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자기만의 방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만의 방  l 버지니아 울프  l  오진숙 옮김  l  솔출판사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남겨줄 재산이 하나도 없었던 건가요? 콧잔등에 분이나 바르고 계셨을까요? 가게 진열장이나 들여다보고 있었을까요? 몬테카를로의 햇빛 속에서 뽐내고 있었을까요? (P 33)

나이팅게일 : 여자들은 그들 자신만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을 반 시간도 못 가진다. (P 93)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뉴넘 칼리지의 예술협회와 거튼 칼리지의 오드타에서 강연하고 있다. 주제는 여성과 픽션. 이 글은 다듬어져서 산문/에세이 형식으로 출간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인 오스틴의 경우 자주 갈 수 있는 서재가 따로 없었으며 대부분의 집필은 공동의 거실에서 그때그때의 온갖 종류의 방해를 받으며 이루어졌음에 틀림없다고 한다. 자신의 원고를 숨기거나 압지 종이로 가려 놓았다고도 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재산권이 없었으므로 여성이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지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이 글을 쓴 버지니아 울프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아버지에게 여러차례 얘기했지만 끝내 학교 입학, 그것만은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내에 잔디밭은 여성이 걸을 수 없었고 도서관도 대학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지녔을 경우에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럼 그녀의 선배들은 무얼하고 있었나?



버지니아 울프는 신문사 잡무직이나 결혼식에 대해 기사를 썼고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고 봉투에 주소를 쓰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숙모가 돌아가시며 버지니아 울프에게 유산을 남긴다. 아마 이 기회로 버지니아 울프는 조금 더 글을 쓸 수있는 조건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당시에 여성들은 집에 갇혀진 채로 외출도 힘든 상황에서 육아와 살림을 해야했기에 자유롭지 못했고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글을 쓰고 싶은 여성들은 있었다.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뿐.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다고 가정을 해본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부정당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그런 '재능'을 가졌을리 없다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엘리자베스여왕의 시대에는 당연히 여성들은 돈이 없었고 열다섯이나 열여섯살에는 결혼을 했다.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는것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재산권이 없으니 종이와 펜을 살 수도 없을 뿐더러 육아와 살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온전한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인 오스틴이나 샬롯 브론테 같은 천재성과 성실성을 가진 여성들은 글을 써왔다. 두 여성을 통해 희망을 보며 망설이지말고 글을 써보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조언한다. 여행을 하고 사색하며 충분한 돈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버지니아 울프는 연설에서 여성이라는 말이 죽을 정도로 싫증나고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많은 제약을 받게 되면 '여성'이라존재가 평생 걸림돌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해방은 단순히 여성에게 국한되지는 않으며 여성과 남성이 가진 특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녀가 더욱 멋지고 단단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연설의 끝에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은 안타깝게도 글 한 줄 써보지 못하고 일찍 죽었으니 찾지마라는 내용은 이 연설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짐작이 가능한 부분이다. 여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책임감과 불쾌감만 있었던 연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로써 버지니아 울프 시리즈 6권을 완독했다.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더 어렵게 느껴져서 독서의 과정이 사실 고되고 힘들었는데 완독을 하고 나니 뿌듯하다. 하지만 그녀의 세계를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한 편 홀가분하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댈러웨이 부인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5
버지니어 울프 지음, 정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댈러웨이부인 / 버지니아 울프 / 정명희 옮김 / 솔출판사



종달새처럼 솟구쳐 올랐다!

필머 부인의 마당을 두른 울타리가 있는 아래로 

자신을 거세고 난폭하게 던져버렸다.


쉰 둘의 댈러웨이부인은 오늘 밤의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나갔다가 휴를 만난다. 오랜 친구인 휴는 피터의 말에 의하면 정도 없고 두뇌도 모자라고 단지 영국 신사의 교양과 예절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러리서 댈러웨이와는 오랜 친구사이이다. 오늘 밤 그는 내 파티에 올것이다. 클러리서는 결혼할 수도 있었던 피터를 떠올리고 거리에서 굉장한 폭음을 듣게 된다. 그 폭음을 들은 또 한 사람 셉티머스. 그는전쟁에 참전했고 남자다움을 드러내 승진도 했다. 상관인 에반스의 사랑을 받고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휴전 직전에 에반스를 잃고 전쟁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정신병의 증상과 자살시도는 부인인 레지아를 힘들게 한다. 결국 정신병원으로 옮기려는데 셉티머스는 자살을 하고 만다.


