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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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I 파트리크 쥐스킨트 I 강명순 옮김 I 열린책들

 

 

 

 

그는 애당초 괴물로 태어났다.

그가 생명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반항심과 사악함 때문이었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몇 번의 출산을 겪었지만 모두 사산된 전력이 있는 생선 장수 여인은 다섯 번째 아이를 낳는다. 아기를 낳고 탯줄을 자르고 기절한 여인은 손에 칼을 든 채여서 영아 살인죄의 판결을 받고 참수되었다. 아기는 보모에게 맡겨졌다가 성당에 맡겨졌다가 다시 보모에게 맡겨졌는데 이유는 아이가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이유와 냄새가 없는 아이였고 마치 모든 냄새를 빨아들이려는 듯해서였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아이는 장바티스트 그르누이였다. 무두장이에게 다시 팔려진 아이는 거친 무두질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 날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힘차게 자신을 끌어당기는 예감에 이끌려 향기를 따라가 만난 것은 소녀였다. 소녀의 땀은 바다 바람처럼 상쾌했고 머리카락의 기름기는 호두 기름같았고 피부는 살구꽃 향기같았다! 그르누이는 소녀의 목을 조르는 동안 향기 하나라도 놓칠까 단 한 방울의 향기도 흘리고 싶지 않았다.

 

 

그르누이는 무두질 된 가죽 배달을 위해 들린 향수가게에서 유행하는 향수를 만들어내고 조수로 일하게 된다. 각종 좋은 향수를 만들어내고 그르누이는 많은 향수제조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향수가게를 떠나 동굴에서 생활하던 그는 몇 년이 흘러 다시 마을로 내려오고 다시 향수가게에 취업해더 많은 향수제조법을 배운다. 어느 날 아름다운 소녀가 머리는 잘린 채, 옷이 벗겨진 채로 시체로 발견되는데 며칠 후 다시 또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말하자면 24명의 소녀가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향기가 사라져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기억 속에서는 모든 향기가 영원한데, 현실의 향기는 소모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그 향기가 소멸되어 버리면 내 향기의 샘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그러면 나는 에전처럼 다시 벌거숭이가 되어 대용품의 냄새로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그럴 수는 없다. 그것은 전보다 훨씬 더 비참한 일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사회문제는 심한 악취였다. 이 악취를 개선하고자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특히 그라스라는 지역은 가죽을 수출하는 공상업이 번창하다 보니 가죽 냄새 때문에 향수 산업이 바로 파리가 아닌 그라스가 향수의 본거지가 된 배경이 된다. <향수>에도 그라스라는 도시가 등장한다. 아마 프랑스인들에게 향수는 굉장한 자부심을 주는 것이기에 <향수>라는 작품이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도입부부터 상당히 호기심을 끄는 것은 그르누이는 자신만의 체취가 없다는 것과 체취가 없는 대신 다른 향기를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마치 머리 속에 향기의 색인표가 있는 것처럼 세상의 온갖 냄새를 수집한다.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고 사랑받지 못했으며 성장이 느리고 주목받지 못했던 그르누이는 이용하기 좋은 인간으로 자라나지만 마음 속으로는 세상을 지배하고자하는 커다란 욕심을 갖게 되는 사악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르누이의 욕심은 향수를 제조해 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지고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아 인간의 냄새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천사의 향기, 주목받지 못하는 향기 등을 제조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향기 수집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엽기적 인물이 된다. 그에게 향수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였을까? 자신을 좀 봐달라는, 나 여기 있다라는 최소한의 외침이 아니었을까? 사랑을 갈구하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고 가련하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대로 향수를 제조한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향수를. 하지만 결국 그는 살인자로 기억된다. 쥐스킨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극단적인 캐릭터들이지만 악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향수 속 주인공은 사악하며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고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삐뚤어진 모습을 담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한다. 그르누이가 누군가와 지내다가 헤어지면 그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반복적인 패턴을 보인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르누이를 부려먹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르누이는 알면서도 그들에게 부림을 당해준다. 이것은 그가 성장하기 위한 조건들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그르누이에게 쓰여진 것이지만 겉으로는 그르누이가 그들에게 쓰여진 듯 보인다. 쓰임을 다한 그들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쥐스킨트의 단편들은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로 모두 여운이 짙게 남는 작품들이었다. 그의 첫 장편 <향수>는 읽는 내내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갈피를 잡지 못해 더욱 궁금했다.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까울 만큼 아껴두고 이야기를 즐기고픈 마음도 컸을 만큼 내게는 굉장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이었다. 18세기의 일이니까 옛날이야기지만 마치 전설 같은 느낌이 강했다. 향수의 본거지라는 곳에서 입에서 입으로 알음알음 전해지는 야사같은 이야기. 쥐스킨트의 이야기는 매번 충격을 주지만 향수가 으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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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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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I 파트리크 쥐스킨트 I 박종대 옮김 I 열린책들





