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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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는 문인들이 경주, 광주, 시드니, 류블라냐, 뉴욕 등 국내외 도시들에 대해 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서울, 그 중에서도 용산을 다룬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걸어본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책을 읽으며 사람들마다 '용산'이라는 지명이 의미하는 바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용산참사'의 대명사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역의 이름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용산전자상가를 가리킬 것이다.

사실은 내게도 용산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2013년 이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끔 전시를 보러 가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곳이지만, 그해 카투사에 지원해서 합격하면서 용산은 내게는 꿈의 땅이 되었다. 미군 부대에 소속된 카투사들은 자대가 기본적으로 열 곳 정도로 제한되는데 그 중에서도 많이 가는 곳은 용산, 평택, 동두천, 의정부, 대구, 왜관 정도다. 경상도에 집이 있는 친구들이 대구나 왜관을 선호하는 것을 예외로 하면, 대부분의 카투사들에게 1지망은 용산, 2지망은 평택, 그 뒤로 기타 지역들이 뒤를 잇고, 동두천은 거의 악몽으로 취급된다. 육군 전투부대가 있는 동두천은 훈련 등이 빡세기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동기 중에는 할아버지 역시 카투사였던 친구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는 용산이 최고고 동두천은 노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집이 서울이고, 편한 군생활을 꿈꾸며 카투사에 당첨된 나는 다른 카투사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용산 바라기가 되었다. 아니, 다른 곳도 상관 없었지만, 동두천, 의정부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 일이란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지라, 우여곡절 끝에 자대배치를 받을 때는 나는 우울하게 의정부로 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별 문제 없이 군생활을 마쳤고, 의정부에서의 군생활이 나름 나쁘지는 않았다. 용산은 듣자 하니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이런저런 불편함도 많았다고 하니, 제대하고 1년이 지나서도 탄식할 만한 일은 아닐 듯 싶다.

인터넷 상의 지도에서 용산 미군기지는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한다"(21). 서울의 한 가운데, 북쪽으로는 숙대입구역부터 남쪽으로는 이촌역까지, 서쪽으로는 신용산역부터 동쪽으로는 서빙고역까지, 인터넷 지도에서 녹색의 공백으로 표시되는 지역은 그 색깔 때문에 공원이나 숲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군사시설이다. 용산미군기지를 두른 "이 높은 담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74)"

나는 담장 안에 들어가 본 소수의 행운아 중 하나였다. 근무하는 부대는 달라도, 미군기지 출입증이 있기에 용산 미군부대에 가 볼 수 있었다. 주한미군 기지 중에서도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드래곤 힐 롯지라는 호텔이다. 이 호텔은 5성급 호텔이라느니, 백선엽 장군이 가끔 식사하러 온다느니 하는 소문이 있는데, 식당에서 판매하는 스테이크가 맛있다는 소문이었다. 나 역시도 군생활을 마치기 전에 여친(혹은 썸녀라도)과 함께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여친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고, 대신에 대학원 선배들과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선배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미군기지를 구경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부대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정의 서류가 필요한데, 문제는 자동차의 차량보험증을 종이로 인쇄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 눈 감아 줄 법도 한데, 깐깐한 규정 탓에 결국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헛걸음을 하게 만들어 죄송해 하는 내게 선배는 용산 미군기지는 "오욕의 땅"이라고 말했다. 용산의 역사를 보자면 실로 그러하다.

거슬러올라가면 13세기 고려 말 한반도를 침입한 몽고군이 용산의 동쪽 아래 들판을 병참기지로 활용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원효로와 청파동이 일본군의 주둔지였고, 개항 이후에는 근대 문물이 수입되는 통로가 되었다. (중략)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으며, 청일전쟁 이후 효창공원 부근에 일본인 군부대가 자리잡고 일본인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략) 일본은 이 지역에 철도기지와 군사기지를 세웠다. 일본군의 주둔지는 해방 이후 60여년이 넘게 다시 미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이 지역은 근대 초기의 제국주의의 각축장이었고, 일본의 반도 침략의 통로였으며, 150년간 외세가 주둔한 군사 지역이었다. 덕분에 이 지역은 참혹하고도 유서 깊은 근대 이후의 '국제적인 장소'가 되었다. (13, 14) 

십여년을 끌어왔던 미군기지 평택 이전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용산의 미군기지는 이제 한국에 반환된다고 한다. 의정부에 있던 우리 부대도 평택으로 이전을 마쳤다. 이제는 높은 담장 너머는 가 볼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제대하기 일주일 전, 여친과 함께 용산 미군기지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먹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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