집에 도착한 클러리서 댈러웨이 부인은 남편 리처드가 부루톤여사의 오찬에 초대된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클러리서와 연인이었던 피터 월시가 인도에서 돌아와 집으로 쳐들어온 것! 한 때 둘은 좋았지만 헤어지고 영국에서 피터는 쫓겨나 인도로 갔다. 이제 그는 자식도 없이 부인과 이혼할 예정으로 영국에 돌아왔다. 하필 오늘! 피터와 헤어지고 리처드와 결혼한 클러리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그녀는 세속적이었다. 리처드는 클러리서가 원하는 남자였다.


댈러웨이의 집에서 열린 파티, 댈러웨이부인의 친구들과 손님들 속에서 그녀는 셉티머스라는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서평쓰기 어려운 도서로 으뜸인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버지니아의 소설을 읽다보면 구성의 맺고 끊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넘어갈 때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독자로서는 어디까지가 한 에피소드의 끝인지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또한 즐거리 이외에는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쓴 문장들이 마구 쏟아지니 그 문장들이 그녀의 메세지를 얼마만큼 도와주는지, 그 문장들이 왜 필요한지? 그 문장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독자로서는 사족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글은 생각의 일환이다. 생각을 잘 정리해서 쓴 것이 글이다. 쉽게 누구든 이해할 수 있게, 표현은 작가의 독특한 시선을 옮겨야 한다. 버지니아의 시선들이, 그녀의 의식의 흐름들이 내게는 미로같고 줄거리를 방해하는 요소로 비춰진다.


이번 <댈러웨이부인>은 양극으로 나눠진 캐릭터가 서로 반목하는 부분들이 흥미롭다. 그 캐릭터는 여성인데 한 여성은 클러리서 댈러웨이와 댈러웨이부인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선생 킬먼양이다. 자신의 세속적인 욕심을 스스로는 채울 수 없어 남편의 힘으로 채우는 여성, 클러리서를 바라보는 킬먼과 그런 킬먼을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현실에 처한 여성으로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내면으로는 서로를 부러워하고 인정한다. 이런 캐릭터는 사실 현재에서도 찾을 수 있는 캐릭터라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고 이런 여성들을 통해 당시의 여성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다. 또한 반목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셉티머스의 부인인 레지아의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당시 전쟁을 통해 남편을 잃거나 약혼자를 잃은 여성들이 많았을 것이고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아마 레지아의 삶과 그리 다를지 않을 것 같아서 남편으로 인한 인생이 변화되는 포인트를 버지니아는 애기하고 싶었나보다. 남편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사는 클러리서와 자신이 이뤘지만 가난한 삶을 사는 킬먼양 그리고 남편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레지아, 마지막으로 댈러웨이 부인의 딸인 엘리자베스와 여성이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루톤 여사까지 다양한 여성상을 볼 수있었던 작품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중에서는 줄거리가 탄탄하고 메세지가 확실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클러리서는 파티를 위해 꽃을 사고 드레스를 수선하고, 많은 사람들이 클러리서의 집을 방문한다. 즐거운 파티가 한창인 상황에서 전쟁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청년의 소식은 엄숙함을 자아낸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현존하는 것이며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였을까? 도움을 받고자 옮긴이의 해설을 참고해보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부인>을 통해 "양극적인 두 개의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다. 둘을 공존시키겠다는 그녀의 메세지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이콥의 방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4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정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이콥의 방 / 버지니아 울프 / 김정 옮김 / 솔출판사




베티 플랜더스 부인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아처와 제이콥 그리고 존. 안타깝게도 플랜더스 부인은 과부가 된지 2년이 되었다. 암을 앓고 있는 부인을 둔 바풋대령은 플랜더스 부인에게 호의를 베풀며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목사인 플로이드가 플랜더스 부인에게 청혼을 하지만 부인은 아들을 셋이나 둔 자신이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흘러 제이콥은 성장한다. 제이콥은 고귀한 용모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고 계속해서 여자가 생긴다. 순종적인 클라라와 잘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클라라는 제이콥을 떠난다. 여러 남자와 어울리는 플로린다는 제이콥과 사랑을 나누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연애를 즐긴다. 플로린다로 인해 제이콥은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화가 닉의 모델인 페니는 닉을 동경하지만 제이콥을 알게 되고 그를 좋아하게 된다. 여행중에 만난 산드라. 기혼녀의 그녀와 호감을 주고 받지만 그녀는 선을 넘기지 않는다.





