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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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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국어시간에 소설은 1인칭 소설과 3인칭 소설로 분류된다는 이야기를 읽고 이런 질문을 했다. "2인칭은 왜 없나요?"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을 비롯하여 국내외의 많은 작가들이 2인칭 소설을 시도했다.

 

그런데 새로운 형식의 시도라는 실험적 의미와는 별개로 2인칭 소설에는 치명적 문제가 있다. 바로 소설의 화자인 '당신' '너' 'You'가 독자와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북극에 막대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줄 알았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독자는 "아니, 난 안 그랬는데?"라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이나 '너'라는 화자가 등장하더라도 실제로는 '나'의 1인칭 소설이 되어버리고 만다.

 

폴 오스터의 자전적 에세이(혹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라고 하여 실제로 있었던 사실만을 적는 것은 아니고, 어쨌거나 폴 오스터는 소설가이니 말이다) <내면보고서>는 '당신'을 화자로 하는 2인칭 작품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처럼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보편적 제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면, 독자가 '당신'이라고 호명되더라도 '그래 우리 어머니도 그렇지. 이건 내 얘기야'라고 공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폴 오스터가 어렸을 적 존경하던 메이저리그 선수와 만나고, 인디언 가장행렬에 딸랑이를 들고 갔던 경험을 '당신'이라고 말하는 것을 읽었을 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독자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폴 오스터의 <내면보고서>는 2인칭으로 쓰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연상시킨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썼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년 폴 오스터는 <피터 래빗>을 좋아했고, 스티븐슨의 소설들과 <셜록 홈즈> 시리즈를 탐독했다. 그리고 소년은 민족과 국가, 진실과 거짓, 인류애와 정의, 고독과 비밀 등을 처음으로 발견하며 성장해간다. 상당히 조숙한 소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어린 시절의 회상은 어른이 된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된다는 점은 감안하여 읽을 필요가 있겠다. 어렸을 당시에는 별 의미를 가지지 않았던 에피소드에서 뒤늦게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려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뭐 먹었는지도 기억 안 나는데 50년도 더 전의 일들을 회상해서 이런 글들을 쓰다니 대단하다.)

 

콜럼비아대학에서 여자친구와 주고 받은 편지를 소개한 부분은 <달의 궁전>을 연상시킨다. <달의 궁전> 주인공 마르코와 마찬가지로 폴 또한 베트남전쟁 참전을 피하기 위해 고뇌하고,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기도 하고, 프랑스어 번역과 글쓰기에 몰입했었다. <달의 궁전>은 작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투영된 소설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미국문학 작가가 쓴 책이다보니 문장 자체는 잘 읽히고 재미있게 읽혔다. 작가란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책이었다. 그런데 내가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이유는 폴 오스터가 쓴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폴 오스터가 어린 시절 에디슨을 존경하고 친구에게 생일 선물을 양보하고 뉴햄프셔 캠프를 갔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굳이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알 필요가 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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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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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교양인이자 독서가로 유명한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의 정원>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인생의 책 100권을 선정한 적이 있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은 다치바나 다카시답게 <2중나선>부터 시작하여 <만들어진 신> <성경><코란> <논리철학논고> <직업으로서의 정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리엘> <황무지>까지 동서고금의 명저들이 망라된 목록에서 나는 신기한 책 제목을 발견했다. 바로 99번째 책이 사노 요코의 동화 <100만 번 산 고양이>였던 것이다(참고로 100번째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일본의 동화작가이자 에세이스트 사노 요코의 이름을 그렇게 알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에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라는 에세이가 번역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알라딘신간평가단 에세이 분야에 사노 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가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16기 알라딘신간평가단에서 선정된 에세이들 중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와 더불어 가장 에세이다운 에세이였던 것 같다(아니, <세컨드 핸드 타임>이랑 <내 심장을 향해 쏴라>가 논픽션이지 어떻게 에세이란 말인가).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소재로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는 <라면의 끓이며>와 비슷하지만, 김훈이 글이 힘이 잔뜩 실린 에세이라면, 사노 요코의 이 책은 훨씬 가볍게 쓰인 느낌이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라니, '뭘 그렇게 진지하게 살아?(Why so serious?) 어깨 힘 빼고 편하게 되는 대로 살아'라는 느낌이다. 투병 중에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세상을 떠난 사람답다고 해야 할까? 쿨하게 세상의 진지함을 특유의 힘 빠지는 유머 섞인 문체로 웃어넘긴다. 그런데도 그런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들에 인생의 심오한 진리가 담겨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류의 에세이에서 돋보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그리면서도 그 속에서 빛나는 인간 통찰의 깊이와 번뜩이는 재치다. "인쇄된 글로 된 것을 의심해라"라고 말하던 아버지, 아프면 "내가 죽으면 말이지"하고  앓는 소리를 하던 어머니, 일주일에 한 번 한 아름이나 되는 꽃을 사면서 남편에게는 구멍난 양말을 꿰매어 신게 하는 동생, <미운 오리 새끼>의 오리는 그냥 오리로 살면 안 되냐고 묻는 아들, 비정상적으로 짧은 다리와 긴 몸통이 처량해 보이는 애완견, 회사 중역 기요시와의 불륜을 끝낼지 말지 전화로 물어오는 친구 마리코, 술에 취하면 문의 매트를 0.1mm의 오차도 없이 직각으로 고쳐놓는 다미야 군 등등 저자 주변의 흥미로운 인간군상들의 묘사를 보면 꼭 좋은 일들만 가득하지는 않은 우리의 일상이 저자처럼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심풀이로 읽기 때문에 활자는 그저 배경 음악처럼 흘러갈 뿐, 교양으로도 지성으로도 남지 않는다. 오락이니까 그냥 시간을 때우면 되는 거다. 내 안에 축적되어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일 같은 건 없다. (중략)

