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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신간평가단을 하며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페루, 내영혼에 바람이 분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네 권의 여행에세이를 읽었으니 절반 이상이 여행에세이였던 셈이다. 특히 2월에 선정된 에세이는 두 권 다 여행에세이였다. 덕분에 가 볼 수 없는 알타이, 페루, 시드니, 스리랑카 등을 책으로나마 여행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지금 당장 외국으로 나갈 수 없는 몸인지라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책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다만 너무 여행에세이에만 편중된 것 같아 이번 달은 여행에세이를 제외하고 선정해 보았다.


1. <처음처럼> 신영복




얼 마 전 움베르토 에코와 하퍼 리가 타계하자 알라딘에서는 재빠르게 추모페이지가 만들어졌다. 인터넷뉴스를 보니 그들의 책이 타계 후 증가했다고 한다. 저자가 죽으니 책이 팔린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움베르토 에코와 하퍼 리는 내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난 달에 타계한 신영복은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었다. 부고기사를 읽어보았으나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처음처럼>은 신영복의 글과 그림을 추려 만든 책이라 하니 이참에 한번 읽어보고 싶다.


2.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 난 번에 소개팅한 여자사람은 여자들이 관심 가져볼 만한 파스타 얘기 같은 거에 관심 가져보라던데, 이번에 소개팅한 여자사람은 여자들은 파스타 의외로 안 좋아한단다.-_-:: 뭐 어쩌라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파스타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 먹는 거지만, 스타셰프가 쓴 파스타 이야기라니 관심이 간다.


3. <즐겁고 신나고 따뜻하게> 경리안

 

 

싸이월드와 네이버에서 연재되어 3천만 페이지뷰를 기록한 외국인 남친과의 연애, 결혼담을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국제결혼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한 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4.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엘러리 퀸

 

 

<Y 의 비극> 등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엘러리 퀸이 쓴 추리소설의 역사다. 볼테르부터 에드거 앨런 포, 마크 트웨인, 코난 도일, 체스터튼, 서머셋 몸, 애거서 크리스티, 레이먼드 챈들러 등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비평이라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이란 장르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깊이있는 가이드가 될 책인 것 같다.

 

5. <어쨌든 연애는 이기적이다> 후쿠다 가즈야



저 자인 후쿠다 가즈야는 일본에서 우익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다(물론 재특회처럼 인종차별적인 우익은 아니고 그나마 개념있는 우익에 속한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한국에는 번역되지 않다가 작년에 갑자기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 <나 홀로 미식수업>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놀랐다. 이번에 같은 번역자, 같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 바로 <어쨌든 연애는 이기적이다>라는 책이다. 일본 우익이 쓴 연애에세이라니 뭔가 특이할 것 같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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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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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한국어판의 낚시성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손에 든 사람이 느낀 감정은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냐"라는 것이다.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프랑스소설로 서정적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험주의적 포스트모던 소설의 분위기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제목은 한국어판의 제목이고, 프랑스 원제는 <정신병동>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부조리극의 성격을 띄는데, 여주인공 지젤에게 수도꼭지를 갈아주겠다고 6년동안 사귄 남자친구 다미앙의 아버지가 찾아와 대신 이별을 전혀면서 시작된다. 다미앙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끊임없이 횡설수설을 늘어놓는다.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다미앙의 횡설수설은 어찌 보면 아포리즘 같기도 하고 상황과 맞지 않아 일종의 유머를 느끼게 만든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정당방위는 아니지. 그 애가 가해자니까 모든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거야. 걱정 마라. 시간이 네 고통을 덜어줄 테니. 반면 매번 네가 웃는 얼굴로 또는 핏발 선 눈으로 입꼬리에는 조소를 머금고 하염없이 흘린 눈물로 패인 듯 홀쭉하고 창백한 뺨의 슬픈 얼굴을 하고 그 애의 기억을 스칠 때마다 그 애의 고통은 한층 더 생생해질 거다. 결국 그 애가 너보다 괴로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애의 고통이 더 길어질 것은 분명해. (69)

난 그저 그 애의 말을 전하러 온 것뿐이다. 그 애는 나 대신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보낼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도 날 선택했어.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잘 통하거든. 그 애는 나를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처럼, 일종의 분신처럼 여기지. 당연히 같은 가문의 같은 핏줄을 타고났으니까. 게다가 이런 부탁은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소일거리지. 칠 년 전에 우리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어. 그 애가 자기에게 생부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상상했거든. (70,71)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젤은 다미앙의 집에 거듭 전화를 걸지만, 다음과 같은, 다미앙의 어머니로부터 마찬가지로 맥락 없고 황당한 악담을 듣는다.

