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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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I 매들린 밀러 I 이은선 옮김 I 이봄




분노와 굴육으로 몸이 떨렸다. 몇 번을 더 깨달아야 할까? 신들의 기분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나의 평화는 매 순간이 거짓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몇 년을 살건 그들은 마음대로 내려와서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건드릴 수 있었다. (p. 296)


흔히 여자는 연약한 존재라고, 한순간의 방심으로도 망가질 수 있는 꽃이나 달걀과도 같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 말을 믿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었다. (p. 410)





태양신 헬리오스와 님프 페르세 사이에서 태어난 하급 님프인 키르케는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머니에게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다른 신, 님프들과 달리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며 눈이 노랗다는 이유로 조롱을 받는다. 성숙해진 키르케는 인간인 글라스코우를 사랑하게 되고 그를 신으로 만들지만 그는 스스로가 신이 된 줄 안다. 그리고 님프 중 아름다운 스킬라를 사랑하지만 키르케는 질투로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이 모든 것이 마법으로 가능했음을 아버지인 헬리오스에게 고하고 키르케는 아이아이에섬에 유배되는 벌을 받게 된다.


섬에서 키르케는 마법을 연구한다. 거친 파도에 떠밀려 섬에 표류하는 인간들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자신을 한낱 그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고 점점 마법은 힘을 갖게 되는데 어느 날 오딧세우스가 찾아온다. 그와 1년여 연인으로 지내지만 결국 그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고향으로 떠난다. 키르케는 임신을 하고 아들 텔레고노스를 낳는다. 오딧세우스의 수호신인 아테나가 찾아와 아들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지만 굴하지 않고 아들을 지키는 키르케. 아들 텔레고노스는 성장하고 만류하는 키르케를 뒤로 하고 아버지를 찾아러 떠난다. 그의 앞으로의 여정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주로 남성이 세상을 지배했고 스토리들도 남성들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여성들은 남성이 거사를 치를 때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를 배신하며 사랑을 택한다. 그리하여 남성을 도와 영웅으로 만들지만 사랑을 관철시키지도 못해 사랑과 동정조차 받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여성 신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자신의 반려자가 바람을 피우면 상대여성에게 벌을 주는 등 그 역할은 보기 좋지 않았으며 비중이 크지 않았다. 키르케 또한 신화에서 이렇다 할 비중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를 도와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과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서양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마녀인 키르케는 남성이 두려워하는 능력을 가진 여성으로 어쩌면 페미니즘의 선두주자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러한 키르케라는 마녀에게 생명을, 감정을,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매들린 밀러는 해냈다. 비중없는 마녀라는 캐릭터에게 그녀만의 생각을 만들어주고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녀만의 사랑과 그녀만의 인생을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드라마 속 작은 캐릭터인 조연을 주연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저 '신이니까' '그랬구나'하는 사건만 있는 것이 신화이다. 그 신화를 사람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짐작하고 풀이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인간의 몫이다. 그 속에서 교훈을 얻던 재미를 얻던 온전하게 인간의 해석만 있을 뿐인데, 비중이 작은 마녀라는 캐릭터를 살려 작가가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신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와 신선한 해석이다. 신화를 이렇게? 신화 속 캐릭터를 이렇게? 살려내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도록 <키르케> 속 키르케는 살아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패배를 안고 섬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어느 시대 어느 역사 속의 척박한 환경에 놓인 선구자만큼이나 아름답고 강한 여성을 만날 수 있는 마녀의 성장이야기 <키르케>, 매혹적인 그녀의 이야기에 재독의 욕심을 부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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