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몽, 조선 최후의 48년
박성수 지음 / 왕의서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의 역사 중 암울하고 어두운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일제 강점기를 읊조릴 것이다. 학창 시절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운 침통한 과거사이기에 나의 폐부 깊숙이 각인되어 있음이 이유다. 허나 이런 피 끊는 역사의식에 반해 우리의 이성적 관점은 그 시기를 통과해야 하는 학습으로서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기억 한다. 그저 나의 절친하였던 녀석과 -무채색의 감정만을 남긴 채- 그 시기의 중요한 역사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필요에서 습득하였던 일종의 수단으로서 말이다.




이러한 맹목적인 주입식 교육의 지식습득에만 주력하다 보니 그 속에 깃든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온전히 알지 못 한다. 이러한 계기에 「남가몽 조선 최후의 48년」을 만난 것은 나로서는 실로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제대로 뿌리 잡지 못한 엉성한 역사의식을 치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조선후기부터 한일합병까지 고종과 순종의 최측근에서 요즘의 수행비서관을 하였던 정환덕이라는 분이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비서秘書의 일종으로, 역사학자 박성수교수가 간추려 편집하였다. 기존에 배운 역사 교과서가 담고 있는 경직성을 벗어 나 그 시대 역사를 생동감 있게 몽타주할 수 있게 한다.




남가몽南柯夢. 오백년 종묘사직 조선왕조가 덧없이 한순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음을 통한해 하며 눈물로 적은 글 일게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치욕과 무능의 역사에 비분강개悲憤慷慨의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편협한 역사의식에 다시금 성토하게 되고 다양한 시각을 통해 가려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진실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정환덕은 남가몽을 통해 세상을 엿보았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성에 겨워 그가 바라 본 기울어 져 가는 세상의 풍광을 고스란히 녹아냈다. 책 속에서 우리는 배우지 못한 진실과 어색한 조우를 하게 되며 너무도 깊게 새겨 진 편중된 진실과의 혼돈이 뒤섞이게 됨을 알게 된다.




또한 궁 내외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담담한 필체로 유연하게 담아내고 있다. 정환덕의 마음을 얻어 벼슬자리를 얻기 위한 줄 대기, 어지러운 시국을 이용하여 허위 기술로 사기 치기 , 김천의 기생 고부댁의 매관매직일화를 통해 부패한 조선의 모습을 통찰하고 있으며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조선의 운명을 개탄해 하는 마음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




역사 속 고종황제는 과연 무능하기만 하여 수구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만 일관하였을까? 정환덕은 그리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종을 둘러 싼 간신배들과 열강의 간섭에 꿋꿋이 한나라의 국왕으로서 면모를 오롯이 지켜 낸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짐이 대통을 이은 뒤 생민은 도탄에 빠지고 사직은 위태로워 망할지 모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환란과 재난이 없는 해가 없었던 것은 치안유지에 실패한 탓이었으며 짐이 부덕한 탓으로 그 화가 2천만 국민에게 미쳤다. 지금 뉘우친들 무엇하겠는가? 세 부득하여 동궁에게 전위한다. 천지신명과 종묘사직에 성심으로 이를 고하는 바이다. p-203 




고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황제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여 근대화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과 외세에 굴복당한 것에 대해 아직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고종황제의 업적에 대한 재조명을 차치하더라도 황제가 겪었을 무력한 설움과 고뇌, 그 와중에도 온갖 계략으로 황실을 괴롭혀 일제에 충성하는 윤덕영,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들의 작태에 대해 겪었을 황제의 마음을 정환덕은 고스란히 대변해 주고 있다.




이렇듯 조선왕조의 최후는 애절하고 비통하게 끝났다는 역자의 말에 공감함을 뼈 속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역사학자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이는 역사의 현재와 오늘이 덧쌓여져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직 못 다한 치환의 역사가 남아 있음을 안다. 아마도 정환덕은 남가몽을 통해 현재를 사는 오늘에게 시침을 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여 줄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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