우리 모두가 뿌리를 박고 있는 어머니 대지이자 음악적 영감에 양분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이자,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것의 사타구니에서 음악적 씨앗을 만들어 내는 진정한 창조의 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맥주를 한 잔 하며 브람스 교향곡 2번을 들려주는 한 남자. 콘트라바스의 소리를 들었냐고 묻는 이 남자는 국립 오케스트라 소속 콘트라바스 연주자이다.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는 모든 악기의 토대가 되며 콘트라바스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콘트라바스는 남성이지만 여성적 악기이며 태초의 악기임을 피력한다. 하지만 곧 그는 연습을 위해 집에 엄청난 돈을 들여 방음장치를 했고 오페라 연주 후에는 엄청난 땀을 흘려 평소 체력을 키워두지 않으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놓는다. 거기에 더해 처음부터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이는 없으며 더욱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어린아이는 없다고.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는 비와 추위에 약해 극한의 상황에서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줘야 하고 덩치가 커서 의인화시킨다. 항상 자신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어 부딪치거나 하다못해 여자와 단둘이 있을 때도 녀석은 모른척하지 않고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고 있다는 콘트라바스를 향해 그는 악담을 늘어놓는다. 끔찍한 악기라고. 뚱뚱한 노파같으니! 히프는 축 처지고 허리는 한마디로 참사이며 가늘지도 않지만 심지어 길기까지 하고. 어깨는 좁고 곱사등이처럼 축 늘어어져 있어.... 바로 콘트라바스의 발전사적 이유 때문인데 위쪽은 바이올린같고 아래는 비올라 같아서 모든 악기 중에서도 가장 못생기고 둔하고 기품 없는 악기이며 괴물같고 박살내고 싶다고 심지어는 불에 태워버리고 싶다고 악담을 쏟아놓는다.




오랜동안 콘트라바스와 함께 하며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기 위해 애쓴 시간들이 있었고 그(콘트라바스)와의 하모니를 위해 손에서 타는 냄새가 날만큼 굳은 살이 박히며 노력해 온 연주자는 사실상 콘트라바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콘트라바스의 역사나 콘트라바스 연주법과 악곡들은 배움으로 되는 일이지만 콘트라바스를 의인화시켜 생각하며 뚱뚱한 노파로 보이는 콘트라바스는 그의 영혼에 자리잡은 동반자같은 악기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자신에 대한 질책을 콘트라바스에 퍼부으며 맥주 한잔 하며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인간 사회의 복사본이라고 표현한다. 어디건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무시를 받는데 마치 콘트라바스 연주자 또한 마찬가지라는 듯 얘기하며 그는 사랑하는 사라를 떠올리며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콘트라바스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오른 손으로는 마치 활로 그녀의 엉덩이를... 왼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잡고 마치 G현의 셋째 마디를 짚듯이 독주하듯... 하며 콘트라바스가 매우 에로틱한 악기임도 놓치지 않고 말이다. 그는 오랜 시간 콘트라바스와 함께 해온 시간을 돌이켜 본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맥주 한 잔 하다보니 내일 있을 연주회를 예상하며 그의 인생을 몽땅그리 차지한 만만한 콘트라바스에 대해 사랑, 미움, 증오, 집착, 애착, 지겨움, 애증을 담아 주저리주저리 넋두리와 푸념을 내뱉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독백이었던 것이다.




