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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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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 괜히 헬조선이 아닌지라, 한국은 겨울엔 모스크바보다 더 춥고, 여름엔 카이로보다 더 덥다고 한다. 제발 덥거나 춥거나 한쪽만 했으면 좋겠다. 일 때문에 한국에 1년간 살던 미국인 친구는 한국 사람이나 음식에 대해서는 호감을 표했으나 한국의 날씨에 대해서는 "내 고향 텍사스에서는 50도 가까이 돼도 습기가 없어서 여기보다 덜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황사-더위-장마-추위)을 경험하고 귀국했다.

개인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지만,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서 추위에 괴로워하는 나날이 이어지다보니 차라리 열대의 남국으로 떠나고 싶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에 나오는 여행지는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 네 곳이다. 모두 가 본 적 없는 곳들이다.

책 속에 나오는 아누라다푸라, 폴로나루와, 누와라엘리야 등의 이름만 들어도 낯선 장소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여느 여행에세이와는 한결 달랐다. 이 책의 제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살아보기'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관광지를 일일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3주 내지 석달간 말 그대로 '살아보는' 저자의 여행은 관광과 이주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체류에 있다. 발리 현지의 나염 원피스를 입고, 발리어를 한두마디 배워 인도네시아 현지 전통 요리를 배우는 저자의 여행방식은 현지인들의 삶 그 자체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유명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이 흥행하자 라오스에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어 현지의 삶이 오염되는 것을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을 보면 저자가 현지의 생활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비엥이 다시 옜 모습을 찾아가는 대신 식당과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이 비즈니스를 걱정할 무렵 한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2014년 가을, TV에서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직후부터였다. 지금 방비엥의 주 수입원은 한국인 관광객이다. 이렇게 밀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방식은 비슷하다. "이거 칠봉이가 맛있다고 했던 거야. 먹어보자. "<꽃청춘>의 걔네들이 머물렀던 숙소에서 자고 싶은데 방이 없대." "블루라군은 꼭 가야 해. 걔들이 점프한 데잖아." 라오스에서 실제 내 귀에 들려온 대화들이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방송에 나왔던 대로 한다. TV가 여행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제 귀찮은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중략)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자기만의 라오스를 찾기보다는 <꽃보다 청춘>의 라오스를 소비할 뿐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그 집단적인 소비 행위에 타인들을 위한 배려가 끼어들 틈은 없다. (374, 375)

유명 관광지들을 다니는 대신에 저자가 즐기는 여행은 산책과 독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산책에 대한 예찬을 논한다.

인류의 위대한 인물 중에는 산책이 취미이자 특기였던 이들이 많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자면 소요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벌판을 헤매이누나'라고 노래했던 하이쿠 시인 바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 자크 루소, 너무 많이 걸어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할 만큼 오래 걸었던 방랑시인 랭보, 파리의 아케이드를 걸어 다니며 사색했던 발터 벤야민,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며 산책을 즐겼던 소로. 좋아하는 호숫가를 산책하다 감기에 걸려 세상을 뜬 시인 워즈워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에게 걷기나 산책은 존재의 방식이자 사색의 수단이다. (62, 63)

나 역시 성격이 게울러서인지 여행지에 가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산책이나 독서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히키코모리라서 한국에서도 집-학교-집을 반복하던 나인데, 여행을 가서까지 관광지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산책이나 하고 그저 책이나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치앙마이의 도서관에는 한글로 된 책이 1천 권이나 있다고 한다. 저자처럼 치앙마이에서 느긋하게 몇 주일간 체류하면서 도서관이나 오고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보면 여행과 책은 서로 닮아 있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일상과 그 일상을 둘러싼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게 가장 온순한 방법으로 자신이 쌓아온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254)

그렇게 말하면 "왜 굳이 비싼 돈 써서 외국에 나가 산책이나 하고, 책을 읽는가? 그럴 거면 한국에서 하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법 하다. 저자가, 그리고 내가 여행에서 바라는 것은 한국의 서울에서는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여유다.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에서는 번잡한 한국의 삶과는 다른 느린 삶이 있다고 한다.

사철 꽃이 피는 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면서 한껏 게을러지고 싶었다.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꼭 사고 싶은 물건도 없고, 꼭 봐야만 하는 것도 없는 곳. 덜 쓰고, 덜 가지고, 덜 만남으로써 느긋해지고 싶었다. 여행이 주는 긴장감은 덜고, 일상이 주는 지루함은 벗어나 여행과 일상 사이에 머무를 수는 없는 걸까. (5)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치앙마이의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영화로 <POOL>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한 번 봐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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