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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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이 순전히 미국과 독일의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연합군이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있기까지 유럽전선에서 독일에 맞서 지상전을 수행한 것은 소련이었다. 그때까지 미국은 진주만 이후 태평양전선에서 일본을 상대하고 있었고, 영국은 독일의 공습에 시달리며 버티고 있었다. 1945년 5월,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유럽전선의 전쟁을 종결시킨 것도 소련군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교전국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는 2천만 명이 사망한 소련이었다. 독일이 학살한 유럽의 유대인은 폴란드에 이어 소련의 유대인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때 소련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자원하여 의무병, 통신병, 저격수, 전차병 등으로 참전하였다. 20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시(구소련)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1980년대에 여성 참전 용사들의 회고를 인터뷰하여 모은 책이다.

인터뷰들을 읽으며 여성들이 겪은 전쟁은 적어도 네 가지 층위(層位)의 전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소련) 국민으로서 경험한 전쟁
2. 개인으로서 경험한 전쟁
3. 여성으로서 경험한 전쟁
4. 인간으로서 경험한 전쟁

책이 처음 출판된 1980년대에 일반적이었던 시각은 1의 소련 국민으로서의 서사였다. 여기서 "대조국전쟁(제2차세계대전을 소련에서 부르는 말)"은 침략자 나치 독일에 소련이 저항하여 승리한 영광스러운 전쟁으로 기억되었다. 전체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이러한 공식적인 서사를 독점적으로 유포시켰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참전자들의 이야기는 잊혀지고 지워졌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그러한 소련의 국가주의적 담론을 해체하고 2와 3으로 분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실제로 전쟁의 참혹함을 담담하게 회고한 책의 일부 내용은 당시 소련의 검열 당국에서 문제시되어 삭제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영화 <플래툰>부터 <덩케르크>까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한 소설, 영화, 수기 등이 범람하고 있어 새로울 것이 없지만, 1980년대 소련에서는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4의 인간으로서 경험한 전쟁은 어떨까? 인터넷 일각에서는 이 책에 대한 러시아문학 연구자 이현우의 추천사 중 다음 부분이 문제가 되어 비판을 당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와 함께 이렇게도 말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 추천사에 대한 비판은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목에 담긴 여성의 문제를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1980년대 소련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1과 2, 3의 대립이었다면, 오늘날 한국에서는 3과 4의 대립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남성의 전쟁과 여성의 전쟁은 다른가? 당연히 다르다. 이 책에서는 전장에서 여자라고 차별을 받거나 전쟁이 끝나고 결혼을 기피당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시대와 국경, 성별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전쟁의 양상이 담겨 있다. 애국심에 불타 올라 전쟁에 자원했다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직면해야 했던 것이, 전장에서 동료들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국가와 사회로부터 그 명예를 인정받지 못하고 쓸쓸한 여생을 살아가야 했던 것이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여성'들만 겪어야 했던, 특정 시대, 특정 국가, 특정 성별의 문제였는가? 이 책을 읽으며 알렉시예비치가 만약 한국전쟁에 참전한 (남성)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했더라도 비슷한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자들이 전쟁에 대해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은 살인행위'라는 생각이 또렷이 박혀 있다. (중략)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중략)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29)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고 남자는 생명을 빼앗는 존재라는 저자의 이분법은 성차별적 편견에 기반해 있는 것 같다. 역사상 스스로의 의사에 반해서 억지로 전쟁에 동원되었던 이들이 어째서 여자들뿐이었겠는가? 혹은 전쟁의 광기에 물들어 인간성을 희생해야 했던 이들이 어째서 남자들뿐이었겠는가? 현재 한국에서 군에 입대하는 이들 중 절대다수는 전쟁이나 군대에 대해 혐오와 두려움을 가진 남성들이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해 자원해서 군대와 전쟁을 찾는 이들 중 상당수는 여자다. 얼마 전에도 한국의 육군사관학교 졸업생 중 1, 2, 3위를 여성 생도가 차지했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전쟁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남성이 여성보다 전쟁을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알렉시예비치의 다른 책들 <세컨드 핸드 타임>이나 <아연 소년들>을 보아도 이 사실은 명백하리라.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를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같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그 개별성과 보편성을 구성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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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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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게임 성우가 메갈리아 티셔츠를 인터넷에 인증했다가 교체되거나 초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도촬 영상이나 성범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 "메갈이니?"