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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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산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첫인상과 그 사람의 복장, 말투, 직업에까지 ... "보이는 것"에 대한 편견은 수도없이 많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위해 새로운 시도보다는 자기 자신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수위 아줌마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은 가난하고, 멍청하고(하루종일 TV를 본다든가..), 배우지 못했고, 교양이 없으며 지저분하다는 것이다.(내가 가진 편견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고슴도치의 우아함>> 속에서 그렇다는 것!) 부자이고 많이 배웠고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의 수위 아줌마 르네의 진실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어도 책 읽기를 통해 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넘어 고차원적인 취미를 가질만큼 영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르네는 자신의 이 번득이는 우아함을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맞추어 숨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과 다른 계층의 사람이 자신들보다 뛰어난 교양과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자들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르네의 책 읽기는 어찌나 광범위하고 철학적인지 르네의 생각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르네뿐만이 아니다. <<고습도치의 우아함>>은 60%는 르네의 사색을 따라, 40%는 팔로마의 사색을 따라 진행되는데, 이 두 사람 모두 수준이 너무 높다.(어디까지나 내게 있어서다. 철학이라곤 남들이 가장 쉽다는 <소피의 세계>조차 읽다가 포기해버린 나로선 전혀 이해불가능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르네가 이해하는 철학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르네의 정신적 권력이다. 

"나 같은 수위 아줌마, 비좁은 수위실 속에서 비록 가시적 권력은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적인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나까지 포함해서 모두 그렇다."...137p

르네와 팔로마(너무나 똑똑해서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의 속까지 꿰뚫어볼 줄 아는 12살 소녀)가 바라보는 이 고급 아파트 사람들은 모두 엉망이다. 자신들을 과시하는 허영에 가득 차 있고, "인간적인"  삶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데 주력한다. 팔로마는 이 덧없는 인생에 막을 내리려 하고 그 전에 깊은 사색을 통한 통찰의 시간을 갖는다.

카쿠로와 르네와 팔로마의 조합이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르네와 팔로마는 영혼의 자매였고 카쿠로는 이 두 사람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 준 역할을 맡았으니 말이다. "움직이는 것이 추한 것을 드러내는 이 세상"(...307p)을 떠나고 싶어하는 팔로마에게 르네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추함 속에서도 진정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을 르네가 몸소 보여주었달까. 또한 르네는 팔로마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들려줌으로서 정신적으로 치유를 받는다. 그렇다. 이들은 진정한 영혼의 자매이다. 

마지막 결말의 충격 속에, 그 슬픔 속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는 사실. 
"생은 많은 절망이 있지만, 도 다른 종류의 시간인 아름다움의 몇 순간들도 있다. 마치 음악의 한 소절이 시간 속에 일종의 괄호와 정지를, 바로 여기 속의 다른 곳,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만드는 것처럼."
"걱정 마요, 르네. 나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무것도 불태우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위해 나는 이제부터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추적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건 바로 이 세상 속의 아름다움."...4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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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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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내 실수(나는 실수인지 몰랐던 말 몇 마디)로 인해 우리집은 풍비박산이 날 뻔했다. 아빠와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셨고 나는 나대로 나 때문이라는 자책감에 매일을 울며 보냈다. 친구들에게 상담할 때도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이혼하시게 되면 어떡하냐고 매 쉬는 시간마다, 점심 시간마다 질질 짜며 응석을 부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어이없이 그 상황을 조금은 즐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족이 아닌,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지는 가정 속에 있는 자신이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던가 보다. 그리고 나의 그러한 터무니없는 행동 밑에는, 아마도 우리 엄마와 아빠는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지 않았나...싶다.

하지만 그 가정이 정말로 깨어졌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이에게 - 그 아이가 어리건, 다 자랐건 - 부모의 이혼은 너무나 큰 슬픔이며 어쩌면 이겨낼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위녕의 생각처럼 아이보다 "엄마"와 "아빠"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부모가 이혼을 했건, 하지 않았건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아서 부모가 기뻐하면 아이도 기뻐지고, 부모가 슬퍼지면 같이 슬퍼하기 때문이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 그건 대개 엄마가 불행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는 집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도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건 엄마가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종족의 힘은 얼마나 센지. "...56p

<<즐거운 나의 집>>은 19살, 위녕의 이야기이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빠와 함께 살다가 아빠가 재혼을 하시면서 새엄마와의 갈등을 못 이겨 할머니댁에서 몇 년을 지내고, 20살이 되기 2년 전 친엄마와의 생활을 하게 된 위녕의 이야기. 위녕에겐 성이 다른 남동생이 둘이나 있다.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는 사회의 이목과 어린 시절 새엄마와 아빠에게 받았던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위녕과 엄마의 대화를 쫒아가며 나는 나와 내 딸의 대화를 생각한다. 엄마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위녕의 모습이 잔소리할 때 한숨을 쉬며 살짝 고개를 흔드는 7살짜리 내 딸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도 위녕의 엄마처럼 꼭 필요할 때에, 위로와 사랑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친구같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그 위로와 사랑에는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인생의 멘토같은 멋진 말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엄마는 그걸 운명이라고 불러........ 위녕, 그걸 극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큰 파도가 일 때 배가 그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듯이, 마주 서서 가는 거야."...178p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271p

집은 바로 그런 곳인 것 같다. 바깥 세상 그 어디보다 편한 곳, 두 발 뻗고 조용히 쉬고 싶은 곳, 언제든 어느 때이든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이 있는 곳! 

