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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글쓰는 허지웅"이라는 자부심이 드러났던 <버티는 삶에 관하여>로부터 2년만에 허지웅의 신작 <나의 친애하는 적>이 출판되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예능프로 <미운 우리새끼>에 고정출연하고, 같은 방송사의 <국민면접>에 출연한 그를 떠올리며, 어느새 글쓰는 허지웅이 방송인 허지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과 걱정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그런 걱정이 기우였기에 안심했다. 허지웅은 여전히 삐딱하고, 여전히 날카로웠다. 여전히 영화에 대해서, 한국사회에 대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글을 쓰고 있었다. 짤막한 칼럼들과 에세이들의 모음이지만, 촌철살인의 글들이라 읽는 재미도 있다.
의외로(?) 저자의 본업인 영화평론 글들도 재미있는 글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선입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영화를 보기 전에 비평이나 평론은 잘 읽지 않는데, 이 책에서는 보고 싶어지는 영화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졸업>, <모래의 여자>, <쳐다보지 마라>, <워커맨>, <페드라>, <4등> 등 관심이 없던 영화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몰랐는데 방송인 허지웅의 생활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나보다. 어느 방송국에서 섭외되었다가 취소되는 일을 반복해서 겪었던 에피소드가 나온다.
해당 방송사의 고위직과 친한 지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유가 뭔지 좀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중략) 그런데 막상 답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국제시장>에 비판적인 의견을 냈다가 논란에 휩싸였던 일이 문제였다. 당시 그 방송사의 모기업 회장이 수감중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권에 밉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단은 출연 금지가 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일선 피디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르니까 섭외가 자꾸 가는 거고, 최종 결재에서 엎어지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좀 기다리면 해결될 거다, 라는 이야기가 덧붙었다. (308,309)
저자처럼 방송사 고위직과 한 다리 건너서 이유라도 들을 수 있으면 덜 갑갑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불이익을 받는다면 얼마나 갑갑하고 억울하겠는가. 블랙리스트와 자기검열의 악순환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글쓰는 허지웅'과 '방송인 허지웅'의 고뇌가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로서 방송에 나온다는 것은 블랙리스트나 악플과도 같은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의 친애하는 적이란 독자이기도 하고, 대중이기도 하고, 방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