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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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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ㅣ 치누아 아체베 ㅣ 조규형 옮김 ㅣ 민음사






그의 삶은 하나의 큰 열정, 즉 부족의 촌장이 되는 것에 사로잡혀 왔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용수철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거의 다가와 있었다.

그때 모든 것이 부서져 버렸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프리카 민족들의 슬픔을 담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현재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좀 낯설고 생소하며 조금은 발달되지 않은 미개의 문화처럼 느껴지지기도 하고 그들의 삶은 산업과 문명이 발달 되기 전의 우리들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외부의 문명, 외부의 힘에 의해 무너지고 서구화되어갔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는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삶들이 점차 외부인들에 의해 무너져가는 전초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다. 아프리카 문학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그들의 문화가 이질적으로 다가왔지만 안쓰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끝을 알고 있기에 그랬을까? 그들의 순수한 문화가 언젠가는 무너짐을 알고 있었기에 이야기는 슬펐고 제목마저 슬픔을 가중시켰다.




음악을 좋아하고 흥청망청 놀았던 아버지에 비해 강하고 훨씬 현실적인 남자였던 오콩코는 마을에서 인정받는 남자였고 인근 마을에까지 소문난 씨름선수였다.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와 달리 오콩코는 재산을 불리고 가정을 지켰으며 더 나아가 부족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남자다움', '강함' 등에 강박관념을 보이는 남자였다. 자수성가했고 좀 더 자신의 강함을 부족에게 보이려 애썼다. 오콩코라는 남자를 통해 이보민족의 삶과 문화를 이야기하고 그들이 모시는 신에 대한 높은 충성심 또한 이야기 곳곳에서 뚜렷하게 보여진다.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 절대적이다. 이런 그들에게 외부의 신이 마을에 들어오고 마을은 술렁인다. 부족이 믿던 신은 신이 아니고 오로지 유일한 신만이 존재한다며 교회를 짓는 외부인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생겨나는데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부인하고 신을 아버지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오콩코의 큰아들 은워예도 그중 하나다.




내가 믿던 신들이 신이 아니라고? 옳다고 믿고 지키며 살아왔던 민족에게 새로운 신의 존재는 당황스럽다. 그런데 이 신의 존재가 그들의 마음에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고 점점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한다.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외부의 힘, 그것에 의해 무너져가는 민족의 모습은 안타깝고 슬프다. 결국 부족은 그들이 만든 법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한 남자의 운명을 통해 아프리가 민족이 무너짐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강한 남자가 되려고 노력했던 오콩코가 한순간의 실수로 유배되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현실을 느끼는 것을 아프리카 민족의 운명과 동일시 한 것이다.



치누아 아체베라는 나이지리아 작가는 그동안 아프리카 민족들의 삶을 다큐멘타리로 만 접해왔던 내게 보다 디테일한 삶과 그들의 문화를 알려주었다. 이야기 속 그들의 풍습이라는 것은 미신적인 것에 가깝고 여성에 대해 억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해 작가는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은 듯하다. 작가는 서구, 외부의 세력이 그들의 문화를 잠식함에 있어서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점이 작가가 치우치지 않고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제목은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재림>에서 따왔다고 한다. 예이츠는 이 시에서 기존 체제의 붕괴가 또 다른 체제를 잉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노래했다고 한다. 이 점을 치누아 아체베는 공감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또 다른 체제를 잉태하는 것이 꼭 희망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예이츠의 시를 따서 제목을 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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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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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I 유진 오닐 I 민승남 옮김 I 민음사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상당히 궁금했던 이야기였는데 읽으면서 안타까움이 컸던 작품이다. 바로 유진 오닐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스토리라고 할 게 없지만 가족사이므로 민감한 부분이란 점에서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글쓰기 작업이었을 듯하다. 유진 오닐이 죽기 직전에 쓰면서 당시 울기도 하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힘든 과거를 떠올리며 슬픔을 마주하는 일, 특히나 가족사라고 한다면 자신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그래서 그는 부인에게 이런 헌정사를 남겼다.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바치오." 이렇게 힘든 가족사를 왜 그는 작품으로 쓸 생각을 했을까?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가족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든 가족사는 드러내기 힘든 이야기이고 아픔이라는 점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는 공감의 폭이 큰 작품이라 하겠다.



