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깊이에의 강요 I 파트리크 쥐스킨트 I 김인순 옮김 I 열린책들




"나를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나는 깊이가 없어요!"




젊은 소묘 작가가 초대 전시회에서 평론가에게 어떤 말을 듣는다. 평론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작가는 그의 논평을 잊었지만 바로 그 평론가의 비평이 신문에 실리면서 그녀는 평론가의 말을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묘집을 뒤적거린다. 그때까지도 별 다른 생각은 없었지만 초대받은 곳에서 사람들이 그 평론가의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고 그녀는 그림에 손을 대지 않게 되며 고민한다. 미술 서적을 찾아보고 작품을 연구하며 화랑과 박물관을 두루 돌아다닌다. 그리고 여자는 술을 마시고 밤새 불을 켜두며 일상의 리듬이 깨져버린다. 외출도 방문도 받지 않고 운동부족으로 몸이 뚱뚱해지고 알콜과 약물복용으로 빠르게 노화를 맞이한다. 급기야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깊이에의 강요> 제목이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읽어보니 내용 또한 호기심만큼 충격적이다. 삶이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흔들리며 자신의 삶을 추락시킬 수도, 대단한 열정과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깊이에의 강요>는 아주 짧은 단편이지만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에게 들은 말 한마디에 자신감을 잃고 심할 때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이 일상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줄 수도 있음에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내가 뱉은 말 한마디로 누군가 충격을 받았다면 뱉은 말을 어떻게 주워담을 것인가? 말에무게를 실어 가려 해야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의 반대적 이야기가 바로 <깊이에의 강요>의 교훈이 아닐까 싶다.



쥐스킨트의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의 시선이란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적으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을 작가는 글감으로 채택해서 뼈를 만들고 살을 붙여 이야기를 완성해 내는데 창의력과 상상력이 대단하다. 쥐스킨트의 도서들은 특이하다는 생각이 매번 드는 것같다. 글감 자체가 특이하지 않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하고... 특이하지 않아도 이야기화 시키는 능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는 거겠지. <깊이에의강요>는 3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과 한 편의 에세이가 담겨있다. 4작품이 모두 좋은데 한 편의 에세이, <문학의 건망증> 또한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서 소개해 보련다.




어떤 책이 내게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는지, 인생을 새롭게 바꾸었는지 스스로 질문한다.  그리고 읽었던 책들과 시인의 시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러나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곤 책장의 책을 꺼내 읽어본다. 완벽한 문장과 알지 못했던 흥미 있는 지식으로 굉장히 놀라워한다. 발견하는 새로운 문장들로 귀중한 것에 정신을 집중한 욕망때문에 왜 책을 읽고 있는지도 잊었다. 그리고는 누군가 줄 친 부분에 왜 이 대목에서 줄을 쳤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자신이 감동을 받은 부분에 누군가 줄을 쳐 놓은 것을 보고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와 연대감을 느낀다. 그러나 곧 그 사람은 바로 나였음을 발견한다, 내가 오래 전에 읽었던 그 책을 다시 읽은 것이다!




