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자 - 속수무책 딸의 마지막 러브레터
송화진 지음, 정기훈 각본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난 어릴 적부터 줄곧 엄마와 싸워왔다. 그런데 하루는 이 싸움을 목격한 친구가(당시 6학년), 넌 엄마랑 친해서 정말 좋겠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도대체 어딜 봐서 얘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하고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딸과 엄마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고 했던가. 어쩌면 그 친구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가 말다툼을 통해 서로의 존재와 사랑을 확인하는 관계였음을 이미 눈치챘었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모녀의 관계가 이런 애증의 관계는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딸과 엄마는 자주 싸우게 되는 것 같다. 같은 여자로서 이해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 답답해하고 서로 참견하면서 성에 안차는걸까.
29살 박애자는 정말 가진 것 하나 없이 자신감 하나와 그 당당함으로 살아왔다. 집에선 엄마가 언제나 다리 병신인 민석(오빠)이만 걱정하고 챙기는 것 같고 자신은 아무리 학교에서 1등을 해도,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구박만 받아왔기에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하지만 사실 애자는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외로워한다.
"넌 안 그런 척, 혼자 센 척해도, 사실은 사랑받으려고 무척 애쓰는 것 같아. 너 모르지? 네가 얼마나 외로워 보이는지. 안 그래도 돼, 애자야. 네가 얼마나 예쁘다고..."..66p
이러한 외로움은 주위 사람들에게 철벽을 두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엄마에겐 더한 투정과 성내는 것으로 표현한다.
<<애자>>는 이러한 갈등을 가지고 있는 모녀 관계가 엄마의 투병 생활과 죽음을 통해 화해하고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결론만 놓고 보면 무척이나 뻔해 보이지만 책을 읽고있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워낙 이야기가 스피디하게 전개되고 중간중간 웃음과 감동 포인트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최여사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 편 들어줘서 고맙다, 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 안 하던 말을 하려니 왠지 손발이 오글거렸다."...175p
"나는 고개만 푹 떨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못해드린 게 많은데, 그걸 너무 뒤늦게 알았단 말입니다."...190p
부모님을 일찍 여읜 우리 남편이 내게 항상 하는 말이다. 늦기 전에 잘 해드리라고. 하지만 그건 정말 쉽지가 않다. 결혼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면 저절로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무진장 효도하는 효녀가 될 줄 알았건만, 엄마를 이해하는 것도 상냥하게 대해드리는 것도 다 따로 노력이 필요하더란 말이다. 물론 어릴 적 철부지 없던 아이가 이해하던 엄마와 지금의 내가 이해하는 엄마는 다르다. 그렇다고 "애자" 만큼이나 무뚝뚝하고 터프한 내가 갑자기 엄마께 상냥한 한 마디를 해드리기도 쉽지가 않다.
<<애자>>를 읽으면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엄마 생각이 나서... 우리 엄마도 언젠간 돌아가실 수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서 애자와 함께 울게 된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뻐근하다. 전화도 자주 안드리고 전화 해도 뚱~한 이 딸을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비록 표현은 그래도, 가끔 말대답은 X가지 없게 해도... 같은 편 들어달라고 전화했을 때 요목조목 따져가며 그건 엄마가 틀렸다고 딱부러지게 얘기하는 딸이라도... 그런 딸도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을 울려놓았던 애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인 줄 알았지만 엑스트라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던 애자가... 결국은 희미한 미소를 띄울만한 결과를 내어 정말 다행이다. 인생은 그렇게 쓰지만 달콤한 순간이 있기에 살만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