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SF 작가 테드 창의 소설이다. 충격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당신 인생 이야기>가 단편집이었던 반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중편이다. 작가 중에는 단편을 잘 쓰는 작가, 장편을 잘 쓰는 작가, 둘 다 잘 쓰는 작가가 있다.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비하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인상이 옅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디지언트'라고 불리는 애완용 인공지능이 출시된다. 학습도 하고 말도 할 수 있는 '디지언트'들은 가상 공간에서 아바타로 기를 수도 있고, 로봇 몸체에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어서, 발매 직후에는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이윽고 경쟁사들의 업그레이드된 제품들이 나오고, '디지언트' 자체의 매력이 싫증이 나면서 처음에 이를 개발한 회사는 폐업하고 서비스를 중단하게 된다. 소설의 3분의 1이 되기 전에 회사가 망하고, 뒷부분은 회사에서 '디지언트'를 개발하던 애나와 데릭이 소수의 사용자들과 함께 이들 애완용 인공지능을 애완동물이나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면서 생기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 수도 점점 줄어들고, 디지언트들이 살아가는 가상 공간의 이용도 제한되면서 '디지언트'들과 그 주인들에게 큰 위기가 닥치게 된다.

소설을 읽다가 검색을 해 보니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의 소니에서 개발한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는 1999년에 출시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높은 가격과 잦은 고장 등으로 인해 소니는 2006년에 생산을 중단하고 아이보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소수의 '아이보' 사용자들은 계속 '아이보'를 기르고 있지만, 고장난 부품을 교체할 수 없게 되면 그 개체의 수명 역시 다하게 되는 것이다. 생산이 중단된 세탁기나 냉장고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애완동물과 같은 애정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슬픔 역시 애완동물을 잃은 것과 비슷하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가 지금은 시들해진 게임 '포켓몬 고'도 그렇지만, 애정했던 게임이나 물건들이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더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는 안타까움을 안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애완동물과는 다르지만, 애완 로봇이나 인공지능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비슷한 문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920년,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펙이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이후로, <아이, 로봇>이나 <블레이드러너> 등을 통해 로봇이나 인공지능들을 다룬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는, 아니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던져왔다. 작년에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 대결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먼 미래나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여겨졌다. 이후 "4차산업혁명"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의 문제는 과학뿐 아니라 철학적, 윤리적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은 더이상 "공상과학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면한 과제인 것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SF의 가능성을 보여준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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