독서는 그처럼 나에게 지성도 교양도 가져다주지 않지만 때때로 감동하거나 감탄하거나, 아름다운 마음씨가 되거나 분노에 떨거나 하는 것을 몹시 싼 값으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큼은 좋다. 나는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채로, 눈만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마음속에서 꺄아 꺄아 기뻐하고 싶은 거다. (318-320)

 

저자는 이렇게 말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영화나 책에 대한 교양과 지성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노 요코의 이 책은 에세이로서는 꽤나 만족스러운 독서경험으로 생각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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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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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좋은 점은 평소라면 안 읽었을 책, 놓치고 말았을 책들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달 신간평가단 선정도서가 도착했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이번 달은 망했구나"였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는 그렇다 쳐도, <내 심장을 향해 쏴라>가 문제였다. 700페이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다. 내가 추천한 책도 아니고, 책 소개도 딱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장석주, 표창원 같은 사람들이 추천한 책이라니 좋은 책이겠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700페이지라는 분량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잘 쓰인 추리소설과도 같았다. 아니, 어지간한 추리소설도 이 책의 빨려들어가는 듯한 흡인력은 따라오지 못한다.

 

이 책의 저자는 마이클 길모어, <롤링스톤>의 수석편집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물론 이 책이 음악평론 서적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게리 길모어의 막내동생으로서 썼다. 게리 길모어가 누구냐 하면,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형수"라고 한다. 1976년, 그는 2명을 총으로 쏴 죽였는데, 아무 이유가 없는 묻지마살인이었다. 법정에서 자신을 사형에 처해달라고 한 그는 결국 사형당함으로써 10년간 시행되지 않던 유타주의 사형제도를 부활시켰다.

 

그의 소년원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뉴스를 통해 게리가 저지른 가엾은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행적을 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로 달려가서 게리를 두 팔로 안고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볼까 하고 말입니다. '(중략) 이 자식들 체면 좀 살려주잔 말이야. 안 그러면 자넬 죽여버릴지도 몰라. 이번 한 번만 머리를 좀 숙여봐. 그들이 원하는 걸 줘버려.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그러면 되는 거야.' 나는 분명히, 만일 게리가 자기가 꺾을 수 없는 높은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했다면, 그들 마음속에는 게리를 살려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중략) 그때 내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나는군요. '저놈의 유타 모르몬 교도들은 신이 항상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자기들이 신의 명령을 행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어.'" (291, 292)

 

게리 길모어는 무고한 두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자신을 죽여달라며 기존의 도덕을 부정했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졌는지도 모른다.