부부간의 대화 부족, 부자간에 보이는 불화, 형제간의 질투 등 가족 간에 있을 수 있는 불화는 다 짊어지고 있는 티론 가족은 잘못이 상대에게 있다고 여기며 불만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불화는 해소되지 못하고 지속된다. 소통의 부재가 그 원인일까? 그 불화의 중심에 아버지와 큰 아들이 서 있다. 가장인 티론은 돈이 아까워 부인의 치료를 제때에 제대로 하지 못해 오랜 시간 요양원에서 보내게 했고 이제는 둘째인 에드먼드의 폐병 치료도 돈이 덜 들어가는 요양소로 보내기로 한 것에 장남인 제임스는 불만을 터트리며 아버지와 맞서게 된다.   아버지는 돈이 생기는 대로 알코올을 찾는 아들을 나무라고 아들은 자린고비 같은 아버지를 탓하며 서로를 질타하고 상처의 말을 쏟아놓는다.



가족이라고 해서 소통이 잘 되고 성격적으로 잘 맞는 것은 아니다. 친구나 동료, 조직은 나와 맞지 않거나 관계가 힘들면 끊을 수도 있지만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고 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 괴롭고 힘든 존재들이다. 그래서 가족이 준 상처는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그 상처는 가족을 제외한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유진 오닐은 오래 묵은 자신의 슬픔과 가족과의 화해를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이뤘을지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 6시 30분 경까지의 한 가족의 대화로 이루어진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가족이 무엇인지, 역으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생각하게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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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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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I 셰익스피어 I 최종철 옮김 I 민음사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햄릿왕자는 아버지 햄릿 왕의 죽음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돌아가신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머니마저 삼촌의 부인이 되니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어머니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괴로워 독일의 비텐베르크 학교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왕은 아들로서 덴마크에 머물며 왕위 계승자로 지목한다.


이런 때 성위의 망대에서 왕의 근위대원들이 햄릿 선왕의 유령을 보고 햄릿 왕자에게 전한다. 그리고 만나게 된 유령은 햄릿에게 자신이 죽은 이유를 말해준다. 자고 있는 자신에게 삼촌이 나병을 일으키는 증류액을 귀에 쏟아부어 독살당했기 때문이며 아들로서 복수하기를 또한 어머니에 대해서는 스스로 벌을 주도록 맡기라 한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햄릿은 괴로워하며 미친 척 행동한다. 그리고 사랑했던 오필리아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이것을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재상)는 오필리아에 대한 상사병으로 왕에게 보고하고 왕과 왕비는 잘 해결되길 바란다. 그러나 햄릿은 삼촌이 아버지를 죽인 행위를 연극으로 만들어 배우들을 통해 많은 이들 앞에서 연기하게 한다.


연극 후 햄릿과 대화하고자하는 왕비. 햄릿은 어머니에게 혐오의 말들을 퍼붓는다. 그런데 누군가 숨어서 이야기를 듣는 낌새를 차리고 햄릿은 바로 칼을 들어 죽여버리는데,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였다. 결국 햄릿은 왕에 의해 영국으로 쫓겨나고 왕은 영국 왕에게 편지를 보낸다. 즉각 햄릿을 죽이라는 내용으로. 한편 아버지가 죽고 햄릿에게서 사랑마저 잃은 오필리아는 실성하고 왕에게 충성했던 아버지를 잃은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즈는 복수의 칼을 간다.




품위와 수줍음을 흐려놓고, 미덕을 위선이라 부르며,

순수한 사랑의 고운 이마에서 장미꽃을 앗아가고 거기에 창녀 낙인 찍으며혼인서약을 노름꾼의 거짓 맹세처럼 만드는 그런 행동--

, 계약이란 몸체에서 혼을 뽑아버리고, 종교의식을 한낱 말치레로 만드는 그런 행위 말입니다.

