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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올랜도 / 버지니아 울프 /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올랜도는 자기가 젊은 남자였을 때,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하고,
세련된 차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이 났다.
16세기 영국, 16살 올랜도는 매우 부유한 귀족으로 엘리자베스 여왕마저 예뻐하는 미소년이다. 올랜도는 시 쓰기를 좋아하고 여성들과의 연애도 즐기며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도 있다. 그런 그가 러시아의 공주 사샤를 만나며 사랑의 감정에 휩싸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로 약속한다. 사샤와 만나기로 했던 밤, 사샤 대신 올랜도를 맞은 것은 폭우였다. 그리고 7일 동안 올랜도는 마치 죽은 듯 의식이 없었고 깨어난 후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오로지 책에 맹렬하게 파고든다. 존경했던 시인을 만났지만 실망하게 되고 올랜도는 인생이 허망한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랑과 야망, 시, 문학 모두 광대놀음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그는 하루아침에 남자에서 여자로 성이 전환되는 전대미문의 경험을 하게 된다. 타국의 대사였던 올랜도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집시의 무리에 합류해 교훈을 얻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셸을 만나 약혼한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거절하다가 굴복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쫓아가서 정복하는 것은 얼마나 엄숙한가,
이해하고 추론하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가."
어느 날 자고 일어 났더니 젠더가 바뀌었다면? 만약 당신이 자고 일어났는데 성이 바뀌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올랜도>는 올랜도라는 남성이 여성으로 성이 전환되어 살아가는 삶, 300년을 그린 전기이다. 화자는 전기작가로 올랜도의 삶을 얘기하고 있다. 남성으로서 여성들과의 연애도 즐기고 약혼도 하고 생에 다시 없을 사랑도 했던 이가 성이 전환되어 집시로, 여성으로서 남성과의 삶을 비교하며 3세기를 살아가는 이야기, <올랜도>.
그가 여성이 되기 전 잠들었던 사이 세 여인- 순결, 정절, 겸손-이 등장한다. 그녀들의 등장은 그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되는데 필요한 요소를 판타지적 기법으로 설명한 것은 아닐까 싶다, 여성이 되려면 3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로. (구태의연하지만) 당시 작가가 성이 전환된 방법이나 경위를 설명하자면 판타지의 도입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내게 버지니아 울프는 매우 이성적인 작가이다. 그래서 판타지적 요소가 좀 어색한 느낌이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의식의 세계를 많이 다루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성이 전환되는 과정에 말하자면 천사인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버지니아 답지 않은 느낌이다, 올랜도의 의식 세계가 아니었으므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올랜도는 남성이었을 당시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고통없이 성이 전환되고 그러나 자연에 위배되는 경험은 올랜도가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오랜만에 만난 고국은 성이 전환된 올랜도에게 모든 재산을 압수하려고 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재산을 가질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신분이 강등된 올랜도는 남성이었을 당시 당연하게 누렸던 모든 것들을 여성으로서 지켜야 하는 어려움과 맞서게 된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부분들을 일단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야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성이 재산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누군가의 소유물이지 누구를, 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페미니즘의 대표작가로서 그녀는 올랜도를 통해 여성의 지위, 남성이 알게 된 여성의 삶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올랜도의 긴 삶을 통해 투영하고 있어 일전에 읽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의 여성작가들이 생각났다. 그녀들의 투항하는 삶은 그녀들의 소산인 작품에 가장 잘 녹아져 있으므로 올랜도 또한 빗겨갈 수 없는 여성의 삶을 남성의 삶과 근접하게 비교할 수 있는 페미니즘적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300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는 올랜도의 삶은 여성으로서 좋아하는 글쓰기조차 제대로 할 수없고 교육의 기회조차 균등하지 않은 것에 늘 불만이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희망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올랜도가 <올랜도>전체에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삶에 대한 애착과 물음표가 우리 인간의 오랜 질문과 숙제임을 얘기하고 있다.
쉽지 않은 버지니아 울프의 세 번째 작품 <올랜도>를 읽었다. 매번 서평은 쉽지 않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은 더더욱 힘이 든다. 내가 그녀의 문학에 대한 집착과 열정에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인지 , 아직은 그녀에게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어둠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