제목이 <제이콥의 방>이다. '제이콥의 방'은 어떤 의미일까? 딱히 '제이콥의 방'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진 않다. 그렇다면 독자는 '제이콥의 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제이콥의 방이 주는 의미를 한 번의 독서로 찾아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사실 버지니아 울프의 네 번째 소설을 읽으면서 이제는 그녀의 문학세계가 어렴풋하게 보여할텐데 나는 여전히 블랙홀에 빠진 듯하다. 악평을 쓰자면 그녀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만이 알아챌 의도라면 일반독자와의 소통이 당연 힘들 것이고 많이 읽혀질 수 없을 것이 아닌가. 그녀의 작품 세계를 높다고 평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녀만의 세계라고 해야 할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 중에 <제이콥이 방>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제이콥이란 인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읽었지만 찾지 못한 나는 제이콥을 둘러싼 여성들 그러니까 제이콥과 이성의 호감을 느꼈던 인물들과 플랜더스 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플랜더스 부인은 남아 셋을 둔 과부이다. 청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청혼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고 찾아오는 남자도 있다. 당시 영국 과부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고 과부의 재혼율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플랜더스 부인은 스스로가 재혼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가 셋이나 딸린 과부라는 조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나라만 봐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여성상이다.



제이콥이 가장 숭배했던 여성은 클라라였다. 어른들을 배려하고 바흐를 연주하는 착한 심성의 여자였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순종적인 여성이다. 유일하게 제이콥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스스로 제이콥을 떠나는 플로린다. 그녀는 연애지상주의인 사람인가? 페니 또한 닉과 제이콥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녀는 화가인 닉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의 모델이 되지만 제이콥을 보고는 제이콥에게 반해 닉과 제이콥 사이에서 갈등한다. 마지막으로 산드라는 유부녀로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모든 걸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각자 위치가 다르고 비교가 가능한 여성을 여럿 설정 후 남자 주인공과의 연애 감정선을 들여다 보며 당시의 남성들은 어떤 여성을 선호했으며 또한 제이콥은 어떤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세심한 연애 감정선이나 연애의 서사를 보고 싶었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도 아니었나보다. 한 줄 두 줄로 표현되는 그들의 감정들이 너무 부족하다.



제이콥의 방에는 아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이 모두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의 일상 속에 언제나 있을 법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왜 버지니아 울프가 이렇게 많은 인물을 등장시켰는지 알 길이 없다. 그들이 주는 의미는 그저 제이콥을 둘러싼 인물들의 주변일 뿐이다.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한 소설인가? 그런데 나는 울프의 의도를 캐치하지 못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또 생긴다. 그녀의 작품은 읽을수록 미궁에 빠진다. 자신의 나라의 청년들을 살리기 위해 크레타의 미궁 속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절대 나오지 못할 미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 그에겐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딸 아르아드네 공주의 도움이 있었다. 지금 내게는 아르아드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미궁을 헤치고 제이콥의 방의 주제의식을 헤아리는 데 도움을 줄.



덧. <제이콥의 방>에는 해설이 붙어있다. 해설조차 내겐 어려웠다. 분명 '제이콥의 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쓰여져있다. 그러나 그 해설이 내게는 와닿지 않는다. 그저 부족하지만 나의 시선으로 제이콥의 방을 이해하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랜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랜도 / 버지니아 울프 /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올랜도는 자기가 젊은 남자였을 때,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하고,

세련된 차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이 났다.