라는 소리를 듣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는 물론 최근 메갈리아와 워마드 등이 인터넷에서 벌인 패악질에 원인이 있지만, 페미니즘에 대해서 메갈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사회적으로도 부정적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 '페미니즘 포비아(phobia)'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얼마 전에는 한 페미니스트 연예인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경솔한 발언으로 인해 페미니즘의 혐오발언 역시 문제시되고 있다. 트랜스젠더나 게이 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워마드 등의 인터넷 페미니즘 커뮤니티에서 일반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다. 이 책에서는 "남녀 간의 혐오감과 공포심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부추기는 페미니즘"을 두고 "포비아 페미니즘"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페미니즘이 어째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모욕과 조롱으로 점철되게 되었는지 상식인들에게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의 저자는 여성이 약자이고 피해자이고, 그래서 항상 옳고 선하다는 관념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선악이분법 위에 서 있는 사상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우리'는 항상 옳고 '그들'은 항상 틀렸다는 기준을 세운다. 여성에 대한 혐오발언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여성들의 혐오발언에 대해서는 정당화하는 이중잣대(시쳇말로 '내로남불') 역시 아무런 반성 없이 용인되어 왔다. 페미니즘이든 파시즘이든 맑시즘이든 스스로의 도덕성을 절대시하며 반대되는 입장에 대해 편협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교조적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다.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자체는 상황에 따라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페미니즘이 절대적으로 옳고 틀릴 수 없다는 전제에 대한 확신은 페미니즘 진영에 대한 반성 자체를 가로막고 사회로부터 점점 더 고립시키고 있다. 비단 페미니즘뿐 아니라 보수도 진보도 진영의 문제에 대해 눈을 감는 대신 문제점을 직시하고 반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악이분법적인 진영논리에 빠져 서로를 비난하는 성찰하지 않는 보수, 성찰하지 않는 진보가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잃었듯이 성찰하지 않는 페미니즘 역시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페미니즘 포비아와 포비아 페미니즘은 서로가 서로를 "메갈"이라고, "한남"이라고, 매도하면서 적대적 공존을 계속하고 있다. 페미니즘 포비아와 포비아 페미니즘을 넘어서 성평등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P.S. 일부 이용자들의 항의로 인해 알라딘에서 "여성/젠더" 분야에서 "사회비평/칼럼"으로 이 책의 카테고리를 변경했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다. 비판과 이견(異見)에 직면했을 때,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 논쟁을 통해 한 단계 더 발전된 이념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책에 대한 논리적 반론 없이 카테고리를 변경함으로써 비판과 이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태도는 편협하고 독선적인 페미니즘의 문제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이 페미니스트들에게 읽힐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과의 논쟁이 성립할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18)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야말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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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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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SF 작가 테드 창의 소설이다. 충격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당신 인생 이야기>가 단편집이었던 반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중편이다. 작가 중에는 단편을 잘 쓰는 작가, 장편을 잘 쓰는 작가, 둘 다 잘 쓰는 작가가 있다.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비하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인상이 옅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디지언트'라고 불리는 애완용 인공지능이 출시된다. 학습도 하고 말도 할 수 있는 '디지언트'들은 가상 공간에서 아바타로 기를 수도 있고, 로봇 몸체에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어서, 발매 직후에는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이윽고 경쟁사들의 업그레이드된 제품들이 나오고, '디지언트' 자체의 매력이 싫증이 나면서 처음에 이를 개발한 회사는 폐업하고 서비스를 중단하게 된다. 소설의 3분의 1이 되기 전에 회사가 망하고, 뒷부분은 회사에서 '디지언트'를 개발하던 애나와 데릭이 소수의 사용자들과 함께 이들 애완용 인공지능을 애완동물이나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면서 생기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 수도 점점 줄어들고, 디지언트들이 살아가는 가상 공간의 이용도 제한되면서 '디지언트'들과 그 주인들에게 큰 위기가 닥치게 된다.