 

둘째 형 게리 길모어가 사형에 당하고, 어머니마저 죽자 막내동생 마이클 길모어는 자신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그 시작은 어머니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르몬교의 피의 역사부터 시작된다. 나는 모르몬교가 기독교의 일파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1820년대 조셉 스미스라는 계시자가 <모르몬경>이라는 사이비 경전을 쓰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네피 족과 라만 족의 천년에 거친 전쟁이라고 하는 정통 성경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정부로부터 박해당하던 모르몬교도들은 유타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모르몬교 유타 이주의 역사를 따라오다보면 길모어 형제의 어머니 베시 길모어가 나타난다. 베시 길모어는 어렸을 적에 악령이 씌어 동생이 죽는 등 괴이한 일들을 겪는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베시는 프랭크 길모어와 결혼하여 집을 나간다. 그런데 베시보다 스무 살 이상 나이가 많았던 프랭크 길모어는 미국 전역을 떠돌아 다니는 사기꾼에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쫓기고 있는 형편없는 인물이었다. 프랭크 길모어는 자신의 아버지가 미국의 전설적인 마술사 후디니라고 믿고 있었다.

 

여기까지 게리 길모어 얘기는 안 나온다. 심지어 게리 길모어는 장남도 아니고 차남인지라 게리 길모어는 167페이지가 되어서야 태어난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 있다. 언제 어떻게 그 죄의 씨앗이 싹튼 것일까? 다르게 말하자면, 이 모든 잘못된 결과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 시점을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중략) 그 역사의 어디쯤, 우리는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까? 내 형의 영혼을 살인으로부터 구출할 수도 있었던 시점은 어디였을까? 그 순간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 파멸의 운명을 피할 순간을 찾아낸다면, 그 운명의 악순환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순간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쁜 쪽으로 결정되고 있었다. 한 명의 살인자, 그의 지독하게 불행했던 삶의 행로를 바꾸려면, 한 순간이 아니라 과거의 매 순간을 새로운 고리로 연결해야만 했다. (172)

 

그렇게 게리는 정해진 운명대로 파멸의 길을 가게 된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매질을 당하던 게리는 점점 비뚤어져 소년원에 가고 마약과 절도 등 범죄에 물들어간다. 결국 게리는 앞에서 말했다시피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었다.

 