하늘이 얼굴을 붉히고, 이 단단한 지구가 최후심판 맞은 듯 슬퍼하는 모습을 내려보며그 행동에 가슴 아파합니다.





<햄릿>1601년도의 작품이다. 17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쓰여졌으니 고전 중의 고전이다. <햄릿>은 비극작품이다. 비극 중에서 온갖 비극을 다 껴안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햄릿의 삼촌 클로디어스가 거스루트를 사랑해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형인 덴마크 왕을 죽인다. 모든 비극은 그의 욕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형수와의 결혼은 교회가 명시적으로 금지한 근친상간이었다고 한다.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숙모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햄릿은 혐오한다.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햄릿은 사랑했던 오필리아마저 혐오하게 되고 오필리아는 변한 그의 마음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성하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오필리아의 죽음과 그녀의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죽음은 결국 레어티즈가 복수의 화신이 되는 계기가 되었고 햄릿의 삼촌인 폴로디어스와 음모를 계획한다. 이 음모는 결국 모두를 죽음의 그림자에 둘러싸이게 되는 결말을 부른다. 비극적 엔딩의 <햄릿>, 총체적 비극의 집합체이다.


햄릿은 온갖 비극을 담고 있지만 비극을 맞은 한 남자의 내적갈등을 다룬 점을 지적하고 싶다. 햄릿은 어머니의 재혼으로 굉장히 괴로워하고 삼촌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행하지 못한다. 또한 자살하려고 고민도 한다. 그래서 결국 그는 미친 척 행동하게 된다. 사랑했던 여인의 아버지를 죽이고 여인은 실성하고 결국 그의 오빠와 대결하게 되는 설정은 가장 비극적인 사랑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배경, 정치와 비극적 사랑, 가족애, 복수 등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는 <햄릿>은 왜 <햄릿>4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랑받고 연극무대에 올려지는지 알 수 있다.


희곡으로 쓰여진 <햄릿>은 비교적 짧다. 그러나 그 안에 아주 많은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고 사건은 속도감있게 전개된다. 햄릿에서는 가장 유명한 대사를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대중적으로 알던 문장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였다. 하지만 민음사의 <햄릿>은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해석하고 있다. 햄릿은 분명 자신에게 닥친 비극으로 내적으로 고민과 갈등이 많았던 캐릭터였고 나아가 자살까지 생각을 했던 인물이므로 죽느냐 사느냐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햄릿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400년전의 문장들이다보니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익숙하지만 예를 들면 "약한 자여, 네 이름은 여자로다."라는 문장과 "가장 정숙한 처녀가 자기 아름다움을 달에게만 드러내도 방탕하기 짝이 없어." 또는 "그건 제 기억 속에 가뒀으니, 오빠가 열쇠를 간직하고 계셔요."라는 문장은 보수적 성향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하다. 이런 문장들이 실제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400년 전의 문학작품 속 이런 문장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를 돌아보고 온 느낌이 든다. 참고로 햄릿의 표지는 오필리아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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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호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2
외젠 다비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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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호텔 I 외젠 다비 I 원윤수 옮김 I 민음사





'모든 것이 다 변할 거야, 이제부터는.'





처남에게 돈을 빌려 호텔을 구입한 에밀 르쿠브뢰르와 부인 루이즈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대해서 두려우면서도 한껏 들떠있다. 전과는 다른 생활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호텔에는 여러 사람들이 묵고있다. 호텔은 고급호텔이 아니었다. 그저 서민들이 적당한 가격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었다. 호텔의 경영으로 에밀과 루이즈는 바빠졌다. 토요일은 투숙객들이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새벽2시가 되서야 잠을 자게되고 아침 7시면 카페를 열어야해서 에밀은 늘 잠을 설쳤고 루이즈는 호텔이 더러워 새단장을 한다. 시트를 바꾸고 청소를 하는 루이즈. 그러나 그녀는 쓰러지고 늑막염으로 병원신세를 진다. 루이즈는 가정부로 르네를 고용했었는데 르네는 착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여자였다. 그녀의 애인은 그녀가 일을 하기를 원했고 호텔에서 가정부로 일하게 되자 그녀의 돈을 다 가져간다. 그리고 르네는 임신을 하게되는데 남자는 멀리 일을 하러 가게되었다는 말을 친구를 통해 르네에게 전하고 르네는 짐을 챙겨 보낸다. 혼자 아들을 낳은 르네는 유모에게 아기를 맡긴다.