<문학의 건망증>은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에세이였다. 우리 책을 읽는 책계(책읽는기계)들은 아마 많이들 공감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내 삶으로 책이 훅 들어왔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며 어떤 책이 내게 감명을 주었는지 곰곰히 짚어보기도 한다. 좋았던 책들은 좋았던 구절 때문에 감탄하기도 하고 작가를 부러워도 한다. 누군가 줄을 쳐 놓은 부분을 읽으며 연대감을 느끼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부분은 정말 쥐스킨트의 작품을 읽으며 웃을 일이 있을지는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었다. 심오하고 깊이있으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충격을 늘 안겨주는 작가로만 생각했었다가 "나, 이렇게 웃길 수도 있는 작가야~" 하며 한 방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면 늘 기억이 휘발되는 것에 안타까워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는데 유명한 작가들도 이럴 수 있구나 싶어 작가가 좀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에세이였다. 또한 작가가 내게 하는 듯한 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 본다.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점점 쥐스킨트의 작품이 기대가 된다.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실망시키지 않고 더욱 기대감을 채워준다. '문학의 건망증'을 겪고 있다고 해도 나는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매번 재미와 기대감을 채워주는 작가들의 책이 있으므로.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 하버드대 행복학 명강의
장샤오헝 지음, 최인애 옮김 / 다연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I 장샤오헝 I 최인애 I 다연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하버드대학교의 탈 벤 샤하르 교수의 강의 중 하나가 '긍정심리학'이다. 첫 강의를 시작했을 때 겨우 여덟 명의 학생이이 수업을 들었고 그 중 두 명은 강의 신청을 철회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 번째로 강의를 열었을 때 무려 400명이 신청했고 세 번째 학기에는 855명이 신청했다고 한다. 학생의 부모와 가족 심지어 각종 매스컴 종사자들까지 강의를 듣겠다고 찾아왔었다는 그 유명한 강의를 바탕으로 저자 장샤오형은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에서 말하고 있다.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답을.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말한다. "나는 행복한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과연 몇 명이나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다보면 자기계발에 소홀해지고 반대로 정신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만 관심을 쏟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 모든 면에서 두루 균형 잡힌 삶을 원한다면 때때로 자기 자신을 점검해봐야 하며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한다. 행복은 마음가짐이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찾으라고 말한다. 나만의 장점에 집중하고 나답게 살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한다. 나 답게 살라는 말에 추가적으로 4강에서는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 인생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남과 비교하다보면 자기 비하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신은 불행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남과 비교하기 보다는 앞서 말한 자신의 장점에 집중하고 자기 실수에 관대해지며 남이 아닌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라고 한다.




"남보다 뛰어난 것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진정한 자랑거리는 과거의 자신보다

뛰어난 것이다."

-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을 들어 설명한다. 인생에 승패란 없으며 승패를 겨뤄야 한다면 바로 자기 자신과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이 자신보다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자신의 행복은 축소경으로 보고 남의 행복은 확대경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서 무릎을 쳤다. 맞는 말같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남을 부러워할 때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우리가 먼 곳의 풍경을 부러워하며 그곳에 시선을 뺏기느라 바로 눈앞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행복을 발견하는 눈일 것이다. 남의 정원에 핀 꽃을 부러워하느라 정작 자신의 정원에 핀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지 못하는 것, 누구나 하는 실수이지만 이제 알았다면 내 정원에 눈을 돌리자.



영화 [와호장룡]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고 한다. "네가 두 손을 꽉 쥐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 손을 활짝 편다면 세상이 너의 손 안에 있을 것이다."... 너무 멋진 말이다. 우리는 세상의 온통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돈, 명예, 권력, 지위 등등.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무리 욕심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가진 것조차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움켜쥐고 놓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욕심은 깔끔히 포기하라고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 포기하는 것은 무능한 선택이지만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지 않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적절할 때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베풀라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야말로 숭고한 일은 없으며 우리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고 베푸는 것처럼 다른 이에게도 베푼다면 분명 영혼의 기쁨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1 장 1 장이 모두 좋은 이야기로 넘쳐나는데 이런 책은 빨리 읽어버리면 좋은 의미가 희석되고 날아가 버릴까 싶어 매일 조금씩 읽으니 다 읽고난 지금 행복이 넘친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 어울리는 일화와 유명인사들의 말이 같이 담겨 좀 더 내용이 와닿는다. 또한 뜬구름 잡기식으로 그저 '베풀라, 비교말라, 행복해라' 의 이야기들이 아니라 과감히 포기할 것은 포기하라고도 하는 채찍질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매일 한참 바쁘고 시간에 쫓기며 내가 도대체 뭣 때문에 지금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힘드나? 라고 생각되는 시간에 잠깐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를 보게 되면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라도 들은 듯 마음은 평온을 찾는다. 집 밥을 먹으면서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면 미슐랭 5스타의 식사가 되듯. 그래서 이 책은 며칠에 나눠서 조금씩 읽어야 효과를 보는 듯하다. 요즘 조금은 지치고 삶의 의미가 희미해지며 스트레스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고 계시다면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를 추천해드립니다. 말이 필요없는 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만과 편견 -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제인 오스틴 지음, 앨리스 패툴로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만과 편견 I 제인 오스틴 I 강수정 옮김 I 지학사아르볼