고양이 코코와 둥제 아빠의 죽음을 연달아 겪으며 이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 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위녕은 살아가는 법, 맞서는 법,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완전하지 않은 자신이 보기에도 완전하지 않은 어른을 이해함으로서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위녕이... 정말 잘~ 컸다는 생각이 든다. 즐거운 나의 집을 찾고, 가족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후에 비로소 완전해진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 세상과 맞서기 위해 또 다른 도전을 하는 위녕이 참으로 대견하다. 

나도 엄마로서 "즐거운 나의 집"을 잘 만들어갈 수 있을까. 약간은 엉뚱하고 망가지기도 잘 하는 위녕의 엄마처럼 나도 완벽한 엄마와 아내가 아니지만, 언제든 돌아오고 싶은 집이라고 우리 가족들이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니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나 자신부터 사랑하고, 나 자신부터 행복해져야겠다고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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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목소리 - 어느 나무의 회상록
카롤 잘베르그 지음, 하정희 옮김 / 파란시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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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엔 나무가 많다. 어느샌가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하나 둘 사 모으다보니 베란다가 가득찰 지경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나무들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저 물만 주면 쑥쑥 크는 나무들이 예뻐서이기도 하지만, 시든 잎은 없는지 통풍은 잘 되는지 등을 보살피며 나누는 교감 때문이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조금 나쁜지...등을 저절로 알게 된다. 조금 우울한 날에 베란다에 나가 나무들을 들여다보면 차분해지고,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집 나무들도 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을까? <<초록 목소리>>를 읽고나니 자신들의 감정과 불평들을 내게 직접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감정들과 내 고민들을 모두 들어서 잘 기억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해 우리집 나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초록 목소리>>는 2천 년을 넘게 살아온 어느 한 나무의 회상록이다. 나무는 오랜동안 인간들 옆에서 그들을 목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무 자신이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무와 함께 한 기억을 가진 인간들은 위안을 얻고 추억을 함께 한다.

나무가 <무릎 꿇은 사람의 키를 넘지 않았던 그때에는>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던 한 가족이 어느 순간 "탐욕"과 "욕심"에 물든 가장에 의해 점점 불행해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보람 없이 첫 열매를 맺었던 시절>에는 한 세대를 앞서가는 한 천재를 지켜보고 그 열매로 천재가 첫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함께 하기도 한다.(마치 뉴튼의 이야기같다) 나무는 마녀 사냥처럼 광분하는 한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사랑하는 한 커플이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고, 한 시인의 문학적 고뇌와 그의 젊은 천재 연인의 사랑과 헤어짐을 지켜보기도 한다(이 이야기는 랭보와 베를렌느의 이야기가 아닌가). 전쟁으로 영혼이 죽어버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어느 군인의 최후를 함께 하기도 하고,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을 하는 한 아버지의 절망을, 홀로코스트로 인해 삶을 저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희망을 지켜본다. 인간들은 급기야 너무나 삭막한 이상한 문명을 만들고 그때에도 나무는 살아남는다.

하지만 나무는 알고 있다. 어리석은 짓만 일삼는 인간들이긴 해도 그 속에서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음을. 끝없는 절망 속에서도 음악이 있고 열정이 있기에 인간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처음에 저는 제 운명이 두 분 운명보다 더 끔찍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요, 전 석방된 그날부터 시작해서 삶이 가면 갈수록 더 감미롭게 느껴져요."... 130p
"비록 당장의 배부름과 잠자리, 그리고 다가올 새벽을 무사히 넘기는 것에 급급해야 할 정도로 무력해졌을지언정, 인간들은 영원히 일어서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지는 그런 피조물로 남으리라."...148p

나무의 사고를 따라 읽다보면 한 문장 한 문장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치 "시의 언어" 같다. 그래서인지 <<초록 목소리>>가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문장들이 표현하는 나무와 인간들이 함께한 세월의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내 나무들"도 나를 기억해줄까. 내가 나무들을 보살피며 나도 모르게 뿜어냈던 고민과 후회의 오로라를... 내 나무들이 굳이 듣지 않고도 모두 들어주고 기억해줄까. <<초록 목소리>>를 읽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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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충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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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소름이 끼치며 어떤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진짜 벌레였던 적도 있고, 아니었던 적도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 무언가가 기어간 것 같은 느낌! 내가 그렇게 느꼈을 때... 어떤 행동이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꼭 그 기억을 되살려봐야할 것 같다. 내가 나도 모르는 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수은충"이란 인간의 영혼에 침투하여 기어 다니다가 결국은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어버린다는 벌레를 말한다고 한다. 마음이 악의로 가득 찼을 때,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엄습한다면 그때가 바로 수은충이 기어가는 순간인 것이라고. 