우리는 네가 사라져버렸으면 한다. 어서 꺼져버려. 유적이나 호기심을 끌 만한 것도 없고 기후도 끔찍한 낯선 나라로 가서 살라고. 다미앙이 휴가 때라도 결코 찾아갈 일이 없다고 확신이 드는 그런 곳으로 말이야.
절대로 자살할 생각은 하지 마라. 너도 알다시피 다미앙은 죽음을 좋아하지 않아. 그 애는 충격을 받을 테고, 그리고 네 어머니가 찾아와서 그 애에게 비난을 퍼부을 게 뻔하니까. 그러면 우리 애가 몇 주 동안이나 괴로워할 거야.
넌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자살 기도를 할 테지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망치는 사람들을 지독히 경멸한다고 말해두고 싶구나. 삶이란 모든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너무도 잔인한 방식으로 잃고 마는 소중한 물품이야. (91, 92)

이후로도 소설 내내 다미앙의 어머니는 아들의 헤어진 여자친구 지젤을 괴롭힌다. 이후의 소설 줄거리는 계속 이 모양이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이 형식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소설의 내용면에서의 주제는 가정 내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괴로워하는 가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다미앙은 여자친구에게 제대로 이별도 고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하고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다미앙의 아버지 또한 다미앙의 어머니에게 휘둘리고 억눌린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못마땅하게 여겨 헤어지게 만든 것도 모자라, 거의 스토커 같은 행위로 지젤을 괴롭한다. 다미앙과 다미앙의 아버지는 다미앙의 어머니이 위세에 눌려 남성성을 거세당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남편을 억압하여 가정을 불행에 빠뜨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 등에서도 자주 그려지는데, 실험주의적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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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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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 시드니에 갔었다. 시드니로 말하자면, 한국과 비슷한 곳이어서 시차가 한 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위도는 정반대여서 계절이 정반대인 신기한 곳이다. 시드니에 가기 전에는 막연히 남쪽에 있으니 발리나 스리랑카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이리라 생각했지만, 시드니는 적도보다는 남극에 더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피해 피서를 잘 하고 왔던 기억이 있다.

시드니 체류기인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으며 서큘러 키, 조지 스트리트, 달링 하버, 본다이 비치, 팬케이크 온더 록스 등등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지명들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알타이, 페루,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처럼 내가 가 보지 못했던 곳들에 대해 읽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2016년 2월의 알라딘신간평가단 추천에세이로 선정된 책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신기하게도 두 권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체류, 산책, 독서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체류를 다루고 있고,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가이드북에 나오는 관광지를 쫓아다니는 여행을 즐기기보다는 산책과 독서처럼 일상적인 행위가 책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예를 들어 저자 중 한 사람인 장석주는 걷기를 다음과 같이 예찬한다.

걷는 자들은 숲길이건 들길이건 해변을 끼고 있는 길이건 시내 한복판 길이건 상관없이 걸음을 뗄 때마다 그 길에서 자신이 몸으로 존재함, 즉 존재의 느낌을 돌려받는다. 걷기는 몸의 모든 감각들을 일깨운다. 걸을 때 오감 속에서 느낌들이 풍부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략) 이것은 활력을 주는 해방과 자유의 느린 몸짓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며 영문 모를 기쁨이 가득 차오른다. 두말할 것 없이 느릿느릿 걷는 일은 속도와 효율성을 섬기는 현대성에 맞서는 저항이다. (중략) 느림은 사람들이 눈이 시뻘개져서 매달리는 수익의 창출이나 효율성의 극대화, 그리고 현대적 삶의 필요들에 대한 무관심과 그것을 방기하는 행위에 속한다. (170)

생각해보면, <처음 보는 유목민 여행>과 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내고 있는 에세이 '걸어본다' 시리즈의 하나이니, 걷기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저자들이 시인이니만큼 시드니에서 책 읽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또다른 저자인 박연준은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책은 펼쳐지고 넘겨지고 접히고 웅크린 채로, 쌓이거나 잊힌 채로, 읽히거나 방치된 채로, 가장 많은 시간은 '기다리면서' 낡아간다. 색이 바래고 미세하게 부풀어오르며 책 역시 '나이'를 갖게 된다. 우리와 같이 늙는다.
책도 저마다 운명, 혹은 팔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후엔 얇고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 시티에 나가봐야겠다. 저 책의 운명에는 시드니를 걸어보는 일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55)