소설을 읽다가 검색을 해 보니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의 소니에서 개발한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는 1999년에 출시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높은 가격과 잦은 고장 등으로 인해 소니는 2006년에 생산을 중단하고 아이보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소수의 '아이보' 사용자들은 계속 '아이보'를 기르고 있지만, 고장난 부품을 교체할 수 없게 되면 그 개체의 수명 역시 다하게 되는 것이다. 생산이 중단된 세탁기나 냉장고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애완동물과 같은 애정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슬픔 역시 애완동물을 잃은 것과 비슷하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가 지금은 시들해진 게임 '포켓몬 고'도 그렇지만, 애정했던 게임이나 물건들이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더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는 안타까움을 안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애완동물과는 다르지만, 애완 로봇이나 인공지능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비슷한 문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920년,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펙이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이후로, <아이, 로봇>이나 <블레이드러너> 등을 통해 로봇이나 인공지능들을 다룬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는, 아니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던져왔다. 작년에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 대결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먼 미래나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여겨졌다. 이후 "4차산업혁명"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의 문제는 과학뿐 아니라 철학적, 윤리적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은 더이상 "공상과학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면한 과제인 것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SF의 가능성을 보여준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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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하는 제국 - 11개의 미국, 그 라이벌들의 각축전
콜린 우다드 지음, 정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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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직접선거 대신 주 별로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제도일 것이다. 지난 대선의 클린턴처럼 총 득표수가 더 많아도 낙선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불합리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미국 특유의 대선 제도는 미국이 말 그대로 United States of America이기 때문이다. 이를 "미합중국"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미국 연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1776년 당시 미국은 13개 주의 연방으로 탄생했고, 그 규모가 50개 주로 늘어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미국은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50개 주의 연방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분열하는 제국>은 미국을 11개의 nation(국민, 국가, 민족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 책에서는 문화권이 제일 적절해 보인다)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 nation은 주의 경계를 뛰어넘고, "북부, 남부, 서부, 동부"의 구분도 뛰어넘고, 심지어 캐나다와 멕시코의 국경까지도 뛰어넘는다. 얼핏 듣기로는 황당무계하지만, 각각의 문화권이 다른 기우너과 역사, 전통,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1. 엘 노르테: 여느 미국 역사책과 달리 이 책은 17세기 영국인들의 미국 이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인들은 16세기 후반부터 북진을 시작하여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 도시들을 만들었다.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캘리포니아 남부, 텍사스 남부, 아리조나 남부, 뉴멕시코를 미국에 넘겨야 했다. 이들 지역과 멕시코 북부의 히스패닉들은 다른 지역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체성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

2. 뉴프랑스: 17세기 초반, 프랑스인들이 북미 대륙에 진출한다. 영국인들과 달리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이들은 영국 식민지인들과 패권을 두고 다투다 18세기의 프렌치-인디언전쟁에서 패배하고 영향력을 상실한다. 현재는 루이지애나 남부의 일부와 캐나다의 퀘백 지역에 그 잔재가 남아 있다.

3. 타이드워터: 1607년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영국의 귀족 사회를 모델로 하여 이 지역을 다스렸다. 한때는 양키덤에 맞서며 북미의 패권을 가지려 했지만, 19세기 이후에는 담배 산업의 쇠퇴로 디프 사우스에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4. 디프사우스: 17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바베이도스에서 미국의 남부 지역으로 이동한 이들을 가리키며, 노예제를 중심으로 한 독재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세계관을 수호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남북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플로리다, 루이지아나, 아칸소, 텍사스에 해당하는 지역.

