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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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이 순전히 미국과 독일의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연합군이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있기까지 유럽전선에서 독일에 맞서 지상전을 수행한 것은 소련이었다. 그때까지 미국은 진주만 이후 태평양전선에서 일본을 상대하고 있었고, 영국은 독일의 공습에 시달리며 버티고 있었다. 1945년 5월,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유럽전선의 전쟁을 종결시킨 것도 소련군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교전국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는 2천만 명이 사망한 소련이었다. 독일이 학살한 유럽의 유대인은 폴란드에 이어 소련의 유대인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때 소련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자원하여 의무병, 통신병, 저격수, 전차병 등으로 참전하였다. 20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시(구소련)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1980년대에 여성 참전 용사들의 회고를 인터뷰하여 모은 책이다.

인터뷰들을 읽으며 여성들이 겪은 전쟁은 적어도 네 가지 층위(層位)의 전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소련) 국민으로서 경험한 전쟁
2. 개인으로서 경험한 전쟁
3. 여성으로서 경험한 전쟁
4. 인간으로서 경험한 전쟁

책이 처음 출판된 1980년대에 일반적이었던 시각은 1의 소련 국민으로서의 서사였다. 여기서 "대조국전쟁(제2차세계대전을 소련에서 부르는 말)"은 침략자 나치 독일에 소련이 저항하여 승리한 영광스러운 전쟁으로 기억되었다. 전체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이러한 공식적인 서사를 독점적으로 유포시켰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참전자들의 이야기는 잊혀지고 지워졌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그러한 소련의 국가주의적 담론을 해체하고 2와 3으로 분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실제로 전쟁의 참혹함을 담담하게 회고한 책의 일부 내용은 당시 소련의 검열 당국에서 문제시되어 삭제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영화 <플래툰>부터 <덩케르크>까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한 소설, 영화, 수기 등이 범람하고 있어 새로울 것이 없지만, 1980년대 소련에서는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4의 인간으로서 경험한 전쟁은 어떨까? 인터넷 일각에서는 이 책에 대한 러시아문학 연구자 이현우의 추천사 중 다음 부분이 문제가 되어 비판을 당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와 함께 이렇게도 말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 추천사에 대한 비판은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목에 담긴 여성의 문제를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1980년대 소련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1과 2, 3의 대립이었다면, 오늘날 한국에서는 3과 4의 대립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남성의 전쟁과 여성의 전쟁은 다른가? 당연히 다르다. 이 책에서는 전장에서 여자라고 차별을 받거나 전쟁이 끝나고 결혼을 기피당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시대와 국경, 성별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전쟁의 양상이 담겨 있다. 애국심에 불타 올라 전쟁에 자원했다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직면해야 했던 것이, 전장에서 동료들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국가와 사회로부터 그 명예를 인정받지 못하고 쓸쓸한 여생을 살아가야 했던 것이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여성'들만 겪어야 했던, 특정 시대, 특정 국가, 특정 성별의 문제였는가? 이 책을 읽으며 알렉시예비치가 만약 한국전쟁에 참전한 (남성)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했더라도 비슷한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자들이 전쟁에 대해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은 살인행위'라는 생각이 또렷이 박혀 있다. (중략)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중략)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29)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고 남자는 생명을 빼앗는 존재라는 저자의 이분법은 성차별적 편견에 기반해 있는 것 같다. 역사상 스스로의 의사에 반해서 억지로 전쟁에 동원되었던 이들이 어째서 여자들뿐이었겠는가? 혹은 전쟁의 광기에 물들어 인간성을 희생해야 했던 이들이 어째서 남자들뿐이었겠는가? 현재 한국에서 군에 입대하는 이들 중 절대다수는 전쟁이나 군대에 대해 혐오와 두려움을 가진 남성들이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해 자원해서 군대와 전쟁을 찾는 이들 중 상당수는 여자다. 얼마 전에도 한국의 육군사관학교 졸업생 중 1, 2, 3위를 여성 생도가 차지했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전쟁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남성이 여성보다 전쟁을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알렉시예비치의 다른 책들 <세컨드 핸드 타임>이나 <아연 소년들>을 보아도 이 사실은 명백하리라.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를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같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그 개별성과 보편성을 구성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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