산책과 독서를 주제로 한 여행이라는 점에서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와 비슷한데, 이 책의 특징은 바로 박연준과 장석주 두 저자가 시인 부부이며, 시드니 여행이 신혼여행이라는 점에 있다(이름만 봐서는 둘 다 남자 같은데 박연준이 여자다). 전반부는 박연준이, 후반부는 장석주가 담당하여 쓰고 있는데, 장석주의 파트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박연준 파트에는 JJ(책에서 박연준은 장석주를 JJ라고, 장석주는 박연준을 P라고 부른다)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되풀이 나온다. 그래서 솔로가 읽기에는 시쳇말로 '오글거리는' 부분이 많아 괴롭다. 안 그래도 발렌타인 데이라서 괴로운데ㅠㅠ

시인이라서 그런지 글에 대한 시적 고민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장석주는 칫솔모에서 만물의 운명을 발견한다.

시드니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나갈 무렵 치약은 닳고 칫솔모는 끝이 뭉툭해진다. 양치질을 하려다가 닳은 칫솔모를 한참 바라본다. 만물은 그 시작에서부터 소멸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 한번 생겨나면 반드시 닳아지고 바스러지며 줄어들고 쪼개져서 (중략) 사라지는 게 만물의 운명이다. (중략) 시간은 안 보이지만 흔적조차 없는 게 아니다. (177)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시인다움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라서 '詩드니'인 것일까?

박연준은 한 편의 시로 시드니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나도 그 시를 인용하고 끝마치겠다.

낯선 곳을 여행해보면 안다.
여행은 불편을 동반한 낯선 상황의 연속이라는 것을.
불안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그리 익숙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을.

돌아와보면 안다.
익숙할 때 즈음 그곳을 떠나왔음을.
이곳의 익숙함이 달콤하고 감동스럽게 느껴지지만
잠깐일 뿐이라는 것을.
조만간 권태에 빠져,
불편과 낯선 상황을 향해 달아나고 싶어할 것임을.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서울을 서울 밖에서 바라보듯 거리를 두고,
돌아와서도 헤매야 한다. (10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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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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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 괜히 헬조선이 아닌지라, 한국은 겨울엔 모스크바보다 더 춥고, 여름엔 카이로보다 더 덥다고 한다. 제발 덥거나 춥거나 한쪽만 했으면 좋겠다. 일 때문에 한국에 1년간 살던 미국인 친구는 한국 사람이나 음식에 대해서는 호감을 표했으나 한국의 날씨에 대해서는 "내 고향 텍사스에서는 50도 가까이 돼도 습기가 없어서 여기보다 덜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황사-더위-장마-추위)을 경험하고 귀국했다.

개인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지만,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서 추위에 괴로워하는 나날이 이어지다보니 차라리 열대의 남국으로 떠나고 싶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에 나오는 여행지는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 네 곳이다. 모두 가 본 적 없는 곳들이다.

책 속에 나오는 아누라다푸라, 폴로나루와, 누와라엘리야 등의 이름만 들어도 낯선 장소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여느 여행에세이와는 한결 달랐다. 이 책의 제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살아보기'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관광지를 일일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3주 내지 석달간 말 그대로 '살아보는' 저자의 여행은 관광과 이주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체류에 있다. 발리 현지의 나염 원피스를 입고, 발리어를 한두마디 배워 인도네시아 현지 전통 요리를 배우는 저자의 여행방식은 현지인들의 삶 그 자체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유명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이 흥행하자 라오스에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어 현지의 삶이 오염되는 것을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을 보면 저자가 현지의 생활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비엥이 다시 옜 모습을 찾아가는 대신 식당과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이 비즈니스를 걱정할 무렵 한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2014년 가을, TV에서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직후부터였다. 지금 방비엥의 주 수입원은 한국인 관광객이다. 이렇게 밀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방식은 비슷하다. "이거 칠봉이가 맛있다고 했던 거야. 먹어보자. "<꽃청춘>의 걔네들이 머물렀던 숙소에서 자고 싶은데 방이 없대." "블루라군은 꼭 가야 해. 걔들이 점프한 데잖아." 라오스에서 실제 내 귀에 들려온 대화들이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방송에 나왔던 대로 한다. TV가 여행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제 귀찮은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중략)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자기만의 라오스를 찾기보다는 <꽃보다 청춘>의 라오스를 소비할 뿐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그 집단적인 소비 행위에 타인들을 위한 배려가 끼어들 틈은 없다. (374, 375)

유명 관광지들을 다니는 대신에 저자가 즐기는 여행은 산책과 독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산책에 대한 예찬을 논한다.