5. 양키덤: 1620년대 메이플라워호를 시작으로 청교도들이 미국 북동부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청교도는 불관용적인 종교였지만, 민주주의와 교육을 중시하는 특유의 문화가 있었다. 이들의 종교적 색채는 20세기 들어서 세속화되었고, 현재는 민주당의 핵심 지역으로 디프사우스와 패권을 다투고 있다. 메사추세츠, 뉴잉글랜드에서 시작하여 오대호 주변으로 세력을 넓혔다.

6. 레프트 코스트: 캘리포니아부터 앨라스카까지의 북미대륙 서해안에 위치한 지역. 19세기 뉴잉글랜드인들이 진출하면서 양키덤의 영향이 강했고, 현재까지 양키덤과 동맹 관계에 있다. 양키덤보다 종교적 색채가 없고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꽃피웠다.

7. 뉴네덜란드: 양키덤과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인들이 현재의 뉴욕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 지역은 곧 뉴잉글랜드에게 정복당했지만, 개방적이고 상업 중심적인 분위기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8. 그레이터 애팔라치아: 18세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국경지대에 있던 이들이 가난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들은 애팔라치아 산맥에 정착했으며, 현재는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미주리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다. 독립적인 성향이 짙으며 엘리트, 양키덤에 대한 반감 때문에 현재는 디프사우스와 동맹을 맺고 있다.

9. 미들랜드: 19세기 퀘이커 식민지로 시작했으나, 이후 독일계 이민들이 많아졌다. 세력권은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와 메릴랜드 북부, 오하이오 중부, 사우스 다코타, 캔자스, 캐나다의 온타리오까지에 이른다. 중도적 성향을 가지고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 왔다.

10. 파웨스트: 아이다호 ,몬타나, 콜로라도, 유타, 네바다, 캘리포니아 동부 등 미국 서부의 광활한 지역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싸워왔다. 중앙 정부에 반대하는 자유지상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11. 퍼스트 네이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는 캐나다 북부의 삼림지역. 환경주의와 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들은 최근 독립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사를 이들 11개 문화권의 각축으로 보는 이책의 관점은 획기적이고 대담하다. 예를 들어 미국 독립혁명은 양키덤, 디프사우스, 타이드워터, 그레이터 애팔라치아의 동맹으로 성사시켰고, 뉴네덜란드와 미들랜드는 소극적이었다. 남북전쟁의 경우, 노예제에 의존하고 있던 디프사우스의 독립을 양키덤과 그 외 세력이 주축이 되어 저지한 것이었다.

현재의 민주당, 공화당의 대립은 양키덤-레프트코스트-뉴네덜란드 동맹과 디프사우스-타이드워터-그레이터 애팔라치아의 연합의 대결의 연장에 있다. 파웨스트, 엘노르테, 미들랜드는 부동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현재 파웨스트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공화당에, 히스패닉이 주가 되는 엘노르테는 인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방불케 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인종, 종교, 정부의 권한을 둘러싼 미국 정치의 단층들을 11개 문화권으로 분석하는 관점은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재미있으면서도 알기 쉽게 읽을 수 있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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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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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는 문인들이 경주, 광주, 시드니, 류블라냐, 뉴욕 등 국내외 도시들에 대해 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서울, 그 중에서도 용산을 다룬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걸어본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책을 읽으며 사람들마다 '용산'이라는 지명이 의미하는 바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용산참사'의 대명사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역의 이름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용산전자상가를 가리킬 것이다.