다소 뻔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 책은 나다니엘 호손(혹은 에드거 앨런 포나 커트 보네거트)의 계보에 속하는 미국문학의 걸작으로 평가해도 좋을 듯 싶다. 19세기 모르몬교도의 이야기부터 마술사 후디니나 인디언 악령의 전설이라는 역사의 거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가정폭력과 살인자의 내면 심리로 파고 들어가는 수법이 인상적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위대한 개츠비> 등 미국소설의 걸작들을 일본어로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을 번역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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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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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위대한 개츠비>를 먼저 읽어보기로 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내게 별 감흥이 없었고, 그저 그런 소설로 기억되었다. 내심 왜 이 소설이 위대한 소설들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5페이지도 지나지 않아 <위대한 개츠비>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빠져들었고, 묘한 감동과 흥분에 휩싸여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미국 문학의 180쪽짜리 시스티나 성당"(16)이라는 찬사가 과히 거짓은 아니라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몇 년 전 읽은 것과 같은 번역자의 같은 판본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같은 개츠비 연구서들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읽은 것도 아니었고, 내 인생에서 적어도 연애에 관련된 큰 변화는 없었는데 책을 읽은 감상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고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의 저자 모린 코리건은 "고등학교 시절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읽으며 왜 위대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11)지만, 현재는 매년 대학 신입생들에게 <위대한 개츠비>를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수강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들면서 소설의 겹겹이 쌓인 의미를 더 잘 알아차리게 되었"(16)다고 한다. 고전, 혹은 위대한 명작들의 공통점이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위대한 개츠비>는 그 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나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삶과 <위대한 개츠비>의 탄생비화, 소설 <개츠비>가 걸어온 궤적 등을 다루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부인이었던 젤다와 딸 스코티와의 관계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헤밍웨이와의 관계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에게 "당신의 간은 프린스턴 박물관에, 심장은 플라자 호텔에 뿌립시다"(46) 운운하는 편지를 썼다고 하니, 라이벌보다는 악플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개츠비> 안에 나타난 유대인이나 이민자의 문제, 1920년대 뉴욕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 <개츠비>의 하드보일드 소설적 요소 등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어느 맑은 아침에"라는 표현 다음에 오는 "터무니없이 긴 줄표가 개츠비가 소유한 선착장 끄트머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64) 운운하는 비평가의 지나친 의미부여는 다소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소설만 읽고는 알 수 없었던 여러 사실들도 나와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발표 직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겨우 2쇄를 찍은 후 서점에서 사라졌던, 그래서 피츠제럴드 본인이 출판사에 선물로 주문한 게 유일한 판매고였던 <위대한 개츠비>가 1940년 피츠제럴드의 사후, 미국문학의 금자탑으로 급격히 부활한 과정이 흥미로웠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대량의 문고판 책들을 인쇄하여 참전 중인 군인들에게 배부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15만 부 이상 미군들에게 읽혔고, 이는 1950년대 <위대한 개츠비>의 대중적 부활의 선구가 되었다고 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부흥이 미군의 진중문고 보급이 1차적 계기였듯이, 국립예술기금이 시작한 '빅리드' 캠페인은 평소 대학에서 <개츠비> 강의를 하던 모린 코리건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나보다. 2004년 국립예술기금은 여가시간에 문학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 보고서를 접하고, '마을마다 책 한 권' 캠페인을 전개하는데, 이때 국립예술기금이 <화씨 451> <몰타의 매><앵무새 죽이기> 등과 함께 선정한 소설들 중 하나가 <위대한 개츠비>였던 것이다. 저자는 <개츠비> 강연을 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이 책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으며 그동안 내가 많은 책들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넘어가지는 않았나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를 통해 <위대한 개츠비>와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는 <위대한 개츠비>가 "살면서 적어도 두 번, 또는 5년에 한 번씩은 읽을 가치가 있는 미국 소설"(18)이라고 말한다. 아마 내게도 <위대한 개츠비>가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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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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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닌>(2003)이라는 독일 영화가 있다. 1989년 베를린의 벽이 무너질 당시, 혼수상태에 빠진 주인공의 어머니가 6개월만에 깨어나는데, 열혈 공산당원이었던 어머니에게 차마 동독이 망하고 통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아직 동독이 망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코미디 영화다. 통일 직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는데, 동독 시절 어머니가 즐겨먹던 통조림을 찾기 위해(통일 이후에는 브랜드가 없어져 구하기 힘들었던 듯하다) 쓰레기장을 뒤지던 주인공을 보고 이웃집 할아버지가 혀를 차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고, 이제는 청년이 쓰레기장까지 뒤지네. 동독시절에 이런 일은 없었는데..."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이 성립된 것은 기껏해야 1949년이지만, 소련은 1917년부터 1991년까지 74년간 존속했다. 소련이 멸망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소련 이전의 러시아를 기억하지 못했고, 소련이 그들의 조국이었다. <굿바이, 레닌>의 주인공 어머니는 영화 마지막에 숨을 거두지만, 많은 소련인들은 1991년 이후에도 러시아인(혹은 벨라루시인, 아르메니아인, 타지크인, 체첸인 등등)으로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실제로 소련인들에게 소련의 붕괴는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인 마르가리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어요. 그냥, 없어진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내려다 보니 어느새 다른 국가의 국기가 걸려 있었던 거예요.다른 나라에서 살게 된 거죠. 남의 나라에서요.(140) 

 

19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의 도입으로 소련은 개방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파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조직하여 1991년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감금하는데, 이에 반항한 수십만의 소련 시민들이 모스크바의 의사당로 몰려들었고, 쿠데타는 실패로 끝난다. 이를 계기로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연방 등으로 분열된 것이다.


