하고 스스로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는지 좀 더 와닿을 듯하다. 역사적 인물들을 대하자면 꼭 시대 배경을 함께 공부해야한다. 시대의 요구와 인물의 접점을 찾다보면 왜 그 인물들이 그 시대의 정점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쑹씨 자매 이야기, 꼭 한 번은 같은 읽어보고 싶던 이야기, 반가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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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읽어주는 남자 케이스릴러
라혜원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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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읽어주는 남자 ㅣ 라혜원 ㅣ 고즈넉이엔티




"그쪽하고 나하고, 약혼한 사이예요? 언제요?"

"얼마 안 됐어. 한 달쯤."

"언제부터 나를 알았어요? 우리가 어떻게 만났죠?

아니, 그전에 난 누구예요? 우리 가족은 어디 있어요?




로맨스 스릴러, 나도 아직은 로맨스에 끌리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기억 읽어주는 남자>는 불안하면서도 굉장한 부러움을 일으키게 하는 소설이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으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받는 이야기다 보니 대리만족이 가능한 소설이다.



빗속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은 간격을 두고 다른 차량으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었다. 운전자가 속도를 낸 순간 빙글 미끄러지며 옆으로 돌아 콘크리트 가로대에 부딪혔다. 잠시 후 좇아오던 차량과 충돌, 운전자는 동승자에게 어서 내리라 했지만 뒷좌석에 놔뒀던,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을 챙기기 위해 뒷문을 열던 순간 동승자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뜬 동승자, 그녀는 간절히 기도를 하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로부터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 그녀는 의사로부터 '전생활사건망증'이라는 병명을 듣게 된다. 일반적인 정보나 상식은 손실되지 않지만 자신과 관련된 것들만 손실되는 전생활사건망증.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하윤은 자신이 눈을 뜬 곳은 휘성그룹의 별장이 있는 섬이었고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준 남자가 휘성그룹의 후계자인 천재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은 재벌 3세인 천재후의 약혼녀이며 이름은 송하윤. 사고의 토막을 기억하는 하윤은 운전자가 누구이며 사고의 처리가 어떻게 된건지 궁금해한다. 천재후가 자리를 비운 사이 경찰서로 달려간 하윤은 곧 자신을 데리러 온 천재후에 의해 집으로 돌아오지만 자신의 주민번호와 자신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충격적인 소득만을 얻고 그녀의 정체와 천재후의 사랑은 더욱 미궁으로 빠진다. 자신을 믿으라는 천재후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고 승낙한 하윤은 곧 그가 예인그룹의 장녀와 약혼한다는 기사를 맞닥뜨리게 되고 천재후가 없는 사이 그의 비서로부터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는 휘성그룹 천성묵 회장의 경호원인 김선호와 모의하여 천재후에게 접근해 그를 사랑에 빠뜨린 후 한몫 챙기려 했던 사기꾼 한재경이라는 것. 그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가려는 이 길은 천재후에게서 멀어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가야 한다.

안개 속을 헤메다 드디어 찾아낸 이 길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진짜 단서가 

이 길의 끝에 반드시 있을 것이다."




재벌 3세의 약혼자? 사기꾼?

사고의 어렴풋한 기억 속 운전자를 찾으려는 여주인공은 약혼자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려는 노력 때문에 더욱 불안해진다. 발버둥 친 노력 끝에 얻은 사실은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의혹만 커지고 약혼자의 절대적인 사랑도 불신을 증폭시킨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과 꿈을 혼동하는 하윤은 의사로부터 '송박사'라는 호칭을 듣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찾으러 나선다.



약혼자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려 한순간 그녀에게 찾아온 기로의 순간을 맞이한 하윤, 이러한 설정은 긴박함과 두려움, 의혹 등을 불러오는데 글의 시작부터 사건이 시작되고 사건의 의문과 불안감은 계속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국면은 독자를 계속해서 궁금증의 세계로 끌어들이며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기억상실은 궁금증을 유도하는 커다란 조건으로 특히 재벌 3세의 약혼녀라는 조건과 함께 흥미를 유발하기에 최적이다. 특히나 재벌3세는 무한한 사랑을 쏟지만 끝없이 진실을 파헤치려는 여주인공의 도전은 안주했으면 하는 마음과 진실을 파헤치라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구조를 만들어낸다. 갈등도 스릴러에서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재벌, 기억상실, 사고, 사랑, 사기, 의혹, 로맨스 스릴러의 모든 조건을 장착한 <#기억읽어주는남자>는 또 다른 로맨스 스릴러를 기대하는 마음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로맨스 스릴러라고 해서 기대감이 생긴 것은 아직도 내 마음에 로맨스를 환영하는 인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불안함 속에서 피어나는 절대적인 사랑, 그런데 상대가 재벌3세. 여심을 저격하는 이야기를 작가가 작정하고 내놓았다. '인간의 몸 어디에도 없는 마음이라는 장기'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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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 -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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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 ㅣ 장재형 ㅣ 미디어숲