16세기 영국, 16살 올랜도는 매우 부유한 귀족으로 엘리자베스 여왕마저 예뻐하는 미소년이다. 올랜도는 시 쓰기를 좋아하고 여성들과의 연애도 즐기며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도 있다. 그런 그가 러시아의 공주 사샤를 만나며 사랑의 감정에 휩싸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로 약속한다. 사샤와 만나기로 했던 밤, 사샤 대신 올랜도를 맞은 것은 폭우였다. 그리고 7일 동안 올랜도는 마치 죽은 듯 의식이 없었고 깨어난 후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오로지 책에 맹렬하게 파고든다. 존경했던 시인을 만났지만 실망하게 되고 올랜도는 인생이 허망한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랑과 야망, 시, 문학 모두 광대놀음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그는 하루아침에 남자에서 여자로 성이 전환되는 전대미문의 경험을 하게 된다. 타국의 대사였던 올랜도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집시의 무리에 합류해 교훈을 얻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셸을 만나 약혼한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거절하다가 굴복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쫓아가서 정복하는 것은 얼마나 엄숙한가,

이해하고 추론하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가."



어느 날 자고 일어 났더니 젠더가 바뀌었다면? 만약 당신이 자고 일어났는데 성이 바뀌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올랜도>는 올랜도라는 남성이 여성으로 성이 전환되어 살아가는 삶, 300년을 그린 전기이다. 화자는 전기작가로 올랜도의 삶을 얘기하고 있다. 남성으로서 여성들과의 연애도 즐기고 약혼도 하고 생에 다시 없을 사랑도 했던 이가 성이 전환되어 집시로, 여성으로서 남성과의 삶을 비교하며 3세기를 살아가는 이야기, <올랜도>.



그가 여성이 되기 전 잠들었던 사이 세 여인- 순결, 정절, 겸손-이 등장한다. 그녀들의 등장은 그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되는데 필요한 요소를 판타지적 기법으로 설명한 것은 아닐까 싶다, 여성이 되려면 3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로. (구태의연하지만) 당시 작가가 성이 전환된 방법이나 경위를 설명하자면 판타지의 도입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내게 버지니아 울프는 매우 이성적인 작가이다. 그래서 판타지적 요소가 좀 어색한 느낌이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의식의 세계를 많이 다루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성이 전환되는 과정에 말하자면 천사인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버지니아 답지 않은 느낌이다, 올랜도의 의식 세계가 아니었으므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올랜도는 남성이었을 당시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고통없이 성이 전환되고 그러나 자연에 위배되는 경험은 올랜도가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오랜만에 만난 고국은 성이 전환된 올랜도에게 모든 재산을 압수하려고 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재산을 가질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신분이 강등된 올랜도는 남성이었을 당시 당연하게 누렸던 모든 것들을 여성으로서 지켜야 하는 어려움과 맞서게 된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부분들을 일단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야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성이 재산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누군가의 소유물이지 누구를, 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페미니즘의 대표작가로서 그녀는 올랜도를 통해 여성의 지위, 남성이 알게 된 여성의 삶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올랜도의 긴 삶을 통해 투영하고 있어 일전에 읽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의 여성작가들이 생각났다. 그녀들의 투항하는 삶은 그녀들의 소산인 작품에 가장 잘 녹아져 있으므로 올랜도 또한 빗겨갈 수 없는 여성의 삶을 남성의 삶과 근접하게 비교할 수 있는 페미니즘적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300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는 올랜도의 삶은 여성으로서 좋아하는 글쓰기조차 제대로 할 수없고 교육의 기회조차 균등하지 않은 것에 늘 불만이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희망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올랜도가 <올랜도>전체에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삶에 대한 애착과 물음표가 우리 인간의 오랜 질문과 숙제임을 얘기하고 있다.



쉽지 않은 버지니아 울프의 세 번째 작품 <올랜도>를 읽었다. 매번 서평은 쉽지 않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은 더더욱 힘이 든다. 내가 그녀의 문학에 대한 집착과 열정에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인지 , 아직은 그녀에게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어둠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도 / 버지니아 울프 / 박희진 옮김 / 솔 출판사



