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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그 섬에 내가 있었네>에 이어... 이 책까지 읽으니... 정말 제주도에 가고 싶어졌다. 왜 그렇게 친구들이 기를 쓰고 걸으러 가겠다고 했는지 이제서야 "진심으로" 이해가 간다. 몇 번이나 제주도를 여행했으면서도 난 참 엉터리 여행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여행에는 그 나름대로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내가 했던 제주도 여행이 모두 쓸모가 없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역시나... 올레길을 걸으며 온전한 제주를 느끼고 싶다.
"올레"는 자기 집 마당에서 마을의 거리길로 들고나는 진입로의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확장되는 변곡점, 소우주인 자기 집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최초의 통로가 올레다. 자기네 집 올레를 나서야만 이웃집으로, 마을로, 옆 마을로 나아갈 수 있다. 올레를 죽 이으면 제주뿐만 아니라 지구를 다 돌 수도 있다. 제주를 걷는 길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었다."...41p
제주 올레길의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처음 친구들에게서, 방송에서.. 점점 올레길이 유명해지면서 도대체 올레가 뭐길래..라고 생각했던 의문이 모두 풀린다. 집 앞을 걷듯, 특별히 어떤 목적에서 빠르게 지나치는 길이 아닌 하루에도 수십 번을 드나들고 마치 내 것인 양 같은 그 길을 걷듯 걸으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니 저자가 제주에 만들고자 했던 길의 이름으로 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기간 기자로, 편집장으로 살아왔던 저자는 일을 내려놓고, 심신을 달래기 위해 찾아갔던 스페인의 순례길을 걸으며 몸으로, 눈으로, 생각으로 느꼈던 모든 것들을 제주로 옮겨놓고 싶었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서도 그 길처럼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풍족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길을 걷고 싶었다 한다. 그리고 그 길은 그녀의 고향인 제주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나 우리처럼 산티아고에 오는 행운을 누릴 순 없잖아.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 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236p
<<제주 걷기 여행>>은 그녀가 어떻게 "걷기"에 빠져들게 되었고 산티아고에서는 어떤 체험을 하였으며 한국으로 돌아와 올레길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모두 담고 있다. 처음 올레길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그녀였지만 차츰차츰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게 되어 올레길은,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 만들어나가는 길이 된 것 같다.
" "행복해요."
올레꾼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인사다.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인사말을 남긴다. 왜 올레 길에서 그들은 '아름답다'거나 '즐겁다'가 아닌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는 걸까. 올레 길에서는 왜 이 낯선 단어가 공용어처럼 쓰이는 걸까."...432p
올레길은 마라톤 경기나 경보 경기가 아닌, 될수록 천천히 걷는 길이다. 걸으면서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주위 식물들을 보고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며 걷는 길이다. 진정한 간세다리(게으름뱅이)로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하기 때문에 모든 시름을 털어내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
워낙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지구력도 없는 나이지만... 그래도 올레길은 걸어보고 싶다. 정말 놀멍... 쉬멍... 걸으멍...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일상을 놓는 것이 쉽지 않으니 아마도 여행을 계획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에겐 추억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