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코의 모험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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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은 <금각사>에 이어 두 번째다. 보통은 책을 읽기 전, 읽으면서, 읽은 후에도 작가에 대해 많이 찾아보고 알아보는 편인데 <금각사>의 경우 그 내용 자체의 파격성으로 인해 작가에 대해선 완전 잊은 채로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만나는 <나쓰코의 모험>은 <금각사>의 작가가 쓴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시작해서 중간중간 그 느낌이 살짝 드었다가, 역시 같은 작가의 작품이구나~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찾아보는 작가의 생애는, 소설이 아무리 서로 다른 내용을 가졌더라도 그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무언가는 작가의 삶을 닮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쓰코의 모험>은 여성 모험 소설이다. 1950년 전후 아직까지 여성의 인권이나 주장이 미미하던 시절, 자신 만의 의지와 주장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가던 나쓰코가 일상의 환멸을 느껴 수도원으로 가려 하던 중 만난 한 젊은이를 따라 맞게 되는 모험이다. 그렇다고 그 주체가 젊은이로 옮겨가지 않는다. 마지막 결정까지 나쓰코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면 일순간 부잣집 무남독녀의 끝모를 떼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나쓰코는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스스로 살아내기 위한 결정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수긍하게 된다.

결국 <금각사>나 <나쓰코의 모험>을 관통하는 주제는 "정열"이다. 자신이 믿고 따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시킬 수 있는 힘! 그것이 안될 것 같을 때 불을 지르고(범인들의 생각으로는 미친 놈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나) 여성의 입장에서 그 정열을 쏟아부을 수 있는 대상의 정열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것이 안되니 수도원을 선택(이 또한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무슨 이 기이한 행동이가 싶은)할 수밖에 없는 그 끝의 끝까지 가는 정열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마음 속엔 정열을 품고 살지 않나. 다만 현실 앞에 묻어둘 뿐. 그것을 실행시키기에는 귀찮기도 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들을 상대할 생각에 골머리가 아프고 그저 조용히 사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나. 그런 면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글에도, 자신의 생애도, 최선을 다 한 이로서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게 된다.

<금각사>보다는 <나쓰코의 모험>이 다소 가볍고 옛 소설 티가 많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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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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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H마트에서 울다>가 김영하 북클럽으로 지정되었다. 제대로 참여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시간 내어 읽고 참여하려고 노력했던 해였다. 몇몇 권은 한두 달이 지나 읽기도 했고 어떤 책은 거르기도 했다. 때맞춰 읽은 건 딱 한 권 뿐이었던 듯. <H 마트에서 울다>는 그때 구입해 두었던 책이다. 또, 읽기 시작한 지도 어언 세 달이 넘었다.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가수이자 기타리스트가 쓴 에세이로, 작정하고 읽자면 하루 이틀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도 세 달이나 붙잡고 있었던 건, 바쁘기만 해서는 아니었다. 아마도 엄마와 딸의 관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암에 걸린 엄마와 딸.

처음엔 미국에서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 태어나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없어 힘들고 괴롭기만 하던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라 훌훌 잘 읽혔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아빠와는 여전했지만 엄마와는 조심스레 관계를 개선해 나아가던 때, 미셸 자우너는 엄마의 암 발병 소식을 듣는다. 아마 이 즈음부터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 엄마는 애증의 관계였다. 엄마는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내게 전화해 퍼부었다. 곰살맞고 그런 얘기 잘 들어주는 딸이었다면 참 좋았겠는데, 마흔이 넘어도 딸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스트레스 풀이 대상이냐며 꼬박꼬박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우리 엄마가 한창 바쁠 때 내게 전화 해 "내가 이상하게 걷나 봐. 사람들이 빨리 병원 가보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 한 번도 병원 밖을 나오지 못했다. 뇌 속에 자리잡은 악성 교모세포종 때문이었다.

<H 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11개월의 간병 기간 동안 혹 고통만 준 건 아닌지, 들어주고 싶어도 더이상 들어줄 수 없었던 엄마의 요구들을 들어주지 않은 게 맞았던 건지 곱씹던 시간은 지났다. 지금은 엄마의 엉뚱함에 웃었던 기억이나 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려 했던 기억만 난다.

미셸 자우너 또한 엄마를 보내고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H 마트에 간다. 엄마가 해주시던 한국 요리, 그 요리를 본인이 직접 하며 엄마의 뒤를 밟는 것이다. 한인 2세로서 자신의 위치와 모든 한국어를 다 알아듣거나 잘 하지는 못하지만 엄마에게서 받았던 한국 문화 등이 엄마를 추억하는 딸로서 함께 공감하고 함께 추억하게 한다.

