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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행 - 다르게 시작하고픈 욕망
한지은 지음 / 청어람장서가(장서가) / 2010년 8월
평점 :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른"이라는 나이에는 누구나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어렸을 때부터 "서른"은 내게 "어른"을 의미했다. 그 나이가 넘으면 어떤 일에든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안정된 삶을 살고 마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내가 서른을 되돌아보자면... 그 생각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매일매일 또다른 고민에 휩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 그것이 "서른"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왜 그렇게들 생각하는걸까?
<<서른 여행>>은 스물 아홉에 또다른 나, 새로 시작하는 나를 만나고 싶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놓고 여행을 떠난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약 8개월의 동남아 여행은 서른이 된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홀로 외로이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녀는 어떤 결심을 하고 어떤 삶을 계획했을까.
결론적으로 보자면... 나는 그녀가 참으로 부럽다. 과감하게 모든 것을 놓고 떠날 수 있었던 용기와, 전혀 편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곳을 돌아다니며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던 8개월간의 여행을 버텨냈던 체력과, 돌아와서 자신이 생각한 대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그 행동력이... 정말로 부럽다. "돈"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소소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만을 바라며 살 수 있는 그런 카페 하나 차려놓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훌쩍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매일 같은 일상 속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 그런 삶을 직접 만들어낸 그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에겐 용기도, 체력도, 행동력도 없으면서... 그저 그렇게 부러워만 한다.
"작은 배낭 하나에 의지해 생활했던 250일은 생각처럼 달콤하지 않았고 무작정 떠나왔던 일상은 보란 듯이 여행에서 돌아온 나를 밀어냈지만 그 여행이 행복했냐고,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다. 길은 내게 잃은 만큼 얻고 버린 만큼 채워진다는 것을, 늘 선택을 강요받고 올바른 선택인지 아닌지 조바심 냈던 삶에 ’정답’이란 없음을 가르쳐 주었다."...프롤로그 중
편한 여행이 아닌, 불편한 여행을 택했던 그녀였기에 그녀는 진실한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경험, 내가 중심인 여행에서, 타인이 중심이 되고 그들을 위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경험, 자신이 갖고 있던 가치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의 경험 속에서 그녀는 진실로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기가 막힐 정도로 사악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너무나 순박해서 뭐든지 주고 싶을 정도로 천사같은 이들도 만나며 그녀의 하루하루는 미래를 향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안나푸르나에서는 한낱 모래알보다 작은 듯한 인간들의 삶이, 나와는 전혀 다른 듯하던 사람들의 일상도 "적당히 고통과 상처가 눈물과 환희로 얼기설기 어우러지며 둥글게 굴러가는 것"(...242p)이라는 사실, 결국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느끼며 살아야겠다.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기면서 살아야겠다. 살아지게 두는 것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정성을 다해 살아내야겠다. 가끔은 뛰지 말고 걷고, 걷지 말고 멈춰 서고, 앞만 보지 않고 뒤 돌아보며. 행복? 그건 정말 별게 아니다."...257p
맞다! 행복은 정말 별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은 가까이 있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여유를 갖고 싶다. 아둥바둥 무언가에 매달려 사는 삶이 아닌, 여유를 갖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은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서른 여행>>이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