"오늘날, 청춘들은 자유롭고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기에,

삶의 주체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만큼 방황이라는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참된 삶은 노력할 가치가 있는, 살아갈 보람이 있는,

그리고 돈이나 쾌락이나 권력을 훨씬 능가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개츠비의 삶이 위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은 28편의 고전에서 얻은 자아, 여행, 예술, 사랑, 열정, 꿈, 욕망 등의 키워드를 설명한다. 고전을 좋아하는 나는 28편의 고전을 '삶에서 얻게 되는 키워드'와 매치해 만나게 되니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은 미리보기 한 느낌이고 읽은 작품들도 반가우면서도 다른 이의 시각으로 만나니 새로웠다. 아직 읽지 않은 고전들도 제목은 익숙한 작품들인데 '읽어야지'하고 생각했던 작품들이 대다수라서 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맘이 급해진다.



고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인류의 삶은 급속도로 변해왔다. 산업이 발전되며 핵가족 시대가 오고 새로이 생겨나는 직종들과 산업들 사이에서 큰 부를 일구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점점 인류의 삶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심정적으로는 외로워졌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세상이 큰 변화 일로에 있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고 고민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역사와 고전을 통해 해결책을 얻으려 했다. 동시에 지혜도 얻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할까? 라든가 나보다 앞선 고통을 겪은 선배들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 지혜를 주는 것이 바로 고전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청소년기에 사춘기를 겪을 때, 자아를 찾고자 할 때 우리는 <데미안>을 떠올린다. 주인공 싱클레어의 내적 변화와 성장을 그린 이야기는 자아를 찾으려는 이들의 바이블 같은 이야기다. 마흔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족을 뒤로 했던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은 예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남자였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는 남자, 이러한 열정에서 예술은 탄생되는 것인가 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한때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금서로 정해진 책이었다. 로테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외로워지고 로테의 사랑을 얻지 못해 절망한 베르테르는 결국 자살을 하는 감수성 풍부한 남자인데,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함이 얼마나 삶에 있어서 괴로운지를 말해준다.



고전들 속에는 많은 주인공들과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키워드들은 빛이 나고 우리에게 전달된다. 꿈을 찾아가는 이의 이야기, 자신의 예술을 불태우려는 이의 이야기, 자아를 찾으려는 이의 이야기, 지혜를 찾으려는 이의 이야기들은 모두 독자에게 예시를 제공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오늘을 견디게 해주고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도와주며 문을 두드리는 노력을 하게 하고 지혜를 준다. 하나같이 좋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꽉 찬 <#내곁에서내삶을받쳐주는것들>은 이제 나만 괴롭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동질감과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준다. 만약 지금 사는 동안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고전 속 주인공들이 그 답을 줄지 모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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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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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나쓰메 소세키 ㅣ 송태욱 옮김 ㅣ 현암사





"생각해보니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타락하는 걸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타락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있다.

이따금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니 '애송이'니 하면서 

트집을 잡고 경멸한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손해만 봐왔다고 시작되는 이야기. 도련님은 어릴 적 말썽도 피우고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다치기도 하고 부모님께 핀잔을 들으며 자랐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재산을 정리해 형은 떠났고 주인공은 진학하고 졸업 후에도 집에 남아 있던 하녀인 기요를 남겨둔 채 멀리 떨어진 곳의 중학교 수학교사로 부임한다. 좁은 시골의 중학교여서일까 학생들은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트집 잡고 선생으로서 수모를 느낄 만큼 학생들은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주인공은 이 수난을 어떻게 해결할까?




어릴 적 주인공은 심한 말썽쟁이였는데 아버지에게 의절을 선언 받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도 '대쪽처럼 곧고 좋은 성격'이라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하녀 기요 할멈이다. 기요 할멈에게 주인공이 손주처럼 느껴져셔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을 살아 인간의 성장에 대한 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기요는 주인공에게 '욕심이 없어서 마음이 깨끗하다'고도 하고 평소에 '될 거다, 될 거다'하고 늘 믿음과 사랑을 주었다. 이 대목에서는 참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은 사랑과 믿음을 받을 때 안정되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은 늘 자식들에게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라며 교육하셨다. 바로 기요 할멈의 교육과 같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은 대쪽같고 욕심도 없고 성격이 곧다. 중학교 교사로 부임한 주인공은 자신의 이익을 챙길 줄도 모르고 할 말은 한다. 그러다 보니 윗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대쪽같은 성격으로 자신과 뜻이 맞는 다른 교사와의 합작으로 거사(?)를 치르기도 한다. 좌충우돌 교사 입문기를 통해 주인공의 성격은 더욱 굳어진 듯하다. 학교에는 여러 선생들이 있는데 모두 다양한 캐릭터들이다. 주인공이 재미나게 그들의 캐릭터를 살려 별명을 짓는데 네이밍의 천재다. 별명을 통해 떠올리는 여러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그려내는 사건들은 은근 주인공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와는 처음 만남인데 일본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순전히 그의 명성 때문에 <도련님>을 읽게 되었다. 일본인의 디테일한 감정선을 대하기가 불편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감정선들은 <도련님> 안에서 각 캐릭터들을 독자가 느끼기에 분명한 뚜렷함으로 다가와 상황 파악이 쉬워진다. 그리고 그러한 캐릭터들이 지금 현대에도 존재하는 캐릭터들이라서 주인공이 학교에 부임하고 겪는 이야기들이 전혀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점에서 시대적 이질감이 없다. 어쩌면 슬프기도 한 것일 터다. 인간의 마음은 결코 한치의 발전도 없었다는 것일 테니.