음악은 이성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저 높은 곳에 있다.

세상 만물을 지배하는 힘이,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이 음악에서 나온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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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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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I 파트리크 쥐스킨트 I 유혜자 옮김 I 열린책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나는,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나무타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에 있었던 일을 추억한다. 나는 날 수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하고 같은 학급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으며 피아노를 배워야했다. 그리고 동네에 어디서 왔는지, 이름도 모르고,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아침부터 밤까지 늘 걷기만 하는 좀머 씨가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와 경마장에 다녀 오는 길에 갑자기 주위는 어두워졌고 돌풍이 휘몰아치며 굵은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차를 옆에 세우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는데 슬슬 빗방울이 얇아지고 이슬비가 내릴 때였다. 그때 좀머 씨를 보았고 아버지는 그에게 차에 타기를 종용했지만 좀머 씨는 끝내 거절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좀머 씨는 폐쇄 공포증을 앓고 있고 온 몸이 떨려서 의자에 앉아 있지도 못해 하루종일 걷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자전거를 배웠고 시계도 없이 집에서 출발해서 늘 간신히 미스 풍켈 선생님 댁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날은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의 테리어 한마리가 바퀴달린 것만 보면 짖어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계속해서 자동차와 행인들을 만나 지각하게 되었는데 미스 풍켈 선생님은 화가 많이 나셨고 연습을 하지 않은 것에 무지 화가 났으며 말을 할 때 침이 내 목덜미로 튀었고 손수건으로 코를 풀었는데 재채기를 할 때 코털에 붙었다가, 그곳을 훔칠 때 집게 손가락으로 옮겨 붙어 건반에 하필 내가 쳐야 하는 그 자리에 녹황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코딱지가.....!



미스 풍켈 선생님에게 혼나고 짐을 싸서 나온 '나'는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으로 그 사람들이랑 어울려 살지 않고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리라 마음 먹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지만 '나'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좀머 씨의 호두나무 지팡이 소리였고 곧 아저씨를 살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어떤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음에 가까운.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는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좀머 씨 이야기>는 한 소년의 아름다운 유년시절의 이야기이다. 마치 자신이 날아다닐 수 있었을거란 믿음을 지닌 것이나 좋아하는 여자친구와의 하교길에 대한 설레임으로 이것저것 준비하는 모습, 그리고 너무나 웃기지만 속상해지는 선생님의 코딱지 사건 등은 마치 나라를 불문하고 어린시절 한 번쯤은 겪는 성장통같은 이야기들이어서 흐믓하게, 때로는 박장대소하며,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우리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면 한 번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슬픈 기억이나 힘들었던 일들, 또한 누구와의 절절한 약속지키기 등의 비밀스런 일들이 하나 쯤은 있다. <좀머 씨 이야기> 속 '나'도 이상스레 보이는 좀머 씨와 나와의 비밀같은, 어느 누구도 모를 일화를 간직한다. 그것은 어찌보면 정말 좀머 씨를 배려하기 위한 일이기도 했고 어찌보면 어린 '나'로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시의 사람들에게 특이해 보이는 좀머 씨는 누군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조차 원치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어찌되든 상관말아달라는 태도였고 그의 걷는 모습이 주는 느낌은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그것이었다. 그의 걷기는 생존기였다.