그러나 10년뒤,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쿠데타가 성공했으면 어땠을 거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랬다면 위대한 나라를 보존했겠지요."

"공산당이 아직 정권을 잡고 있는 중국을 한번 보세요. 지금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에요."

"조국을 배신한 대가로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심판했겠죠."(중략)

"전 그날 의사당에 모였던 사람들 중 하나에요. 지금 느끼는 기분은 '속았다'에요. (35, 36)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는 결코 고르바초프를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섰던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 같은 장밋빛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일부 사람들이 부호가 되어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어떤 사람은 소련 붕괴 이후의 90년대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끔찍한 시절이었거든요. 머릿속에서 180도 회전이 일어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변화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도 허다했어요. 정신병원이 환자들로 북적거렸죠. (중략) 거리에선 총소리가 줄곧 들렸어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매일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났죠. 뭔가를 더 가져 가려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가져야 했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던 거예요. 어떤 사람은 파산했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갔어요. (40)


 

알렉시예비치는 소련 붕괴 후 20여년간 정신없이 뛰어들어 흩어지는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의 온갖 목소리들을 하나하나 주워담았다.


"옐친과 그 일당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훔쳐갔소! '술을 마셔요! 부자 되세요!' 언제쯤 이 모든 것이 끝나려는지....."(중략)

"나 같으면 저 빌어먹을 부르주아들을 탱크로 싹 밀어버릴 텐데!"

"공산주의는 유대인 칼 마르크스가 만들어낸 거야."

"우리를 구원해줄 유일한 사람은 스탈린 동지뿐이야. 이틀만 스탈린이 되돌아와서 모두를 쏴 죽였다면.... 그런 뒤에 얼마든지 다시 흙으로 돌아가 누워도 되잖아."

"주여, 주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제 모든 성인을 섬길 거에요!"

"이 스탈린의 개들아! 너희 손에 묻은 피가 채 식지도 않았다, 이놈들아! 황제 일족은 왜 죽인 거냐, 이 나쁜 놈들아! 네놈들은 아이들마저 잔인하게 도륙했잖아!"

"위대한 스탈린 없이 위대한 러시아 를 만들 수는 없어." (46, 47)


그 과정에서 스탈린체제와 제2차세계대전부터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소련 붕괴, 그 이후에 대한 사람들의 갖가지 기억들을 모은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며 국민들이 가진 하나의 단일한 서사를 해체시킨다. 예를 들어 히틀러와 싸워 이긴 소련의 위대한 영웅들의 전쟁으로 기억되는 제2차세계대전에 대해 다른 목소리들, 다른 기억들을 복원해낸다. 나치 독일의 학살로부터 도망쳐 빨치산에 참가했지만 오히려 소련 빨치산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유대인의 기억, 소련의 통치보다 독일 점령군의 통치가 나았다며 독일 앞잡이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어느 여인의 기억, 전쟁이 끝난 후 먹을 것을 구걸하던 독일군 포로에 관한 기억, 스파이로 몰려 수용소로 보내진 어느 아이의 기억...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을 건져 올림으로써 평범한 서민들의 작은 이야기들을 완성해냈다.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전쟁세대는 소련 붕괴 이후의 변화가 익숙치 않고, 신러시아를 당연시하는 젊은 세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 손자들이었다면 아마 '위대한 조국전쟁'(제2차세계대전을 가리킴)에서 패했을 거야. 요새 애들에겐 사상도 원대한 포부도 없어." (중략)

"내가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면 애들은 옛날이야기 취급을 해버리지. 그러곤 이런 질문들을 해. '왜 군인들이 연대 깃발을 사수하기 위해 죽었던 거예요? 다시 새로운 깃발을 만들면 됐잖아요.' 날 보고 대체 누굴 위해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였느냐고 묻는다니까. '스탈린을 위해서 하셨어요? ' 어이구, 이 철없는 것들아! 너희들을 위해서다, 너희들!