읽는 동안보다 책장을 덮고 난 이후 더 감동적으로 기억되는 책이다. 더 늦기 전에,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하라고.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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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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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암 환자가 한 명 있다면 가족들은 그 분야에서 거의 전문가가 된다. 어떤 식으로 발병을 하고 어떻게 치료 과정을 밟으며 그것과 상관 없이 어떤 모습으로 내 가족이 스러지는지 낱낱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하나하나 장면으로 찍혀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래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뭘 잘못했는지의 후회보다 그나마 좋았던 기억이 더 자주 추억된다.

최근 "죽음"에 관한 에세이를 두 편이나 연달아서 읽고 있는 중이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읽다 보니 엄마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두 책 모두 암 환자들의 이야기라 '그래, 엄마도 그랬지~', '우리도 그랬는데' 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36살의 전도유망한 의사가 최고참 레지던트 과정을 성공리에 마쳐갈 때 즈음 폐암 선고를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다. 누구보다 병에 대해 잘 아는 의사가, 자신의 CT 결과를 보며 좌절했을 순간과 그 이후 병을 이겨내려고 하루하루 노력한 날들, 더이상 어찌할 수 없음을 인식한 후의 삶까지 작가 폴 칼라니티는 담담하게 때로는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좌절이나 슬픔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남은 이들을 위한 노력과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생활을 하기 위한 노력을 읽다 보면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는 폐암에서 온몸으로 전이된 순간까지도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자 했다. 책을 쓰는 목적 또한,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252p)이라고 했다. 죽어가고 있지만 살기로 작정했던 이 젊은 의상의 사색과 생에 대한 통찰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다시 고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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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
보도 키르히호프 지음, 서윤정 옮김 / 붉은삼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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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 최고의 소설로 2016 독일 올해의 책 수상작"

이 책에 붙은 타이틀이다. 책은 제 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한 책. 아마도 이 책을 2016년에 읽었다면 무척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소설은 따옴표 하나 없이 서술된다. 그렇다고 대화가 없는 건 아니다. 대화체 형식을 넣는 대신 문장에 이어 글자 크기를 키운 채로 대화가 오고 간다. 처음엔 무척 낯선 이런 방식에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쉼 없이 이어지는 이런 대화 속에 금방 집중하게 한다.

그보다는 이 두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가 감이 잡히지 않아 오래 헤매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의 대화를 통해 다시 찾아낼 수 있다. 모자 상점을 하다가 폐업한 여자가 쓴 한 권의 책, 이 책을 출판업을 하다 접은 남자가 발견하게 되고 여자가 남자를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자가 가진 상처는 공통의 관심사가 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둘은 느닷없는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그 드라이브는 드라이브를 넘어 새로운 도전과 모험의 여행으로 이어지고 그 길에서 이들은 사랑과 상실, 부모의 정, 난민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솔직히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한 것 같지 않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주인공들에게 쉽게 공감되지도 않는다. 다만 뒤쪽에 등장하는 다양한 난민들을 통해 그 시대 자체를 이야기하려 했구나~ 정도에서 그쳤다. 많이 아쉬웠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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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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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만나면 이 책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되고 그 작가의 책을 계속 따라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지내요>를 읽은 후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가 각인되었고 그 이후 <친구>는 그녀의 세 번째 읽는 작품이다. 작가 소개를 보면 시그리드 누네즈가 이름을 알린 첫 작품은 <A Feather on the Breath of God>이라고 하는데 국내 번역 작품으로는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이후 <친구>로 2018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다고 하고 기 이후의 두 작품을 내가 먼저 읽어본 것 같다.

개인적으론 처음 읽었던 <어떻게 지내요>가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주제가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떻게 지내요>가 그 주제를 가장 편안하고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반면 <친구>는 무척이나 실험적인 작품이다.

1인칭 화자가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그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인 <친구>는 하지만 그 친구의 의미가 비단 그 한 명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또한 독자는 이 편지를 읽어나가며 화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지 추측해야 한다. 그러니 결코 쉬운 글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하나도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의 내용은 사유가 깊다.

"나"와 죽은 이는 한때 잠깐 연인이기는 했으나 이후 계속해서 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단순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고 그의 부인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런 그가 자살을 했다. <친구>에서 "나"는 자살한 나의 친구에게 그동안 자신과 그가 나눈 이야기들, 주변의 상황, 나의 일상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의 쓰는 작품의 이야기와 깊은 고민까지 두서없이 적어나간다. 여기에 하나 더. 그가 죽은 후 세 번째 부인에게서 떠맡게 된 아폴로라는 그의 개와의 일상까지. "나"는 마치 남편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서 이 아폴로와의 동거를 통해 조금씩 안정되어 가지만 이미 나이가 많은 아폴로와의 이별도 차차 생각해야 한다.

두 친구는 작가이며 교수다. 문학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서로 나눈 작품들이 시도때도 없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 기쁨이 크지만 무엇보다 죽은 사람과 죽음을 곧 맞이해야 하는 상황, 더불어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여러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 역시 좋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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