도련님은 기요 할멈이 부르는 호칭인데, 기요 할멈 입장에서는 당연히 주인공을 도련님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작가가 제목을 '도련님'이라고 한 것은 바로 주인공이 부모에게 의절을 선언 받을 정도의 말썽쟁이였지만 대쪽같고 정직하고 욕심 없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임을 강조하려 한 듯하다. <도련님>속 도련님은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간다. 1906년도 작품인 <도련님>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세상과의 타협점을 찾지도 않는 그야말로 대쪽같은 인물. 현재 우리 정치계에서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회상해 이야기해주는 듯한 <도련님>은 큰 흥분은 없다. 그럼에도 작가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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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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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l 조완선 l 다산북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었다면 범인들과 같은 

과격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겠지요.

그들을 과격하게 만든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검찰,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 법원,

그리고 이들 위에 군림하는 통치권자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해방 후 서울시경 보안과장을 지낸 노창룡이 양수리의 한 폐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비밀리에 입국해 나흘 만에 살해되었는데 직접적인 사인은 일제 강점기 고등계 형사들이 썼던 고문 행태였다. 아주일보에 난 기사에는 고문에 관련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아주일보 칼럼니스트 최주호는 기사를 보고 깜작 놀랐다. 그 기사 내용은 얼마 전 친구인 허동식의 부탁으로 자신이 준비해 건네 준 자료였으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기사 내용과 그 내용이 살인에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동식에게 바로 연락했지만 허동식은 전화를 받지 않고 물어물어 허동식이 머물렀다는 사찰로 찾아가지만 거기서도 허동식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허동식이 머물렀던 방에서 파일철 하나를 손에 넣는데 유명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에 대한 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었고 그들의 공통점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사이며 그들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온갖 추잡한 부패와 비리에 얽혀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자료를 허동식은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의문이 든 순간 어렴풋하게 떠오른 것은 살생부!였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고등학교 동창의 부탁이 불러온 것이 살인이라면? 내가 준비한 자료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신문에 게재되고 어떤 식으로든 살인과 연결되었다면 나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와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살인이란 것이 국민들이 은근 통쾌함을 느끼는 친일파, 정치인, 기업가들의 죽음이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질까? 며칠 간격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국민을 기만한 그들에게 집행관들은 죽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국민들을 대신하여 기만의 죄를 '복수'로 물은 것이다. 이에 국민들은 은근 범인들을 옹호했고 소설 속 한 심리학자는 은근 범인들을 옹호하는 여론을 두고 '분노의 대리만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야기는 빠른 전개와 통쾌함, 그리고 예상되는 앞으로의 공적들의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흥분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복수는 국민들에게 끝없는 통쾌함을 줄까? 그 질문에 '예스'라는 대답은 하지 못할 듯하다. 어처구니없게 집행관이 되어버린 최주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두려움이 내게도 전해졌다. 아마 최주호와 내가 느낀 두려움은 우리 스스로 잘못된 집행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복수보다는 우리들의 '공적'인 그들에게 반성할 기회를 통해 그들이 개과천선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표본으로 삼기 위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집행관들은 '공적'의 죽음을 집행했고 그들로서는 아마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뉴스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비리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우리가 익히 알던 유명 인사들의 비리 등을 대할 때면 정말 우리 사회에는 청렴결백한 관리는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 같은 한탄을 하게 된다. <집행관들>은 지금 우리들이 느끼는 분노와 갈증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소설 속에 집행관이 등장하고 우리는 이것을 보고 통쾌함을 느낀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많은 이들이 바라는 죽음이라는 심정'이 무기가 될 수는 없지만 소설 속에서나마 짜릿함과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비리가 만연해있다는 방증이리라. 소설은 시대의 반영이므로.



초반의 빠른 전개와 집행관들의 입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생긴 흥미가 뒤로 갈수록 조금 떨어지고 이야기가 살짝 다른 물줄기를 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궁금했던 수장의 정체도 예상을 벗어나지 못해서 좀 아쉬웠지만 <집행관들>을 읽다 보니 작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누군데 이렇게 끓어오르는 민심을 잘 담았을까? 그의 도서들을 살펴보니 우리 역사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꽤 흥미를 끄는 도서들이 있어서 다음번에도 그의 작품들을 읽어볼 예정이다. 이제야 조완선 작가를 알게 돼서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들이 줄 재미가 무척 기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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