호텔에는 노름꾼들이 있었다. 루이 영감, 미마르, 마리위스 플뤼슈는 술을 마시며 카드놀이를 즐기고 그중에서도 미마르는 계집질까지 했다. 늘 남을 헐뜯는 수문지기 쥘로, 부인 복이 없었던 드보르제 영감, 전기공 베르나르 등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지낸다.





<북호텔>은 한 부부가 돈을 융통해 북쪽에 있는 값싼 호텔을 인수하고 호텔을 이용하는 투숙객들의 일상을 그리는 별다른 큰 줄거리는 없는 이야기이다. 고급호텔이 아니다보니 호텔의 투숙객들은 흔히 보게 되는 서민들이고 갖가지 직업과 성격을 가지는 인간군상들을 만날 수 있다. 착실하지만 미혼모가 되는 여성, 세상과는 단절하고 오로지 일과 호텔만 알며 살아가는 여성, 카드놀이와 여자에만 열정을 바치는 남자, 배우, 전기공, 마차꾼, 아내를 뺏긴 경찰관, 폐병환자 등 나름의 히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지내는 호텔은 서민들의 애환과 따뜻한 온정이 있지만 작가는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뭔가 불행의 예감을 느끼는데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서 식상하기도 하지만 그 식상함이 또 우리네 인생의 레파토리인 듯하다.



작가인 외젠 다비는 <북호텔>로 포퓰리스트 상을 수상했는데 포퓰리즘을 신봉하는 문학 유파로, 문학이론은 평민, 서민의 풍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당시 세계를 휩쓸던 문학양식에 대항하여 자연주의 전통을 이어받자는 정신을 토대로 하고 있다. 1929년에 출간한 <#북호텔>은 파리 변두리에 사는 서민들에 대한 이야기로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 팽창기였다. 미국이 유럽과 동맹을 맺고 유럽은 미국 농산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지만 수요가 공급을 따르지 못하자 상품이 남아돌고 1929년은 경제공황기에 들어간다. 전쟁 후의 힘들었던 시기의 서민들의 삶이란 보지 않아도 뻔한 것. 그 시기의 서민들의 삶을 그대로 작가는 전하고 있다. 실제로 작가의 부모가 소설 속 제마프 강변의 값싼 호텔을 사서 <북호텔>이라 이름 붙이고 경영했는데 그 이야기를 작가는 소설화시켰다.



<북호텔>은 살아 온 삶에서 조금 더 향상된 삶을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저 인생을 즐기는 관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진심이지만 누군가에게 배신당하는 사람 등 여러 삶의 스펙트럼을 다룬다는 점에서 리얼리티가 강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북호텔> 속 등장인물 중 누구도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그저 근근히 먹고 사는 어쩌면 가난에 허덕일 수도 있고 모두들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런 점에서 문학이란 연꽃같은 느낌이다. 곤궁한 서민들의 삶에서도 문학은 피어나고 그것은 계속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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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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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I 프랑수아즈 사강 I 김남주 옮김 I 민음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서른 아홉 살의 폴은 이혼녀로 로제와 연인 사이였고 로제를 사랑했고 늘 그를 기다렸고 그리웠했다. 그러나 여자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남자로제는 하룻밤 창녀와 밤을 보내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어느 날 실내장식가인 폴은 한 부인의 집을 장식해주기로 하고 방문한다. 그 집의 아들인 시몽은 스물 다섯 살의 변호사로 젊고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폴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진다.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시몽, 그러나 폴은 시몽과의 나이차이를 생각하며 주춤한다. 브람스를 좋아하냐며 편지로 폴에게 물어오는 시몽. 둘은 연주회에 다녀온다. 그리고 시몽은 폴에게 로제를 사랑하지만 늘 혼자이고 혼자 잠드는 폴의 현실에 대해 들려주고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당신에겐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어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겐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제겐 당신을 사랑할 권리가 있고,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서 당신을 빼앗아 올 권리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시몽, 출장 중인 로제 사이에서 갈등하던 폴은 시몽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리고 첫날 밤 둘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폴을 너무나 사랑하는 시몽, 로제는 폴과 시몽과의 관계를 알고 질투에 빠진다. 그리고 폴을 되찾아오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폴에게 사과하는 로제.....






