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한국어판의 낚시성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손에 든 사람이 느낀 감정은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냐"라는 것이다.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프랑스소설로 서정적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험주의적 포스트모던 소설의 분위기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제목은 한국어판의 제목이고, 프랑스 원제는 <정신병동>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부조리극의 성격을 띄는데, 여주인공 지젤에게 수도꼭지를 갈아주겠다고 6년동안 사귄 남자친구 다미앙의 아버지가 찾아와 대신 이별을 전혀면서 시작된다. 다미앙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끊임없이 횡설수설을 늘어놓는다.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다미앙의 횡설수설은 어찌 보면 아포리즘 같기도 하고 상황과 맞지 않아 일종의 유머를 느끼게 만든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정당방위는 아니지. 그 애가 가해자니까 모든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거야. 걱정 마라. 시간이 네 고통을 덜어줄 테니. 반면 매번 네가 웃는 얼굴로 또는 핏발 선 눈으로 입꼬리에는 조소를 머금고 하염없이 흘린 눈물로 패인 듯 홀쭉하고 창백한 뺨의 슬픈 얼굴을 하고 그 애의 기억을 스칠 때마다 그 애의 고통은 한층 더 생생해질 거다. 결국 그 애가 너보다 괴로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애의 고통이 더 길어질 것은 분명해. (69)

난 그저 그 애의 말을 전하러 온 것뿐이다. 그 애는 나 대신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보낼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도 날 선택했어.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잘 통하거든. 그 애는 나를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처럼, 일종의 분신처럼 여기지. 당연히 같은 가문의 같은 핏줄을 타고났으니까. 게다가 이런 부탁은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소일거리지. 칠 년 전에 우리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어. 그 애가 자기에게 생부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상상했거든. (70,71)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젤은 다미앙의 집에 거듭 전화를 걸지만, 다음과 같은, 다미앙의 어머니로부터 마찬가지로 맥락 없고 황당한 악담을 듣는다.

우리는 네가 사라져버렸으면 한다. 어서 꺼져버려. 유적이나 호기심을 끌 만한 것도 없고 기후도 끔찍한 낯선 나라로 가서 살라고. 다미앙이 휴가 때라도 결코 찾아갈 일이 없다고 확신이 드는 그런 곳으로 말이야.
절대로 자살할 생각은 하지 마라. 너도 알다시피 다미앙은 죽음을 좋아하지 않아. 그 애는 충격을 받을 테고, 그리고 네 어머니가 찾아와서 그 애에게 비난을 퍼부을 게 뻔하니까. 그러면 우리 애가 몇 주 동안이나 괴로워할 거야.
넌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자살 기도를 할 테지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망치는 사람들을 지독히 경멸한다고 말해두고 싶구나. 삶이란 모든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너무도 잔인한 방식으로 잃고 마는 소중한 물품이야. (91, 92)

이후로도 소설 내내 다미앙의 어머니는 아들의 헤어진 여자친구 지젤을 괴롭힌다. 이후의 소설 줄거리는 계속 이 모양이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이 형식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소설의 내용면에서의 주제는 가정 내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괴로워하는 가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다미앙은 여자친구에게 제대로 이별도 고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하고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다미앙의 아버지 또한 다미앙의 어머니에게 휘둘리고 억눌린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못마땅하게 여겨 헤어지게 만든 것도 모자라, 거의 스토커 같은 행위로 지젤을 괴롭한다. 다미앙과 다미앙의 아버지는 다미앙의 어머니이 위세에 눌려 남성성을 거세당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남편을 억압하여 가정을 불행에 빠뜨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 등에서도 자주 그려지는데, 실험주의적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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