사실은 내게도 용산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2013년 이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끔 전시를 보러 가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곳이지만, 그해 카투사에 지원해서 합격하면서 용산은 내게는 꿈의 땅이 되었다. 미군 부대에 소속된 카투사들은 자대가 기본적으로 열 곳 정도로 제한되는데 그 중에서도 많이 가는 곳은 용산, 평택, 동두천, 의정부, 대구, 왜관 정도다. 경상도에 집이 있는 친구들이 대구나 왜관을 선호하는 것을 예외로 하면, 대부분의 카투사들에게 1지망은 용산, 2지망은 평택, 그 뒤로 기타 지역들이 뒤를 잇고, 동두천은 거의 악몽으로 취급된다. 육군 전투부대가 있는 동두천은 훈련 등이 빡세기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동기 중에는 할아버지 역시 카투사였던 친구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는 용산이 최고고 동두천은 노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집이 서울이고, 편한 군생활을 꿈꾸며 카투사에 당첨된 나는 다른 카투사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용산 바라기가 되었다. 아니, 다른 곳도 상관 없었지만, 동두천, 의정부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 일이란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지라, 우여곡절 끝에 자대배치를 받을 때는 나는 우울하게 의정부로 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별 문제 없이 군생활을 마쳤고, 의정부에서의 군생활이 나름 나쁘지는 않았다. 용산은 듣자 하니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이런저런 불편함도 많았다고 하니, 제대하고 1년이 지나서도 탄식할 만한 일은 아닐 듯 싶다.

인터넷 상의 지도에서 용산 미군기지는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한다"(21). 서울의 한 가운데, 북쪽으로는 숙대입구역부터 남쪽으로는 이촌역까지, 서쪽으로는 신용산역부터 동쪽으로는 서빙고역까지, 인터넷 지도에서 녹색의 공백으로 표시되는 지역은 그 색깔 때문에 공원이나 숲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군사시설이다. 용산미군기지를 두른 "이 높은 담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74)"

나는 담장 안에 들어가 본 소수의 행운아 중 하나였다. 근무하는 부대는 달라도, 미군기지 출입증이 있기에 용산 미군부대에 가 볼 수 있었다. 주한미군 기지 중에서도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드래곤 힐 롯지라는 호텔이다. 이 호텔은 5성급 호텔이라느니, 백선엽 장군이 가끔 식사하러 온다느니 하는 소문이 있는데, 식당에서 판매하는 스테이크가 맛있다는 소문이었다. 나 역시도 군생활을 마치기 전에 여친(혹은 썸녀라도)과 함께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여친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고, 대신에 대학원 선배들과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선배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미군기지를 구경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부대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정의 서류가 필요한데, 문제는 자동차의 차량보험증을 종이로 인쇄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 눈 감아 줄 법도 한데, 깐깐한 규정 탓에 결국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헛걸음을 하게 만들어 죄송해 하는 내게 선배는 용산 미군기지는 "오욕의 땅"이라고 말했다. 용산의 역사를 보자면 실로 그러하다.

거슬러올라가면 13세기 고려 말 한반도를 침입한 몽고군이 용산의 동쪽 아래 들판을 병참기지로 활용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원효로와 청파동이 일본군의 주둔지였고, 개항 이후에는 근대 문물이 수입되는 통로가 되었다. (중략)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으며, 청일전쟁 이후 효창공원 부근에 일본인 군부대가 자리잡고 일본인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략) 일본은 이 지역에 철도기지와 군사기지를 세웠다. 일본군의 주둔지는 해방 이후 60여년이 넘게 다시 미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이 지역은 근대 초기의 제국주의의 각축장이었고, 일본의 반도 침략의 통로였으며, 150년간 외세가 주둔한 군사 지역이었다. 덕분에 이 지역은 참혹하고도 유서 깊은 근대 이후의 '국제적인 장소'가 되었다. (13, 14) 

십여년을 끌어왔던 미군기지 평택 이전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용산의 미군기지는 이제 한국에 반환된다고 한다. 의정부에 있던 우리 부대도 평택으로 이전을 마쳤다. 이제는 높은 담장 너머는 가 볼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제대하기 일주일 전, 여친과 함께 용산 미군기지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먹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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