폴과 로제는 오래된 연인이고 폴은 늘 부재 중인 로제를 사랑하며 그와 함께 정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로제는 마흔이 넘은 폴 이외에도 다른 여자를 두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남자이다. 로제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을 폴도 알고 있지만 폴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로제와 공유할 때 로제가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늘 참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 있다. 두 사람의 오랜 연인 관계에 뛰어든 새로운 남자가 바로 시몽이다그는 스물 다섯 살의 변호사로 잘 생겼다. 특히 폴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로제에 반해 시몽은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은 소설 속에서 시몽이 폴에게 쓴 편지에 나온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며 연주회에 갈것을 권유하는데 왜 하필 브람스일까? 프랑스인들은 브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일상적이지 않는 것, 바로 일탈을 의미한다. 이 소설은 60년 전에 출간되었다. 60년 전에 마흔이 다 된 여자가 이십대의 잘 생긴 청년과 단 둘이 연주회를 보고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여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주위를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일탈인 것이다. 이 일탈을 폴은 받아들이고 그와 연인관계로 돌입한다. 그리고 시작된 그들의 삼각관계. 로제와 달리 폴에게 늘 기대고 의지하고 의견을 묻는 시몽에게서 폴은 조금 불편함을 느낀다.



폴과 연인관계가 되기 전 시몽은 폴과 식사를 하며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 한다. 그러다 자신이 맡았던 치정사건의 재판과정에 대해 얘기하는데 손가락으로 폴을 가리키며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로 고독 형을 선고한다."고 말한다. 재판과정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마치 폴에게 해당되는 말 같다. 폴이 끝내 로제를 선택하는 것, 이것은 바로 기성세대의 특징을 말한 것이 아닐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시몽에 비해 폴과 로제는 익숙함에 길들여져 결국 다시 서로를 찾는다는 설정은 단순한 남녀관계를 떠나 기성세대의 사랑과 신세대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시몽이 떠날 때 폴은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 라고 말한다. 새롭게 일탈하는 사랑을 하기에는 스스로가 늙었다고 생각하는 폴의 대사야말로 새로움보다는 익숙한 것, 안주하는 것을 바라는 기성세대의 사랑을 콕 집어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슬픔이여, 안녕>을 쓴 프랑수와즈 사강.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해 충격을 준 작가이다. <슬픔이여, 안녕>은 무려 열여덞 살 때 두 서너달 만에 써냈고 그해 비평가 상을 받게 된다. 대단한 작가이다.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슬픔이여, 안녕>을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슬픔과 낯설음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그 슬픔이 가슴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애처로운 느낌이라는 점에서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 소설을 사강은 스물 네살에 썼다는데 서른아홉살의 이혼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마음과 마흔이 넘은 자유로운 영혼의 캐릭터에 대해 쓴다는 것이 가능할까? 쓸 수는 있지만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는 큰 차이일 것이다.



<#브람스를좋아하세요>는 사랑에 의미를 두지 않는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그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사랑하는 젊은 남자의 삼각관계를 통해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사랑에 대한 태도에 대해 잘 그려내고 있다. 짧기도 하지만 큰 줄거리는 없는, 그러나 오래된 연인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고민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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