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년 전 여름, 시드니에 갔었다. 시드니로 말하자면, 한국과 비슷한 곳이어서 시차가 한 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위도는 정반대여서 계절이 정반대인 신기한 곳이다. 시드니에 가기 전에는 막연히 남쪽에 있으니 발리나 스리랑카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이리라 생각했지만, 시드니는 적도보다는 남극에 더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피해 피서를 잘 하고 왔던 기억이 있다.

시드니 체류기인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으며 서큘러 키, 조지 스트리트, 달링 하버, 본다이 비치, 팬케이크 온더 록스 등등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지명들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알타이, 페루,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처럼 내가 가 보지 못했던 곳들에 대해 읽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2016년 2월의 알라딘신간평가단 추천에세이로 선정된 책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신기하게도 두 권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체류, 산책, 독서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체류를 다루고 있고,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가이드북에 나오는 관광지를 쫓아다니는 여행을 즐기기보다는 산책과 독서처럼 일상적인 행위가 책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예를 들어 저자 중 한 사람인 장석주는 걷기를 다음과 같이 예찬한다.

걷는 자들은 숲길이건 들길이건 해변을 끼고 있는 길이건 시내 한복판 길이건 상관없이 걸음을 뗄 때마다 그 길에서 자신이 몸으로 존재함, 즉 존재의 느낌을 돌려받는다. 걷기는 몸의 모든 감각들을 일깨운다. 걸을 때 오감 속에서 느낌들이 풍부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략) 이것은 활력을 주는 해방과 자유의 느린 몸짓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며 영문 모를 기쁨이 가득 차오른다. 두말할 것 없이 느릿느릿 걷는 일은 속도와 효율성을 섬기는 현대성에 맞서는 저항이다. (중략) 느림은 사람들이 눈이 시뻘개져서 매달리는 수익의 창출이나 효율성의 극대화, 그리고 현대적 삶의 필요들에 대한 무관심과 그것을 방기하는 행위에 속한다. (170)

생각해보면, <처음 보는 유목민 여행>과 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내고 있는 에세이 '걸어본다' 시리즈의 하나이니, 걷기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저자들이 시인이니만큼 시드니에서 책 읽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또다른 저자인 박연준은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책은 펼쳐지고 넘겨지고 접히고 웅크린 채로, 쌓이거나 잊힌 채로, 읽히거나 방치된 채로, 가장 많은 시간은 '기다리면서' 낡아간다. 색이 바래고 미세하게 부풀어오르며 책 역시 '나이'를 갖게 된다. 우리와 같이 늙는다.
책도 저마다 운명, 혹은 팔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후엔 얇고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 시티에 나가봐야겠다. 저 책의 운명에는 시드니를 걸어보는 일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55)

산책과 독서를 주제로 한 여행이라는 점에서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와 비슷한데, 이 책의 특징은 바로 박연준과 장석주 두 저자가 시인 부부이며, 시드니 여행이 신혼여행이라는 점에 있다(이름만 봐서는 둘 다 남자 같은데 박연준이 여자다). 전반부는 박연준이, 후반부는 장석주가 담당하여 쓰고 있는데, 장석주의 파트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박연준 파트에는 JJ(책에서 박연준은 장석주를 JJ라고, 장석주는 박연준을 P라고 부른다)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되풀이 나온다. 그래서 솔로가 읽기에는 시쳇말로 '오글거리는' 부분이 많아 괴롭다. 안 그래도 발렌타인 데이라서 괴로운데ㅠㅠ

시인이라서 그런지 글에 대한 시적 고민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장석주는 칫솔모에서 만물의 운명을 발견한다.

시드니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나갈 무렵 치약은 닳고 칫솔모는 끝이 뭉툭해진다. 양치질을 하려다가 닳은 칫솔모를 한참 바라본다. 만물은 그 시작에서부터 소멸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 한번 생겨나면 반드시 닳아지고 바스러지며 줄어들고 쪼개져서 (중략) 사라지는 게 만물의 운명이다. (중략) 시간은 안 보이지만 흔적조차 없는 게 아니다. (177)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시인다움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라서 '詩드니'인 것일까?

박연준은 한 편의 시로 시드니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나도 그 시를 인용하고 끝마치겠다.

낯선 곳을 여행해보면 안다.
여행은 불편을 동반한 낯선 상황의 연속이라는 것을.
불안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그리 익숙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을.

돌아와보면 안다.
익숙할 때 즈음 그곳을 떠나왔음을.
이곳의 익숙함이 달콤하고 감동스럽게 느껴지지만
잠깐일 뿐이라는 것을.
조만간 권태에 빠져,
불편과 낯선 상황을 향해 달아나고 싶어할 것임을.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서울을 서울 밖에서 바라보듯 거리를 두고,
돌아와서도 헤매야 한다. (10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