"작은 글자로 달아놓은 해설을 읽어보니 그것이 바로 수은충이라는 곤충으로, 사람의 영혼으로 파고들어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무수한 구멍을 뚫어놓는다고 합니다. 물론 실재하는 생물일 수는 없겠지요."...116p

어쩌면 수은충은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이 몸으로 표출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죄를 알고있으나 인정하려들지 않을 때, 무의식적인 우리의 죄책감이 다른 수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내를 죽였거나<고엽의 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결실을 안았을 때<겨울비의 날>, 한 인간에게 원초적인 미움이 생겼을 때<잔설의 날>, 손자의 깨끗한 영혼이 더럽혀진 것을 함께하기 위해 인육을 먹고 나서나<대울타리의 날> 왕따시킨 아이가 10년동안 자신 앞에 나타날 때에도<박빙의 날>, 약에 취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도<미열의 날>, 우울증에 빠진 아내를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아내의 옛 애인에게 넘겨줄 때에도<병묘의 날> 어김없이 수은충은 주인공들을 괴롭힌다. 

<<수은충>>은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하지만 이 7개의 단편은 모두 "수은충"이라는 죄의식으로 묶여 있다.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아주 악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주 사소한 사건이나 아주 작은 원인으로 끝도 없이 추락하거나 인생이 바뀐다.

"세상 모든 일이 변하게 마련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사나운 커브길을 만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지금까지 틀림없이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환상이었다. 어제가 아무 변화 없이 오늘이 되었다고 해서 오늘이 당연히 내일이 되어줄 거라는 보장은 어디도 없다. 다만 있을 것처럼 생각했을 뿐."...33p

슈카와 미나토의 전작은 딱 한 편을 읽어봤을 뿐이지만, 그 전의 작품에 비해 훨씬 정돈된 느낌이다. 훨씬 무섭고 섬칫하지만 주제는 오히려 무척 또렷하다고나 할까.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잖아.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고 믿어. 법률로는 처벌하지 못하는 악행이라도 틀림없이 심판을 받는다고 믿어. 그렇지 않다면 너무 억울하잖아."...193p

세상의 심판보다 더욱 괴롭고 힘든 것이 죄책감이다. 나 자신에게 떳떳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산한 겨울비가 내리면... 앞으로는 수은충이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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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마르티 레임바흐 지음, 최유나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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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영>이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정확히 내가 몇 살에 보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 비디오로, TV로... 2~3번은 보았던 것 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볼때마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그렇게 슬픈 이야기를 썼을까. 아마도 작가 자신이 엄청나게 많은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을 읽고나니 더욱 그런 것 같다. <<다니엘>>은 <다잉 영>의 원작소설을 썼던 마르티 레임바흐의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내 아이가, 어느 날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니, 기분이라는 것이 느껴지기는 할까? 내가 디디던 땅이 사라지고 하늘이 사라지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 같지 않을까? 내 아이가 세상을 홀로 설 수 없다면 도대체 부모로서 어떻게 해 주어야하는지가 얼마나 막막할지... 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하는 죄책감과 말도 안되는 후회같은 것들로 괴롭기도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소원, 다니엘이 보통이 되는 것이다. 그냥 보통 사람으로, 평범한 어린아이로, 슈퍼스타도 천재도 아닌, 그냥 평범한 동네 아이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102p

평범한 아이라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똑똑하기를 바라고, 건강하지 못한 아이라면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고, 정상이 아니라면 그냥 다른아이들처럼 똑같은 보통아이라도 되어주었으면...하고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똑같은 바램이다. 그렇기에 "벽"과 같은 상태의 다니엘을 스티븐과 멜라니는 견딜 수가 없다. 잠시 방황하는 멜라니와 아예 도망쳐버리는 스티븐을 비난할 수는 없다. 방황에서 돌아와 자신만의 주장과 다니엘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다니엘을 붙잡는 멜라니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다.

"알아요. 무슨 말인지. 하지만 지금 다니엘은 살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모님도 살아야죠."
신기하게도, 비나의 그 말에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88p

그렇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가 살아있는 한은 어떠한 역경이라도 이겨내야한다. 그 이름이 바로 "엄마"이다. 

조금씩 조금씩 다니엘이 발전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멜라니가 다니엘의 행동에 소름이 돋듯, 나 또한 소름이 돋는다. 다른 아이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행동들이, 다니엘에겐 얼마나 많은 노력과 기다림을 필요로 했는지 함께 공감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정상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아와 비슷해질 수는 있다. 적어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니엘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니엘에 대한 멜라니의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폐아도 날고싶은 만큼 날 수 있다는 믿음! 그 사랑과 믿음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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