여기 죽음으로부터 도망쳐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걸었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무엇때문에 투쟁에 가깝도록 걸었던 것일까? 공포증으로부터? 공간으로부터? 아니면 고통으로부터?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지만 '나'는 그의 선택을 지켜보았고 이제야 그 선택에 대해 추억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좀머 씨의 선택에 대해 말하지 않고 침묵한다. 두려움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간청하는 듯한 그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설 속 '나'가 아닌 독자인 '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었을까? 그의 간청어린 말에도 그를 그냥 놔두었을까?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온전히 한 인간의 것이라면 나는 그를 말릴 수 없었을까? 오랜 시간 만들어진 나의 가치관은 막상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으로 표출될 것인가? 답은 없고 질문만 쏟아진다.



짧지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그 많은 생각들을 결정 짓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였던 <좀머 씨 이야기>. 좀머씨의 그냥 좀 놔두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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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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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I 파트리크 쥐스킨트 I 박종대 옮김 I 열린책들




우리 모두가 뿌리를 박고 있는 어머니 대지이자 음악적 영감에 양분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이자,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것의 사타구니에서 음악적 씨앗을 만들어 내는 진정한 창조의 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맥주를 한 잔 하며 브람스 교향곡 2번을 들려주는 한 남자. 콘트라바스의 소리를 들었냐고 묻는 이 남자는 국립 오케스트라 소속 콘트라바스 연주자이다.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는 모든 악기의 토대가 되며 콘트라바스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콘트라바스는 남성이지만 여성적 악기이며 태초의 악기임을 피력한다. 하지만 곧 그는 연습을 위해 집에 엄청난 돈을 들여 방음장치를 했고 오페라 연주 후에는 엄청난 땀을 흘려 평소 체력을 키워두지 않으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놓는다. 거기에 더해 처음부터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이는 없으며 더욱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어린아이는 없다고.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는 비와 추위에 약해 극한의 상황에서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줘야 하고 덩치가 커서 의인화시킨다. 항상 자신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어 부딪치거나 하다못해 여자와 단둘이 있을 때도 녀석은 모른척하지 않고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고 있다는 콘트라바스를 향해 그는 악담을 늘어놓는다. 끔찍한 악기라고. 뚱뚱한 노파같으니! 히프는 축 처지고 허리는 한마디로 참사이며 가늘지도 않지만 심지어 길기까지 하고. 어깨는 좁고 곱사등이처럼 축 늘어어져 있어.... 바로 콘트라바스의 발전사적 이유 때문인데 위쪽은 바이올린같고 아래는 비올라 같아서 모든 악기 중에서도 가장 못생기고 둔하고 기품 없는 악기이며 괴물같고 박살내고 싶다고 심지어는 불에 태워버리고 싶다고 악담을 쏟아놓는다.




오랜동안 콘트라바스와 함께 하며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기 위해 애쓴 시간들이 있었고 그(콘트라바스)와의 하모니를 위해 손에서 타는 냄새가 날만큼 굳은 살이 박히며 노력해 온 연주자는 사실상 콘트라바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콘트라바스의 역사나 콘트라바스 연주법과 악곡들은 배움으로 되는 일이지만 콘트라바스를 의인화시켜 생각하며 뚱뚱한 노파로 보이는 콘트라바스는 그의 영혼에 자리잡은 동반자같은 악기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자신에 대한 질책을 콘트라바스에 퍼부으며 맥주 한잔 하며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인간 사회의 복사본이라고 표현한다. 어디건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무시를 받는데 마치 콘트라바스 연주자 또한 마찬가지라는 듯 얘기하며 그는 사랑하는 사라를 떠올리며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콘트라바스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오른 손으로는 마치 활로 그녀의 엉덩이를... 왼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잡고 마치 G현의 셋째 마디를 짚듯이 독주하듯... 하며 콘트라바스가 매우 에로틱한 악기임도 놓치지 않고 말이다. 그는 오랜 시간 콘트라바스와 함께 해온 시간을 돌이켜 본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맥주 한 잔 하다보니 내일 있을 연주회를 예상하며 그의 인생을 몽땅그리 차지한 만만한 콘트라바스에 대해 사랑, 미움, 증오, 집착, 애착, 지겨움, 애증을 담아 주저리주저리 넋두리와 푸념을 내뱉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독백이었던 것이다.