P. 489 아버지가 너의 기질을 잘 아는데, 너는 남편 되는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도, 어엿하게 살 수도 없는 사람이야.


P 493 제 미모에는 처음부터 아랑곳하지 않았고, 제 태도, 당신에 대한 제 태도는 줄잡아 말하더라도 거의 무례한 수준이었죠. 당신에게 말을 할 때면 늘 고통을 주려고 했고요.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제가 건방져서 좋아진 건가요?





롱본의 베냇 가는 딸만 다섯이다. 베냇 부인은 딸들을 시집 보내는 것이 인생과업이었다. 비어있던 네더필드 파크에 엄청난 재산을 가졌다는 미혼의 젊은 남자 빙리 씨가 세를 들어온다. 잘생기고 신사다웠으며 호감가는 인상의 빙리씨는 그의 친구 다아시 씨와 빙리 씨의 두 여동생과 함께 왔는데 다아시 씨는 세련되고 훤칠한 체구로 당당한 태도의 신사였으며 연 수입이 1만 파운드라는 소문에 많이들 관심을 가지지만 금새 오만한 태도로 인하여 까다로운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빙리 씨와 베냇 가의 맏딸인 제인은 금새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해서 누가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인의 동생인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가 친구인 빙리에게 "참아 줄 만은 하군. 하지만 내 마음을 끌 정도로 예쁘지는 않아." 라고 한 말에서 엘리자는 그를 오만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집에 딸만 있어서 배넷 씨가 사망했을 경우 그의 재산은 한정 상속제에 의해 콜린스 씨에게 상속이 된다. 이 점에 콜린스 씨는 배넷 씨댁을 방문해서 자신이 성직자가 되었으며 딸들에게 보상을 강구하겠다고 한다. 제인은 빙리 씨와 결혼이 성사된 것처럼 배넷 부인은 말하자 콜린스 씨는 엘리자를 자신의 부인으로 점찍고 청혼을 한다. 사랑의 감정없이는 결혼할 수 없는 엘리자는 거절하고 콜린스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던 엘리자의 친구인 샬럿이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롱본의 근처 부대에 위컴이라는 새로운 군인이 왔는데 사교성도 좋고 잘생겼으며 좋은 인상을 풍기는 청년이었고 엘리자와 잘 어울렸다. 시내를 둘러보던 위컴과 엘리자는 우연히 마주친 다아시 씨와 어색한 만남이 신경쓰였던지 다아시 씨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다아시 씨의 부친이 유언으로 위컴 자신에게 부여한 성직권을 다아시 씨가 박탈한 이야기를 하자 엘리자는 점점 다아시 씨를 싫어하게 된다. 하지만 다아시 씨는 엘리자에게 청혼을 하는데....





<오만과 편견>은 1797년의 작품이다. 당시로서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희귀하고 힘든 일이었다. 스스로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결혼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치가 생겼다. 이러한 것들이 <오만과 편견>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배넷 부인의 인생과업이 딸들을 시집보내는 것이나 멋지고 돈이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여자들, 아들이 없어서 한정상속(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토지와 집 등 재산을 남자에게 한정시켜 상속하도록 한 영국의 제도)을 해야하는 것 등이 그렇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면서도 제인 오스틴은 그야말로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인상을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나 자신의 너무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는 것에서 사람들은 오만함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이 상대를 알기도 전에 편견이 생기는 부작용을 또한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때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면 기분이 좋고 무시를 하면 기분이 상해 선입견과 무지를 따랐던 엘리자베스를 통해 여성의 허영심을 보여준다. 나름 분별력이 있는 캐릭터였던 엘리자베스를 통해 나에 대한 상대의 관심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모습을 여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피력하고 있다.