"항복을 하고 독일놈들의 군화를 핥았어야 했나 봐......(262)


청년세대는 노년세대의 성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노년세대는 그런 청년세대에 울분을 토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세대갈등과도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소련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 스탈린을 찬양하는 인터뷰이들 중 몇 명은 스탈린 체제 당시에 자신의 가족, 혹은 자기자신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 시절 부인의 가족이 폴란드에 남았다는 이유로 잡혀가 감옥에 수감되었던 바실리 노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영국 스파이, 일본 스파이들, 가방 끈이 짧았던 어떤 시골 영감은 마구간을 방화했다는 이유로 잡혀 들어왔고, 어떤 대학생은 유머를 잘못 말해서 잡혀 왔었지. (중략) 그 유머 때문에 학생은 '일체의 연락이 불가능한 수용소 10년형'을 선고받았어. 스탈린과 닮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운전수도 있었어. (246)


바실리 노인은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명예회복을 위해 전쟁에 참가했고, 당원자격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이미 죽은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옐친의 러시아를 혐오했으며, "난 공산주의자로 죽고 싶어.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256)라고 말했고, 실제로 자신의 유산인 아파트를 공산당에게 남기고 죽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 같은 것일까? 한국에서도 청년세대가 박정희를 비판하면 "그 시대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라고 역정을 내는 노인들이 있다고 하는데, 소련과 스탈린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리인 것일까?


전쟁, 수용소, 감시와 밀고, 빈곤, 혁명, 학살, 테러, 이민, 사랑, 자살...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한 러시아인들은 참 불행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항상 고통에 대해서 말을 하죠. (중략) 우리들은 수용소에서 복역했고, 전쟁을 치를 때는 시체로 천지를 덮었어요. 맨손으로 체르노빌에서 핵연료를 퍼냈지요. 그랬는데 지금은 무너진 사회주의 폐허 위에 앉아 있어요. (중략)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가 있어요, 바로 고통의 언어에요. (52)


러시아인들만큼 고통과 절망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아니다. 이 책에 묘사된 고통과 절망의 이야기들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모습은 약간씩 바뀌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으며 한국을 떠올렸다.


대중 사이에서 소련에 대한 동경이 일어났고, 스탈린 숭배자들도 나타났다. 19세에서 30세까지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스탈린을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꼽고 있다. (중략)

구시대적 발상들, 다름 아닌 '위대한 제국', '철의 손', '러시아만의 고유한 길' 등의 사상들이 부활하고 있다. 소련의 국가가 다시 불리고, '나쉬'라는 이름이로 불리는 콤소몰도 활동하고 있다. 공산당을 재현한 것 같은 집권당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공산당 총서기장의 절대적 권력과 같다. 그리고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정교회가 대체하고 있다. (19)


시민혁명으로 독재체제를 무너뜨렸으나 그 결과 찾아온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부격차에 실망하고 과거의 독재를 그리워하는 나라, 역시 이 나라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위대했던 시절의 독재자를 닮은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나라, 과거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는 나라, 자신의 나라에 희망을 느끼지 못해 다른 나라로 이민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은 혐오하는 나라, 국가를 위한 전쟁에 나서는 영웅들은 찬양하면서도 딸의 의심스러운 자살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는 어머니를 경찰이 잡아가는 나라. 물론 구소련이나 러시아보다는 우리나라가 훨씬 좋은 나라임은 틀림없지만, 어쩐지 우리나라도 러시아와 같은 모순 가득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번역상의 문제가 눈에 띈다. 일단 "공산당 매니페스토(정권 공약)"(406)라고 되어 있는 단어는 문맥상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맞을 듯 싶다. "별장"이라고 번역하면 될 단어를 굳이 "다차"라고 러시아어 단어로 표기하는 것 또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러시아문화에 관한 역자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대부분 넘어간다. "아는 지인"(452)이라는 잘못된 표현도 또한 나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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