인류의 위대한 인물 중에는 산책이 취미이자 특기였던 이들이 많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자면 소요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벌판을 헤매이누나'라고 노래했던 하이쿠 시인 바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 자크 루소, 너무 많이 걸어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할 만큼 오래 걸었던 방랑시인 랭보, 파리의 아케이드를 걸어 다니며 사색했던 발터 벤야민,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며 산책을 즐겼던 소로. 좋아하는 호숫가를 산책하다 감기에 걸려 세상을 뜬 시인 워즈워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에게 걷기나 산책은 존재의 방식이자 사색의 수단이다. (62, 63)

나 역시 성격이 게울러서인지 여행지에 가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산책이나 독서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히키코모리라서 한국에서도 집-학교-집을 반복하던 나인데, 여행을 가서까지 관광지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산책이나 하고 그저 책이나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치앙마이의 도서관에는 한글로 된 책이 1천 권이나 있다고 한다. 저자처럼 치앙마이에서 느긋하게 몇 주일간 체류하면서 도서관이나 오고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보면 여행과 책은 서로 닮아 있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일상과 그 일상을 둘러싼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게 가장 온순한 방법으로 자신이 쌓아온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254)

그렇게 말하면 "왜 굳이 비싼 돈 써서 외국에 나가 산책이나 하고, 책을 읽는가? 그럴 거면 한국에서 하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법 하다. 저자가, 그리고 내가 여행에서 바라는 것은 한국의 서울에서는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여유다.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에서는 번잡한 한국의 삶과는 다른 느린 삶이 있다고 한다.

사철 꽃이 피는 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면서 한껏 게을러지고 싶었다.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꼭 사고 싶은 물건도 없고, 꼭 봐야만 하는 것도 없는 곳. 덜 쓰고, 덜 가지고, 덜 만남으로써 느긋해지고 싶었다. 여행이 주는 긴장감은 덜고, 일상이 주는 지루함은 벗어나 여행과 일상 사이에 머무를 수는 없는 걸까. (5)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치앙마이의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영화로 <POOL>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한 번 봐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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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첫 달도 무사히 지났다. 벌써 한 달이 지나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2월은 내게 특별한 달이다. 내 생일이 2월에 있기 때문이다. 명실공히 20대 후반이 되고 보니 생일이 반갑지 않다.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이 한 살 먹는 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한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난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1. <그렇다면, 참 좋겠다> 강다솜




에 세이의 매력 중 하나는 삶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이다. 라디오를 오래간 진행한 MBC 아나운서 강다솜의 <그렇다면, 참 좋겠다>는 제목만 보아도 긍정적 메시지가 전해져 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나운서다운 깊이 있는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세컨드 핸드 타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 년 노벨문학상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수상했을 때, 때마침 나온 그녀의 신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신간평가단 도서로 추천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달에 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이 일시중지되면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추천하지 못해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도 이번에 알렉시예비치의 신작 <세컨드핸드 타임>이 출판되었다.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라는 제목처럼 소련 패망 전후의 러시아인들의 삶을 다룬 책인데 흥미로운 주제다.


3.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 대담집




박완서 작가의 타계 5주기를 맞아 생전의 대담들을 모아 출판한 책이다. 비록 내가 한국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30여년간 한국문학을 대표해온 박완서 작가의 문학론과 삶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4. <열아홉 편의 겨울여행과 한 편의 봄여행> 이희인




역시 여행에세이를 한 편쯤은 추천해야겠다. 동강부터 바이칼호까지, 규슈에서 티베트까지 국내외 20여곳의 여행지를 여행한 에세이 모음이다. 겨울의 추위는 싫지만, 사진으로 보는 새하얀 설경은 아름답다.


5. <0 이하의 날들> 김사과




청년세대 작가라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소설가 김사과의 산문집이다. '0 이하의 날들'이라니, 아무리 많이 모이고 쌓여도 0보다 적은 날이라는 뜻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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