이 작품이 200년 전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잘 읽혔음에 놀라웠다. 가독성이 굉장히 좋았는데 앞서 읽은 지학사아르볼의 <프랑켄슈타인>의 번역자인 강수정님의 번역이었다. 이분의 번역이 좋아서 이분이 번역한 책만 골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잘은 모르지만 고전의 번역은 원작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성을 불어넣어야 하는 작업이 아닌가 싶은데 강수정님의 번역이 내게는 두 부분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시대적 배경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으면서 술술 읽었을 만큼 가독성이 좋아 책의 두께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만과 편견> 속에는 다양한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친구에게 청혼한 남자의 마음을 달래주다 눈이 맞은 샬럿이라는 캐릭터나 다아시의 여동생에게 온갖 정성을 쏟다 일이 틀어지자 다른 여성들을 공략하는 돈을 보고 신붓감을 정하는 위컴이라는 인물, 딸들의 결혼에 전전긍긍하고 오로지 그것에만 매달리는 배넷부인, 오만함을 뒤집어 쓰고도 끝끝내 사랑을 쟁취하는 다아시라는 인물이 그렇다. 베냇 가문의 다섯 딸들도 각각 차별화되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웃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얻는 큰 이득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최고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무리 재미있어도 재독은 쉽지 않다. 재독이 어려운 이유는 결말을 알고 있어 매달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의 재미는 절정에서 느끼고 결말은 우리에게 도착지에 도착했을 때의 안정감을 준다. 미리 맛본 안정감에서도 신비감이 떨어지지만 절정에서 치솟은 궁금증은 재독에서는 다시 느끼지 못할 부분이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 같은 도서는 절정에서 주는 궁금증보다는 전개과정에서의 주인공들의 심리와 상황이 주는 재미들이 다시 재독으로 이끌 수 있는 매력을 지니지 않았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실에 갇힌 남자 스토리콜렉터 8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실에 갇힌 남자 I 데이비드 발다치 I 김지선 옮김 I 북로드





무고한 남자가 유죄 판결을 받는 데 내가 한 몫한 건가?




에이머스 데커 형사는 딸의 생일 때문에 고향에 왔다. 아내와 함께 묻힌 묘지에 꽃을 들고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 재소자였던 사람같은 행색이다. 그는 다짜고짜 다가와 13년 전의 사건으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들어간 메릴 호킨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당시 사건의 범인이 아니며 자신의 누명을 벗겨달라고 한다. 종신형이었으나 암 선고를 받은 그는 석방되었다. 당시 파트너였던 랭카스터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는 호킨스가 굳이 자신과 데커를 찾으며 누명을 벗겨달라는 것은 뭔가 조사할 필요성을 가진 듯하다고. 그리고 랭카스터와 데커는 사건을 다시 재조사하는데 호킨스를 찾아간 둘은 그의 시체와 만나게 된다.



호킨스가 살해한 카츠의 부인 레이첼과 리처즈의 부인 수잔 리처즈를 만났다. 레이첼은 뭔가 거짓말을 할 때의 행동을 취하고 수잔은 만남 후 곧 사라졌다. 경찰 내에 홍보 담당인 샐리 브리머에게 자료를 부탁해 은밀히 만난 두 사람, 그러나 곧 샐리는 총상을 당한다. 데커는 자신이 호킨스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을 싫어하는 누군가의 소행이라 생각한다. 사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던 차에 수잔 리처즈는 시체로 발견되고 사망한 수잔의 아들인 프랭크와 호킨스의 딸 미치도 마약을 했었음을 두 사람의 접점으로 보고 마약거래상을 찾던 중 교도소의 스티븐슨을 찾아간다. 스티븐슨은 호킨스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것. 스티븐슨의 팔에 있는 문신과 샐리 브리머를 죽인 이의 팔에도 같은 문신이 있었다. 스티븐슨을 만나고 경찰서로 돌아오자 새로운 소식이 데커를 기다린다. 스티븐슨이 사망한 것. 그리고 데커는 정보를 총 동원해 문신의 의미를 파악한다.