음악은 이성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저 높은 곳에 있다.

세상 만물을 지배하는 힘이,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이 음악에서 나온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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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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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I 파트리크 쥐스킨트 I 유혜자 옮김 I 열린책들





그것이 앉아 있었던 타일 위에는

5프랑짜리 동전 크기만 한 에메랄드그린색의 똥과 문 사이로

부는 바람에 살짝 나부끼는 작은 흰색 깃털이 보였다.

조나단은 속이 몹시도 메슥거렸다. 

당장 문을 도로 닫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53세의 조나단 노엘, 그는 은행 경비원이다. 그는 어릴 적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급기야 부인이 결혼 4개월 만에 아이를 낳아 얼마가지 않아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친 뒤로 사람들의 비웃음이 아니라 시선을 받는 것이 성가셨던 그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젊어서부터 시작한 파리의 은행 경비원. 그야말로 코딱지만한 방을 얻어 살지만 30년이 흐르도록 그는 자신의 삶의 만족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동화장실을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문을 열고 나선 조나단은 비둘기와 마주친다. 비둘기의 외모부터 움직임까지 끔찍함을 느끼는 조나단은 비둘기의 배설물과 박테리아균과 바이러스를 몰고 다닐 비둘기 때문에 급기야 짐을 싸서 호텔방을 예약한다. 출근해서도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고 늘 정확하고 계획된 한치의 빈틈없는 일상을 살던 조나단은 이 틀어짐을 참지 못한다. 그리하여 급기야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자 결심을 하는데...




안전한,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을 비둘기에게 위협 받을까 걱정하는 조나단의 이러한 행동은 나이가 무색해 보이기도 하고 지나친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둘기가 날개를 푸드덕 거리는 모습이나 비둘기의 눈을 보며 끔찍해 하고 심지어 바이러스를 옮길지도 모를 배설물이 그의 공간을 훼손하고 위험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으로까지 생각하는 조나단은 비둘기와의 만남으로 인해 30년 이상을 살아온 자신의 안식처를 떠난다. 또한 30년 이상을 매일같이 해 오던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의 업무에 넋을 잃고 있어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바지까지 찢어지는 그야말로 혼돈의 하루를 보낸다. 자신의 삶이 일정 궤도에서 이탈해 노선이 틀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인물 조나단을 통해 작가는 매사에 예리하고 섬세한 감정을 가진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모든 것이 진지하며 변수를 인정치 않고 자기만의 것을 온전히 소유하려는 집착도 보인다.



조나단의 이러한 심리는 그가 어릴 적 갑작스럽게 맞이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자신의 든든한 보호자와 보금자리를 잃고 황망했던 어린시절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 상처를 입었고 사람의 신뢰를 잃어버린 그가 작게나마 마련한 자신의 공간을 위협하는 비둘기는 단순한 비둘기를 넘어 그에게 커다른 위협요소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조나단의 모습은 점점 사회와 격리되는 현대적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자신이 편안히 쉴 수 있고 근무시간 외에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보금자리가 위협받는다면 어디서 편안함을 느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조나단. 그는 더이상 자신의 삶이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계획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반전이 있으니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을 맞이하는 조나단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바로 서점을 갈 것을 추천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심오한 작가적 의도가 엉뚱하면서도 까칠할 것 같은 조나단이라는 인물의 하루를 통해 이렇게 멋지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점에 놀랍고 조나단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초조감을 빗댄 것은 작가의 놀라운 필력일 것이다. <비둘기>의 도입부에 비둘기와 마주치며 비둘기를 묘사하고 그가 느끼는 끔찍함이나 감정들은 약간 스릴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오바스런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읽다보면 점점 공감되는 감정의 이입이 상당한 몰입감과 궁금증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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