나는 달려가서 어린 시절의 찬란한 물을 몸에 뿌린다

저녁 때 영혼의 지붕 위에 형성되는 물방울은 둥글고 

여러가지 색깔이다




<파도>에는 이렇다할 사건이 없다. 그저 어린시절 친구인 버나드와 네빌, 루이스, 수잔, 로우다, 지니, 퍼서벌 7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의 대사 속에서 성장과정과 내면을 통한 영혼의 이야기이다. 루이스의 뒷목에 키스하는 지니, 그런 모습을 보고 속상해하는 수잔, 네빌과 보트를 만들다 그런 수잔을 보고 따라가는 버나드, 혼자 남겨져 투덜대는 네빌의 이야기가 취학 전 다뤄지고 그들은 학교에 입학한다. 성장해서 인도로 갔던 퍼서벌이 낙마사하고 그들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리고 성장하고 노년이 되어서도 퍼서벌을 잊지 않는다. 퍼서벌은 죽었고 로우다는 자살했다. 지니는 직업여성이 되었으며 수잔은 평범한 주부가 되고 버나드는 소설지망생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 번째 도전작 <파도>는 <등대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참 난해하고 어렵게 다가온 작품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어렵게 쓴다는 느낌이다. 쉬운 말도 돌려서 하고 늘려서 쓰고. 사실 <등대로>는 별 줄거리가 없다. 그저 의식의 흐름 속에서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흐르고 그 속에서 인물들의 대화나 상황을 통해 감(?)을 잡아야 했기에 어려웠던 작품이었는데 <등대로>는 <파도>에 비하면 쉬운 작품이었다. <파도>야말로 의식의 흐름이 무엇인지 알겠는(?) 작품이다. 그녀의 7번째 작품으로 그녀의 스타일상 기교의 극치에 다다랐다고 인정되는 작품이라고 하니 고난이도의 의식의 흐름을 타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모든 것이 대사로 이뤄어져 희곡작품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시적인 표현들이 넘쳐나고 무언가 함축적 의미를 숨겨놓았나 싶어 힘을 주어 읽었다. 그러다보니 읽기가 너무 고되어 힘을 빼고 편안히 읽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대사라는 것이 누군가와의 대화라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 것들이었고 주인공격인 버나드의 대사를 통해 그들이 성장했고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 수 있어 성장소설의 느낌도 강했다. 등장인물의 생애를 단계별로 나눠 들려주는 버나드의 대사는 마치 서사시 한 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 중 퍼서벌은 20대에 낙마사고로 제일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취학전부터 친구였기에 퍼서벌의 죽음은 그들에게 굉장한 슬픔이고 충격이었다. 그러기에 친구들은 퍼서벌을 노년이 될 때까지 잊지 않고 그리워하고 그들의 대사에 퍼서벌이 자주 등장한다. 먼저 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그들에게 퍼서벌은 어떤 의미일까? 퍼서벌은 청춘의 상실이다. 더이상 그들은 청춘이 아니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야 할 인생의 무게감만이 남은 군상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페미니즘의 대표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속 여성인물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수잔은 평범한 주부로서 살아가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보이고 직업여성이 된 지니의 삶은 완곡한 표현으로 그녀의 일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육체가 늙어가는 비참함이 엿보여 슬픔을 자아낸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지니처럼 직업여성이 되지 못한 로우다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으로 표현될 만큼 내성적인 여성으로 자살을 한다. 여성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생각했을 그녀가 세 명의 여성을 통해 보여주는 모습은 극단적이다. 결혼을 했지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수잔은 진정 자신의 욕망은 채우지 못한 여성으로 표현하고 직업여성이 된 지니는 어떻게 보면 조금 아름답게도 묘사되는 것은 누군가의 억압으로 결정된 것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창녀란 직업을 선택한 신여성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싶고 당시의 시대에 결혼하지 못하고 직업여성도 되지 못한 로우다는 결국 자살을 택해 다양하지 않은 여성의 삶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파도는 끊임이 없다. 그리고 어떤 일정한 패턴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파도>는 등장인물들의 삶이 파도의 의미처럼 잔잔하지 않고 감지해 낼 수없는 패턴으로 언제 휘청일지 모를 우리네 인생을 <파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닌지 버지니아 울프의 의도를 짐작해본다. 이 소설을 쓰며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여느 소설과는 다른 구조와 아름다운 문장들 때문에. 대작임에도 <파도>를 십분 읽어내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문해력 때문에 부끄럽다.




이 물에서 나가자. 

그러나 파도가 내게 몰려와 그들의 거대한 어깨 사이로 

나를 휩쓸어간다.


나는 돌려세워지고, 첨벙 빠지고, 이 긴 빛들, 이 긴 파도들, 

이 끝없는 길 사이에서 잡아늘여진다,

뒤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격해오는 상태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