데이비드 발다치의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진실에 갇힌 남자는 마치 007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경찰서에 배치되어 첫 사건을 맡고 그 후로 맡은 사건들을 모두 해결하고 FBI를 돕기 위해 고향인 벌링턴을 떠났던 데커는 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잠시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이 13년 전에 맡았던 첫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 범인이 아니며 누명을 썼으니 자신의 누명을 벗겨달라며 찾아온 것. 거기에 그 범죄자는 암에 걸려 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할 사람이 굳이 누명을 벗겨 달라고 자신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을 찾아온다면? 데커는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곧 용의자들이 행방불명 되고 사건에 점점 다가갈수록 단서를 가진 이들이 살해당한다. 앞으로 갈수록 누군가가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 다쳐'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람이 죽고 다시 시작하고 사람이 죽고 다시 시작하는 데커. 사건의 열쇠에 다가갈수록 단순 사건이 아닌 느낌이 든다.



신입 형사로 랭카스터와 데커가 맡았던 메릴 호킨스 사건은 누가봐도 메릴 호킨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는데 13년 동안 메릴 호킨스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다. 또한 사건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메릴 호킨스의 딸이었던 미치 호킨스가 의심스러워진다. 만나는 용의자들마다 수상한 점을 가지고 있고 사망한 이들의 팔에 그려진 문신은 하일 히틀러를 가리킨다. 뭔가 사건의 뒤에 어마어마한 조직이 있을 듯한 암시를 주는 <진실에 갇힌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의 시리즈는 첫 만남이다. 번역이 좋아 읽는데 막힘이 없으며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사건이 풀릴 듯 막히는 고비들을 지나다보면 금새 읽어지는 가독성이 좋은 글이었다. 데커가 아내와 딸을 잃고 힘들어하고 자신의 옛 파트너 랭카스터의 슬픔을 이겨내도록 응원해주는 모습이 추리소설에서 좀 어울리지 않는 감동을 받았달까? 이러한 점도 여늬 추리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데이비드 발다치의 다른 도서를 읽지 못해서 그의 필력이 어떠하다고 말을 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추리소설이 젠틀맨같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총격사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신사적인 느낌의 추리소설이다. 진실에 갇힌 남자는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지만 먼저 읽게 되었다. 그러나 내용상 전혀 문제 가 없었다. 전직이 변호사였던 이력 탓일까? 경찰조직에 대한 이야기, 사법제도에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써써 미국 스릴러의 걸작 탄생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하니 나머지 시리즈 도서도 기대가 된다. 이제 그의 개인적 슬픔에 다가가기 위해 1편을 만나러 가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럽의 죽음 - 다문화의 대륙인가? 사라지는 세계인가?
더글러스 머리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럽의 죽음 I 더글러스 머리 I 유강은 옮김 I 열린책들





지금 유럽은 자살하는 중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 지도자들은 자살을 선택했다.

유럽인들이 이 결정을 따르기로 선택할지는 

당연히 또 다른 문제다.




장 지글러의 <인간섬>을 읽고 이주자들의 목숨을 건 여정이 얼마나 험난하며 목숨을 걸고 도착한 곳마저도 사실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현실에 참혹함을 느꼈었다. 더글러스 머리의 <유럽의 죽음>을 병렬독서하면 좀 더 난민들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유럽이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싶어 시작한 독서는 뜻하지 않은 이야기들과 만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더글러스 머리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더글러스 머리는 19세기는 신경쇠약이라는 단어를 통해 개인적인 무기력과 피로를 설명했다면 현재는 번아웃이라는 단어로 바꿔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당사자가 헌신적으로 자신을 너무 많이 내주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의 번아웃이 있다면 사회도 번아웃이 있지 않겠냐며 현재 유럽은 번아웃 상태라고 말한다. 왜?



노동력 부족으로 서유럽국가들이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면서 대규모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아마 저출산도 한 몫을 했을텐데. 이것을 시작으로 유럽은 현재 서유럽의 각 나라마다 이주자들로 미어터진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1950~60년대 서독,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는 노동력 공급의 간극을 매우기 위해 손님 노동자 유치계획을 세웠다. 산업 부문 미숙련 분야에서 노동력을 해소하는데 기여했고 그들은 곧 돌아갈 것이라 유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손님 노동자는 가족을 데려오고 자녀가 생기자 학교를 보내기 시작하며 자신의 고국과의 생활수준의 차이로 귀국하는 사람보다 그냥 눌러앉는 사람이 많게 되었다. 거기에 매일 밀려오는 엄청난 이민자들로 유럽은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다.



현재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수용시설인 모리아는 이주자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포화상태이다. 식량 배급, 샤워시설, 안락한 잠자리, 화장실 등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목숨을 걸고 이주해 온 이들의 삶이란 아직도 험난한 여정 중에 있는데 무조건적인 수용도 문제이지만 넘쳐나는 이주자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유럽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부족한 주택시설과 주택을 지을 공간의 확보에도 문제가 있다. 그리고 저자 더글러스 머리가 <유럽의 죽음>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말하고 있는 공통된 문제가 있다. 바로 무슬림이야기다. 유럽 내의 무슬림의 숫자가 넘쳐나면서 문화의 변화, 인규비율, 가장 심각한 무슬림의 범죄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한다. 책의 거의 매 장마다 후기마저 더글러스 머리는 무슬림의 범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곳곳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을 셀수 없이 많이 열거하고 있다. 강간사건부터 시작해서 이슬람에 대한 출판에 관계한 모든 이들은 살해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있다. 이른바 만평사건이라고 하며 출판계의 인사들이 줄지어 피해자가 되었지만 현재는 여성이 주로 범죄의 약자가 되고 있다.



동유럽처럼 확실한 태도를 취하지 못한 서유럽의 몇몇의 예지자들이 걱정하고 우려를 표현했으나 마치 인종주의자로 치부당하고 자유로움을 대표하는 유럽은 이제와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더글러스 머리는 지금이 이 사태는 마치 독일의 메르켈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 화살을 던진다. 더불어 이 문제를 해결할 나라도 독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에 활기를 부여한 것은 정신이었고 종교였으며 철학이었고 예술이었는데 이제 그 토대를 잃어가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믿음도 상실했다고 한다. 서유럽은 그의 말대로 번아웃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모두 유럽이 자초한 일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제 질문을 던진다.

유럽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유럽은 세계의 누구든 옮겨와서 자기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가?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피해 도망치는 모든 사람의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가? 전 세계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우리 대륙에 들어오게 해서 더 나은 생활수준을 제공하는 게 유럽인들이 해야 할 일인가? 라고.



마지막으로 더글러스 머리는 유럽은 어느 누구도 돌려보낼 수 없었고 그리하여 원하는 사람은 아무나 열린 문으로 성큼성큼 들어올 수 있었다라고 하면서도 유럽이 애초에 누구를 위한 곳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야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주 사태가 기본적으로 유럽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유럽 중심적 시각을 드러낸다는 식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유럽 중심적 시각이나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무슬림의 범죄 이야기가 넘쳐나는 글을 읽으면서 일반화의 오류가 생각이 났다. 물론 IS가 관계된 사건은 명시를 했지만 번역의 탓인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마치 무슬림이 범죄의 주체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머릿 속을 맴돌았다. 무슬림의 범죄사건을 이렇게 많이 나열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사건일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유럽의 문화와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나 표현들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상당했다. 저자는 유럽 각국 대중이 직접 삶으로 경험하는 증거를 믿지 않게 만들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존재하고 이 책에 담긴 요지 하나는 이런 겉치레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영국은 지난날의 유럽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냥 자취를 감출 것이고 전혀 새로운 문제들로 가득한 세계가 태어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에서 이중적인 의도를 받는 것은 나만의 오해인가? 장지글러의 <인간섬>을 읽으며 난민의 상황을 안타깝게만 여겼던 것에 반해 현재 이주자들의 처우와 시스템 뒷편에 엄청난 문제로 곪고 있었던 유럽의 민낯을 만난 <유럽의 죽음>. 서유럽의 현재 상황은 그야말로 번아웃이었다. 이런 번아웃을 해결할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이야기를 끝냈다면 독자로서 읽는 보람을 느꼈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